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서민지라는....... (3) (59/90)



〈 59화 〉서민지라는....... (3)

“지혜 너도 같이 갈래?”
“아니, 내가 옆에 있으면 자존심 때문에 하고 싶은 말도 못할 거야.”

결국 나 혼자서 민지란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했고, 나는 민지란 친구와 만나기로 한 부산대학교 대운동장 뒤에 있는 산책로가 있는 숲으로 향했다.

“삼촌, 여기요.”

산책로로 올라가는 도로 갓길에 주차하니,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민지란 친구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커피숍도 많은데 왜 여기서 보자고 했어요?”
“사람 많은 데서 만나면 삼촌이 불편하잖아요.”
“참 내,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불편할 일이 뭐가 있다고.”
“정말 몰라서 그러세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만 아니면 괜찮아요. 그렇게 일일이 남들 눈까지 신경 쓰면서 살면, 세상 힘들어서  살아요.”
“자요. 드세요.”

그러면서 민지가 캔 커피를 내 눈앞에 내놓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어요?”
“......”

어제 아니 오늘 아침에 내게 전화를 걸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해 했던 민지가, 막상 내가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한 것인지를 물어보자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다.

“편하게 이야기 해봐요.”

결국 참다못한 내가 다시 말을 했고, 그러자 민지는 고개를 숙인 채 가방에서 서류로 보이는 A4용지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게 뭔데요?”
“그냥 보세요.”
“하!”

세상에 대한민국에도 이런증명서를 발급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

아니 이슬람권 국가에서야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하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검사하고 비공식적으로 발급해줄 수 있는 일이겠지만, 민지가 내게 흔히 이야기하는 처녀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내미는 이유를 모르겠다.

민지는  확인서를 내게 내밀고는 부끄러운 것인지 고개를 더 푹 숙였으며, 그런 민지의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귓불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건 뭡니까?”
“거기 쓰여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걸 왜 나한테 주냐고요?”
“그게......”

확인서에 기재된 날짜가 어제였고 또 사하구에 있는 산부인과였다.

결국 그 말은 어제 내게 전화번호를 알아간 후에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이 확인서도 아닌 확인서를 발급받았다는 뜻이었고, 그렇게  이유가 무엇인지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은근히  친구를 좀 놀려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한 질문에 민지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점점 목소리가 죽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 확인서를 나보고 사라고요?”
“예?”
“얼마 주고 뗐기에 나보고 사라고 해요? 그리고 나한테 이런 확인서는 필요도 없는데.”
“예?”
“내가 이 확인서를 가지고 있어 봐야 어디에다 쓰냐고요? 액자에 넣어 전시할 것도 아니고.”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듣자니 조금만  놀리면 울 것 같았다.

“돈이 얼마나 필요해요?”
“예?”
“민지 양이 지금 필요한 돈이 얼마냐고요?”
“지금 당장 필요하기보다는 졸업해서 취업할 때까지 계속 모자라요.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해도 아르바이트 자리가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르바이트해서 받은 돈은 국가장학금에서 모자라는 등록금을 내고 나면 당장 생활하는데......”
“그러니 나보고키다리 아저씨가 돼 달라는 말이죠?”
“.......”

내 말에 민지는 염치가 없어서인지 아무 대답도 없었다.

“고개 들어 봐요.”

힘겹게 고개를  민지의 눈앞에, 나는 조금  민지가 내게 건넸던 소위 말하는 처녀 확인서를 내밀었다.

그러자 민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고, 민지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지기라도 할 것처럼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계좌번호 내 휴대폰으로 보내요. 그리고 금정구 쪽으로 이사해서 학교에 다닐 수 있으면, 금정구로 아예 짐을 옮기고요.”
“예?”
“방금 이야기한 대로 하라고요. 생활비는 내가 계좌로 보내줄 테니까 그걸로 졸업할 때까지 쓰고, 지금 사는 집에서 이사하고 싶다면 금정구에  원룸이 있으니까, 그리로 와서 학교에 다니라고요.”
“그럼 한 달에 몇 번이나 해드리면 돼요?”
“뭘요?”
“섹스요.”
“나 그런 거로 거래하지 않아요.”
“그럼?”
“나중에 졸업해서 회사에 취직해서 월급 받으면 그때 갚아요. 이자 엄청 뜯어낼 테니까.”
“으~앙!”
“왜 이래요. 빨리 그쳐요!”

 먹겠다고 했는데도 결국 울음이 터져 버렸다.

솔직히 주변에 아무도 없어도 여자가 내 앞에서 울면 견디기 힘이 드는 법인데, 이 장소는 언제 사람이 지나갈지도 모르는 산책로였기에, 나는 울음을 터트리자마자 당황스럽다는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그만 그쳐요. 남들이 보면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엉~엉~흑~ 흑~”

아무튼 울음을 그치는 것에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민지가 울 동안에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없었고, 덕분에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울다가 그친 민지는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서 얼굴을 다듬었고, 그런 민지의 모습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삼촌, 가요.”
“배고파요?”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민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씩씩하게 차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갔기에, 나는 서둘러 담뱃불을 끄고 차 문을 열었다.

“뭘 먹고 싶어요?”
“텔 가요.”
“예?”
“지금 바로  가자고요. 삼촌에게 오늘 제 처녀를 바칠게요.”
“그렇게 할 필요 없어요. 나중에 월급 받아서 갚으라고 했잖아요.”
“아뇨. 제가 꼭 갚을 거예요. 하지만 삼촌께 제 처녀를 드리고 싶어요.”
“됐어요. 처녀는 민지 양 눈앞에 정말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나면 그때 선물로 주든지 해요.”

