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휴학하다. (1) (52/90)



〈 52화 〉휴학하다. (1)

“괜찮아?”
“아빠, 엉~엉~”
“이제 괜찮아. 넌 아무 문제가 없지?”
“응, 뺨 한  맞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고 보니 지혜의 볼에 손자국이 보였다.

일단 경찰관들도 현장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나도 효주의 반쯤 벗겨진 모습과 술에 취해서 널브러진 놈들의 사진을 찍고, 지혜의 뺨에 나 있는 손바닥 자국을 찍었다.

“아빠, 쟤들이 술에 뭐 다른 걸  것 같았어.”
“응?”
“효주가 원래 술이 센 편이거든. 그런데 딱 두 잔을 마시더니 저렇게 된 거야.”
“그래? 잠깐만.”

지혜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장 경위에게로 다가가서, 방금 지혜가 한 말을 전했다.

“술에 무엇인가를 탄 것 같다고요?”
“예, 이 친구가 평소에 술이 좀 세답니다. 그런데 딱  잔을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고 하네요.”
“알겠습니다. 저희도 술을 가지고 가서 성분분석을 의뢰할 테지만, 이 여학생도 병원에 데려가서 검사를 받게 해서 혈액에서 약물 성분이 검출되는지 그걸 확인해봐야겠습니다.”
“그럼 제가 병원에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주시면 저로선 고마운 일이지요.”

장 경위와 이야기가 순조롭게 끝이 났기에, 나는 병원까지 가는 동안에 우리 쪽에서 무언가 조처를 했다는 의심을 피하고자 119구급차를 호출했다.

어차피 경찰관이 효주를 병원까지 이송하려고 하더라도 119를 호출해야 할 상황이었으니, 119 호출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제가 신고전화를 했습니다.”
“환자와 어떤 관계죠?”
“이 환자가 피해자이고, 저는 이 환자 친구 보호자 됩니다.”

일단 인근에서 가장 큰 병원인 개금 백병원으로 가 달라고 부탁했고,구급차가 출발하자 나도 지혜를 태우고 구급차 뒤를 따라 개금 백병원으로 향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냥 우리끼리 놀러 왔는데 여기서 쟤들을 만난 거야. 파란 셔츠를 입었던 애가 효주 전 남자 친구였거든.”
“남자 친구란 놈이 아무리 헤어진 상태라고 하더라도, 제 친구들 앞에서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어?”
“돌림 빵을 하겠다고 했단 말이야.”
“뭐?”

기가 찰 일이었다.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었기에, 윤간(輪姦)까지 하겠다고 설쳐댔다는 말인가?

“그런데 저놈들은 왜 뻗었어?”
“몰라, 서로 건배를 해가면서 몇 잔 마시더니, 다 뻗어버렸거든.”

술을 따로 분리하지 않고, 한 병에 있던 것을 나눠서 마신 모양이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돌아가면서 효주에게 술을 먹여서 취하게 하고, 제 놈들은 효주보다  마신 상태에서 정신을 잃은 효주를 어떻게 해볼 생각이었던 것인지 몰랐다.

“혹시  룸에 CC-TV 카메라가 있었어?”
“술집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데 왜?”
“그놈들을 강간 미수로 잡아넣으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네 증언만으로는 그게 쉽지 않을 거거든.”
“CC-TV는 없겠지만 영상은 있어.”
“응?”
“나보고 하는 걸 찍으라고 했었거든. 처음엔 못하겠다고 하다가 뺨을 맞았던 것이고.”
“그래서 다 찍어두었어?”
“응.”
“잘 됐다. 그 영상파일을 아빠 톡으로 전송해둬.”

장 경위와 출동한 경찰관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효주의 전 남자 친구란 놈과 그놈과 같이 있었던 놈들의 배경을 모르니, 우선 증거를 보관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장면을 찍은 휴대전화를 경찰에 제출하고 난 후에, 외압에 의해서 증거품인 휴대전화를 분실했다고 나올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말에 지혜는  동영상 파일을  휴대전화의 톡으로 전송했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개금 백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찰에 신고가  사건입니다. 우선 응급조치 후에  학생 혈액에서 약물이 검출되는지 그것부터 검사해주세요.”
“약물이라고요? 단순히 과음한 것이 아니고요?”
“술은 맥주 두 잔을 마신 것이 전부랍니다. 그리고 평소에 술이 약한 친구도 아니었고요.”

