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자경이 (6) (32/90)



〈 32화 〉자경이 (6)

“언니얼굴이 밤새 활짝 폈네.”
“까불래?”
“까불긴 뭘 까불어. 언니 얼굴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 생각할 건데.”


옆방에 투숙한 지수의 전화에 눈을 떴다.

자경이와 난 간단히 세수만 한 후에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기 위해 내려갔다,

지수는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다 안다는 것처럼 생글거리며 자경일 놀려댔고, 자경인 마치 갓 시집온 새색시처럼 얼굴을 붉혔다.

참 웃기게도 논다고 노는 일반인 여자들은 저런 경우에 대부분 뻔뻔하게 대응하는데, 대놓고 몸을 팔았던 친구들 같은 경우엔 오히려 훨씬 더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자경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았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좀 노는 여자들보다 오히려 영혼이 순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수 넌 오늘  할 거야?”
“왜? 언니는 오빠랑 오늘도 둘만 같이 지낼 생각이야?”
“난 오빠하고 하단이라는 곳에 다녀오려고.”
“하단?”
“응. 예전 우리가 있던 가게서 터널 넘어 좀 더 가면 있는 동네.”
“거긴 뭐하려고?”

지수의 물음에 나는 그곳에 은정이 수양딸 아닌 수양딸로 삼은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었고, 걔를 만나러  것이라고 얘기했다.

“오늘은 오빠랑 둘이서만 다녀.”
“왜?  어디 가려고?”
“가게 할 만한 곳을 찾아봐야지.”

솔직히 내가 부동산중개업을 하면서도 과연  시점에, 부산에 자경이와 지수가 생각하는 수준의 업소를 열어 운영할 만한 곳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대전을 생각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과연 자경이나 지수의 기대치를 채울 수 있을까 싶기도 것이다.

아무튼 그런 쪽에 관해서야 나보다 자경이나 지수가 훨씬 더  알고 있을 것이니, 나는 그 문제에 관해서는 신경을 끊기로 했다.

우선은  머릿속에서만 은정이 수양딸로 삼아 지금까지 생활비를 지원해오고 있는 지혜를 만나러 가야 했다.


“저기지?”
“응.”
“강준 오빠는 아직도 장사를 계속해?”
“법안이 통과되고 난 후에 가게를 접고 지금은 다른 일을 하고 있어.”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지내는데?”
“산청 쪽에서 약초를 재배하면서 산다.”
“뜬금없이 웬 약초?”
“그러게. 예전에 방영했던 드라마를 뒤늦게 보더니만 그냥 시간이나 때우려는지 짐 싸서 산청으로 들어갔어.”

부두 도로에서 부산터널로 향하는 고가도로를 타려다가 깜빡 정신을 놓은 탓에, 남포동  중앙로를 계속 타게 되었다.

때문에 어쩌면 자경이에게는 아픈 기억일 수도 있는 완월동(행정구역상으로는 초장동)을 지나게 되었고, 자경이 역시 그곳에서의 일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강준이 놈의 얼굴을 본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강준인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후에 아가씨들을 다 보내고 가게를 접은 후, 건물까지 팔고서는 약초 재배나 하면서 살겠다면서 드라마 허준의 배경이 된 경남 산청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른바 낙향한 사업가로 행세하면서, 그곳 사람들에게 제법 인심을 얻었다면서 이따금 전화로 소식을 전해왔지만, 한번 간다 간다고 하면서도 아직 만나러 가지 못하고 있었다.

“예. 아빠,”
“지금 학교야?”
“아뇨, 학교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친구랑 있어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응, 우리 딸 얼굴이나 볼까 해서.”
“하단에 와 계세요?”
“응. 알았어요. 지금 집으로 갈게요.”
“친구는?”
“어차피 강의가 빈 시간이어서 잠시 시간 때우려고 내려왔던 거였어요.”
“그럼 아직 수업이 남았나 보네. 그럼 수업 마치거든 보자.”
“아뇨. 한 시간 정도는 째도 괜찮아요.”

