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건물주가 되다. (1)
안동으로 여행 가려던 계획은 경주에서 끝이 났다.
솔직히 나도 이틀 동안 어린 아가씨 둘의 몸을 탐하느라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지만, 지혜나 효주 또한 나와 비슷했다.
결국 체크아웃 시간이 되어서야 잠에서 깬 우리는 서둘러 호텔을 나섰고, 호텔 주변의 상가에서 삼겹살로 배를 채운 후에 경주 시내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른바 서울의 경리단 길을 본떠서 황리단 길이라고 이름 지어진, 커피숍이 늘어서 있는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경주에서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아빠, 좋았어?”
“뭐가?”
“피! 우리 둘같이 예쁜 여자를 동시에 따먹었잖아.”
“둘이 아빠를 잡아먹은 것이 아니고?”
“맞다. 우리 조개가 아빠 몽둥이를 집어삼켰네.”
“그런데 평소에도 이런 표현을 해?”
“미쳤어? 학교에서 무슨 소문이 나려고. 그럼 쪽팔려서 학교도 못 다녀. 아무튼 얘는 이제 지혜하고 내 거야. 알았지?”
갈 때는 지혜가 조수석에 앉았지만, 부산으로 돌아가면서는 당연하다는 듯 효주가 조수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제 더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출발하면서부터 지혜의 손은 내 허벅지에 올라왔고, 그러면서 이따금은 바지 앞섶으로 올라와 불끈거리기 시작하는 불기둥을 마음껏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빠, 우리 아빠 집에서 같이 살면 안 돼?”
“인마. 사람들 눈은 신경 써야지.”
“치! 혼자면 몰라도 둘이면 사람들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 몰라? 그리고 사람들 생각에는 아빠가 엄청 일찍 딸 둘을 낳고 혼자가 된 줄로 생각하겠지.”
“너야 그렇게 넘어갈 수가 있지만 지혜는 안 돼.”
“지혜가 왜?”
“지혜는 원장 수녀님 때문에라도 안 돼.괜히 원장 수녀님 신경 쓰이게 할 이유가 없잖아.”
“힝~ 그럼 아빠하고 하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
“그럼 전화하면 아빠가 하단으로 넘어가면 되지.”
그렇게 이야기하는 효주의 볼은 이미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효주는 또래 여자아이들 훨씬 이상으로 섹스에 집착하고, 또 많이 느끼는 그런 체질을 타고난 친구란 생각이다.
경주에서 부산까지야 금방이었다.
오는 도중에 효주가 손장난을 계속한 탓에 계속 운전에 집중하느라 제법 피곤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효주의 손장난을 말리고 싶은 생각은 크게 없었다.
밥을 먹고 가라는 둘을 지혜의 원룸에 내려주고 금정구로 돌아왔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정 사장님 소유의 원룸, 그러니까 내가 그제까지 살았던 원룸 쪽으로 가다가 문득 현실을 자각하고 사무실로 방향을 돌렸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직 정 사장님으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볼 수도 없었기에, 나는 정 사장님과 이 여사와 관련된 문제는 그냥 당분간 정 사장님이 행동을 취할 때까지는 덮어두기로 했다.
나중에 소송을 낸다면 대응하든지아니면 그쪽에서 제기한 만큼 손해배상을 하든지 할 뿐이지, 지금 나로서는 마땅히 취할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하~아~”
사무실에 잔뜩 쌓아둔 짐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고, 이런 상황에서 손님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사무실 문은 당분간 계속 닫아둬야 할 것 같았다.
공인중개사사무소의 일이라는 것이,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면 마냥 아무것도 할 짓이 없는 지겨운 일이다.
“사무실 전화는 받네? 도대체 어딜 다녀온 거야?”
“그냥 속이 시끄러워서 바람을 좀 쐬고 왔어.”
“그런데 전화까지 받지 않고 그랬어?”
“속 시끄러워서 휴대전화를 사무실에 두고갔었거든.”
“그럼 정 사장님 그 양반은 뭐라고 해?”
“방금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휴대폰을 보니 그동안 전화조차 하지 않았던데?”
