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재신(財神) 아니면 사기꾼? (2)
“요즘 왜 사무실에 있는 날이 없어?”
“좀 바쁜 일이 있어서.”
“혹시 강 소장 그년 때문에 날 피하는 것은 아니고?”
“지랄을 해라. 그게 무슨 대수라고.”
“그럼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데?”
“50개짜리 물건을 하나 잡았다.”
헛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50억이란 먹잇감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는데 그걸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물론 사무실에 앉아 전화로 확인해도 될 일이지만, 정말 그 50억을 내 손으로 운용하게 된다면 책상머리에서 전화로는 부족했기에 나는 내 눈으로 직접보고 확인하기 위해서 주변에 매물로 나온 원룸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다니는 것은 당연하게도 땅값이 비싼 부산대학교 주변은 피해야 했다.
그렇게 하면서 나는 찾아간 원룸의 위치와 또 원룸의 구조 엘리베이터 상태와 주차장 상황 등을 일일이 확인하고 사진으로 찍어서 정리를 했고, 주인을 만나 최대한 얼마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흥정을 시도했다.
“50개라면 50억이란 말이야?”
“응.”
“미쳤다. 당신은 그 말을 믿어?”
“100% 믿을 수는 없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괜한 헛짓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요즘 같은 불경기에 어떤 미친 인간이 50억이나 되는 돈을 원룸에 묻을 거라고?”
“됐네. 오늘 점심 약속은 이미 잡혔다.”
요즘 경기를 생각한다면 박 소장의 말이 백번 옳은 말이다.
50억이라는 돈이 애들 과잣값도 아닌데 그런 거액을 원룸에 몰빵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더라도 어리석다는 판단이니 말이다.
그냥 그 정도 돈이 있다면 당분간은 은행에 고이 묻어두었다가, 경기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반등할 기미가 보이는 곳에 밀어 넣는 것이 돈을 불리는 방법이 아닌가 말이다.
박 소장은 같이 밥을 먹자고 했지만 솔직히 아직은 박 소장의 얼굴을 보고 밥을 먹을 생각은 없었다.
박 소장이야 먼저 선점해서 깃대를 꽂고 실컷 재미를 본 후에 버렸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안 삼을 수 있지만, 나란 놈은 남이 실컷 쑤셨던 구멍을 좋다고 헉헉거리던 놈이 되어버렸으니 쪽팔리지 않은가 말이다.
아무튼 내가 부동산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지금처럼 열심히 매물을 찾아다닌 적은 내 기억에 없는 것 같았다.
“예. 여사님, 자경 부동산 이진홉니다.”
“알아보시는 것은 진척이 좀 있나요?”
“모두는 아니지만 남산동 쪽에 괜찮은 건물 두 동은 확보해뒀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완전한 장난은 아닌 모양인지 50억을 투자하겠다는 서지수란 양반에게서 중간 확인 전화가 걸려왔다.
사실 50억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것이 사기를 치려고 하는 것이든 아니면 장난이든 별로 관계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어차피 내게 사기를 친다고 해봐야 내 재산이 남들이 뜯어갈 정도로 많지 않았고, 또 설령 누군가 나를 골탕먹이겠다는 생각으로 장난을 친 것이라고 해봐야 오히려 무료한 내 생활에 활력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동산중매인이라는 직업이 이사 철과 신학기가 아니면 정말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료한 직업이다.
그래서 같은 업을 하는 사람 중에는 부동산중개업을 하면서도 투잡을 뛰는 친구들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돈벌이와는 크게 상관도 없는 업계 내에서 정치질에 골몰하는 사람도, 그리고 돈을 좀 벌어서 여유가 있는 사람 중에서는 헛짓거리까지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내가 이따금 여자를 사냥하러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사장님, 한 장만 깎아주시지요?”
“그 돈이면 이거 짓는데 들어간 돈조차 나오지 않아요.”
“물론 지금은 공실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동안 제법 월세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지금 추세라면 언제 부동산경기가 회복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1억 때문에 망설이시다가는 손해만 자꾸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매물로 내놓은 원룸을 찾아다니다가 보면 분명 주변 원룸은 공실이 별로 없는데 유달리 공실이 많은 원룸이 이따금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아예 관리가 잘되지 않아서 건물 입구부터 청결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어 계약하려고 찾아온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게 만드는 건물이거나 아니면 건물은 깨끗하지만 건물주의 성향 때문에 공실이 많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찾고 있는 원룸이 바로 그런 원룸들이었다.
건물주가 아예 멀리 살아서 건물 관리를 업체나 개인에게 위탁하고서는 아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엉망인 곳, 그리고 건물 주인이 건물에 거주하면서 청소를 비롯한 관리는 철저하지만 그것이 지나쳐 입주자들에 대한 간섭으로 변하는 경우이다.
요즘 세상에 원룸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 누가 타인의 간섭을 받으려고 하겠는가?
그런데자기 건물에 애착이 많은 주인일수록 입주자들의 행동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게 되니 입주자들이 중간에 계약을 해지하고 나가든지, 또 입주자 대부분이 학생이기에 학생들 사이에 소문이 퍼져 아예 입주를 꺼리게 된 탓에 공실이 생기는 것이다.
“정 한 장을 깎아주시는 것이 힘드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정말 1억만 깎아주면 당장 팔 수 있다는 거요?”
“2주 후에는 가능합니다.”
“그럼 27일까지 내 손에 현금이 들어오는 것은 확실해요?”
“예. 오늘 결심하시면 확실합니다.”
