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저주가 풀리다. (1)
- 제 79 화 -
“뭐? 데미갓의 육체를 어리게 만들어?”
“육체뿐만이 아닙니다. 그라는 존재를 전부 어리게 만들어야합니다.”
“으음... 그렇다는 것은 과거로 회귀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은 그대로 두고, 그의 존재만 어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확실히 그를 치료할 수 있나?”
“그럴 것입니다. 저 데미갓을 지금 상태로 둔다면 치료는커녕 카오스가 발생해 데미갓이 어둠에 먹혀버릴지도 모릅니다. 그 원인으로 강한 신의 힘이 중첩된 그의 육체에 불행의 기운이 불안정한 상태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아프로디테님도 아시다시피 그의 몸 내부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아... 그래서.”
“크로노스의 권능을 이용해 모든 기운들을 약화시켜야 합니다. 그를 어리게 만듦과 동시에, 내부에서 싸움을 벌이는 기운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도 가능한가?”
“가능할 겁니다. 크로노스의 권능은 절대적이거든요. 마치, 에로스의 화살처럼 말이죠.”
그의 말에 차분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프로디테. 일단, 그를 살릴 수만 있다면 뭐라도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가 살아있는 것이 헤라에게도 또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치니 꼭 그를 살려야만 한다. 아프로디테는 그를 살리기 위하여, 뭐든 다 할 것이란 다짐을 속으로 하고 있었다.
“좋아. 나도 돕겠어. 정확히 준비해야 할 것이 뭐지?”
“크로노스(Chronos)의 시계와 절대자의 힘입니다. 크로노스의 시계로 그의 존재를 어리게 만들면, 그의 내부에 있는 힘들도 자연스럽게 약해질 것입니다. 그 때, 절대자의 힘이 개입해서 저 데미갓 내부에 일어나는 고통들을 해소시키면 됩니다.”
“잠깐... 그러면 크로노스(Chronos)의 시계의 영향을 받는 것들은 모두 어려지게 된단 말인가?”
“그반대도 가능합니다. 시간을 조절할 수 있으니까요. 그의 내부의 기운들도 약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아프로디테님이 그에게 내린 권능도, 헤라님이 그에게 쏟은 저주도 모두 동일합니다.”
이건 그에게 오히려 기회일 수도 있었다. ‘10명의 여자를 사랑하라’는 헤라의 굴레는 어쩌지 못해도 최소한 얼굴에 걸려있던 저주는 풀 수 있을 것이다. 어려지는 대신 얼굴에 쓰인 저주를 없앤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아프로디테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그의 은빛 심장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헤라가 그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 명분을 주지 않으려면 일단, 그가 10명의 여자와 사랑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살아있지만 죽어버린 상태로 영원히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납 화살을 1발 맞으면 그의 앞에 있는 사람을 싫어하고, 3발을 맞으면 아예 사랑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에로스의 화살. 그녀 역시, 금빛 화살에 살짝 찔려서 아도니스를 사랑하게 되지 않았는가. 그만큼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절대적인 화살이라도 크로노스의 권능을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될지 모른다. 아프로디테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옆에 있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럼 에로스가 쏜 화살의 저주도 약해질 수 있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둘 다 모두 절대적인 것들이라 확답은못드리겠습니다.”
“흐음... 그래. 그래도 희망이 보이는구나. 좋아! 바로 시작하지.”
“아프로디테님. 신중하셔야 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들은 모두 이론상으로 생각한 일들입니다.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말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 데미갓의 후폭풍이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아프로디테님께선 신들 가운데서도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지막 선택의 기로이다. 성진이 앞으로 살아갈 운명의 노선이 그녀에 의해서 결정되는 순간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프로디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침대 위에 붕붕 떠 있는 그의 성진의 몸. 그녀는 그의 얼굴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얼굴 위를 쓰다듬었다. 흉하디 흉한 그의 얼굴은 촉감마저도 역겨웠다.
