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강 소장과 재회하다. (50/90)



〈 50화 〉강 소장과 재회하다.

“두 분이서 버겁진 않으세요?”
“어차피 경비실에 앉아서 문만 열어주면 되는 일인 걸요.”
“조만간 한 분을  채용할 생각입니다. 그때까지만 조금 더 고생해주세요.”
“예? 괜찮습니다. 그냥 저희 둘이 충분합니다.”

사실 이 두 사람만 해도 충분하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12시간 맞교대라는 것이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경비실 주변과 주차장을 청소하는  이외에 나머지 시간은 12시간 동안 항상 경비실을 지켜야 하는 일이니,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인 것이다.

아무튼 나는 여자들 숙소 쪽에 담을 쌓고 그 앞에 경비실을 만들었고, 곳곳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해서 그 화면을 내 사무실 벽 모니터와 내 휴대전화로 언제든 확인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경비원들은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조처했고, 지금까지 둘은  지시를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입주민들을 위해 아침과 저녁밥을 제공하는 식당은 아예 영업허가까지 내고 운영하고 있었고, 주방에는 영양사 선생님 한 분과 아직은 시급을 지급하긴 하지만 조리사 세 사람을 채용했다.

또 사무실에도 여직원 하나와 남자직원 한 사람을 채용해서, 부동산중개업무뿐 아니라 원룸 다섯 동을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사실 진짜 내 돈으로 산 건물은 아니지만 내 명의로  원룸, 그것도 자그마치 34억짜리 원룸의 소유자가 되고 나니 이제 좀 여유를 즐기며 살자는 생각도 들었다.

매일같이 골방 같은 사무실에 처박혀서 손님들이 오기만 기다리고, 이따금 진상 손님을 만나게 되면 속으로 욕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비위를 맞추는, 그런 짓거리에서 탈피하고 싶기도 했다.

솔직히 이 원룸 운영만 제대로 해도 채용한 직원들 월급을 주고도 매월 제법 많은 돈을 손에 쥘 수가 있으니, 매일 놀고먹더라도, 쓸데없는 곳에 돈을 날리지만 않으면 돈 걱정을  일은 없다는 것이 지금  처지다.

‘형님, 접니다. 소송 거실 주소가 변경되었습니다. 참고하세요.’

하지 않아도 될 짓을 해버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정 사장님이 소송하지 않으신것인지 법원에서 소송서류가 오지 않았고, 혹시나 하는 생각에 예전 사무실에 연락해서 법원에서 서류가 오면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런 일이 없다는 대답만 거듭되었기 때문이다.

갑갑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내 조급한 성격 때문이었고,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라는 말을 신봉하는 탓이었다.

톡을 보내고 1시간이 넘도록 계속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봤지만, 정 사장님은 아예 내 톡조차 확인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아예 나를 차단한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될 대로 돼라.’라는 심정으로, 아예  사장님과  여사 문제에 관해서는 신경을 끊기로 했다.

“아빠. 웬일이야?”
“잘살고 있는가 싶어서.”
“원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잖아. 바쁘다는 일은 어떻게 잘 돼가고 있어?”
“그래, 이제 대충 정리가 끝이 난 것 같다.”
“잘 됐다. 아빠, 그런데 잠깐만, 지금 나가야 해. 나중에 밤에 전화할게.”

오랜만에(?) 지혜와 효주에게 밥이나 사줄까 하고 전화를 걸었다.

경주를 다녀온 후에 처음에는 하루가 멀다고 교대로 전화를 걸어대던 지혜와 효주였는데, 어느새 심드렁해진 모양인지 요즘은 내가 전화를 먼저 걸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채 5분이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렇다고 섹스를 하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그건 아닌 것이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흐드러진 섹스를 나누고 있지만, 근래 느낌으로는 내가 지혜와 효주 둘의 섹스파트너가 된 그런 느낌이다.

