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자경이 (1)
지수와 자경일 만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이른바 부산의 대표적인 사창가라 불렸던 완월동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넘치는 욕구를 분출할 대상을 찾지 못해 돈으로 여자를 사러 완월동을 찾아갔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판이다.
중학교 동창이었던 친구의 인생이 이상하게 풀리는 바람에 완월동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아가씨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다가 아예 가게를 차려 아가씨 장사를 하던, 강준이란 놈의 가게에서 일했던 아가씨 중 하나가 바로 자경이었고 그 가게에서 일하는 아가씨들 심부름을 하던 아이가 바로 지수였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렇게 궁금했으면 오빠가 연락이라도 하지. 왜 내가 거는 전화까지 씹어?”
“인마, 시집가서 잘 사는데 내가 왜 연락을 해? 참, 남편은?”
“그 사람 죽고 벌써 칠 년이다.”
잘살고 있는 줄 알았더니만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친구 강준이와 싸워가면서까지 자경일 가게에서 내보내고, 그렇게 완월동을 벗어난 자경인 자기 얼굴을 알아볼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전으로 갔다.
그리고 완월동에서 생활하는 동안 틈틈이 공부해서 미용 기술자 자격증을 따둔 그것으로 대전에 있는 미용실에 취직했고, 어느 정도 일에 능숙해지자 부산에서 벌어둔 돈으로 미용실을 개업했었다.
그리고 그 미장원을 찾아온 손님 중에 건설업을 하던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경이가 결혼하고 난 후, 나는 의도적으로 자경이의 연락을 피했다.
괜히 나와 연락하고 지내는 것을 자경이 남편이 알게 되면 의심을 받게 될 수도 있고, 자칫하면 그 의심 때문에 자경이 과거가 들통 날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 좋게 생겼던 양반이 이미 칠 년이나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돌아가셨어? 어떻게?”
“회사 자재창고에 불이 나서 그걸 끈다고 난리를 치다가, 자재가 무너져 내리는 통에 거기에 깔렸어.”
“그럼 그 이후에 재혼도 하지 않았던 거야?”
“피! 나같이 박복한 년이 재혼하면 또 어떤 놈을 죽이려고.”
“쓸데없는 소리 할래?”
“맞잖아. 그리고 나만큼 사내 많이 받아 봤던 년이 또 뭐가 아쉬워서 사내를 받아.”
“아이는?”
“내가 아이를 어떻게 가져. 오빠도 알잖아? 오빠가 가게에 오고 난 후에도 내가 낙태를 두 번이나 했다는 거. 그런 년이 자궁이나 성하겠어?”
“미안하다.”
하긴 아이가 없는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칠년이나 전에 남편이 사망했다면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고, 또 남편이 사망한 후에 생활고로 아이 엄마로서 하기 힘이 드는 예전에 했던 일을 다시 할 수도 있게 될 테니 말이다.
“그럼 남편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어떻게 살았던 거야? 힘들면 나한테라도 연락을 하지.”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그런 말을 하지. 오빠가 내가 전화 걸었을 때마다 전화 씹었었잖아.”
그러고 보니 아예 말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했었다.
자경이 결혼생활에 지장을 줄까 봐 내가 스스로 연락을 끊었으니, 당시에 자경이가 나에게 연락하려고 했더라도 연락할 방법이 아예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정말 꼭 연락해야 할 일이 생겼다면 강준이를 통해서 내 연락처를 확인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한다는 것은 가슴 저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던 과거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이었기에,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네. 내가 잘못했었네.”
“치! 잘못은 무슨. 오빠가 왜 내 전화를 씹었는지 뻔히 아는데.”
“아무튼. 그런데 정말 그동안 어떻게 살았어?”
“어떻게 살긴? 먹고 살려면 다른 방법이 있어? 그냥 남편 회사를 내가 떠안고 가는 수밖에.”
“네가 건설 회사를 경영했단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해? 그래서 혹시 도움이라도 받을까 해서 오빠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방법이 없었고, 덕분에 2년 정도는 허수아비 사장 노릇을 하고 지냈지.”