그는 항상 말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아왔었고, 얼굴로 인해서 애꿎은 피해를 받았는지. 그에 따라 성격은 점차 내성적이 되고 아무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아프로디테에 의해 점차 좋아지고 있었으나... 그의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프로디테는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그 불행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지 않을까. 불운한 인생을 살아왔던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는 결심한다. 자신이 도와주기로, 그라는 존재를 위해서 자신이 노력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냥 여자의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굳은 다짐을 한 그녀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건넨다.
“상관없어. 그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될 거야. 아스클레피오스,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할 테니 그를 당장 살려야겠어.”
*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꺄아아~! 살려줘요.”
“꺼져라, 이 못된 괴물! 지구의 용사인 내가 너를 무찔러 주겠어!”
근처 아파트 놀이터에 나왔다. 심심하기도 했고 고아원의 원장님은 내가 무엇을 하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이다. 고아원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의도적으로 따돌리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가 필요했던 그는 고아원 바깥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도착하였다. 그 자리에는 여러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자신을 보자마자 재밌는 놀이가 생각났다며 그를 놀이에 끼워주었다.
어린성진은 그런것이 마냥 좋았다. 누군가와 함께 놀이를 해 본적이 없었기에 다른 사람과 함께 뛰어다니며 호흡하는 것이 매우 좋았다. 지금 그가 맡은 역할은 괴물. 흉한 얼굴에 모두들 만장일치로 결정한 역할이다. 성진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덤벼라! 괴물아!”
“저, 저기... 나는... 차, 착한 괴물이야.”
“이 녀석이! 어디서 나를 속이려고! 거짓말을 하다니 용서하지 않겠어! 이야압~!”
‘퍽!’
영웅 역을 맡았던 아이는 자신이 들고 있던 굵은 나무 몽둥이를 무차별 적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성진은 자신의 팔을 들어올려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아픔은 전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자신의 머리를 감싸며 그 고통을 회피해 보려한다.
“괴물이 쓰러졌다! 모두 총 공격~!”
“우와아~”
영웅 역을 수행하던 아이는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에게 성진을 공격하라고 명령한다. 놀이에 몰입하던 아이들은 그의 말에 따라, 쓰러진 성진을 향해서 발길질을 시작한다. 그러자, 성진의 옷은 흙투성이가 되었고 흉한 얼굴에는 피가 보이기 시작했다. 또렷한 정신도 점차 혼미해져 간다.
“이 녀석들! 너희들 뭐하는 거니!”
그가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그들의 뒤로 누군가 나타나 혼을 내는 것이 보인다. 성진은 흐릿해지는 시야를 되잡으면서 아이들이 혼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마도 원장님이 자신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맞고 있는 것을 본 모양이라 생각한다. 이런 적이몇 번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원장님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으아앙~!"""
“너희들 한 번만 더 그래라! 그 때는 이 아줌마가 가만히 안 있을 줄 알아! 학교에도 말하고 부모님한테도 다 일러바칠 거야. 알았어!”
"""훌쩍, 훌쩍..."""
“알았니? 몰랐니?”
"""네..."""
“그럼 가봐!”
그녀의 카리스마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놀이로 포장을 하여 그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눈물, 콧물을 쏙 뺀 상태로 각자 갈 길을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들을 혼내던 원장님은 아이들을 모두 돌려보낸 뒤에, 흙바닥에 쓰러져 있는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품에 안아 다정한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성진아, 그럴 때는 맞고만 있으면 안 되지. 맞은 만큼 돌려주기도 해야 하는 거야.”
“하, 하지만... 원장님께서 그러면 안 된다고...”
“원장님? 그게 누군데.”
목소리를 계속 듣고 있으니 원장님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지금 그가 얼굴을 묻고 있는 가슴의 크기가 현저하게 차이나는 상황이다. 풍만한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는 그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와...”