지혜와 통화를 끝내고 나니, 자경이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뭐야 오빠. 혹시 얘하고 원조 해?”
“그게 무슨 말이야?”
“얘하고 그거까지 하느냐고?”
“그걸 하다니?”
“생활비 대주는 대신에 섹스를 하냐는 말이지.”
“미쳤어?”
“그런데 얘가 왜 오빠보고 아빠라고 그래?”

자경이가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었다.

하긴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는 내가, 20대 초반의 여대생인 지혜에게 아빠 소리를 듣는  자체가 남들 눈에 이상하게 비칠 것이니, 어쩌면 자경이가 그런 쪽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실상은 그런 오해 때문에, 호칭을 아저씨에서 아빠로 바꾼 것인데 말이다.

“아빠!”
“그래, 그동안 재미있게 지냈어?”
“예. 그런데 아빤 갑자기 웬일이세요?”
“응, 널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자 자경이가 조수석에서 내렸고, 늘씬한 미모에 화려한 옷을 걸친 자경이 모습을  지혜는 놀라서 눈을 똥그랗게 뜬다.

“돌아가신 양반의 친구야.”
“안녕하세요. 서지혜라고 합니다.”
“그래. 반가워.  황자경이라고 해.”
“엄청 예쁘세요. 참, 아빠 들어가세요.”
“내가 들어가도 괜찮겠어?”
“마침 어제 청소 깨끗하게 했거든요. 아주머니도 들어오세요.”

혼자 왔다면 방까지 들어가는 것을 꺼렸겠지만, 오늘은 자경이가 같이 있는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지혜가 사는 방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오빠,  정말 은정이랑 닮았다.”
“그렇지. 나도 저놈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 깜짝 놀랐었어. 혹시 은정이 동생이 아닌가 싶어서.”

집은 20대 초반의 여학생이 산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지혜가 음료와 간단한 다과 거리를 준비한다고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자경인 정말 깜짝 놀랐다는 표정으로 은정이와 닮은 것에 대해 이야길 했다.

“내가 부산에 내려오면 내가 쟬 데리고 있을까?”
“서로 불편하게 뭐하려고 그래?”
“어차피 쟤도 혼자고 나도 혼자잖아.”
“대전에 있으면서 지수하고 같이 지낸  아니야?”
“지수 나이도 있는데 어떻게 같이 지내. 지수도 이제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야지.”

자경인 지혜를 데리고 있고 싶어 했지만, 우선 지혜가 어떤 생각인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자경이의 그 생각이 제법 괜찮은 생각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핏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오랜 기간 따로 떨어져 지내다가 한 공간에서 살게 되면 사사건건 부딪치는 법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이 순간의 기분에 한 공간에서 살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괜히 그렇게 했다가 서로 오래도록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는 관계가, 다시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나쁜 관계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니 말이다.

“아빠, 드세요. 딱히 집에 드실만한 것이 없어서.”
“커피면 되지 뭐가 더 필요해. 그런데 요즘 필요한 것은 없고?”
“학생이 필요한 것이 뭐가 있어요. 충분해요.”
“그런데 그 옷 지난번에  만나던 날 입고 있었던 그 옷 아니야?”

지금 지혜가 입고 있는 옷이 지난달 생활비를 전해주기 위해 찾아왔을 때 입었던 옷과 같은 옷 같았다.

“지혜야.”
“예. 아빠.”
“혹시 생활비가 부족해?”
“아뇨! 절대 부족하지 않아요.”
“그런데  옷이 항상 그 옷이야?”
“학교만 갔다가 오면 그뿐인데 굳이 옷이 많이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리고 보니 지혜는 화장도 거의 하지 않은 민얼굴이었다.

한창 외모에 신경을  나이인데,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무언가 자기를 꾸미고 투자하는 것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경아.”
“응. 오빠.”
“지혜 데리고 나가서 옷이나  사줘. 화장품도 좀 골라주고.”

아무리 말로 옷도 사고 자신을 가꾸라고 해봐야 듣지 않을 것이었기에, 나는 아예 자경이에게 부탁했고 지혜를 억지로 데리고 나와 차에 태웠다.

“오빠, L 백화점으로 가자.”
“오케이!”