요즘 시대에 처녀 어쩌고 하면 손가락질 받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사내치고 자기와 잠자리를 한 여자가 처녀라면, 그걸 싫다는 놈 또한 없다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물론 섹스를 즐기는 사내야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에, 내가 일부러 처녀를 찾고 그러진 않지만 그렇다고 처녀에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놈이 없다는 것이 세상사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나야 이미 지혜의 처녀를 가진 적도 있고, 또 어렸을 적에 불장난처럼 관계를 했던 애 중에도 처녀가 있었지만, 딱히 처녀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오히려 지금 나이에서는 젊은 애들을 상대한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효주처럼 그냥 좀 노는 애들이 훨씬 편했다.

“삼촌.”
“예?”
“그냥 말씀 편하게 하시면 안 돼요?”
“알았어.”
“삼촌 지혜하곤 했죠?”
“뭐?”
“놀래긴 뭘 놀래요. 친구 중에서 아저씨들하고 한 애들이 한둘도 아닌데. 그런데 지혜는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삼촌이 돌봐주셨다면서요.”
“그거야.......”
“그렇게 몇 년을 돌봐주셨는데 주지 않은 년이 나쁜 년이죠.”
“무슨 그런 말을.......”

참 희한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듣기론 민지 이 친구도 고아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돌봐줬다는 이유로 몸을 줘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된다는 것인지.......

하지만 그 답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민지의 말에 포함되어 있었다.

“세상이 원래 그래요. 우리 때문에 나라에서 재정지원을 받으면서도, 우리를 돌봐줬다면서 고등학생만 되면 따먹으려고 하는 원장 아버지란 새끼하고 총무 새끼도 있는데.”
“뭐?”
“그 새끼들은 19살만 되면 여자애들  따먹어요. 돌아가면서요.”
“그런데 민지 넌 어떻게?”
“친구 하고 둘이서 도망쳤죠. 아마 그 새끼들 우릴 잡으면 죽이려고 할 걸요.”
“제 놈들이 그 짓거리를 하면서 왜?”
“원장 아버지란 새끼 금고를 털어서 도망쳤거든요. 어차피 그 새끼가 우리에게 한 짓이 있으니 신고는 하지 못할 것이니까.”
“그럼 학교는?”
“검정고시 쳤잖아요.”

제법 강단이 있었던 모양이다.

원장과 총무의 마수에서 제 몸을 지키기 위해 고아원에서 도망칠 생각을 하고, 또 도망치고  후에 살기 위해서 고아원 금고에 있던 돈까지 훔쳐서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서 살다가 보니 혼자서 먹고사는 것도 만만치 않고,  그렇게 지키려고 용을 썼던 처녀라는 것도 먹고 사는 것보다는 중하지 않다는 생각에서 오늘 일을 벌인 모양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어느새 차는 광안대교를 넘어가고 있었고, 나는 송정에 있는 돈가스로 유명한 집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뭘 먹을래?”
“돈가스요.”

돈가스가 메인메뉴라지만 이 집의 음식 종류는 다양했고,  메뉴들 대부분이 제법 맛이 있다.

그렇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점심을 먹은 후에, 송정 해변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공수마을 쪽으로 향했다.

“여기도 부산 맞아요?”
“당연히 부산이지. 이쪽으로 와본 적이 없어? 바로 위에 대형 쇼핑몰이 있는데.”
“그런 데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가죠. 솔직히 커피값도 아까운데.”

같은 고아 출신이지만 지혜와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고아 출신에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랐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지만, 단순히 지혜와 민지만 놓고 비교하자면 지혜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꽃이고, 민지는 야생에서 온갖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버텨낸 꽃이 아닌가 싶은 그런 생각이다.

“삼촌.”
“응?”
“정말   따먹을 거예요?”
“인마, 아니라고 했는데 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고 그래.”
“불안하잖아요.”
“불안하긴 뭐가 불안해.”
“삼촌이 절 따먹으면 그것 때문에라도 저를 모른 척하지 않겠지만, 그냥 이렇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다가 마음이 변하면 그땐 전 어떻게 해요.”
“각서라도 써줄까?”

민지가 가진 생각이야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민지만 이랬던것이 아니라 지혜 역시 이런 이유로, 내게 자기 처녀를 가지라고 강요하다시피 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민지의 마음속에는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남은 기간, 그리고 졸업을 한 후에 취업할 때까지 먹고사는 문제보다는, 버려진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 더 많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확신을 심어줄 방법이 없었다.

내 말대로 각서를 써준다고 해봐야 그것이 딱히 법적인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설령 민지가 졸업하고 취업해서 월급을 받을 때까지 생활비를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민지를 외면하게 되면 버려졌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 것이니 말이다.

“삼촌, 나 만져 봐도 돼?”
“뭐?”

어떻게 민지에게 확신을 심어줄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지혜의 입에서 전혀 엉뚱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민지의 목소리의 느낌이 달랐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민지의 눈은 어제 순간적으로 느껴졌던 색기가 풀풀 풍기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자칫 방심하면 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잔뜩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나란 놈에게는 정말 짐승의 피라도 섞여 있는 것인지, 민지의 그 말에 잔뜩 경계를 하면서도  몸속 깊은 곳에서는 음탕한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