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아빠, 절 가져요. (1)
“자경이 넌 먼저 들어가서 쉬어.”
“오빠는?”
“지혜 데려다주고 부암동에 좀 들러서, 친구 좀 만나고 올 거야.”
“알았어. 나중에 연락 줘.”
부암동에 사는 친구에게 받아야 할 것이 있어 오늘은 제법 늦어질 것 같아서, 우선 자경일 온천장의 N 호텔에 내려주고, 지혜를 사하구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출발했다.
“아빠.”
“응?”
“아까 그 아줌마하고 결혼할 거예요?”
“결혼은 무슨. 아까 자경이가 오빠라고 부르는 소리 듣지 못했어?”
“치! 원래 오빠가 아빠가 되는 법이잖아요.”
“우리 꼬마 숙녀 입에서 별소리가 다 나온다.”
“치! 나도 알 것 다 아는 나이거든요.”
“아이고, 그러세요. 이거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빤 왜 저한테 하자고 안 하세요?”
“뭘?”
“그거요.”
“인마, 뜬금없이 그거라니?”
지혜 입에서 뜬금없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척했지만 지혜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인지는, 이미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부모의 품에서 고이 자란 또래 아이들도 뻔히 알고 있는 세상 돌아가는 내용을,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훨씬 더 어렵고 험한 상황에서 길러진 지혜가,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아빤, 절 가지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세요?”
“지혜야!”
“원래 그렇잖아요. 아빠도 혼자고 또 요즘 나이가 든 어른들 중에서, 돈으로도 저같이 어린 애들 몸을 사려고 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아빠도 잘 아시잖아요.”
“지혜야, 아빠가 지금 화를 내야 하겠어?”
지혜가 하는 말이 이해는 되지만 갑자기 왜 이런 말을 끄집어내게 되었는지,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지혜를 데려다준 후에 만나기로 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연기하고, 지혜를 그대로 태우고 하단을 지나 을숙도로 향했다.
물론 가장 자연스러운 곳이 사람들이 있는 커피숍 정도겠지만, 지혜와 나눌 이야기의 내용이 다른 사람들이 듣게 되면 곤란한 내용이었기에, 이런 밤중에 커플들이 주로 애용하는 이곳으로 온 것이다.
차 안에서 이야기하면 남들 시선이나 남들이 들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지혜야.”
“예. 아빠.”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혹시 주변 친구들이 뭐라고 한 거야?”
“아니요. 전에부터 언젠가 아빠하고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을 했었어요.”
“아빠가 그렇게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보였었던 거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요. 수녀님도 아시는 것을 아빠만 모르세요?”
“수녀님? 갑자기 수녀님이 왜?”
“제가 입학한 후에 수녀님이 일주일에 두어 차례씩 찾아오신 이유가 뭐겠어요?”
“인마, 그거야 네가 제대로 정착하고 있나 하고 걱정이 되어서이지.”
“거짓말!”
물론 거짓말이 맞다.
수녀님께서 고아원을 퇴소한 아이를 지혜만큼 신경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냉정하게 이야기한다면 대한민국 어느 고아원에서도, 퇴소할 나이가 되어 고아원을 퇴소한 아이들을 한 주에 두어 차례씩 집을 찾아가서, 제대로 잘 정착해서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곳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지혜 같은 경우는, 원장 수녀님이 혹시나 본인의 판단이 틀려서 지혜가 나쁜 일을 겪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후원자 또는 후견인 역할을 한답시고 점잖은 척하다가, 기회가 생기면 마수(魔手)를 드러내는 짐승 같은 인간이 흔하디흔한 세상이니 말이다.
“아빠도 수녀님이 뭘 걱정해서 뻔질나게 제가 사는 원룸을 드나드신 것인지 아시잖아요.”
“그래 알아.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될 것은 없잖아. 오히려 수녀님들께 고마워해야지.”
“알아요. 하지만 전 아빠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어요.”
“무슨 속마음.”
“정말 아빠가 날 가질 생각이 전혀 없었는지 그거요.”
“인마, 세상에 어떤 아빠가 딸에게 그런 감정을 품어?”
“우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잖아요. 그리고 아빠도 뉴스 봐서 알잖아요. 계부가 아닌 친아버지라는 인간조차도 자기 딸을 강제로 범한다는 것이요.”
하긴 지혜가 지금 고아원에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원룸에서 혼자 살면서 세상의 추한 이면을 보지 않고 살 수 있을 수는 없다.
휴대전화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만 하더라도, 하루에도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의 수많은 사건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현실이고, 그중에서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건·사고 또한 한둘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혜야.”
“예. 아빠.”
“아빠가 남자가 되어서 이런 이야기를 딸에게 하는 것이 많이 불편하지만, 네가 이야기하는 그 일은 아빠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 네가 나중에 정말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그때 해야 하는 일이야.”
“제가 아빠를 사랑한다면 그건요?”
괜한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그리고 남자나 여자가 이성을 사랑하게 될 때는,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상대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조차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아무리 내가 눈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만약 지혜가 하는 말대로 지혜가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면, 나 역시도 그 정도 눈치는 진작 챌 수가 있었을 것이다.
“지혜야. 솔직히 이야기해봐.”
“뭘요?”
“네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 말이야. 혹시 아까 자경이 때문이야?”
“그 아줌마가 왜요?”
“아빠가 자경이하고 결혼할까 봐 이러냐고?”
“그 아줌마랑 결혼하지 않는다면서요.”
