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자경이 (2)
아무리 오빠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냈었다고 하지만, 아니 아예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라고 하더라도 50억이란 돈은 이렇게 거래하는 것이 아니다.
자경이가 가진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도 50억이라는 돈은 일반 서민이 평생 단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할 정도의 거액이고, 이렇게 통장과 비밀번호를 건넨다면 그 돈에 대한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50억을 빼돌리고 잠수를 타서 도망을 다니거나 아니면 아예 배 째라고 하면서, 형을 살고 나온 후에 법망을 피해 평생을 호의호식하면서 살아도 될 정도의 돈이니까 말이다.
“그냥 오빠가 가지고 있으라고.”
“인마, 5천 아니 5억 정도만 되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을 수 있어. 하지만 50억이라며? 그렇게 큰돈을 내가 어떻게 가지고 있어. 사람 범죄자 되는 것 순간이다.”
“오빠가 가지고 써도 되는 돈이야.”
“그런 헛소리 하는 것 아니다. 네가 피땀 흘려서 번 돈을 내가 무슨 자격으로 써?”
“그거 오빠 돈이야.”
갑자기 자경이 입에서 신박한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사실 5억 정도는 평온한 내 삶을 깨기엔 아까운 금액이지만, 50억이라면 생각이 달라지기에 충분한 금액이었기에, 나는 자경이에게 노골적으로 내 속내를 밝혔다.
그런데 ‘오빠 돈’이라니?
지금 이 자리에서 이미 죽었다는 남편을 오빠라고 할 것도 아닐 것이고, 그렇다고 자경이가 오빠로 부르는 다른 어떤 사람을 내가 아는것도 아니니, 지금 자경이가 ‘오빠’로 부르는 대상이 내가 맞을 것인데 이 50억이란 엄청난 돈이 어떻게 내 돈이 된다는 말인가?
“솔직히 내가 번 돈의 절반을 오빠 몫으로 챙겨줘야 하는데, 나도 욕심이 많은 년이라서 내가 번 돈의 10%씩만 챙겼어.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모아둔 통장이 그 통장이니까 오빠 돈이라고.”
“오랜만에 만나서 자꾸 헛소리할래? 벌써 치매가 왔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제 놈이 뼈 빠지게 눈물 흘려가면서 벌고 모았던 돈을, 왜 나한테 주겠다는 말인가?
“오빠.”
“왜?”
“만약 그때 강준 오빠 가게서 나를 빼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내가 빼준 것이 아니라 네가 나왔던 거지.”
“아니, 오빠가 빼준 것이 맞아. 만약 오빠가 없었더라면 내가 아무리 빚을 다 갚았다고 했더라도 강준 오빠가 날 놔줄 리가 없었을 테니까.”
“강준이 그놈 그렇게까지 나쁜 놈 아니야.”“나쁜 사람이든 아니든 아무 상관이 없어. 가장 확실한 사실은 강준 오빠 가게에서 에이스였던 내가 빠지면 당장 강준 오빠 수입에 지장이 올 테니까. 그리고 그것 때문에 오빠도 강준 오빠하고 대판 싸웠었잖아.”
모르긴 해도 자경이의 저 말은 맞는 말일 것이다.
당시 자경이가 강준이 가게에서 에이스였던 것도 맞았고, 자경일 지목해서 찾아온 예약손님이 항상넘쳐났기에 자경이가 쉬는 날이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자경이처럼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창가에 스스로 발을 들인 아이들보다, 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꼬드김을 당해 팔려온 아이들이 훨씬 많았었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렇게 꼬드김을 당해서 팔려온 아이들보다는, 먹고살아야겠다고 스스로 그 바닥으로 굴러들어온 자경이가 훨씬 더 손님들에게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으니,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경일 그곳에서 빼내려고 했으니, 아무리 친구라고 하더라도 강준이가 내게 좋은 감정을 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친구란 놈이 제 앞에 놓인 밥그릇을 빼앗으려고 하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진옥이 언니하고 선미 언니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
“나야 모르지. 강준이 가게에 한참 가지 않았고, 또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생긴 후에 가게도 문을 닫았으니까.”
