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효주의 전 남친 (51/90)



〈 51화 〉효주의 전 남친
사실 처음에는 나도  소장의 그런 짓거리에 화가 나긴 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지나고 나자 강 소장이 나를 타깃으로 해서 작업했던 시점이, 박 소장하고 어울리던 시기가 아닌 일단 박 소장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난 이후의 일이니, 내가 2등이 되었다는 점이 짜증이 날 뿐이지 강 소장이 내게 들이댔던 그것에 대해서 화를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만약 그런 일에 화를 낸다면, 대한민국에서 몸을 파는 사창가에서 일을 하는 아가씨들이나 술집에서 아니면 노래방에서 몸을 파는 여자들, 모두에게 화를 내야 하니 말이다.

단지 내가 강 소장을 꺼리는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나와 가깝게 지내는 박 소장과 구멍 동서가 되었다는 그것을 꺼려하는 것이고, 특히 내가 먼저가 아닌  소장보다 뒤에 그 구멍을 팠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뿐이었다.

“이 사장, 큰 건 하나 했다면서?”
“어차피 남 뒤나 닦아주는 일입니다. 그 정도야 사장님은 매년 한 건씩은 하시는 일 아닙니까.”
“무슨 그런 황당한 소리를. 나야 기껏 몇억짜리나 할 뿐이지 한방에 50억짜리는 꿈도 꾸지 못했네.”
“무슨 50억입니까? 30장 조금 넘는 금액입니다.”
“아니던데. 들리는 말로는 50억이 조금 넘는다던데.”
“몇 달만 지나면 아예 100억 정도가 되고도 남겠습니다.”

소문이라는 것이 희한했다.

34억짜리 거래가 어느 순간 35억에서 40억으로 변하고,  거기에 살이 붙어서 45억쯤 되었다가 벌써 50억으로 덩치가 불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소문에 일조(一助)한 것이, 바로 내 앞에 앉은 박 소장의 설레발인 것이다.

“당신 덕분에 조만간 내가 재벌 반열에 올라서겠다.”
“내가 아니라니까.”
“당신이 아니면 누가 내가 그걸 샀다는 것을 알아?”
“어차피 이 바닥 소문 뻔하지.”
“됐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정말 아니라니까.”

아니긴 개뿔이 아니라는 말인가?

하긴  소문이 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일은 없으니, 딱히 그렇게 소문이 퍼지는 것에 대해 내가 민감하게 반응할 일은 아니다.

단지  소장처럼 입이 가벼운 친구와는 비밀스러운 일은 같이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답은 얻었으니, 그걸로 족할 뿐이었다.

아무튼 정기 월례회란 이름의 오늘 회의는 회의라기보다는 자유롭게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잡담이나 나누는 그런 모임이었던 덕분에, 그 이후에도 몇 사람이나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서 뭐나 뜯어먹을 것이라도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건물 매입에 관해 관심을 표시하고 있었다.

“이 사장님, 한턱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뜬금없이 그건 또 무슨?”
“에이~ 이제 우리 지회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장님이 되셨는데 당연히 한턱내셔야지요. 다음 지회장 선거에 나가실 거죠?”
“아이고, 그런 쪽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에 무슨.......”
“암튼 축하드려요.”

뭔가 돈이 된다는 기미가 보이자 평소에는 별 친한 척조차 하지 않았던 여자들까지 덩달아 찾아와서 난리를 치고 갔지만, 그렇다고 업계에서 생활하는 여자들에 관해서는 딱히 관심조차 없었기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했더니 샐쭉한 표정으로 자리를 옮긴다.

“넌 인간이 어떻게 여자가 와서 저렇게 알랑방귀를 뀌는 데도 그렇게 딱딱하게 대하냐?”
“지랄. 내가 저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낼 이유가 뭐가 있는데. 그리고 솔직히 예전에는 인사조차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던 여자들이잖아.”
“그거야 네가 지금까지 잘난 척하고 무게만 잡고 있었으니 그러지.”
“무게를 잡은 것이 아니라 그냥 귀찮았을 뿐이야. 내가 여기서 잘난 척한다고 해봐야 누가 알아줄 사람도 없고 설령 알아준다고 돈 되는 일도 아니잖아.”
“그런데 지회장 선거에 정말 관심이 없어?”
“그거 해서 뭐하려고? 괜히 귀찮기만 하지.”
“네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쏠쏠하거든. 그리고 여기저기서 불러주는 곳도 많고.”
“귀찮네. 그냥 나는 적게 먹고 작게 싸면서 살 생각이니 헛바람 집어넣을 생각은 말아.”

불러준다는 놈이 바로 정치판에서 사는 족속들이다.

그리고 그런 곳에 발을 들이밀어 봐야 기껏 이용이나 당할 뿐이지, 딱히 내 인생에 도움이 되거나 돈이  일도 없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었다.

그 인간들이 나한테 공천을  리가 만무하겠지만 설령 공천을 준다고 해봐야 기초의원인데, 괜히 나갔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돈 깨지고 개망신만 당하는 일이고, 붙어봤자 한 달에 몇백만 원짜리 월급쟁이일 뿐이다.

물론 그 직을 유지하는 동안에야 ‘의원님’ ‘의원님’ 하면서옆에서 살살거리는 인간들이야 있겠지만, 그 짓을 계속하려면 세비라는 그 월급의 대부분을 술사고  사는데 다 투자해야 하니, 실속이라고는 개똥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나란 놈이 기초의원 배지를 달아봐야, 회의에 참석해서 당에서 시키는 대로 손만 드는 거수기 역할 말고  것도 없을 것이고.

그러니 그런 헛짓거리를 하는 대신에 조금 따분하더라도 사무실이나 지키면서 오는 손님이나 기다리든지, 정 따분하면 어디 친목 모임에라도 가입해서 재미있게 노는 것이 정신건강에 훨씬 이익이었다.