바로 탄성이 나올 정도의 미모를 지닌 여성이다. TV에서도 이렇게 예쁜 사람은 본적이 없었다. 금발의 머리와 새하얀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의 미녀였다. 얼핏 보면 외국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녀는 도도한 분위기를 뽐내면서 성진을 향해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워,원장님이 아니네...?”
“원장님은 무슨...”
“누, 누구세요...?”
“성진아, 장난하는 거지? 나를 몰라보는 거야?”
“네... 정말 모르겠어요. 호, 혹시... 나쁜 사람? 저를 유괴하려고??”
“풋!”
“저, 저는 고아라 집에서 드릴 돈도 없어요. 그, 그러니 고아원으로 돌려보내주세요.”
“얘는...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리야. 많이 맞아서 정신이 이상해졌나? 정말 나를 못 알아보겠어?”
성진은 고개를 심하게 끄덕인다. 그러자, 자신을향해 웃어 보인 미녀는 흉한 얼굴이 역겹지도 않은지, 그의입술에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애정이 듬뿍 담긴 키스였다. 성진은자신의 첫 키스를 가져간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면서 넋을 놓아 버린다. 묘령의 미녀는 또 한 번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시작한다.
“얘는 참... 엄마잖아. 우리 사랑하는 성진이 엄마.”
엄마. 그립지만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이다. 성진은 말도 안 되는 말이라며 그녀의 품에서 떨어지려 노력하였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꼬셔서 유괴하려는 것이 저 여자의 목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흉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 리가 없었다.
성진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범죄가 떠올랐다. 납치, 살인, 감금, 장기밀매... 모두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였다. 어쩌면... 그를 섬에다 팔아 노예로 만들지도 몰랐다. 성진은 그런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자,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에게 살려달라고 빌기 시작한다.
“사, 살려주세요.”
“갑자기 왜 그래?”
“저, 저는 얼굴도 이래서 금방 죽을지도 몰라요. 섬에 팔아봤자 금방 죽는다고요.”
“뭐래? 얘가 뭘 잘 못 먹었나? 얼굴이 이렇다는 것이 무슨 소리야?”
“흉하잖아요. 피부도 썩어 들어가고, 곰보 자국에 구멍도 숭숭 뚫려있어요. 못생기기도 했고요.”
“아까부터 계속 헛소리를 하는데... 집에 잠깐 들렸다가 병원이나 한 번 가보자.”
그녀는 그를 번쩍 들어 안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한다. 성진은 그녀가 납치를 하려하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온 몸을 비틀면서 저항을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계속 저항을 하다 제풀에 지친 그는 힘이 빠져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 이런 식으로 죽는 건가? 얼굴이 이러니까 빨리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제발 고통 없이 죽었으면...’
온갖 상상을 하던 그는, 엄마라고 밝힌 사람에 의해 아파트의 현관으로 이동하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느꼈다. 문이 닫히고, 그녀는 자신을 품에서 끌어 올려 근처에 있는 유리거울을 향해 다정한 포즈를 취해 보인다.
“성진아, 눈 한 번 떠봐.”
“시, 싫어요.”
“뭐가 그렇게 겁이 많아. 저기 얼굴 보이지? 네 얼굴은 엄청 잘생겼어. 한 번 봐봐. 헛소리하지 말고.”
잘생겼다라... 성진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그녀의 말에 슬쩍 눈을 뜨고 거울을 바라본다. 그를 들고 있는 예쁜 여자와 그 품에 안겨있는 예쁘장한 남자아이가 보였다. 성진은 매우 당황해서 입을 떡 벌리게 되었는데, 그런 표정까지 거울에서 따라하는 상황이다. 손을 움직여도 발을 움직여도 거울에 비친 남자아이가 모두 자신을 따라하고 있었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벨이 울리면서 문이 열렸다. 그러자, 바깥에선 환한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빛 무리에, 성진은 자신의 눈을 가리며 눈이 부신 것을 피하고자 한다. 자신을 안고 있는 여자는 눈이 부시지도 않는지, 그 바깥세상을 바라보면서 빛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