정말 미친 듯이 섹스를 끝내고나면 밥만 먹고는 마치 모든 일이 끝났다는 듯 둘이 사는 하단의 원룸으로 돌아가려고 했고, 이따금은 내가 데려다준다는 것조차 거절하고 전철역에서 내려달라는 통에, 하단까지 가본 적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이 둘에게도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해?”
“뭐하긴. 그냥 멍청하게 사무실이나 지키고 있지.”
“오늘 모임 갈 거야?”
“오늘이었어?”
“정신머리하고는. 그런데 갈 거야?”
“가야지. 뭐 특별히 바쁜 일도 없는데 가서 시간이나 때우다 와야지.”
“이번에는 가지 말지?”
“왜?”
“가게 되면 강 소장 걔 얼굴을 봐야 하는데 괜찮겠어?”
“지랄,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내가 피할 이유가 뭐가 있어.”

그러고 보니 오늘 협회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내년 초에 지방선거가 열리는 덕분에 오늘 모임은 제법 북적거릴 것이었고, 또 여기저기서 선거를 거들어 달라는 부탁 때문에 조금 귀찮기도 할 그런 날이기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박 소장 생각과 달리 강 소장의 얼굴을 맞대는 것이 께름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얼굴을 본 강 소장이 어떤 표정을 하게 될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이 사장, 어서 와.  건을 한 건 했다면서?”
“건수 올린 사람은 박 소장이지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습니까.”
“별일 있을 것이 있기나 하나. 그냥 오는 손님이나받아서 입에 밥풀이나 묻히고 사는 거지.”
“회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그렇게 말씀하시면  같은 사람은 굶어 죽습니다.”
“자넨 임대료만 받아도 부자잖아.”
“에이~ 그거 전주(錢主)가 따로 있다는 사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튼 중간에 구전(口錢)만 챙겨도 쏠쏠할 거잖아.”

초대형 원룸인 ‘봄(Spring)' 소문이 퍼진 덕분인지, 평소 찾아가서 인사를 건넬 때도 형식적인 인사치레에서 끝을 내던 회장님께서 오늘은 말수가 많아지셨다.

똑같은 금액의 협회 회비를 내는 회원인데도 이렇게 대우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역시 사람은 자기 돈이든 남의 돈이든 쥐고 있는 돈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그냥 대외적으로 알려진 대로라면 ‘봄(Spring)'을 인수하는데 들어간 돈, 그리고 거기서 생기는 수입이 나와는 별 무관한데도 불구하고, 또 설령 내가 그 ‘봄(Spring)'의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들에게 따로 떨어지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협회 회장님은 얼마 전까지의 나처럼 자기를 찾아와서 인사를 건네는 회원들에게 겉치레의 인사를 하면서 나를 놔주지 않았고, 결국 나는 한참을 회장님에게잡혀 있다가 놓여날 수가 있었다.

“올 연말 총회 때는 이 사장이 한자리하겠다.”
“뭔 헛소리야?”
“저 영감 저러는 것 어디 한두 번이야? 오늘 당신 대하는 분위기가  달려졌잖아.”
“그건 저 양반 생각이고. 뭐 한다고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설치고 다녀.”
“그럼 하지 않을 생각이야?”
“돈 되지 않는 일에는 취미가 없다니까.”
“어! 걔 왔다.”

굳이 알려줄 필요도 없었다.

언제나 강 소장이 들어오면 개떼처럼 우르르 몰려가서, 마치 높은 사람에게 눈도장이라도 찍는 것처럼 강 소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눈이라도 한번 맞추려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빠, 오랜만.”
“어~ 왔어. 오랜만이네.”
“나, 여기 앉아도 되지.”

강 소장과 강 소장을 한번 어떻게 해보려는 무리가 무슨 짓을 하든지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아예 무시한 채 내 앞에 놓인 음식을 맛보는데 ‘또각’거리는 발소리가 내 앞에서 멈췄다.

강 소장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나와 박 소장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그러자 박 소장은 열이 뻗치는 것인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고 있었다.