“그 언니 둘 다 내가 데리고 있어.”
“그래?걔들은 잘 있어?”
“잘 있기는 개뿔! 마흔이 넘도록 밑구멍 팔아서 장사를 한 년이 잘 있을 수가 있겠어?”
“네가 데리고 있다면서?”
두 사람 모두 나도 아는 애들이었다.
그런데 자경이가 지수만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던 언니 둘도 함께 데리고 있는 모양이었기에, 반갑기도 하고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든다.
“걔들도 대전에 같이 있어?”
“응. 요양병원에.”
“요양병원이라니? 걔들 나이라고 해봐야 이제 겨우 40대 중반일 건데?”
“오빤 20년 넘게 밑구멍을, 매일 하룻밤에도 이놈 저놈 번갈아가면서 수십 번씩 쑤셔대면 버텨낼 것으로 생각해?”
“........”
하긴 젊은 나이라고 하더라도 몇 년 동안 몸을 팔게 되면 몸이 가는 것이 보통이다.
매일 같이 느지막하게 눈을 떠서 목욕탕을 다녀오고 화장을 마치고 나면, 찾아오는 손님들과 술을 마시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잡히면 방으로 들어가서 사내를 받아들이고, 또 그 손님이 가고 나면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밑 물만 한 후에 다시 다른 손님을 받다가 보면 어느새 날이 새는 것이다.
그리고 지친 몸을 요에 눕히고서는 잠에 빠져들고, 해가 중천에 오를 즈음 무거움 몸을 일으켜서는 다시 목욕탕을 가는 것으로, 오늘 밤 찾아올 손님을 받을 준비를 하는 것이 그 아가씨들의 일상인 것이다.
덕분에 그 짓을 2~3년 하게 된 아가씨 중에서 몸이 성한 아가씨를 찾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20년을 넘게 그 짓을 반복했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랬기에 둘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아무튼 진옥이하고 선미가 네가 이러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지. 만약 그때 오빠가 나를 빼내 주지 않았더라면 나도 지금쯤은 진옥이 언니나 선미언니처럼 그렇게 되어 있을 테니까.”
“그 말은 틀렸다.”
“틀리긴 뭐가 틀려?”
“너한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이야기를 너한테만 한 것이 아니고 진옥이나 선미, 그리고 다른 애들에게도 똑같이 했던 얘기야. 단지 그 친구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고, 넌 내 말을 듣고 거기서 몸을 뺐던 차이지. 그러니 나 때문이 아니라 네가 옳은 선택을 한 덕분이야.”
사실 당시에 강준이에겐 미안한 일이었지만, 정말 그 친구들이 사창가에서 몸을 뺄 각오가 되어 있었다면, 모두를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강준이야 길길이 날뛰며 나를 죽이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솔직히 그 당시에 강준이는 돈을 제법 벌어서 그곳 완월동에 5층짜리 번듯한 건물을 가진 건물주였고, 현금 또한 만만찮게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강준이가 그래도 나쁜 놈이 아니란 사실은, 성매매방지특별법이 시행된 후에 증명되기도 했었다.
그때까지 데리고 있던 아가씨들에게 퇴직금 아닌 퇴직금을 한 몫 안겨줘서, 정말 낭비만 하지 않으면 앞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나눠준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경이가 이야기한 진옥이나 선미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단지그 이후 어떻게 살았기에 요양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었고.
“아무튼 오빠가 뭐라고 하든지 그 돈은 오빠 돈이 맞아. 만약 그때 오빠가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었고 나한테 미용기술이라도 배워서 먹고 살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내 신세도 진옥이 언니나 선미 언니하고 전혀 다르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야.”