업무용 전화로 전화를 제법 많이 걸었던 모양인지, 박 사장은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서랍에 놔둔 업무용 전화를 보니, 부산을 비운 이틀 사이에 박 사장이 열댓 번 전화를 건 것 말고는 딱히 신경을 쓸 만한 전화는 없었다.
아무튼 박 사장은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바로 내 사무실로 건너오겠다고 했다.
“와~ 당신도 징글징글하다.”
“뜬금없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직 짐이 그대로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
“당장 옮길 만한 곳도 없고, 그렇다고 이 정도 짐을 이삿짐센터에 맡겨둘 수도 없잖아.”
“그냥 아무 원룸이나 들어가서 살면 되지.”
“고민 중이다. 부곡동 쪽에 매물을 하나 이야기 하는 중인데, 그쪽에서 아직 가타부타 이야기가 없네.”
“그거 그냥 없었던 일로 해.”
“지랄. 뜬금없이 그건 무슨 말이야?”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원룸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박 사장은 그 일을 없던 것으로 하라고 했다.
“G 빌리지 잘만 이야기하면 성사가 될 것 같거든.”
“그걸 아직 붙들고 있었어?”
“아직 이라니? 겨우 며칠이나 지났다고.”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박 사장은, G 빌리지 성 사장을 설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섣불리 내가 그 G 빌리지를 놓고 관심을 보이게 되면, 박 사장은 성 사장에게 조금은 더 유리하게 조율하려고 할 것이니, 그냥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G 빌리지 그게 관리하는 것은 편하지만, 자칫 경기가 죽기라도 하면 한 방에 훅 갈 위험성이 있잖아. 세상일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거기에 돈을 다 묻어둔다는 것은 아니다 싶네.”
“지랄하네. 학교앞에 원룸이 한 방에 훅 갈 일이 뭐가 있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지금도 공실이 많아서 빌빌거리는 곳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40장이면 다섯 동을 모두 넘긴단다. 한 동에 8억!”
“그 양반 아직 여유만만한 모양이네. 아무리 한군데 묶여있는 원룸이라고 하지만 12m 도로에 붙은 건물하고 골목에 들어가 있는 건물하고 똑같이 계산을 하냐?”
내가 예상한 금액에서 별 차이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한 8억이란 금액은 은행에 담보로 잡혀있는 것을 제외한 성 사장이 받고자 하는 돈이니, 내가 알고 있는 근저당설정 금액을 생각한다면 8억이란 가격이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다.
“박 소장.”
“어?”
“당신 같으면 그 건물을 40억이나 주고 사겠어?”
“그럼 어쩌자고?”
“솔직히 난 30억도 아깝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공실률이 금정구에서 최고인그걸 누가 안겠다고.”
“30억이면 공사비도 나오지 않는다는 걸 몰라?”
“공사비가 얼마인지야 내가 알 바가 아니지. 어차피 그 건물은 원룸 말고는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없게 지어진 건물이고, 누가 그렇게 비싸게 지으라고 한 사람도 없잖아. 그리고 그 양반이 그걸 안고 있어 봐야 계속 적자를 볼 수밖에 없으니 팔겠다고 나선 것이고.”
“팔겠다고 내놓은 적이 없다니까! 내가 가서 작업 친 것뿐이야.”
“아무튼 지금 공실률 때문에 이자조차 감당하기 버거워서 헉헉거리는 것은 사실이잖아.”
G 빌리지는 지어도 너무 고급스럽게 지은 건물이다.
학생들이 주된 입주자들인데 솔직히 학생들이 이용하기엔 부담될 정도로 고급스럽게 지은 외관 때문에, 아예 물어보는 사람조차 드문 곳이 바로 G 빌리지 그곳이었고, 그 때문에 성 사장 그 양반은 죽을 맛이라는 것이 우리 업계에 떠도는 소문이었다.
“그럼 당신은 얼마를 원하는데?”
“조금 전에 이야기했잖아. 30억도 아깝다고. 내가 그 건물에 달린 대출금을 모두 갚고 인수할 정도 돈이 있다면 미친 척하고 고민이라도 해보겠지만, 내가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은행이자는 계속 내야 할 상황인데 그게 쉽겠어?”
