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자경이 (4) (30/90)



〈 30화 〉자경이 (4)

“와~ 맛있다. 오빠, 예전에도 이 맛이었어?”
“20년 가까이 된 맛을 내가 어떻게 기억해. 그냥 이 주변에서 이 집 돼지국밥 맛이 가장 좋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먹게 된 거야.”

사실 자경이가 기억하는 그 맛이 어떤 맛인지 모른다.

당시 자경일 비롯한 강준이 가게 아가씨들이 밥을 시켜먹을 때, 나는 가능한 그 자리를 피하려고 노력했었다.

이상하게도 음식점의 음식 맛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우선 그 집이 깨끗해야 그 음식점을 들어가는 결벽증 비슷한 성격이 이유였다.

시키는 음식이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사창가 아가씨들을  고객으로 하는 음식점이 과연 얼마나 깨끗할까 하는 생각에 차마 음식을 목구멍으로넘기기 힘이 들었던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로 먹긴 싫었지만 이따금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는, 혹시 자경일 비롯한 아가씨들이 그런  행동에 반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에, 차마 넘어가지도 않는 음식을 억지로 넘겼었으니 말이다.

자경인 정말 복스럽게 돼지국밥을 먹기 시작했고, 국물조차 숟가락으로 싹싹 긁다시피 해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와~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맛있는 밥을 먹어봤어. 오빠 고마워.”

지수와 자경인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겨우 7,000원짜리 돼지국밥 한 그릇이 이렇게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서민으로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이 들 50억이라는 거금을 원룸을 사들이겠다고 통장 째 내놓을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지닌 자경이가, 겨우 7,000원짜리 돼지국밥 한 그릇에 행복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덩달아 행복함을 느낀다.

그런데 막상 저녁밥까지 먹고 나니, 이제  하고 시간을 보낼까 하는 고민이 된다.

“뭐 하고 싶은 것 없어?”
“그냥 이제 오빠 사무실로 가서 편하게 이야기나 하다가 자러 가야지.”
“사무실보다는 커피숍이 낫지 않아? 여기서 산만 넘어가면 아까 그쪽 기장인데.”
“됐어. 귀찮게 뭘 왔다 갔다가 해.”
“귀찮긴 뭐가 귀찮아. 이렇게 오랜만에 부산에 왔는데 부산 구경이라도 실컷 해야지.”
“부산으로 내려와서 살 생각이라니까. 그냥 사람들 방해받지 않고 오빠랑 이야기나 실컷 하고 싶어.”
결국 자경이 말대로 나는 둘과 함께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돼지국밥집에서 사서 온 수육과 야채를 테이블에 펼쳐놓고 소주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오빠.”
“응?”
“왜 은정이 소식은 안 물어봐?”
“알고 있으니까.”
“알고 있었다고?”
“그래, 병원서 연락을 받고 찾아가서 내 손으로 은정이 고향에 유골을 뿌려줬는데......”
“그렇다면 그때 연락이라도 해줬어야지.”
“휴대전화에  연락처 말고 다른 번호가 저장된 것이 없었고, 간호사 선생님에게도 혹시 내가 오게 된다면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말라고 전하라고 했다더라. 그리고 좋은 일도 아니었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년도 정말 오빠를 서방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모양이네. 그래봤자 오빠 X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못한  년이......”

술이 들어가자 자경인 차마 꺼내지 못했던 옛 친구의 이름을 끄집어냈다.

강준이 가게서 가장 친하게 지내면서도 걸핏하면 머리채를 쥐어 뜯어가면서 싸웠던, 그러면서도 서로 나를 두고 제 서방이라고 떠들어 대던 놈들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자경이와 이젠 다시 만나지도 못할 먼 곳으로 떠난 은정이 둘이었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에서 정말 황당한 기억이지만, 은정인 자경이에게 나하고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자경이야  물건을 구경하지 못했지만, 은정인 경찰에서 이른바 후리가리라고 하는 일제 단속이 나오던  송도 쪽에서 내 물건을 만지기까지 했었는데 말이다.

“그럼 걔 무덤은 만들지 않았던 거야?”
“제 고향인 원동  낙동강에 뿌려달라고 써놓았더라. 거기서 바다로 가고,  바다를 통해서 미국 구경을  거라면서.”
“진짜 지랄이다. 미친년!”

자경이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이미 20년 가까이 된 세월이지만 두 사람이 완월동으로 들어오게  배경이비슷했고 나이가 같았던 탓에, 둘은 가게에서 마치 친자매처럼 지냈었고 그 때문인지 싸우기도 많이 싸웠었다.

그리고 자경이가 대전으로 떠난 후에도 은정인 가게를 떠나지 못했고, 이후 내가 먹고사느라 헉헉거리던 어느 날인가 강준이로부터 은정이가 가게를 나갔다는 은정이의 소식을 전해 들었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5년 전에 마산에 있는 한 요양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그곳에서 유서라고 하기엔 너무나 짧은 메모지 한 장과 비쩍 말라 앙상하게 변한 은정이 얼굴을 마주할 수가 있었다.

‘오빠, 내 고향 알지? 그곳 앞에 있는 강에 날 뿌려줘. 그리고 통장 비밀번호는 오빠 생일로 해뒀으니까 오빠가 알아서 쓰고.’

그렇게 3억 조금 넘게 입금된 통장만 남겨두고, 은정인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내일 은정이 딸 보러 갈래?”
“딸이 있었어?”
“딸은 맞지만 친딸은 아니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은정이 딸을 보러  것도제법 시간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정이가 모아둔 통장에 돈이 제법 들어 있었거든. 그래서 서구에 있는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고아원에 은정일 닮은 아이 하나를 찾아 은정이 딸로 삼아서, 그 돈으로 매달 걔 생활비를 보내주고 있거든. 이제 2학년이다.”
“정말? 정말 은정일 많이 닮았어?”
“응.”
“어디 사는 데?”
“학교가 하단이어서 학교 부근 원룸에서 생활하고 있어.”