“그래.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인데?”
어쩌면 자경이가 지혜를 불안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고아로 자란 아이들이 가장 겁내는 것 중의 하나가,자기에게 향하는 관심과 사랑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지금 상황에서 지혜와 나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존재가 바로 자경이었으니 말이다.
내 말에 지혜는 한동안 대답이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아빠.”
“응. 이야기해봐. 우리 지혜가 오늘 갑자기 왜 이러는지.”
“미정이랑 정희를 꼭 아빠가 돌봐줘야 해요?”
“미정이하고 정희라니?”
“아까 아줌마하고 이야기할 때, 고아원 퇴소하는 애들 둘을 데려오시겠다고 하셨잖아요.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애들이 미정이하고 정희거든요.”
“그래? 그런데 그 애들은 왜? 지혜 너하고 사이가 많이 안 좋아?”
“아뇨. 걔들은 엄청 예쁘잖아요.”
“뭐?”
“걔들이 저보다 훨씬 예쁘고, 그럼 아빠는 걔들만 좋아하실 거잖아요.”
“혹시 그 친구들 때문에 지혜 네가 이러는 거야?”
“.........”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다.
물론 지혜가 그동안 내가 지혜에게 기울였던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 걱정되어서 오늘 이런 말과 행동을 했었던 것은 맞았지만, 그 대상이 허탈하게도 자경이가 아니라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아원을 퇴소하게 될 아이들 둘 때문에 이랬던 것이다.
“인마, 너도 엄청 예쁘고 귀여워. 그리고 아빠는 지혜 네가 이야기한 정희나 미정이란 친구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
“걔들 엄청 난(亂)하기도 하고 엄청 섹시하단 말이에요.”
“그 친구들이 그런 걸 어떻게 하라고. 그리고 내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이유가 있어?”
“걔들 처녀 아니라고요. 중딩 때부터 수녀님 몰래 조건도 했던 애들인데.”
“인마, 그런 애들인데 네가 왜 신경을 써? 아빠가 그런 친구들에게 꼬드길까 봐?”
“아빠도 남자잖아요.”
지혜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나니, 이야기가 훨씬 쉬워졌다.
그리고 지혜에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나라는 인간이 섹스를 즐기긴 하지만, 그렇다고 롤리타(Lolita) 성향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를 롤리타의 범주에 집어넣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딸.”
“예. 아빠.”
“우리 딸이 아빠를 영 믿지 못하는 것 같다.”
“아빠는 믿어요. 하지만 걔들이 얼마나 여우인데요. 조건 하면서 아저씨들에게 돈 뜯어냈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혜의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내가 그런 아이들의 후견인 노릇까지 해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그 아이들을 챙겨주다가 보면 그 아이들도 마음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자경이 같은 경우도, 중간에 마음을 바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지혜에게 둘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전에 생각했던, 그 생각은 바꿔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원장 수녀님을 만나면서 나는, 자경이로부터 건네받은 50억을 가지고 원룸을 매입한 후에 그 원룸 중의 한 곳에 아이들을 함께 모여 살게 할 생각이었는데, 아이들을한곳에 모여 살게 하는 것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정말 그 아이들이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원장님을 비롯한 다른 수녀님들 몰래 조건만남을 하고 다녔다면, 그런 아이들과 지혜를 한곳에 둔다는 것은 지혜도 그 물을 들게 만들 수도 있게 된다는 걱정이 든 것이다.
“지혜야. 학교에 다니기에는 불편하겠지만 혹시 아빠하고 가까운 데서 살 생각은 없어?”
“그래도 돼요? 언제부터요?”
“지금 당장은 아니고 조만간 아빠가 원룸을 살 예정이거든. 그럼 거기서 살게 되면 아무래도 지혜 너도 훨씬 편하지않을까 해서.”
“그렇게 할게요. 그럼 아빠하고 한집에서 살아요?”
“그냥 한 건물에서.”
아무리 지혜가 편하다고 하더라도 한집에서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라는 것이 맨정신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남남인 남녀가 한집에 살게 되면, 옷조차 마음대로 입고 다니지 못하는 등의 불편한 일이 자연 생기기 마련이고, 그렇게 되면 서로가 스트레스를 받아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지혜는 내가 가까운 곳에서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는 말에 반색했기에, 매입할 원룸을 고르면서 지혜의 통학문제와 밤에 귀가할 때 안전문제도 염두에 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지혜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아. 그러니 그런 걱정하는 대신에 공부나 열심히 해.”
“알았어요. 그럼 걔들은 어디서 살게 할 거예요?”
“대학에 합격하게 되면 어느 대학에 입학하는지, 그것이 아니라 바로 취업을 하게 되면직장이 어딘지를 알아보고 난 뒤에 그 친구들이 살 집을 찾아야지.”
“이제 속이 시원해?”
“예. 약간은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어?”
“아빠.”
“응. 편하게 이야기해.”
“제가 정말 아빠를 사랑하면 안 돼요?”
이미 다 끝이 난 줄 알았는데 지혜 입에서 또다시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물론 법적으로야 지혜가 말하는 것처럼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지혜가 이미 성인이고 나 또한 법적으로 아무 결격사유가 없는 총각 신분이고, 나이 차이라고 해봐야 띠동갑을 조금 넘긴 나이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띠동갑이 서로 사랑하면서 사귀고 결혼에 이르는 일이야, 도둑놈 소리를 들을지언정 찾아보면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