그렇게 주치의 선생에게 검사를 의뢰하고, 나는 지혜 또한 진료를 받게 한 후에 상해진단서 발급을 요청했다.

뺨을 맞은 것이야 기껏 1~2주 정도밖에 되지 않겠지만, 상황이 우릴 도우려고 한 것인지 몰라도 지혜가 뺨을맞으면서 넘어져 부딪친 어깨 부분에 멍 자국이 있었고 고개도 뻐근하다고 했으니, 3주 이상의 진단은 충분할 것 같았다.

“결과가 나왔습니까?”
“지금 결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놈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단 유치장에 구금 중입니다. 그리고 그놈들 혈액채취도 끝을 냈고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건 뭡니까?”
“그놈들이  친구를 윤간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걸 찍어둔 영상입니다.”
“그래요? 그 말이 정말입니까?”
“저도 아직 확인은 해보지 않았는데, 쟤가 뺨을 맞은 이유가 영상을 찍지 않으려고 했다가 맞았다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서로 돌아가서 확인을 해보고,  두 여학생에게 따로 출석 요구서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예. 아무튼 뺨을 때린 놈에게는, 폭행혐의로 따로 고소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아무튼  경위는 아까 건넨 봉투 덕분인지, 내 말에 아주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만약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특별한 외압이 없다면, 효주의 전 남자 친구라는 놈과 그 친구 놈들은모두 강간 미수라는 범죄혐의로 피소되어 형사처분을 받게 될 것이다.

“좀 괜찮아?”
“아빠야?”
“그래 인마. 몸은 괜찮아?”
“응, 머리가 빠개질 것 같고 배가 좀 아픈 것만 제외하면 괜찮아. 그런데 아빠가여길 어떻게?”
“지혜가 연락했더라.”
“아빠, 미안해.”
“됐어. 일단 좀 자고 나중에 퇴원하고 나서 이야기하자.”

효주가 깬 것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물론 지금이야 괜찮았지만 병원에 실려 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자정 조금 넘은 시간에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져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효주뿐 아니라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 되었던 세 놈 중에서 두 놈도, 호흡곤란을 일으켜 인근에 있는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어 응급조치를 받게 했다는 소식을  경위에게 전해 들었다.

효주는 내 말을 듣고 다시 눈을 감았고 이내 새근거리며 잠에 빠져들었고, 보조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던 지혜도 뒤척거리면서도 잠에서 깨지 않고 있었다.

“보호자님.”
“예. 제가 효주 보호잡니다.”
“혈액검사 결과가나왔습니다.”

나를 찾아온 병리검사실의 직원이 검사 결과지를 내게 건넸다.

하지만  같은 비전문가가 그 검사 결과지를 훑어본다고 해봐야, 온통 의학용어로 되어 있는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GHB 검출이라고 있는데 이게 뭡니까?”
“요즘 뉴스에 이따금 나오는 데이트 강간에서 사용되는 마약류입니다.”
“마약이라고요?”
“그다지 심각한 것은 아니고 흔히 물뽕이라고 부르는 약물입니다. 그리고 GHB 같은 경우는 길어도 서너 시간만 지나면 소변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기 때문에 몸에는 딱히 이상이 없습니다.”

물뽕이라고 하니 검사지에 적힌 것이 무엇인지 것 같았다.

물뽕이라는 것을 술에 타서 먹이게 되면 다섯 시간 정도를 완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가 되기에, 그 시간 동안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모르게 된다는 약물이란 사실 정도는, 뉴스를 통해서 이미 수차례 들었던 기억이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직원의 말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검사 결과지를 안주머니에 고이 접어 보관한 후에 직원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직원이 돌아가고 나자 새삼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고, 정말 속에서는 ‘개새끼’라는 욕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다.