그런데 자경인 이야기가 재미가 있는지 술에 취했음에도 눈이 초롱초롱한데, 은정이나 자경이가 일할 시기에 언니들 심부름이나 하던 지수는 그런 이야기가 별 재미가 없는 것인지 꾸벅거리고 있었다.

“지수는 재워야겠다.”
“아니, 저 괜찮아요.”

가까운 곳에 호텔이라곤 N 호텔이 유일했다.

대충 테이블을정리하고 둘을 태우고 온천장 입구에 있는 N 호텔로 둘을 데리고 가서 방부터 잡았다.

“올라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전화하고.”
“오빠.”
“응?”
“예전처럼 오빠가 팔베개해주면  돼?”
“인마, 나도 이제 늙어서  저려.”
“치! 그럼 그냥 객실에 올라가서 이야기나  하다가 가. 이렇게 오빠랑  헤어지긴 싫어.”

굳이 자경이 청을 외면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자경이나 은정이의 벗은 몸을 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단지 섹스를 하지 않았다 뿐이지 둘이서 한방에서 잠을  것이 한두 번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수가 제 방으로 들어가서 문이 확실히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자경이와 함께 객실로 들어갔다.

“오빠가 먼저 씻어.”
“네가 먼저 씻고 와.  씻고 나서 씻을게.”
“싫어. 부끄럽잖아.”

부끄러울 일도 없는데 부끄럽다는 핑계로 나를 먼저 욕실로 밀어 넣는다.

다른 여자와 이렇게 객실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면 물건이 알아서 불끈거릴 텐데, 이놈은 오늘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란 사실을 먼저 알고 있는 것인지 조신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오빠, 등 밀어줘?”
“인마!  닫아.”
“치! 알 거 다 아는 나이에 내숭은.”

그러더니 자경인 내 의사조차 묻지 않고 성큼성큼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내 몸매 어때?”
“굳이 벗어야 알까? 이미 예전 몸매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경이의 몸매는 30대 후반 여인의 몸매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관리가  된 몸매였다.

대부분사창가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손님을 받다가 보면 몸매가 망가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자경이와 은정인 따로 관리하는 것도 없었는데 희한하게도 완월동을 벗어날 때까지 몸매가 망가지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지금 자경이 몸매는 예전 어렸을 적의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거긴 왜 깎았어?”
“깎은 것이 아니라 아예 뽑았어. 브라질리언이라고 왁싱 그거로. 왜 보기 흉해?”
“남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 사람 나하고 결혼하고 1년도 채 되지 않아서부터아예 서질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
“그래도 잠은 같이 잤을 거잖아.”
“아니, 물건이 서질 않으니 그때부터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서재에서 지냈어.”
“힘들었겠다.”
“좀 외롭다는 생각, 버려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것뿐이잖아. 어차피 섹스라면 신물이 날 정도였으니,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인마, 그래도 남편하고의 섹스는 다르지.”

서로 벗은 몸을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데도 속된 표현으로 꼴린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우리의 지금 상태가 정상은 아니란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편안한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빠는 정말 이렇게 내 벗은 몸을 보고도 서질 않네?”
“왜? 억울해?”
“아니. 어차피 은정이도 오빠 물건 세우질 못했다면서.”
“응?”
“치! 내가 모르고 있을  알았어? 그년하고 나하고 비밀 같은 없었어. 그년이 가게 나오면서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오빠한테 전화해서 가게 나왔다는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에 오빠를 만나보라고 했었는데.......”
“그런데?”
“지 병간호 시킬까 봐 차마 그러질 못하겠다고 했어.”
“병간호?”
“응, 그때 이미 매독 3기를 넘어 더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 후에 연락이 완전히 끊겼었고.”
“그럼 어떻게 은정이 그렇게 된 걸 알았어?”
“병원에서 연락이 왔더라고.사망했고 오빠란 사람이 찾아와서그 전날 장례를 치르고 나갔다고. 깜빡 잊고 나한테는 연락을  했다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오빠가 내 전화를 계속 씹었으니까......”
“미안하다.”
“됐어. 어차피 이미 화장까지 하고 난 후에 연락을 받은걸.”

내가 은정이 사망소식을 전해 듣고 마산에 갔을 당시, 내가 받은 메모에는 없었으나 은정이가 자경이에게는 따로 연락을 부탁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오빠, 우리 이렇게 홀딱 벗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러게 말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아직 팔팔한 남녀가 욕실에서 옷을 홀딱 벗고 죽은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다니 말이다.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짓던 자경인 손에 비누 거품을 묻히고서는  몸 곳곳에 바르기 시작했다.

“여기 만져도 되지?”
“인마, 언제는 허가받고 만졌었냐?”
“그때는  위로만 만졌었잖아.”

그러면서 자경인 비누 거품이 가득한 손으로  불기둥에 비누 거품을 칠하기 시작했고, 구슬 주머니를 조몰락거렸다.

그러다가 장난이라도 치려는 것처럼 다시 불기둥을 조몰락거리기 시작하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현상이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손으로 주무르고 입으로 빨고 하면서 별 난리를 쳐도 내가 마음을 먹지 않으면 서지 않는 놈이, 이런 상황에서 슬며시 잠에서 깨어나려는 것인지 피가 불기둥 쪽으로 몰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경이의 벗은 몸매가 나를 흥분시켰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지금 자경이 몸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 그 생각도 내 머릿속에는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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