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건물주가 되다. (2)
“응, 오빠.”
“오늘이나 내일 부산으로 좀 내려올 수가 있겠어?”
“갑자기 왜?”
“건물이 하나 나왔거든. 그러니 네가 와서 확인하라고.”
“나 오늘 미국 들어가. 그리고 그 돈은 이미 양도세까지 다 납부하고 서류처리를 끝냈으니까 이제 완전히 오빠 돈이야. 거기에 필요한 서류는 지수가 가져갈 거야.”
“뭐?”
“지난번에 얘기했었잖아. 그 돈은 오빠에게 주려고 따로 모아둔 돈이라고.”
G 빌리지를 매입하기로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자경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34억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일이었으니 당연히 자경이가 내려와서 건물을 확인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전화를 걸었지만, 자경인 미국에 간다는 것과 이미 양도에 관한 절차를 끝냈다는말을 끝으로 바쁘다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자경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자경인 내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아예 휴대전화 전원을 꺼버린 것인지 신호조차 가지 않았다.
‘뭐 자경이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하긴 지난번 자경이가 부산을 떠나던 날부터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긴 했었다.
“이건 뭔데?”
“보고도 뭔지 몰라?”
“아니까 묻는 거지. 이 돈이 뭐냐고?”
“복비.”
“받았다는 거 알고 있잖아.”
“하지만 나 때문에 원래 받기로 한 만큼은 받지 못했을 거잖아.”
“아니 됐어. 충분할 만큼 받아 냈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거래가 마무리되고 나는 박 사장을 내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미리 준비해 둔 500만 원 다발 10개가 든 봉투를 박 사장 앞으로 내밀었다.
솔직히 생돈이 나가는 느낌이었지만,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하자면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박 사장과 같이 부동산중개업을 하니까 이런 일에 딱히 박 사장의 도움을 받을 일은 없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는 장담 또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미리 보험을 들어 놓는 것이다.
물론 내게 아직 15억이란 거금이 남아 있었기에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점이, 이런 통 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배경이긴 했지만 말이다.
“알았어. 고맙게 받을게.”
그러더니 박 사장은 500만 원 다발이 든 봉투를 열더니 그 안에서 2,000만 원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3,000이면 충분한 것 알지?”
“지랄한다.”
“그래 지랄 맞다. 나도 오늘 집에 가면 밤새 이불을 걷어차긴 하겠지만, 이게 옳을 것 같아.”
그렇게 박 사장과의 거래도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공실률 말이야.”
“월 임대료를 좀 낮춰야지.”
“뭐?”
“여기가 서울도 아닌데 서울에서나 받음 직한 임대료를 받으면 앞으로도 방법이 없잖아. 누가 그 돈을 다 주고 들어와서 살려고 하겠어.”
“그야 그렇지만.......”
어차피 지금 입주해있는 방은 10% 정도밖에 되지 않고 나머지 90%가 비어있는 상태다.
그리고 그 10%의 입주민인 학생 대부분은 서울에서 내려와서 이곳 부산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로, 서울 수준의 임대료에 딱히 불만을 품고 있지 않은 학생들이기도 했다.
지금의 공실률을 해소하려면 부산에서 제일 비싸다고 소문이 난 임대료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지 않을 서울 출신의 학생들을 유치하거나, 아니면 다른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서 그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내 원룸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로 채우는 방법뿐인데, 그런 골치 아픈 방법이 딱히 효과적일 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른 원룸과 비교해서 시설이 월등하게 낫다는 점과 또 부산지역의 현실을 절충한 선에서, 기존의 월 임대료를 낮추기로 한 것이다.
“뭐? 남자 여자가 사용하는 공간을 분리하겠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왜 말이 되지 않아?”
“거긴 원룸이지 기숙사가 아니야. 학교에서운영하는기숙사도 아닌 개인이 운영하는 원룸에서 그렇게 남녀를 분리하면 어떤 애들이 원룸에 들어오려고 하겠어?”