사내새끼가 여자를 어떻게 해볼 욕심이었다면  여자가 혹할 정도의 제안을 하든지, 아니면 감언이설을 동원해서라도 꼬드겨서 스스로 옷을 벗게 하여야지, 어떻게 나이도 어린놈이 치사하게 약물까지 동원해서 여자를 강간할 생각을 한다는 말인가?

그것도사귀었던 전 여자 친구를 말이다.

이런 놈은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강제로 추행은 당했고 강간은 다행히도 미수에 그쳤지만 내 생각은 저놈들을 절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효주였기에, 저놈들에 대한 처분은 오롯이 효주의 결정에 달린 일이다.

“어딜 가려고?”
“당분간은 아빠 집에 가서 지내자.”

병원에서 나와서 둘의 원룸이 있는 하단이 아니라 서면 로터리 쪽으로 방향을 잡자, 지혜가 무슨 일인가 하고 나를 보고 물었다.

사건이 벌어지고 벌써 시간이 제법 흘렀기에, 모르긴 해도 가해자 놈들의 가족 중에 누군가는 둘이 사는 원룸으로 찾아왔을 수도 있고, 과정에서  효주가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는생각에 둘을 당분간 내 원룸에서 지내게 할 생각이었다.

“사장님 다녀오셨습니까.”
“예. 별일은 없었죠.”
“예.”
“이 친구들 당분간 여기서 지내게 될 겁니다. 신경을 좀 써주세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여자들 숙소로 데려가, 비어 있는 2층으로 둘을 데리고 들어갔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도록 해.”
“아빠는?”
“난 들어오면서 봤던 첫 번째 건물이야. 일단 내가 이불하고 당장 필요한 것을 사다 줄 테니까 그리 알고.”
“나도 같이 갈래.”

하긴 여자애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내가 다 챙길 수가 없었다.

내가 결혼해서 딸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함께 산 여동생이나 누나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둘을 다시 차에 태워서 대형 할인점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세면도구를 비롯한 생필품들과 이불 등을 샀다.

“밥솥도 사야 하는데?”
“밥은 식당에서 먹으면 돼.”
“돈 많이 들어가잖아.”
“원룸에 식당이 따로 있어. 특별한 반찬은 없지만 먹을 만은 하거든. 아빠도 외출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원룸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그런데 아까 경비 아저씨가 아빠보고 사장님이라고 하던데 그건 무슨 말이야?”
“지난번에 만났던 자경이 이모 기억하지?”
“응.”
“자경이가 그 원룸 주인이야. 자경이가 부산에 있을 수가 없으니까 내가 대신 관리를 해주기로 한 것이고.”
“와~ 정말?  원룸이 전부 그 아줌마 거야? 지난번 차도 장난이 아니던데 정말 부잔가 보다.”

하긴 지혜로서는 놀랄 만도 했다.

아니  역시도 처음 50억을 내 눈앞에 내밀었을 때,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거액을 모을 수 있었을까 하고 놀랐었고,또 그게 자경이가 가진 재산의 1/1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또다시 놀랬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마트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사서 다시 원룸으로 돌아왔다.

“정리를 끝내고 1층 아빠 사무실로  내려와. 효주하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알았어.”

우선 고소하는 건부터 해결해야 했고, 그것이 끝이 나면 둘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조금 심각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둘에게 잠시 후에 사무실로 오라고  후에 방을 나섰다.

“벌써 정리를 끝냈어?”
“정리할 만한 것이 별로 없잖아. 방 청소는 이미 다 되어 있어서 바닥을 한번 닦는 것으로 끝을 냈고, 그냥 사가지고 온 것들을 정리해서 넣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 일단 내 방으로 가자.”

혹시 비밀을 요하는 상담이 있을까 해서 헛일 삼아 내 방을 따로 만들어 두었는데, 엉뚱하게 효주 일로 처음 사용하게 되었다.

사무실에는 직원 둘이 근무하고 있었기에, 효주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내용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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