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비밀이 아름다운 법이다. (5/90)



〈 5화 〉비밀이 아름다운 법이다.

“강 여사.”
“응? 그런데 왜 자꾸 딱딱하게 그래. 그냥 ‘혜정아’라고 불러주면 안 돼?”
“나, 지금까지  번 먹었던 여자, 두  먹은 적이 없다.”
“그게 무슨 뜻이야?”
“아직 애인이니 뭐니 그딴 것 만들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고, 다른 누구에겐가 속박당하며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고.”
“그러니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무슨 뜻은 무슨 뜻이야. 그냥 오늘 한 번 하더라도 그걸로 끝이란 얘기지.”

이런 일을 두고 괜히 빙빙 돌려서 오해를 살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내가 목을 매달 일도 없고, 아무리  여자를 어떻게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더라도 나중에 귀찮아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정도 선에서 끝을 내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 말에  여사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기껏 여자인 자신이 먼저 주겠다고 나섰는데, 사내란 놈이  반응도 없이 시답잖은 대답이나 씨불이며 분위기를 깨고 있었으니까.

“하~아~ 자기정말 냉정하다.”
“미안해.”
“솔직히 지금 나 많이 당황스럽거든.”
“.......”
“결혼한 이후에 달라는 놈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내가 까지 않은 놈이 없었고, 결혼 전에 멋모르고  때는 내가 주겠다고 눈치만 줘도 이게  떡이냐 하고 달려들던 놈들뿐이었는데, 이렇게 내가 까일 수도 있네.”

내 말이 제법 충격이었던 것인지, 강 여사의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러더니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괜히 되지도 않을 일에 심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잖아.”
“하긴 그렇긴 하네. 어쩌면 자기가 현명할 수도.”
“아무튼 내가 많이 미안하네.”
“그건 아니지. 어차피 줄 놈이나  년이 주지 않는다고 욕하는 연놈들이 멍청한 거지.”

그냥 이렇게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옳았다.

솔직히 이 여자와 얽혀서 골머리를 싸매는 것도 취미에 맞지 않은 일이고, 막 남편의 장례식을 치르고 온 여자와 벌거벗고 헐떡거리는 것 또한 그다지 내키지 않았으니 말이다.

“자기, 나 커피나 한잔 사주라.”
“콜!”

대충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았다.

상황 정리라는 것이  여사만 포기하면 되는 것인데, 강 여사가 스스로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니 그걸로 된 것이다.

“얼굴부터 좀 닦아.”
“얼굴이 왜? 아!”

나는 대시보드에서 물휴지를 꺼내 강 여사 앞에 내밀었다.

강 여사의 입술과 입술 주변은 조금 전 열심히 내 물건을 빨아대던 그것 때문에 화장이 문드러져 있었고, 그런 강 여사의 얼굴에서는 추하다기보다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오빤 지금까지 몇 년이나 먹어봤어?”
“오빠?”
“나하곤 하지 않을 거라면서? 그러니 오빠지.”
“문디. 오빠는 별거냐?”
“암튼. 오빤 그동안 몇 년이나 먹어봤어?”
“그걸 숫자까지 세면서 먹어? 그리고 굳이 기억할 생각도 없었고.”
“많긴 많았구나?”
“사내들이 강 여사에게 껄떡거리는 것처럼, 여자 중에서도 그런 여자 많잖아.”

남자와 달리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표현하지만 않을 뿐이지 여자들 역시 성욕이 강한 여자가 많고, 또 개중에는 남자들 이상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여자도 있는 법이다.


“여기보다는 조금만 더 가면 큰 커피숍 있잖아? 거기도 괜찮던데.”
“거긴 손님이 많아서인지 종업원들이 불친절해.”

지금  시간에야 딱히 손님들이 많지 않을 것이니 종업원들이 불친절하게 굴 일도 없겠지만, 예전 손님과 한번 찾았을 당시에 경험했던 기억 때문에, 나는 강 여사가 이야기하는  커피숍 대신에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커피숍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이에 강 여사는 헝클어진 머리칼과 화장이 번져 엉망이 되었던 얼굴을 깔끔하게 원상복구 시켜서, 도도하면서도 색스러운 여인의 분위기를 풍기는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뭐해?”
“치! 팔짱은 껴도 되잖아.”
“인마, 남들이 오해해.”
“이 시간에 우리 나이 남녀가 이렇게 외진 커피숍을 찾아다니는 것을 보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냐? 부부가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이유가 뭐가 있어?”

물론 부부가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여행을  부부나 아니면 특별한 날에 가지는 이벤트일 것이니, 그런 사람들이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커피숍에 저녁 시간도 지난 시간에 찾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나는 팔뚝에 전해져 오는  여사의 젖가슴의 볼륨을 그대로 느끼면서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제법 탱탱하지?”
“까분다.”
“나 벗겨놓으면 더 예뻐. 가슴도 그렇고 또 밑에도.......”
“그만 까불어. 혹시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이미 스스로 볼 장 다 봤다는 생각인지 강 여사의 입은 거칠 것이 없었다.

하긴 마지막 단계인 삽입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만지고 또 입으로 빨기까지 했으니, 강 여사로서는 내게 모든 것을 허락한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여기도  괜찮네.”

커피숍에서 내려다본 바다 위에는, 멸치잡이 배인지 집어등을 환하게 밝힌 배  척이 멀리 보였다.

캄캄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모습이 그냥 시커먼 바다를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운치를 느끼게 했다.