이 건물 같은 경우는 후자의 경우다.
주인 양반이 공직생활에서 은퇴해서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퇴직금까지 모조리 쏟아 부어서 지은 원룸이었지만, 원룸 임대사업을 한 지 3년 만에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면 은행 이자조차 내기에 버거울 정도로 헉헉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신축 원룸이었기에 믿을 수 있는 용역업체에 비용을 주고 원룸의 관리를 모두 맡겼었더라면 아무 문제 없이 원룸 임대업을 계속해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이라는 양반이 공직에서 은퇴하고 난 후에 소일거리로 한다는 것이 집착으로 변해서, 사사건건 입주자들에게 잔소리를 한 탓에 학생들이 채 반년도 버티지 못하고 방을 빼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졌다.
그리고 결국 학생들 사이에서 이 원룸의 주인이 잔소리꾼 할배라고 낙인이 찍힌 탓에 아예 부동산에 방을 구하러 와서 먼저 이 원룸은 빼놓고 다른 방을 보여 달라고 할 정도였기에 우리 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파다했다.
“사장님, 지금 사무실에 계신가요?”
“아! 아까 전화를 주셨지 않습니까? 혹시 무슨 다른 일이라도?”
아까 남산동에 있을 때 전화를 걸었던 서지수란여인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지금 구서동을 지나고 있습니다만......”
“그럼 사무실 옆 주차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도착하시거든 전화를 주세요.”
부산에 사는 사람도 아닌 대전에서 왔다는 사람이 다시 부산에 내려왔다고 했다.
그렇다고 아까 낮에 이야기한 두 동을 확보했다는 말 때문에 내려온 것은 아닐 것이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또 부산으로 내려와서 나를 찾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오세요. 그런데 아직 계약 추진 가능성이 있는 건물이 세 동이 전부인데요.”
서지수란 여인이 이번엔 혼자 오질 않았다.
하지만 원룸을 매입하는 건 말고는 이 서지수라는 여인과는 딱히 접점이 없었기에 우선 그동안 내가 확보해둔 건물에 관한 이야기부터 먼저 꺼냈다.
“오빠.”
“예?”
뜬금없이 서지수란 여인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여자가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오빠’라고 불렀고, 나는 도대체 누구에게 하는 말인가 하는 생각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여자에게 되묻는 표정으로 그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혹시.......”
“맞아 오빠. 나야.”
“정말 네가 자경이가 맞아?”
“그래, 나 황자경이야.”
“세상에! 어떻게 네가 여길 다 찾아왔어?”
하지만 나는 더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물론 나와 화경이 둘이 앉아 있는 자리라면 조금은 더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지만, 화경일 데려온 서지수란 여인이 있는 자리에선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빠, 괜찮아. 얘, 정말 누군지 모르겠어?”
“응?”
“얘, 지수야. 장지수.”
“뭐?”
솔직히 깜짝 놀랄 일이었다.
예전 꾀죄죄했던 모습으로 가게에서 언니들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었던 놈이 도도한 모습으로 바로 내 눈앞에 앉아 있는 서지수라고 했던 여인이라니 말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리야 그렇지만 오빠는 왜 이렇게 살아?”
“내가 왜?”
“예전에 오빤 이런 모습이 아니었잖아.”
“많이 실망했구나.”
자경인 내 지금 모습이 안쓰러운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때문인지 몰라도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자경이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닌 자경이 눈에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인 지금 내 처지가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나는 고개를 아래로 내렸다.
“오빠.”
“응.”
“고개 들어봐. 나 오빠 얼굴 많이 보고 싶었다.”
“지랄한다. 잘 생기지도 않은 놈 얼굴이 왜 보고 싶어.”
“치! 오빠하고 동생 사이에 얼굴이 잘생기고 못 생기고 가 어디 있어. 그럼 오빤 예전에 내가 예뻐서 나한테 잘해줬었던 거였어?”
“잘해주긴 뭘 잘해줘. 너뿐 아니라 다른 놈들에게도 똑같이 이야기했고, 또 똑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권했었는데. 단지 네가 내 말을 잘 따라줬을 뿐이지.”
아무튼 자경이가 사기를 쳤든지 아니면 정말 노력해서 돈을 많이 모았던지 간에, 지금 내 눈에 비친 자경이 모습은 행복해 보였고, 먹고사는 문제로 걱정할 일은 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수하고 어떻게 같이 왔어? 그리고 지수 넌 왜 지난번에 너라고 얘기조차 하지 않았고?”
“오빠가 난 줄 아예 눈치조차 채지 못하는데 내가 뭘 예쁘다고 말해줘.”
“인마, 네 얼굴이 예전하고 완전히 다르니 몰라볼밖에.”
“아니거든. 나 코를 조금 세우고 쌍수하고 입술만 조금 도톰하게 했을 뿐이거든.”
“그러니 말이다. 눈 코 입을 다 손을 댔는데, 그 얼굴에서 내가 어떻게 10년도 넘은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냐?”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지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예전 모습이 얼핏 보이는 듯했다.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쉽게 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늘 또 확실히 알게 되었다.
자경이와 지수를 마지막으로 본지 이미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이렇게 우연히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수 있다니 말이다.
아무튼 열한 살인가 나이로 꾀죄죄한 얼굴을하고서 언니들 심부름을 호구지책 삼아서 살아가던 지수와 또 살아남기 위해서 남들이 다 꺼리고 손가락질하는 일을 하면서 살았던 두 사람이, 이렇게 남들이 보면 다들 부러워할 정도의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나는 더없이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