“그러니까 얼마면 사겠느냐고?”
“그냥 없었던 일로 해.”
“정말 당신 그럴 거야?”
박 사장이 잔뜩 몸이 달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성 사장 쪽에서 불렀다는 40억에서 아예 10억이나 깎은 금액인 30억을 불렀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성 사장 역시도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하고 이번 기회에 G 빌리지를 처분할 생각이 강한 모양이었다.
“내가 성 사장에게 이야기해서 석 장을 까줄게. 37억 콜?”
“그만하자니까. 30억도 아깝다는 인간한테 37억이란 것이 말이나 돼?”
“돌아버리겠네. 지난번에는 절충만 잘 되면 살 것처럼 굴더니만.”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도로 옆에 붙은 건물이야 시세를 생각하면 8억 정도라면 고민은 해볼 만하지만 안쪽에 박힌 건물들은 아니잖아.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골목 안에 있는 건물들을 여덟 장에 살 수가 있겠어?”
“어차피 한 건물로 쳐야 하잖아.”
“그 말은 지금원룸을 다 뜯어낸 후에 이야기고. 그렇다고 그 건물을 다 뜯어내고 새로 하나의 건물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앉힐 만한 것이라도 있겠어? 아무리 해봐야 거긴 원룸 말고는 다른 대안도 없는 곳이다.”
내 말에 박 소장은 담배를 피우겠다는 핑계로 바깥으로 나갔다.
하지만 박 소장이 지금 바깥으로 나간 이유는 담배가 아닌 성 사장과 통화를 위해서 나간 것일 것이고, 최종적으로 얼마까지 양보할 수 있을 것인지 그 금액을 네고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박 사장은 한참이 지난 후에 결연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34억! 됐어?”
“하필이면 재수 없게 4자는 왜 붙여?”
“성 사장이 죽어도 35억은 받아야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35억 중에 한 장은 내게 떼 주기로 한 것이고.”
박 사장이 지금 하는 이야기가 거짓말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 G 빌리지가 공실률이 엉망인 상태만 아니라면 40억이란 돈도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닌데, 그것을 34억까지 낮춰놨으니 손해를 볼 일은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하~아~”
“또 왜? 이 정도면 솔직히 거저잖아?”
“거저는 무슨 거저? 지금 은행에 담보로 잡힌 것을 계산해봐. 당신이 생각해도 답이 나오는지.”
“이런 기회 평생에 두 번 오기 힘들어. 정말 내가 그 돈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내가 샀을 거다.”
박 사장의 그 말은 나도 충분히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에서 땅값이야 가만히 놔둬도 오르는 것이고, 하물며 이곳이 어디 시 외곽의 야산도 아닌 금정구의 중심이라고 할 수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돈만 있다면 그냥 몇 년을 묵혀두기만 하더라도 충분히 남는 장사가 되는 것이다.
그냥 G 빌리지 소유자인 성 사장은 쓸데없는 욕심으로 빚을 내서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린 탓에 자금회전이 되질 않아 고전하고 있을 뿐이고, 그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 건물을 팔고 그 돈으로 다른 데 투자를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돈이라는 것은 돌고 돌아야 눈덩이처럼 불어서 되돌아오는 법이니 말이다.
내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으니, 박 사장은 이제 됐다 싶은 것인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러더니 가방에서 무엇인가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고, 그것은 다름 아닌 G 빌리지 관련 서류들이었다.
“당신 눈으로 확인해 봐.”
“하~아~ 정말 되게 서두르네. 30억이 넘는 돈이 왔다 갔다가 하는데 이렇게 서두른다고 뭐가 돼?”
“쇠뿔도 단김에뽑으라고 했네. 이 사람아!”
“당신 말대로 했다가 내가 꼬나 박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을 져?”
“어차피 다시 되팔아도 그 돈은 나와? 뻔히 사정을 알면서 자꾸 그렇게 하면 나도짜증 난다.”
맞는 말이다.
34억이라면 결코 내가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고, 또 최악의 경우에는 나도 지금 성 사장처럼 다른 사람에게 팔아넘긴다면 최소 35억 정도는 충분히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