소설리스트

〈 64화 〉기초의원 마누라 (1) (64/90)



〈 64화 〉기초의원 마누라 (1)

뜬금없이 까다롭게 구는 은지 반응에 짜증은 났지만, 그동안 받았을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란 생각에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삭히고 모텔에서 나와 해운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호텔이라는 곳은 단지 숙박을 위한 목적으로 찾는 모텔과 달리 다양한 이유로 많은 사람이 들락거린다.

물론 미혼인 내가 객실 복도에서 아는 누군가와 얼굴을 맞부딪친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이 약간 당황스러울 뿐이지 문제가 될 일은 없다.

결국 내가 모텔을 고집한 이유는, 어차피 요즘 대부분 모텔의 객실이 호텔에 버금갈 정도이니 굳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을 찾았다가, 누군가에게 부딪칠 때 곤란해질 동행한 여자를 배려한 것뿐이다.

숙박을 한다고하더라도 특급호텔이 아니라면 모텔과 호텔의 요금이 겨우 몇만 원 차이인데, 그 몇만 원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고 말이다.

“또 여기 갈까?”
“응.”

해운대를 지나 지난번 합천을 다녀와서 하룻밤 묵었던, 광안리 해변이 보이는 호텔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자기야, 잠깐만.”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리려 하는데 은지 휴대폰이 울렸고, 액정화면을 보던 은지가 잔뜩 인상을 쓰면서 내게 조용히 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야 우리 아파트로 가자.”
“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은지가 빨리 집으로 가달라고 했기에, 황당한 가운데서도 은지가 사는 아파트로 향했다.

“미안해. 남편이 다시 집에 왔다네.”
“남편이 왜? 뭐 놔두고 간 것이라도 있다고 해?”
“의원이 당분간 지역구에 있으면서 주민들 분위기 단속 좀 하라고 했나 봐. 정말 미치겠다.”

은지가 원한대로 아파트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상가 쪽에 그녀를 내려주고, 조금 직진한 후에 골목에 차를 세운 후 담배 한 개비를 피운 후에 나도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출발시켰다.

그런데 순간 상가 계단을 내려오는 은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녀가 갓길에 세워진 스포츠카 조수석에 올라타는 것이 보였다.

순간 어쩌면 내가 속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차를 따라갈까 말까 하는 갈등이 생겼다.

‘하~아~ 더러운 년!’이란 소리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거의 무의식 비슷한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나는 은지가 탄 스포츠카를 뒤쫓았고, 예상했던 것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그 스포츠카는 그 아파트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인근의 모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방금 전 제 년을 배려한답시고 무인 모텔을 찾았었던 나로서는 허탈하기도 하고 또 황당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만큼 젊은 애의 X 맛이 그리웠던 것일 것이란 생각으로 은지란 년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어디 다녀오시는 길입니까?”
“응,볼일이 좀 있어서.”
“커피 드릴까요?”
“고마워~”

허탈한 기분을 추스르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얼마 전 채용한  양이  방으로 따라 들어오더니,  윗도리를 받아 옷걸이에 걸고선 커피를 마실 것이냐 물었다.

“김 양.”
“예. 사장님.”
“내 옷을 받아 걸고 하는 것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예? 혹시 제가 기분 나쁘게  것이라도 있었나요?”
“그게 아니라 김 양은 업무를 맡기기 위해 채용한 것이지, 내 개인비서로 취직한 것은 아니잖아. 옷까지 받아 걸고 하는 것을 남들이 알면 욕 얻어먹어. 아무튼 커피 고마워.”

김 양이 가져온 커피를 생수라도 마시듯 꿀꺽거리면서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니, 그때서야 속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세상에 별 희한한 미친년도 다 있다 싶었다.

내가 모텔로 들어간 것에는 까칠하게 난리를 치던 년이 나이 어린 사내놈과는 모텔로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결국 장소까지 바꿔 떡을 치기 위해 호텔까지 갔으면서도 전화 한 통에 바로 선수 교체를 하는 년의 머리통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지가 궁금했다.

