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잘 먹는 놈 (5) (14/90)



〈 14화 〉잘 먹는 놈 (5)

슬슬 한기(寒氣)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창 열심히 구멍을  때야 몸에서 열기가 넘치지만, 이렇게 스티로폼 위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바지를 까 내리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다가 감기 걸리겠다. 일어나자.”
“알았어. 다음에 또 해줄 수 있어?”
“일단 기회가 있다면.”

솔직히 반반이었다.

현장 기사인 내가 이 여자를 건드렸다고 소문이  봐야, 망신을 당하는  이외에는 크게 문제가 생길 일은 없다.

하지만 여자가 먼저 들이대는 그것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았고,  이 여자가 섹스에 대해 적극적이긴 하지만 그 맛이 그다지 특별하단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인연이 끝나려고 그랬던 것인지,  일이 있고난 그 다음 날 갑자기 내려온 지시에 따라 나는 현장을 그곳이 아닌 괴정 대로변에 있는 제법 큰 규모의 빌딩 건축현장 부소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굳이 건축기사도 필요 없는 흔하디흔한 원룸 공사 현장의 책임자보다는, 이런 대형건물의 부소장이란 직책이 내 커리어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그리고 아직 경험이 일천한 내가 현장을 배우는 데에도 훨씬 유리했기에, 나는 비가 오는 날 그 날 오후의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새로운 현장에서 적응하기 위해 전력투구했다.

“부소장님.”
“어쩐 일이야?”
“장 씨 아주머니가 부소장님 연락처를 아느냐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장 씨 아주머니라니? 장  아주머니가 누구야?”
“여기 현장에 일하는 아주머니요. 통실하게 생기고 귀염 상인 분 있잖습니까?”

나 대신에 원룸 공사현장에 파견된 신입 기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마 내가 출근하는 대신에 새로운 기사가 현장에 출근하니, 처음에는 잠시 내가 자리를 비운  생각하고 있다가 계속 그 친구가 현장에 출근하니 이제야 나를 찾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여자 사정이고 또 설령 내가  여자의 육체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여자나 잡아먹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무슨 일로 나를 찾는지 모르겠지만, 회사가 달라서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해.”
“회사가 다르다고요?”
“어차피 하청업체잖아. 그러니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상황이 바뀌어서 원청업체가 하청업체를 다른 회사로 바꿨다고 생각할 거야.”

자기 입으로 나와 그렇고 그런 사이여서 나를 찾고 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지만, 그 여자가 그 이유로 나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할 이유는 없었다.

회사의 사무직 여사원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일당을 받고 일하는 여자를 건드린 것이고, 그런 일들이야 현장 기사가 아닌 일용직들 사이에서는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심지어 조금 일을 편하게 하려고 현장 기사를 꼬드기는 경우도 왕왕 벌어지는 일이고, 그런 일이 알려져 봐야 주변에서 ‘먹을 여자가 없어서 그런 여자를 먹나?’하는 정도의 빈정거림을 당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은 일어날 일도 없었다.

***********

“결국 오빠도 능력자란 말이네?”
“능력자라니?”
“섹스 말이야.”
“그거야 나이가 어렸을  말이지. 원래 사내들이란 30대 중반부터는 슬슬 맛이 가게 되어 있어.”
“아까 보니까 전혀 아니던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솔직히 내가 빨아주는데도 버티는 놈을 난 보질 못했었거든.”
“그거야 내가 예전에 배웠었다고 했잖아. 그래서 사정하는 것은 어느 정도 조절할 수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지.”
“여자들에게야  정도만 되면 최고지. 아직 빳빳하게  좋겠다, 거기에 타이밍조절까지 할 수 있다면 뭐가 더 필요해.”

강 여사 이 친구가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여자를 건드리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고, 더구나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으로 그런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해선 전혀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강 여사의 조개가 맛이 있을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제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자.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 거야?”
“해야지 먹고 살지.”
“먹고 살만큼은 벌어두지 않았어? 내가 듣기로는 제법 돈도 모았을 거라던데?”
“치,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어. 그리고 설령 돈을 조금 모았다고 하더라도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여기.”
“오빠는 한량 그 자체잖아. 돈 문제에 관해서는 오빠가 이상한 거고.”

하긴 돈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 한량 소리를 듣고 있는 나도, 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그게 거짓말이다.

그냥 내 성격이 게으른 탓에 일하기 귀찮아 한량소릴 듣고 있는 것일 뿐, 크게 고생하지 않고 돈을 벌수만 있다면 세상 누구보다 눈이 벌게져서 설쳐댈 인간이, 바로 나란 놈이란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말이다.

“오빠, 우리 박 사장님하고 셋이서 사무실 합쳐서 기획부동산 해보자.”
“싫다. 동업해서 좋은 꼴 본 사람 없다고 하잖아.”
“오빠는 박 사장님하고는 친하게 지내잖아. 친구끼리 등 칠 일도 없을 것이고.”
“어차피 우리가 기획부동산 하려고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끼어들 공간도 없어. 그리고 그만한 돈을 굴릴 수 있는 전주(錢主)도 없고.”
“자금은 나하고 박 사장님이 책임질게.”
“박 사장이? 박 사장 그 친구가 무슨 돈이 있어서?”
“내가 듣기로는 박 사장님도 건물이 서너 채는 된다고 하던데?”
“몰라. 어차피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뭔가 돈이 될 만한 것을 꾸미려면 최소한 수 십 억은 손에 쥐고 시작해야지 돈이 붙는 법이고, 그래야 뭔가 하더라도 제대로  수가 있다.