“그럼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거야?”
“응, 원중 건설이라고 지금 국내 도급순위 100위 안에는 들어가는 회사야.”
역시 생존력 하나만큼은 대단한 놈이란 생각이 든다.
건설회사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도면을 그리는 설계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거나, 깔끔한 작업복에 햇볕에 반짝거리는 하얀 헬멧을 쓰고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여자가 건설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은 그다지 만만찮은 일이 아니다.
거칠고 시커먼 사내들 틈에서 갖은 욕설과 음담패설은 기본인 곳이 건설현장이고, 걸핏하면 주먹다짐이 벌어지는 곳이 건설현장이자 건설회사인데, 그런 사람들틈에서 여자인 자경이가 오너로서 버텨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자경이가 경영인으로서 마인드가 있었나 보네.”
“경연인은 개뿔. 노가다판에 경영이고 지랄이고 어디 있어. 그냥 깡으로 무식하게 들이대는 거지.”
“깡으로? 설마 예전처럼팬티 벗고 지랄을 떤 건 아니지?”
“오빠!”
나이가 들었어도 부끄러운 기억은 여전히 부끄러운 모양이다.
예전 완월동 시절 단속을 나온 경찰관들을 기겁하게 만든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자경이었다.
보통 경찰관이 일제 단속을 나오기 전에 평소에 잘 알고 지내면서 약을 쳐둔 경찰관이 연락을 해주는 법이고, 그렇게 단속이 있는 날은 아가씨들을 바깥으로 빼돌려 단속이 끝날 때까지 가게를 비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나도 기둥서방을 두지 않았던 자경이의 일회용 기둥서방 노릇을 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이 벌어진 그 날은, 어떻게 된 일인지 평소 알고 지내던 경찰관으로부터 연락도 없었는데 불시에 단속이 떴던 것이다.
“야! 이 시팔 놈들아!내 보X구멍 내가 파는데 네놈들이 뭔 지랄인데? 내가 보X 파는데 보태준 것이라도 있어?”
당시 자경인 아예 옷을 홀딱 벗고 가랑이까지 활짝 벌리고서는 단속을 나온 경찰관들이 기겁하게 하였었고, 닭장차에 실려 가면서도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면서 그것도 부족했던 것인지 경찰서 유치장에 잡혀가서도 난동을 피운 탓에, 경찰관들이 아예 학을 떼게 하였던 적이 있었다.
“아무튼 잘 산다니 다행은 다행이다. 지수하고는 그동안 계속 연락하고 지냈었어?”
“지수나 나나 부모 없는 고아 신세잖아. 그렇다고 다른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결혼한 이후부터는 지수가 미용실을 하다가, 그사람 죽고 난 후로는 아예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지.”
“그래, 그렇게 부대끼면서 살면 최고지. 그런데 지수 넌 어떻게 알고 찾아왔던 거야?”
“우연히 여기 부동산 이름이 언니 이름이고 또 간판에 오빠 이름이 있기에 혹시나 했었지.”
“부산까지는 무슨 일로 왔는데?”
“이 주변 재개발한다면서? 그래서 혹시 우리도 숟가락 얹을 방법이 있나 싶어서 와 봤지. 그리고 이 동네에 클럽을 하나 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거기 숟가락 얹는 것은 만만찮을 텐데? 그리고 온천장에 클럽은 절대 아니다.”
“알고 있어. 그래서 아예 포기하고 가려고 하던 길에, 문득 여기 간판이 눈에 뜨이더라고.”
인연은 인연이었던 모양이었다.
연락을 끊고 지낸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데, 부산에 사는 것도 아닌 대전에 살고 있는 지수가 부산에 내려와서 온천장까지 온 것도 신기하고 또 내 사무실 간판이 지수 눈에 뜨였다니 말이다.
“그럼 정말 원룸에 투자하려는 생각이야?”
“관리만 잘되면 괜찮은 사업이기도 하잖아. 어차피 땅이야 묵혀놓는다고 썩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목돈을 한 군데 쏟아 붓는 것은 아니지 않니?”