아무튼 내가 할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닌 인간이니 굳이 내 자존심을 뭉개기까지 하는 년과 계속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었고, 끝을 내더라도 상대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들이밀고 끝을 내야만 뒤가 깔끔한 법이다.

그래서 나는 블랙박스에서 뽑아온 메모리 칩의 영상을 노트북에 내려 받은 후 상가 앞에서 스포츠카에 올라타던 장면과 모텔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영상을 잘라서 휴대전화에 저장했다.


‘자기야~ 자?’

지금까지 어린놈하고 떡을 치다가 들어온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기 위함인지 모를 일이지만,  10시 가까이 되어서 톡이 왔다.

‘자기야~ 혹시 화났어? 이제 겨우 남편 잠들었단 말이야.’

톡을 보내고 5분이 지나도 내가 확인조차 하지 않자, 은지란 년이 또다시 톡을 보내왔다.

속에서 ‘남편은 개뿔!’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간단하게 답을 보냈다.

‘앞으로 연락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기야,  그래? 남편이 집에 왔다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응?’

유부녀가 상간 남(相姦男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변명이자 가장 강한 핑계가 바로 남편이었고, 이년 역시도 그걸 내게 무기로 써먹고 있었다.

‘이거 자기가 오해한 거야. 집에 가니 남편이 없어서 전화를 거니까, 후배 편에 차를 보냈으니 그걸 타고 지역구 사무실에 잠시 오라고 해서 타고 갔을 뿐이거든.’

역시 뻔뻔하기 그지없는 답이었다.

솔직히 모텔로 들어가는 영상을 동시에 보내려다가, 이년이 어떻게 나오나 싶어서 차에 올라타는 장면을 스크린 샷으로 잡아 이미지 파일만 보냈더니 이 지랄이었다.

더는 말이 필요가 없는 년이라는 생각에 나는 다시 차에 올라타는 부분과 모텔로 진입하는 영상을 전송했고, 파일이 업로드되는 동안에 ‘앞으로 한번만 더 나한테 연락하면, 이 영상을 당신 남편 앞으로 보낼 것이니 연락하지 마세요!’라고 타이핑한 후에 톡을 닫았다.

한동안 톡은 조용했고,  속 시원하단 생각과 함께 잠에 빠져들었다.

하긴 ‘묻지 마 관광’에 가까운 그런 버스에 올라탄 여자에게 순정을 기대할 일도 없고, 기대한다는 자체가 멍청한 짓이란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남편 어쩌고 하는 말을 100% 신뢰하진 않았지만, 잠시나마 그 일을 놓고 측은하게 생각했었던 그것에 화가 났다.



“아빠, 어젯밤에는 말도 없이 어딜 갔었어?”
“가긴 어딜 가? 몸이 피곤해서 직원들 퇴근한 후에 바로 뻗었지.”
“벌써 체력이 달려? 민지하고 할 때는 아빠 자고 있었잖아?”
“체력 때문이 아니라 골치 아픈 일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래.”
“아무튼 이거 한번 먹어 봐. 새로 개발했거든.”

직원 둘이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올라간 틈을 이용해서, 지혜가 새로 개발한 맛이라는 마카롱을 들고 찾아왔다.

“이거 제법 맛있다.”
“블루베리 향이 많이 나?”
“응. 괜찮네.”
“다행이다. 그런데 오늘은 내 차례란 것 알지?”
“뭐?”
“오늘  아빠하고  거라고.”
“인마, 조금만 기다려. 어제 민지도 그렇고 오늘 네가 가게서 잔다고 하면 경비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럼 난 어떻게 하라고? 나 하고 싶단 말이야.”
“내일부터 공사 시작할 예정이고, 보일러 깔고 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으니 며칠만 기다려.”

상황이 이렇게 변하다 보니, 나 스스로도 굳이 경비원까지 고용해서 여자들 숙소의 출입을 통제할 필요까지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내가 미친 짓을 했다는 생각이  것이다.

아무튼 애들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드러내놓고 애들과 잠자리를 가질 수는 없었기에, 그 대안으로 아이들 가게 뒤에 달린 창고를 숙소로 개조하기로 했고, 내가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또한 조금  넓히는 것과 동시에 방음공사를 하기로 했다.