“오빠, 우리 동업할까?”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동업은 형제 사이에서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동업에 싫다면 그럼 사무실을 같이 쓰는 것은 어때?”

정말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우리가 무슨 기획부동산을 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사무실을 같이 사용해야  이유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꼭 그럴 필요성이 있었더라면, 차라리 친구로 지내는 박 사장과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오빠도 이따금 손님에게 물건을 보여주려면 사무실을 비워야 하잖아. 그럴 때 다른 손님이 찾아오면 그 손님을 놓치게 되고.”
“난 손님이 많지 않아서 그럴 일도 없어.”
“피! 그건 오빠 없을 때 손님이 찾아와서 오빠가 몰라서 그런 거고.”
“아무튼 난 생각 없다. 괜히 귀찮은 일을 뭐하려고 만들어.”
“그럼 앞으로 만나는 줄 거야?”
“만나서 뭘 하려고?”
“그냥 감정 없이 섹스파트너로 지내는 것은 어때?”
“인마! 여기 커피숍이야!”

이미 포기한  알았더니 아직까지 포기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 더는 설레진 않았다.

조금 전  여사가 바짝 달아올라서 난리를  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많이 흥분하고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었지만, 강 여사의 몸이 식으면서 나 또한 급격하게 흥분의 정도가 떨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여산 앞으로 어떻게  거야?”
“어떻게 살긴 뭘 어떻게 살아. 지금까지 서방이란 인간이 돈이라고 갖다 준 것도 거의 없었는데.”
“그래도 혼자서 애들까지 키우려면 쉽지 않을 텐데?”
“오빠, 지금  걱정해주는 거야? 걱정할 일 없어. 애는 아예 없으니까.”
“애가 없다고?”
“응, 그 인간이 내 과거가 더러우니 어떠니 하면서 내 뱃속에서 애 만들 일은 없다고 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왜 결혼을 했었어?”

참 희한한 이야기였다.

여자에게 자기 씨를 뿌리겠다는 것은 대부분 사내들이 지닌 본능이다.

심지어 자기가 키울 수가 없는 이른바 불륜을 저지르는 상황에서도,  상간(相姦)녀에게 자기 씨앗을 심길 원하고 또 그 여자가 그 여자의 남편과 사이에서 자기 새끼를 낳아 키우길 종용하는 황당한 인간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데 기껏 결혼까지 하고서 아내의 과거를 가지고 아이까지 만들지 않겠다는 심보는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 인간의 과시욕이지. 주변 친구들이 모두 탐내는 대상인 나를 지가 차지했다는 그런 과시욕.”
“특이한 양반일세. 그럼 그 양반은 결혼 전에 이미 강 여사 과거를 어느 정도 알았었다는 말이네?”
“당연히 알았겠지. 어차피 사내놈들이란 족속들이 지가 따먹은 여자가 누구인지 자랑하고 다니는 족속들이잖아. 그리고 결혼 전에 그놈하고도 했었고.”
“강 여사도 참 어리석었다.”
“뭐가?”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강 여사 이 친구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내의 몸은  알고 있을지 몰라도 사내의 심리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강 여사 말대로 어렸을 때 많이 놀았다면 결혼할 상대는 다른 곳에서 찾았어야지.”
“그게 무슨 말이야?”
“사내들이 정복 욕구가 있다는 말은 알고 있지?”
“응.”
“정복 욕구는 사내들의 본능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이 정복하지 못한 곳을 정복하겠다는 욕구도 강하고. 어쩌면 그래서 처녀들만 찾아다니는 사내들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런데 그게 내 결혼 생활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반대로 생각을 해봐.”
“자기가 처음 정복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내가, 남들이 이미 정복해서 발자국으로 가득한 정상에 올라서 기뻐할 인간이 있겠어? 그리고 설령 그렇게 정복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하더라도 그 산의 정상이 오롯이 자기만의 것이라고 뿌듯해할 사람이 있겠느냐는 말이지.”

나는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논리랍시고, 사내들의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씨불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강 여사는 나의 그 헛소리에 잔뜩 관심을 기울이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부부 중에서 스와핑을 하는 부부도 있고, 또 네토 성향이 있는 남자들도 있잖아?”
“그 사람들이 과연 자기들이 부부란 생각에서 그렇게 할까? 아니 그런 관계를 한 상황에서 만약 아이가 생기면 그때 태어난 아이를 정말 자기 아이라고 생각하고 키울 수가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지.”

물론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른바 세계인이 가족이라는 생각을 하는,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인식을 가진 사내라면 스와핑을 하든지 아니면 네토 성향의 사내든지, 아내라는 여자를 끝까지 사랑해줄 수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섹스를 즐기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가 아닐까 싶다.

“그럼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한다는 말인데?”
“간단하지. 강 여사에 대한 것을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다시 시작하고 결혼을 했어야지.”
“그런다고 정말 내 결혼생활이 괜찮아졌을까?”
“물론 100%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지금처럼 최악은 아니었겠지. 실제 그렇게 하면서 사는 여자도 이 세상에 많고.”
“오빠가 그걸 어떻게 알아?”

강 여사의 그 말에는 내가 확실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

물론 누구인지는 그 친구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밝혀줄 수는 없다.

 때문에 집창촌인 부산 완월동에서 몸을 팔다가 대전으로 가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미용실을 차리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를 내가 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친구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속으로 남편에게 평생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살겠지만, 어쩌면  미안함 때문에 가정에 위기가 닥치더라도 한 번쯤은 그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