둘을 뒷자리에 태우고 나는 다시 아까 왔던 길을 되돌아 와서, 옛 부산시청과 경찰청 자리에 있는 L 백화점으로 차를 몰았다.

“이걸로 사.”
“됐어. 오늘은 지혜를 처음 만난 기념으로 내가 선물할게.”

어차피 여자들이 쇼핑하는 뒤를 따라다니는 것은 내 체질로는 불가능했기에, 카드를 건네려니 자경인 피식 웃으면서 카드를 도로  쪽으로 밀었다.

적당히 돈이 많으면 내가 우기기라도 했겠지만, 나와 비교할 수도 없이 돈이 많은 자경이였기에 나는 아무런 부담을 가지지 않고 카드를 다시 지갑에 밀어 넣고서는, 쇼핑이 끝나면 전화하란 말을 남기고 차를 출발시켰다.


“원장 수녀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아이고, 이게 누구야.”
“그러게요. 제가 너무 오랜만에 찾아뵀지요.”
“바쁜 사람이 뭘 자주 오려고. 우리이 사장 소식은 지혜에게 이따금 들어서 알고 있어.”
“지혜가요?”
“몰랐어? 주말만 되면 항상 여기에 와서 아이들 공부도 가르쳐주면서 아이들하고 어울리다가 자고 가는데.”
“아, 그랬군요. 전 금시초문이라.......”
“그런데 뭐 한다고 자꾸 돈을 보내고 그래. 지혜 돌봐주는것만 해도 고마운 일인데.”
“예?”

원장 수녀님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나왔다.

‘내가 돈을 보낸다니?’

물론 내가 매년 연초가 되면 그때 사정을 봐가면서 500~1,000만 원 정도를 후원금 비슷하게 고아원계좌에 입금하기는 하지만, 지금원장 수녀님 말씀은 그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원장 수녀님, 방금 하신 말씀이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라니. 지혜 편으로 매달 70만 원씩 보내줬잖아.”
“하~아~ 그게 그리된 모양이네요.”
“응? 그리됐다니.”

지혜가 살고 있는 원룸의 월세는 매년 한 번에 선납해서 월세를 지혜가 낼 일은 없지만, 전기요금이나 가스요금 수도세 등 소소하게 들어가는 것은 내가 지혜에게 매월 보내는 150만 원의 생활비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물론 150만원이라는 돈이 대학 재학생에게 결코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혜 혼자서 용돈과 생활비로 쓰기에는 딱히 모자라는 돈은 아니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한참 꾸며야 할 나이인 지혜가 옷조차 변변한 것이 없이 지내는 이유가,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다.

“그게 정말이야?”
“예. 제가 매월 지혜에게 생활비로 쓰라고 보낸 돈을 아껴서 가져온 모양입니다.”

물론 고마운 일이긴 하다.

이곳이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자기를 보살펴준 곳이자 집과 같은 곳이었기에, 지혜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원장 수녀님께서 계시는  고아원은 나 같은 개인 후원자가 아니더라도 가톨릭교회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었기에, 딱히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끼는 곳이 아니다.

그랬기에 나도 이곳을 후원하는 일에 큰 부담을 가지지않고, 그때 그때마다 내 형편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일정 금액을 후원금 명목으로 입금시키는 것이었고.

결국 지금까지 지혜는 80만 원이라는 돈으로, 자잘한 공과금을 내고 또 학교에 다니면서  활동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돈과 생활비를 충당해왔던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옷을 사고 화장품을 살 여유가 있었겠는가?

“그럼 어떻게 하지? 그동안 지혜가 가져온 돈은 모두 후원금처리를 했는데.”
“지금까지 지혜가 굶지 않고  버텨왔으니 그걸로  거지요.”
“아무튼 지혜 사정도 모르고.......”

그것으로 된 것이다.

지혜가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주고 키워준 고아원과 원장 수녀님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도 충분히 표현했고, 원장 수녀님께서도 그런 지혜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계시니 말이다.

이제 지혜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굳이 자기가 쓸 생활비를 아껴서 고아원에 갖다  것 필요까지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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