원룸의 마당이 있는 쪽으로  문은 이번 공사를 끝내고 나면 아예 막아버릴 예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사용하게 될 숙소와 내가 지금 사용하고있는 숙소 사이 복도는, 가게 주방과 사무실의 내 방의 출입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구조이니, 공사만 끝내고 나면 프라이버시는 확실히 보장될 것이다.

그럼 방음이 완벽한 상태에서 내 방에서 아무리 비명을 지르더라도, 그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것이다.

“대낮부터  무슨 일이야?”
“이영진 의원 알지?”
“이영진? 그게 누군데?”
“우리 동네 기초의원이잖아. 어떻게 당신은 우리 동네 구의원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냐?”
“지랄, 그 인간들이 나한테 쌀을 주기를 하나 아니면 돈뭉치를 갖다 주기를 하냐. 나한테 아무 득도 없는데 내가 걔들을 뭐 한다고 기억해.”
“아무튼....... 일단 나가자.”
“왜?”
“이영진 의원 부인이 오늘 점심 사기로 했거든.”
“그런 자리에 내가 왜 가? 됐으니 당신이나 가서 많이 먹고 오든지.”
“너하고 같이 오라고 했거든.”
“지랄한다. 그 여자가 나를 어떻게 알고?”
“아무튼 시간 없으니까 가면서 이야기해.”

아무튼 오지랖이 넓은 인간하고 알고 지내면 이렇게 귀찮은 일이 자주 생긴다.

도대체 박 소장 이 인간은 왜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이렇게 사사건건 나서는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협회장 선거에 관여하는 것도 부족해서 기초의원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입주민들에게내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약속장소로 향하면서 들은 박 소장의 이야기는 황당하기까지 했다.

내가 매입한 원룸인 ‘봄(Spring)'이 우리 지역에서 가장 입주민이 많은 원룸이기에, 그걸 안 이영진이라는 기초의원 부인이 다음 지방선거에서 표를 부탁한다는 차원에서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사장.”
“와?”
“그 여자 알아놔서 손해날  없어.”
“득  일이 없기도 하고.”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됐다. 이미 약속했다고하니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없이 가는 것뿐이니, 더는 나한테 다른 건 기대하지 마.”
“아니라니까. 이영진 의원 다음 지방선거 때, 구청장으로 나설 모양이야. 그리고 분위기를 보면 구청장 당선이 충분히 가능한 분위기고.”
“그 사람이 구청장이 된다고 해서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그냥 세금 내라는 것 꼬박꼬박 내고, 위법한 일만 하지 않고 살면 되지.”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보니, 어느새 약속 장소라는 광안리에 있는 횟집에 도착했다.

“어서 오세요. 이영진 의원 안사람 되는 양진숙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자경 부동산이라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진홉니다.”
“그러지 않아도 박 사장님께  사장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조금 일찍 모셨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종업원을 따라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영진 의원의 부인이라는 여자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여자도 말을 하면서 눈웃음을 치는것이나 아랫입술이 도톰하면서 잔주름이 많이 진 것을 보니, 엄청 밝히게 생겼다는 생각부터 든다.

“예전 성 사장님이 하실 때하고는 달리 지금 거의 만실이라면서요?”
“아무래도 임대료를 낮췄으니 당연한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이 사장님께서 좀 도와주세요.”
“제가 정치를 아는 것도 없는데 도와드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에이~ 아니죠. 우리 지역에 이 사장님 원룸만큼 규모가 큰 원룸도 없잖아요. 그리고 박 소장님 말로는 요즘 사무실에 손님도 많다고 하던데요.”

기초의원 부인이라는 여자와의 대화는, 박 소장이 한 것처럼 그냥 평범한 대화였다.

하지만 이 여자가 말을 할 때마다 눈웃음을 치는 모습이 심상찮아 보였고, 어쩌면 이런 표정으로 남편이 기초의원에 당선되는 데 있어 사내들의 표를 제법 훑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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