“의외로 많을걸.”
내 말에 박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혹시 내가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원룸을 마치 기숙사처럼 운영하겠다는 내 말에 박 사장이 보인 반응이었다.
“그래, 당신 말처럼 많다고 쳐. 그렇지만 여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으로선 손해란 것도 생각해야지.”
“그 손해라고 해봐야 수도요금이잖아.”
“당연하지. 솔직히 사내아이들과 비교하면 여자아이들 물 사용량이 훨씬 많잖아.”
“그렇긴 하지만 술 마시고 깽판을 부리는 애들은 적어지잖아.”
“어차피 남의 집 애들이 무슨 지랄을 하든지 당신이 상관할 이유는 없잖아.”
원룸 운영에 관해서는 박 사장과 내 생각이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건 제삼자인 박 사장의 생각일 뿐이고 이 원룸은 내 소유의 원룸이었으니, 나는 박 사장의 그런 생각을 깡그리 무시하기로 했다.
우선 다섯 동의 원룸 중에서 세 동을 아니 입주자가 많으면 아예 네 동을 여학생 전용으로 사용하기로 했고, 자정이 넘기게 되면 남녀불문하고 아예 학생들의 외부 출입을 통제할생각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무슨 시대착오적 생각을 하느냐는 반발은 있겠지만, 나는 이 원룸을 학생들과 계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모들과 직접 계약할 생각이었고, 자기 자식들이 집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단속해서 방탕한 생활에 빠지는 것을 막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모르긴 해도 그런 내 생각에 동의하는 부모들은 제법 될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하는 엄마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부모들은 요즘 대학가의 원룸이 어떤지에 대해서 알고, 또 그런 것을 보면서 개탄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입주민 학생들의 일탈행위를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어차피 일을 치르면 꼭 이 원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주변에 사고를 칠만한 곳이 어디 한둘인가 말이다.
급하면 강의실 구석에서도 아니면 학교 뒷산에 올라가서도 사고를 치는 청춘인데 말이다.
하지만 원룸을 구하러 왔을 때 부모들에게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면, 최소한 부모들은 자기 자식들이 내 소유의 원룸에서 생활하는 동안에는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니, 학생들로서야 좀 많이 불편하겠지만 그 학생들 부모들 마음은 편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내 원룸 사업은 시작되었다.
“내부 담장인데 이렇게 높을 필요가 있습니까?”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일단 남학생과 여학생이 거주할 공간분리부터 시작했고, 현재 입주해 있는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에 건물 내부에 대한 대청소부터 했다.
“예? 12시까지 들어오지 않으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요?”
“예. 그렇게 할 예정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제가 들어올 때는 그런 규정이 없었잖아요.”
“앞에 이 원룸의 주인이었던 사람은 그랬지만 주인이 바뀌었으니 달라질 수밖에요.”
“전 못해요.”
“그럼 이사비용을 줄 테니까 다른 원룸을 알아보세요.”
그동안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자유롭게 살던 학생들이었기에 반발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지만, 이사비용까지 주겠다면서 나가라는데 어쩔 것인가?
주인이 바뀌지 않았다면 다퉈볼 여지라도 있지만, 건물 주인이 완전히 바뀐 이상에는 별 대책이 없는 것이다.
딱히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아예 현재 입주한 건물 한 동을 통째로 나가든 남아 있게 되든지 간에, 그 결정이 날 때까지 아예 방치해서 스스로 불편해서 보따리를 싸서 나가게 할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손해배상을 해줄 각오를 하고 있고, 그 돈을 배상해줄 돈만 충분하다면 걱정할 일이 없는 것이다.
직원들을 엎드리게 하고서 야구 배트로 엉덩이를 때리면서도, 매 한 대에 100만 원을 주게 되면 욕을 얻어먹는 것 이외에는 딱히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는 나라에서, 원룸을 가지고 ‘갑’질을 좀 한다고 문제가 생길 일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원룸 쪽을 정리하면서 나도 그 원룸으로 이사를 들어갔다.