“오빤 아마추어처럼 왜 그래?”
“됐다. 다른 자리로 가라.”
“자꾸 그러면 여기서 다 까발린다.”
“그러든지. 개망신당하는 것이뭔 대수라고.”
“그냥 재미 봤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오빠들이 손해 본 것이 뭐가 있는데.”

우리가 앉은 테이블의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느낀 것인지, 우리 테이블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의 회원들이 우리 테이블을 힐끗거리고 있었지만,  소장은 그런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할 말을 다하고 있었다.

뻔뻔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의  소장의 대찬 말 덕분에, 잔뜩 열이 받아 있던 박 소장은 아예 할 말조차 잊어버리고서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씩씩거리면서 거친 숨만 토해내고 있었다.

“둘 다 그만해. 정말 개망신을 당하고 싶다면 내가 마이크라도 갖다 주든지.”
“그래도 진호 오빠는  낫네. 어차피 오빠들도 마찬가지잖아. 계집이 먼저 준다는데 안 먹을 오빠들도 아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잖아. 그냥 나도 좀 괜찮은 걸 먹고 싶었을 뿐이야.”

아예 작심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에 철판을깔고 저렇게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는데 더는 뭐라고 말하겠는가?

물론 강 소장이 양다리를 걸친 것이야 당하는 박 소장과 나로서는 열이 뻗칠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소장이 나나 박 소장의 마누라도 아닌 완벽한 무소속인데 말이다.

굳이 손해 여부를 따지자면 오히려 몇 푼 들어간 것은 아니었지만, 도시락까지 싸들고 가서 바쳤던 강 소장이 손해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오빠 큰 거 물었다면서?”
“물긴  물어.”
“에이~ 소문이 파다하던데. 나도 거기 끼워주라.”
“쓸데없는 소리. 그리고 이미 끝났다.”
“그 정도 돈이 있었으면 내가 우리 셋이 기획부동산을 한번 하자고 했을 때,  돈으로 그걸 했으면 좋았잖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돈이 아니라고. 전주(錢主)가 원룸을 콕 집어서 오더를 준 것이고, 나는 그 오더를 이행한 것뿐이야.”
“그런데 그동안 나 보고 싶진 않았었어?”
“진짜 지랄이다.  같으면 그런 꼴을 당하고도 보고 싶었겠냐?”
“희한하네. 오빠들이 나한테 기대한 것이 너무 컸었나?”

강 소장과는  문제고 개인적인 사생활에 관한 문제고 더는 말을 섞기조차 싫었기에 쌍소리까지 섞어가면서 대꾸를 했지만,  소장은 전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생글생글 웃으면서 헛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한테 기대가 컸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그걸 물어보게 되면 계속 엮이게 된다는 귀찮음에 꾹 참고 입을 닫았다.

“아무튼 조만간 연락할 테니까 전화 씹지 말고 받아.”
“됐다. 전화번호 바꿨으니까 그냥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바꾼다고 해봐야 협회에는 남아 있을 거잖아. 여기서  먹다가는 오늘 체할 것 같으니까 난 갈게.”

그러더니 강 소장은  말을 다 했다는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여자 회원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친년!”
“적당히 해라.”
“지랄! 저렇게 속을 뒤집어 놓고 가는데 ‘적당히’가 돼?”
“안 될 일이 뭐가 있어.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지. 그냥 ‘쟤는 그렇고 그런 여자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그뿐이야. 괜히 열 받아해봐야 당신만 손해고.”

준 년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뻔뻔하게 설치고 다니는데, 먹은 놈이 파르르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치밀어 오르는 성욕을 이기지 못해서 술집을 찾아가서, 대한민국 사내 누구나 돈만 주면 대주는 여자도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어대는 족속이 바로 우리 같은 사내가 아닌가?

그런데 돈도 필요 없이 박아주기만 해도 좋아서 난리를 치는 여자가 주는데, 그걸 먹고서 그 여자가 다른 사내에게도 준다는 이유만으로 열 받아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