그리고 나중에 부동산 사기로 걸리지 않으려면, 그 주변이 아예 허무맹랑한 곳이 아닌 최소한 개발예정 부지 끄트머리에라도 붙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개발계획에 대한 소문 정도라도 들을  있는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는 루트도 필요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  여사가 나를 꼬드기는 그것은, 이미  사장 또한 몇 차례 내게 했던 꼬드김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를 꼬드기는 그 이유가 도무지 짐작되지 않았다.

“도대체 관심도 없다는 나한테  자꾸 그 일을 같이하자고 하는데?”
“오빠가 여자한테 인기가 있잖아.”
“하! 무슨 그런 헛소리를. 내가 인기가 있으면 이렇게 살겠냐? 이 나이가 되도록 재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겠어?”
“오빠가 듣기엔 화날 소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오빤 조건이 좋잖아.”
“무슨 조건?”
“우선 오빠는 혼자니까 와이프에게 머리채 쥐어뜯길 일도 없고, 두 번째로 오빠 말대로 그 짓은 여자가 녹아내릴 정도로 잘해줄 수 있잖아. 그러니 여자에게 인기가 좋을밖에.”
“야! 여자가 해보지도 않고 내가 잘하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아?”

아무튼 이야기가 다시 요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남자들이 밝히는 여자를 보면 안다고 했지?”
“그거야 당연하지. 밝히고 즐기는 여자들은 얼굴만보면 색스러운 기운이 풍기고, 몸매에서도  표시가 나니까.”
“여자가 남자를 봐도 똑같아. 그저 그런 남자인데 껄떡대는 남자인지 아니면 정말 여자의 몸과 마음을 녹진녹진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인지가 표시 나거든.”
“뭐?”
“그게 아니라면 내가  지금까지 한 번만 달라고 매달리던 놈들에게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으면서 오빠에게 이렇게 매달리겠어? 오빠도 협회 모임 가면 나한테 껄떡거리던 놈들 많았다는 것은 알고 있잖아.”
“그건 내가 소문내지 않을 거라서 그랬다면서?”
“원래 제대로 먹을  아는 연놈이 주디에 지퍼 채우고 살아.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줄 알아?”

강 여사 말이 맞는 말이긴 했다.

진짜 제대로 바람을 피우는 놈이, 바람피우다가 것을 걸리는 것은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 놈들은 절대 자기가 누구와 잤노라 자랑스레 떠벌이질 않는다.

그런데 그건 여자들 또한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강 여사 역시 이렇게 뜨거운 몸을 가지고 있고 거의 대부분 사내들을 껄떡거리게 만들면서도, 아직 단 한 번도 이 업계의 누구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소문이 돈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 여사 말처럼 내가 여자들이 좋아할 놈이라고 해서, 그것이 내가 강 여사나 박 사장하고 셋이서 기획부동산을 같이 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기획부동산에 돈을 넣는 사람 대부분이 돈에 여유가 있는 사모들이잖아.  사모들을 오빠가 책임져야지.”
“나보고 그 사모란 여자들에게 몸이라도 팔라는 말이야?”
“팔긴 뭘 팔아? 적당히 줄  말 듯해가면서 애만 태우면 되지. 그러다가 오빠가 진짜 먹고 싶은 년이 있으면 즐기면 되는 거고.”
“됐네! 무슨 여자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여자를......”

자존심 때문에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즐기기 위해서 여자와 잠자리를 가지는 것과, 돈 많은 여자라는 이유로  여자의 돈을 이용하기 위해 여자를 유혹해서 잠자리를 갖는 것은, 하늘과  차이만큼 차이가 있는 일이다.

아무리 그 여자와의 잠자리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것은 사양할 일이다.

“그 이야긴 그만하고 이제 일어나자. 벌써 10시가 넘었다.”

어느새 밤이 깊어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커피숍에 손님이라고는 우리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에, 나는 강 여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길 운전 조심하고.”
“알았어. 오빠도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 내가 연락할게.”

아까  여사의 차는 공수마을에 두고 왔기에 공수마을까지 함께 와서 강 여사와 헤어졌다.


“하~아~”

막상 강 여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서 겨우 팬티를 벗겼던 낮에 만났던 여자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조차 해소하지 못하고, 또 먹기엔 부담스러운 강 여사와 보냈던 시간을 생각하니 답답해져 왔다.

‘끼~톡’

맥주라도  캔 마시고 잠을 청할 생각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니 톡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톡을 확인하는 순간 내 입에선 절로 ‘헉!’ 소리가 흘러나왔다.

‘예쁘지?’

‘왜 확인하고도 대답을 하지 않고 있어? 내 몸 예쁘지 않아?’

 여사가 보낸 톡은 거울에 비친 자기의 벗은 몸이었다.

아무리 과부가 된 여자라고 하지만 내게 이런 사진까지 보낸다는 것이 당황스럽고 황당했기에, 나는 아예 답을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휴대전화 액정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정도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조금  야시시한것으로 찍어서 보내줘?’

도대체 홀딱 벗은 몸을 찍은 사진보다  야한 사진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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