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여행지에서 생긴 일 (2) (42/90)



〈 42화 〉여행지에서 생긴 일 (2)

“왜 아직 포장도 뜯지 않고 있어?”
“어! 딸 왔어?”

생각지도 않았던 효주의 엉뚱한  때문에 무어라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있는 그때 지혜가 돌아왔다.

지혜는 사가지고 온 과자와 음료 그리고 호두과자가 든 봉투를 운전석 뒷좌석에 두고 조수석에 앉더니, 등을 돌리고 효주와 함께 떡볶이 포장을 벗기기 시작했다.

“아빠, 아~”
“됐어. 내가 알아서 먹을게.”

지혜는 이쑤시개로 떡볶이를 찍더니  보고 입을 벌려 받아먹으라고 했지만,  기억에 누군가 남이 내게 그렇게 해준 기억이 없기도 했고,  단둘이 있는 자리도 아닌 효주까지 있는 자리에서 그걸 날름 받아먹을 수는 없었다.
“아빠, 우리 경주에도 들렀다가 가면  될까?”
“경주?”
“응, 나 수학여행 때 가본 것 말고는 경주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거든.”
하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야 고아원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했겠지만, 고아원에서 학교에 다니면서 개인적으로 경주까지 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도움을 받아서 학교에 다닌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생활비로 건넨 돈 대부분을 고아원 원장 수녀님께 드렸던 지혜였기에 경주를 갈 기회뿐 아니라 경제적인 여유조차 없었을 것이다.

“경주 어딜 가고 싶어?”
“김밥집이요.”
“김밥집이라고? 뜬금없이 김밥은 왜?”
“예. 경주에 엄청 유명한 김밥집이 있거든요. 전에 텔레비전에도 나왔는데.......”

어차피 그 정도 유명한 김밥집이라면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충분히 알 수가 있다.

그런데 경주지역의 특별한 음식이라면, 콩을 재료로 하는 두부와 칼국수(콩국수) 그리고 해장국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김밥도 포함된 모양이었다.

청도휴게소에서 경주까지는 1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었고,그렇게 경주에 도착해서 우리는 지혜가 알려준 대로 텔레비전에 나와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는 김밥집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아빤 무슨 김밥을 드실 거예요?”
“나는 파는 김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두 사람이 먹을 만큼만 사가지고 와서 먹어.”

주말이어서인지 김밥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니 엄두가 나질 않았고 또 차를 세워둘 마땅한 곳이 없었기에, 나는 지혜에게 김밥을 사고  후에 전화하라고 얘기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솔직히 이제 우리 국어사전에서 맛집이란 단어의 뜻을 고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었다.

맛집이란 단어의 뜻은 음식의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난 집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음식에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든지 아니면 요리를 하는 분의 손맛이 첨가되어야 그런 맛이 나는 법인데, 요즘의 맛집이라 소문이 난 집을 보면 전혀 그것과는 무관하다는 느낌 때문이다.

맛집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언론에 노출되어서 사람들이 몰리는 유명한 음식점, 그게 요즘 맛집의 개념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 경주에도 해장국을 파는 집이 몰려 있는 곳이 있다.

팔우정 로터리란 곳에 해장국을 파는 집이 잔뜩 몰려 있는데, 솔직히 그 해장국이란 것의 맛은 내가 이따금 찾아가는 부산 가야공원이란 곳 입구에 있는 선지해장국 집에서파는 해장국 맛에는, 아예 비교조차 힘이 들 정도로 밋밋한 맛이다.

그리고 별로 깔끔한 느낌도 없고.

하지만 경주에 사는 사람들이나 경주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집들이 맛있는 집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은 경주도 많이 변했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솔직히 경주 지역에 있는 음식점 중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파는 곳을 찾기 힘들었고, 그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주변 지인들 역시 비슷한 의견이니 다른 지역의 음식 맛을 보지 못한 경주 사람들에게는 그 집이 맛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해장국이나 그런 음식들조차 그러한데, 흔하디흔한 김밥을 놓고 맛집이니 뭐니 하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 아닌가?

매일 아침 공장에서 냉동 트럭에 실려 넘어온 재료에, 수많은 사람이 덤벼들어 김밥을  그것에 무슨 특별함이 있고 또 손맛이 있을 거라고.......

그냥 장삿속으로 쇼셜미디어 계정에서 조회 숫자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그걸 본 방송사에서 기름을 끼얹어준 현대 문명의 폐해일 뿐이고, 사람들은 그 분위기에 취해서 맛이 있다고 난리를 치는 것일 뿐이다.

“아빠, 드셔 보세요.”
“난 파는 김밥은 먹지 않는다니까.”
“왜요?”
“예전 학교 다닐 때, 새벽에 출출해서 포장마차에 가서 어묵을 몇  집어먹고 김밥을 포장해 달라고 했더니, 돈을 만진손으로 김밥 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후에는 아예 파는 김밥은 눈길도 안 준다.”
“정말이요?”
“그런 것을 뭐하려고 거짓말을 해?”

입이 까다로운 것인지 몰라도 개고기나 뱀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가리는음식이 없는 편인데도, 나는 파는 김밥을 먹지 않고 또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아예 먹지를 못한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젓갈이 들어간 김치는 먹으면서 젓갈이 들어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먹더라도, 먹고  후에 두어 시간만 지나면 밤새 설사를 하는 체질이다.