눈먼 돈, 그것도 몇 십 몇 백 아니 몇 억도 아닌 50억이라는 거금이 생겼다는 데도, 전혀 그 돈이 내 돈이라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아니 눈앞에 있는 이 통장 안에 들어있다는 50억이 나와는 상관이 없는 돈이라고 생각되었을 때는, 솔직히 이 돈을 가지고 튀면 어떻게 될까 하는 유혹이 가슴 저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었는데, 막상 자경이 말을 듣고 나니 그런 생각이 깡그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아무튼 이 돈은 내 돈이 아니니까, 처음 지수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원룸 사업에 투자하든지 아니면 도로 가져가든지 알아서 해.”
“오빠, 정말 이럴 거야?”
“나가서 길 가는 사람 막고 물어봐라. 백 사람에게 물어봐도 백이면 백,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하지. 만약 네가 백만 원 아니 오백만 원 정도를 가지고 와서 그때 정말 고마웠다고 하면서 인사를 했다면 기분 좋게 그 돈을 받고 너하고 지수한테 비싼 밥을 살 수도 있어. 그런데 오백도 아닌 오십억이라고 하는데 그걸어떻게.......”
“이 돈이 몸 팔던 년이 모은 돈이어서 그게 더러워서가 아니고?”
“황자경! 무슨 말을 그따위로 해!”
예전에도 걸핏하면 튀어나와서 사람 속을 뒤집었었던, 자경이의 자격지심이 또다시 발동되었다.
제 놈이야 고개를 숙이고 ‘엉~ 엉~’거리며 울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고 또 속이 후련해질지 몰라도, 옆에서 그런 울음소리를 듣고 지켜봐야 하는 나는 속이 터지는 것이다.
한동안 어색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자경이가 가진 자격지심을 내가 어떻게 해결해줄 방법도 없었다.
매일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돈으로 여자를 사서 떡을 치던 인간들도, 거리에서 그 여자를 만나거나 아니면 자기와 떡을 친 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여자가 몸을 파는 여자라고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되면 같이, 그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침을 뱉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런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살았던 것조차 부족해서, 그 일로 하여 여자 몸에서 가장 소중할 수도 있는 자궁까지 들어낸 자경이가 가지는 여자로서의 자격지심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일이니 말이다.
“우리 시원하게 바다나 보면서 소주나 한잔하러 가자.”
“오빠, 이제 술도 마셔?”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어떻게 하냐? 나도 살려면 마셔야지.”
“치! 예전에 내가 오빠 유혹하려고 아무리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꼬드겼을 때는, 죽어도 술은 마시지 않을 것 같더니.”
한참을 흐느끼던 자경이가 진정하자 나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낮술이라도 하려고 했다.
그리고 자경이와 지수를 데리고 이기대 선착장으로 향했다.
“오빠.”
“응?”
“오빠 차부터 바꿔야겠다.”
“왜?”
“이렇게 후진 차를 타고 다니면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
“인마, 내 여자도 아닌데 뭐 한다고 다른 여자 감정까지 신경을 써.”
“그래도 이제 결혼은 해야 하잖아.”
“별생각 없다. 솔직히 첫사랑에게 한 번 배신을 당하고 나니 여자라면 진절머리가 난다.”
솔직한 이야기였다.
대학 3학년 때 1년 조금 넘게 사귀었던 학교 방송국 여자 후배가 나에게 배신감을 안긴 후에, 나란 놈은 아예 여자를 믿지 못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버렸다.
내게 여자란 존재는 순간순간 일어나는 성욕을 해결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 여자 후배에게 배신을 당한 이후에는 지금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아예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그럼 계속 이렇게 혼자 살 생각이야?”
“뭐가 어때서? 책임져야 할 가족도 없고,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면 되니까 얼마나 편한데.”
“그렇지만 외롭잖아. 그리고 오빤 아직 남자고.”
“일한다고 외로울 시간도 없다. 그리고 그 문제야 틈틈이 해결하고 지내고.”
“그럼 파트너는 있어?”
“아니. 하지만 요즘 세상이 좋아졌잖아.”
굳이 감출 일도 없고 또 자경이나 지수에게서, 예전 풋풋하기만 했던 순진한 청년 이미지를 벗겨주고 싶었다.
이제 나도 닳을 대로 닳아버린 중년의 사내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