“그럼 요즘 같은 불경기에 할 만한 사업이라도 있어?”
“그거야 아니지만.”
“어차피 학교에 기숙사를 짓는 것은 한계가 있을 거고, 그렇다고 당장 학생들 숫자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원룸 열풍도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니까 딱히 원룸을 신축하는 사람도 이젠 그리 없을 테고.”
하긴 요즘 같은 불경기에 원룸 사업이 돈을 안정적으로 굴리는 데는 좋을 수도 있다.
자경이 말대로 원룸이 포화상태이니 더는 신축한다고 난리를 칠 일은 없을 것이고, 기존의 원룸들이 경쟁하면서 입주자를 나눠 먹는 게임인데, 관리만 잘할 수 있다면 공실률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 말이다.
“그런데 오빠는 왜 다른 것 다 놔두고 부동산을 하고 있어?”
“내 팔자가 부동산 할 팔자인가 보지.”
“예전에 정치할 거라고 했었잖아?”
“그것도 돈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더라.”
“그 말이야 내가 여기서 일할 때도 오빠가 했던 말이잖아. 그래서 언니 몇 명하고 오빠 선거자금을 보태겠다고 했었잖아.”
“지랄한다. 아무리 내가 정치에 미친놈이라고 하더라도 그 돈을 어떻게 받아 쓰냐? 그리고 떨어지고 나면 개털 다 되는데. 평생 빚쟁이로 살라고?”
“누가 빌려준다고 했었어? 그냥 보탠다고 했었지.”
“누가 그걸 몰라? 그런데 빌려준다고 했었어도 빌려 쓸 수가 없었을 텐데, 그냥 준다는 돈을 내가 어떻게 받아서 써.”
요즘 몸을 파는 친구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 완월동에서 장사를 하던 친구들은 나름 순정이랄지 의리랄지 그런 것이 있었다.
내가 친구 강준이 손에 끌려 완월동에 처음 발을 들이민 것이 대학생이었던 때였는데, 강준이 덕분에(내가 강준이 직업 때문에 강준일 멀리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정말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욕정을 해소하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 그냥 출석부 도장 찍듯 했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자경일 비롯한 가게 아가씨들과 자연 친해졌고, 그렇게 오빠 동생 하며 지내다가 보니 내 꿈이 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경일 비롯한 몇몇은 장난이 아닌 진심을 담아, 지네들이 몸을 팔아 모은 돈을 선거자금으로 보태겠다는 말까지 했었던 것또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아가씨들에게 빌붙어 피를 빨아먹는 기둥서방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후안무치한 짓을 할 수가 있겠는가?
“아무튼 회사는 왜 그만뒀었는데? 회사라도 그대로 다녔다면 오빠를 진작 찾을 수 있었잖아.”
“찾긴 뭐하려고 찾아. 그리고 회사는 내가 그만두고 싶어서그만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고가 나서 어쩔 수 없이 그만뒀었어.”
굳이 이미 한참이나 지난 일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일은아니었기에, 그냥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일을 사고 때문이라고 하고 넘겼다.
그런데 지수는 딱히 그런 표정이 아니었지만, 자경인 지금 내가 부동산중개인을 하는 그것이 매우 안타깝다는 그런 표정이다.
하긴 젊은 시절엔 이 나라 정치판을 바꿔보겠다는 패기에 넘치던 인간이, 이젠 그냥 흔하디흔한 부동산중개인이란 신분의 중년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이거 받아.”
“뭐야?”
“뭐긴 뭐야. 통장이지.”
“무슨 통장?”
“여기 들어 있는 돈으로 오빠가 하고 싶어 했던 정치를 다시 해보든지, 아니면 지난번에 얘기한 대로 원룸을 사든지 그건 오빠가 알아서 해.”
“다 늙어서 정치는 무신. 그냥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리고 통장은 그냥 넣어 뒀다가 나중에 계약서 쓰면서 너나 지수가 직접 건네줘.”
자경이가 핸드백에서 통장이 든 봉투를 꺼내서 내 쪽으로 밀었지만, 나는 그 봉투를 다시 자경이 쪽으로 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