도로에 접한 동의 1층을 원래 커피숍으로 임대했지만 장사가 되지 않아 지금은 비어 있는 상태였기에, 사무실을 그리로 옮기고 그 사무실 안쪽에 따로 방을 만들었다.
⌞ㅁㅊ
⌞ 아재, 그럼 망해요.
⌞ 저 아저씨 돈 엄청 많은가 보다.
부산대학교 게시판에 원룸 임대광고를 올리자 댓글이 우르르 올라왔고, 그 댓글 대부분은 비아냥거리는 내용이었고, 그것은 이미 충분히 예상했었던 내용이었다.
“정말 아침하고 저녁밥까지 준다고요?”
“일반 식당처럼 다양한 메뉴는 없습니다. 그냥 간단한 밑반찬과 국이 전부이거든요.”
“아무튼요. 그럼 매일 먹어도 되나요?”
“아침 6시에서 8시, 그리고 저녁 7시에서 9시까지는 언제든지 식당이용이 자유입니다.”
원룸 임대광고를 올리자 서서히 입질이 오기 시작했고, 드디어 첫 손님이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런데 학생이 아닌 30대 초반의 직장인 여성이었다.
“그런데 규정이 까다로운데 그건 확인하셨습니까?”
“제가 원룸에 남자를 데리고 들어올 이유도 없고, 외박할 일도 또 자정이 넘기면서 야근하는 직장도 아니어서요.”
“그렇지만 다시 계약서를 꼼꼼하게 확인해 보시고 사인을 하세요.”
“이미 그 사이트에 다 올려놓으셨잖아요.”
이 아가씨는 씩씩하게 사인을 한 후에, 계좌로 보증금과 1년 임대료를 이체하였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릴게요. 불편하신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호출 벨을 누르시든지 전화를 주세요.”
그렇게 새롭게 출발하는 ‘봄(Spring)'의 첫 입주자가 입주하게 되었다.
그것도 예쁘장하게 생긴 30대 초반의 직장인 아가씨가 말이다.
“예. 자경부동산입니다.”
“거기가 스프링 원룸을 하는 곳 맞나요?”
“예. 맞습니다.”
“원룸 비어 있는 방 있습니까?”
“예. 오픈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아직 비어 있는 방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침밥을 주나요?”
“예. 시간만 맞춰서 오시면 아침밥은 제공합니다.”
희한하게도 전화를 걸어 물어오는 사람은 대부분 여자들이었고, 그들의 질문 중 가장 많은 질문이 아침밥 문제였다.
이런 식이라면 조만간 영양사님 말고 지금은 시간으로 채용하고 있는 두 분 아주머니까지, 정 직원으로 채용할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아무리 한 달에 5만 원만 받는다고 했지만, 어차피 제공하는 밥이라는 것이 밥과 간단한 밑반찬 그리고 국이 전부였기에 재료비가 딱히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정말이야?”
“이런 걸 뭐하려고 거짓말까지 해?”
“너 장가가면 되겠다.”
“지랄한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금방 꽉 찰 수가 있지. 그 금액도 그리 만만찮은 금액이 아닌데?”
“꽉 차기는 뭐가 꽉 차. 아직 공실이 20개 가까이 남아 있는데.”
“지랄. 그 정도면 거의 풀이라고 할 수 있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입주한 방이 20개가 되지 않았었는데.......”
채 한 달이 가기도 전에 공실률 90%였던 건물이 이젠 비어 있는 방이 겨우 열 몇 개 남은 상황이 되었고, 그걸 안 박 사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젠 내년 초가 되어도 학생들을 받기가 거의 불가능한 그런 상태가 되었다.
내년 초에는 아예 방이 남아있지 않을 분위기이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