이제 찾아오는 손님이 없더라도 원룸 임대료에서 나오는 돈만으로도, 정말 트렁크에 골프채나 넣어 다니면서  잡으면서 느긋하게 살아도 충분한 상황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골프를 배울 생각은 없었다.

“차 바꿨다고 하더니.”
“응, 그건 주차장에.”
“지랄. 오늘 같은  끌고 와야지, 주차장에 모셔둘 거라면 뭐 한다고 차를 사?”
“여기 끌고 와서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친목모임 같은 정기 월례회를 끝내고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소장이 나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차를 보더니 툴툴거리기 시작한다.

“차  가지고 왔어?”
“가지고 오긴 했지만  차는 여기 두고, 당신 차를 타고 가려고 그랬지.”
“그건 또 무슨 신박한 헛소리야?”
“지 소장하고 양 소장이 같이 커피나 한잔하러 가자고 하거든.”
“그럼 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빨리 가라. 아줌마들 기다린다.”
“난 네가  차를 끌고 왔으면  차를 타고 가려고 그런 거지.”
“지랄하네. 내가 네 운전기사인 줄 아나?”
“넌 시승식도 몰라?”
“진짜 오늘  자꾸 지랄인데? 내가 시승식을 왜 그 아줌마들하고 해야 하는데?”

슬며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박 소장이 지금 이야기하는  소장과 양 소장이라는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이미 뻔히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 여자들하고 2:2로 어울려봐야 결론이 어떻게 날 것인지 그 답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난 업계 여자는 안 먹는다.”
“하~아~ 이미 약속을 해뒀단 말이야.”
“네가 동시에 먹으면 되겠네.”

괜히 쓸데없이 말을 섞어봐야 짜증만 더할 것 같기에, 나는 창문을 올리고 출발했다.

먼저 주겠다는 년은 막지 않는다는 것을 내 생활의 신조로 삼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공짜로 준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안면이 받치는 업계 여자는 사양이다.

말이 공짜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고, 언젠가는 먹은 값을 해야지 탈이 나지 않는 법이니 말이다.

“아빠, 어디야?”
“응, 지금 회의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인데. 그런데 술 마셨어?”
“응, 미안해. 그런데 지금 여기로 좀 와줄 수 있어?”
“어딘데?”
“서면인데 효주가 지금 술이 떡이 되어서....... 그런데 남자애들이.......”
“알았어. 서면 어디쯤이야?”

양정에서 출발해서 경찰청 부근에 도착했을 즈음, 지혜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지혜의 말을 들으니 지금 지혜가 있다는 곳이 대충 어딘지 알 것 같았고, 또 지금 효주가 처한 상황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되었다.

남자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고, 효주가 스스로 원했든 아니면 사내애들이 억지로 마시게 했든지효주가 인사불성 상태이고, 그런 효주를 어떻게 해볼 생각에 사내애들이 둘을 놔주지 않고 있는 상황 같았다.

“아이고, 이 사장님.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밤늦게 죄송합니다. 강 형사님께 부탁을 하나 드려야해서요.”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말씀해보세요.”

분명 사내애들이 한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기에, 나는 아예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금정서의 형사에게 전화를 걸어 진서의 경찰관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요? 그럼 지금 바로 그쪽에 부탁해서 애들을 출동하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내일이나 모레쯤 한번 들르겠습니다.”

술이  젊은 애들을 상대하다가 보면 괜한 시비에 휘말릴 수도 있었기에, 아예 경찰관 도움을 받기로  것이다.

술에 떡이 된 아이들에게 내가 아무리 지혜와 효주의 아빠라고 해봐야 말을 알아먹지도 않을 것이며, 자칫하면 원조교제니 뭐니 하면서 말이 나오고, 그렇게 해서 경찰서에 가게 된다면 경찰관조차 그런 의심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 뻔했다.

그러니 괜한 망신을 자초하기보다는, 술값 몇 푼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일이었다.

밤이라 경찰청 앞에서 유턴을 해서 서면까지 가는 것에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지혜가 이야기한 서면 1번가 골목에 도착하니 이미 경광등을 켜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순찰차가 보였다.

“장경민 경위님 되십니까?”
“아! 강 반장이 이야기한 이 사장이라는 분?”
“예. 맞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무슨 말씀을요. 이런 일이야 원래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걸요.”
“아무튼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슬며시 장 경위란 양반 손에다가 준비해온 봉투를 건넸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무슨 청탁을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냥 출동한 저 양반들하고 나중에 해장국이나 한 그릇 하실 정도만 넣었습니다.”

봉투에 미리 30만 원을 넣어두었으니, 혼자 30만 원을 챙기고 출동한 순찰차의 경찰관들에게 해장국이나  그릇을 사주고 끝을 내든지, 아니면 10만 원씩 나누든지 하는 것은  경위  양반 마음이다.

하지만 이렇게 봉투를 받아 챙긴다면, 혹시 오늘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 약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가능한 우리 애들에게 피해가 생기지 않게 처리가 될 것이고, 또 내가  과정에 망신을 당할 일이 없을 것이니 서로에게 충분한 대가가 되는 것이다.

“하~”

한 마디로 가관이었다.

이미 효주의 셔츠는 풀어져서 브래지어가 보이는 상황이었고, 치마 또한 반쯤 걷어 올려가 있는 채로 팬티가 드러나 보이는 것이, 이놈들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효주를 마음껏 유린한 모양이었다.

단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팬티가 그대로 있는 것을 보면 당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지혜는 한쪽 구석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효주나 지혜가 다른 사내와 몸을 섞는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윗도리가 거의 벗겨진 효주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 구석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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