 덕분에 젓갈이 들어간 김치 양념이 묻은 것이 입안으로 넘어가기만 해도, 그날 밤은 잠조차 자지 못하고 얼굴이 하얘질 때까지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속이 완전히 비워질 때까지 고생하는 탓에, 집이 아닌 바깥에서는 아무리 김치가 먹고 싶어도 손조차 대지 못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날 이후에 아예 파는 김밥은 먹어본 적이 없었기에, 지혜와 효주가 번갈아가면서 맛이 있다고 난리를 치면서 젓가락을 들이댔지만, 나는 깔끔하게 무시하고 아까 청도 휴게소에서 사가지고  음료수만 마셨다.

“두 사람 어디 가보고 싶은 곳은 없어?”
“솔직히 잘 몰라요. 첨성대 불국사는 기억이 나지만.......”
“그럼 첨성대는 나중에 보기로 하고 우선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부터 가자.”

그렇게 그곳을 출발해서 불국사로 향했다.

불국사 구경을 마치고 다시 산길을 따라 올라가 석굴암 구경을 마친 후에 감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여긴 어디예요?”
“감은사지 터.”
“절인데 석탑만 남아 있다는?”
“맞아. 한번 가볼까?”

어차피 바쁜 일이야 없었기에 지혜의 이야기에 감은사지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감은사지는 신라 시대 문무왕(文武王)께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불사를 시작했고, 문무왕께서 돌아가신  아들인 신문왕(神文王) 2년에 완공된 절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절은 감은사지 앞의 대종천을 통해 문무대왕릉이라고 알려진 대왕암이 있는 동해에 이어져 있으며,  대종천을 통해 용이 되신 문무왕이 다니실 수 있도록 금당 기단 아래에 동쪽으로 향한 구멍을 내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 감은사지와 문무왕의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 그리고 전설에서나 나올법한 신문왕 2년에 용으로 현신한 문무왕께 신문왕이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었다는 이견대(利見臺)는, 우리 민족의 호국정신을 표현한 기록이자 문화유산인 것이다.

“여기도 유명한 곳이에요?”
“유명하다라....... 유명한 곳일 수도 있지.”
“어떻게요?”
“예전에 문화재청장을 한 양반이 쓴  때문에 2009년부터 몇 년간은 이 일대가 관광객들로 북적거렸었다. 그 덕분에 이렇게 깔끔하게 단장되기도 했고.”
“책 때문에 라고요?”
“응, 그 책이 엄청 팔렸었거든. 사람들이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국내여행은 제주도 그리고 좀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예 해외여행을 여행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당시까지만해도 수학여행지 아니고서는 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경주를 전국에서 손꼽는 여행지로 만들어 준 사람이  양반이거든.”

솔직히 내가 경주에 급격히 관심을 두게 되고 경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바로 유홍준의 그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기인한다.

지금까지 나뿐 아니라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감은사지 삼층석탑뿐 아니라, 그냥 논 한가운데 버려지다시피 놓여 있던 탓에 아무도 찾지 않던 진평왕릉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인 유홍준이 느꼈던  정취를 느껴보고자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서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찾았고, 덕분에 지금은 번듯한 주차장과 화장실까지 갖춰진 우리 문화유적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사실 창피한 일이지만 나도  책을 보고, 저자인 유홍준이 ‘감은사지, 아! 감은사지!’라고 탄성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던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몇 번이나 이 감은사지 절터를 찾아왔었다.

그렇게 몇 차례나 유홍준이 느낀 그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 찾아왔었지만 실패하다가, 유홍준의 그 감정을 느낀 것은 정말 우연한 기회였었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다른 사람들에게 담배 연기가 가지 않게하려고, 감은사지 뒤쪽의 언덕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광경....... 그 광경이 눈에 들어온 순간 내 의식이 얼어붙고 말았던 것이다.

어스름한 일몰 시각, 산등성이로 넘어가는 태양과 동서 양쪽에 있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오던 그 순간, 내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아!’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아무튼 맛깔나게 글을 쓰는 유홍준이라는 작가 덕분에 나는 그날 이후 이전과는 비교될 정도로 그가 찬양한 경주지역 곳곳에 퍼져있는 유적들을 찾아다녔고, 그가 표현한 그것들이 그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 바다다!”

역시 청춘은 청춘이었다.

바다를 발견한 지혜와 효주는 나란 존재는 아예 잊기라도 한 것처럼, 주차장에 멈추자마자 차 문을 열고 뛰어내려 모래사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아빠! 빨리 와요.”
“알았어. 담배는 마저 피우고.”

한참을 눈 오는  마당을 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던 지혜가 나를 불렀지만, 나는 결코 모래사장으로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그냥  가게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한잔 뽑아서 커피 한 모금, 담배  모금을 반복하고 있었을 뿐.......

“아빠도 바다 좋아한다고 했잖아?”
“바다는 좋아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지 모래를 밟거나 물에 들어가는 것은 별로야.”
“치! 그런  어디 있어.”

한참을 미친 듯 뛰어놀던 둘은 제풀에 지친 것인지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고, 나만 혼자 두고 둘이서만 재미있게 뛰어다닌 것이 미안한 것인지 툴툴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툴툴거리는 모습들이 밉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에 둘도 없을정도로 귀엽게만 보인다.

“이제 어디 갈 거야?”
“보문단지에 갔다가 다시 경주 시내로 돌아가야지.”
“보문단지? 아까 지나쳤던  아니야?”

보문단지를 먼저 가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둘에게 이곳 감포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고, 그런데 보문단지를 먼저 들르게 되면 절대 낮에는 감포까지 올 수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았다.

나는 둘에게 끌려 다니다시피 해가면서 구토할 것만 같은 상황이 될 때까지, 놀이기구를 타면서 곤욕을 치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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