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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화 〉그녀가 보낸 자객 (4) (76/100)



〈 76화 〉그녀가 보낸 자객 (4)

- 제 76 화 -

다음날. 결국 성진은 지수와 연락 한 번 하지 못하고 출근하게 되었다. 덕분에 그의 심기는 영 불편해 보인다. 유경이 그녀와 통화가 된다면 바로 연락해 주겠다고 말했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성진은 초초한 마음으로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성진 씨, 왜요? 오늘 실전에  투입이라 긴장돼요?”

“뭐... 그렇죠.”

“괜찮을 거예요. 모두들 인정했잖아요. 성진 씨 실력이 좋다는 것은...”



그의 불안해 보이는 모습에 주현이 다가와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의 주위에 있는 수정이나 미진, 민지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다가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성진은 그녀들의 응원에 애써 웃음을 보이고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 착석해 ‘김아미’라는 사람의 데이터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자료를 살펴보니, 기존에 있는 회원들과는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급 개인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며 외국계 회사에서 임원급의 위치에 올라있다는 것이 특징인 정도였다. 다만, 재산이 많았는지 수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일시불로 지급한 사실이 눈에 띄었다.



성진은 다음 장으로 넘어가 그녀의 피부 정보에 대해 확인하였다. VIP라운지에 처음 가입을 하게 되면 최신 장비를 이용해, 신규 고객의 피부 정보에 대해서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분석 자료는 데이터베이스에 축적되어서 고객을 관리하는 정보로 활용되고 있었다. 성진은  자료를 꼼꼼히 읽어보면서 이따가 있을 예약에 사전 준비를 하려 했다.



‘응? 뭐지...? 나이가 43살인데, 피부 나이가 20살?’

그 자료 가운데,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항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 본인의 나이와 피부나이가 적힌 항목이었다. 분명 그녀의 서류에는 실제 나이가 43살로 기입되어 있었다. 워낙 프라이빗한 곳이라 여러 가지 신분확인 절차를 확인하고 기입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를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기기의 오작동이 있었다는 말인데... 43살의 여자가 20살의 피부나이 기록이 나온 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성진은 자신의 자료를 수정에게 들고 가 사실의 진위를 확인하려 했다.

“아... 이거,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에요.”

“네? 기록만 봐서 말이 안 되는데요. 혹시 기기 고장이라든지 그런 문제가 있던  아닐까요?”

“저희도 처음엔 의심했었는데,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 봤어요. 하다 못해서 저희가 김아미 고객의 피부를 직접 촬영해서 봤다니까요?”

“보니까 어떻던가요?”

“완벽했어요. 어디서 관리한 것인지 저희도 여쭤봤었는데, 그냥 집안 내력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된다면... 저희 샵에 올 필요가 딱히 없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에요. 저희도 그것을 말했었는데, 고객님 본인께서 저희 샵에 다니고 싶다는 걸 어떡해요. 뭐... 저희 쪽에서는 그런 고객을 받는 것도 이득이고 홍보 효과도 톡톡히 되니까 거절할 수 없는 좋은 기회가 되었죠.”


이제야 확신을 가졌다. 그녀는 헤라와 강하게 엮여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 주위에 보였던 검은색 아우라도 우연이 아니었다. 성진은 수정의 말을 듣고 다시 그의 자리로 돌아와 심각한 고민을 이어간다. 어제 그를 향한 모종의 위협에 맞서 싸우기로 다짐 했지만, 예고된 시간이 가까워져오니 한 번 더 신중한 선택을 해보려 한 것이다.



‘도망칠까?’



얼핏 보면 장난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진지했다. 몇 년 전, 헤라와 조우했을 때, 그는 절대적인 힘 앞에서 심한 좌절감을 느꼈었다. 강하게 옥죄어 오는 그녀의 기운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록, 그가 아프로디테의 가호를 받고 있지만, 완벽하게 보호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그녀가 가장 필요할 때에 연락되지 않는 것만 봐도 충분히 알  있었다.

‘아니야. 어차피 만나게 될 불운이라면 맞서 싸우는 것도 나쁘지 않아. 잘 생각해보자, 어디 맞서 싸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



여러 생각을 하다, 결국 귀결되는 것은 맞서 싸우자는 것이다. 성진은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면서 전의를 불태워 갔다. 김아미란 사람이 어떤 공격을 해올지 모르지만, 그녀가 여자라는 것에 한 가지 자신이 있었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인 ‘섹스’로 그녀를 녹일 생각이다. 주현을 제외한 VIP직원 대부분은 마사지로 인해, 그와 관계를 갖게 되었다. 즉, 이미 충분한 연습은 되었단 소리이다.


그는 일련의 과정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솟구쳤다. 그의 섹스 실력은 성애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마저 인정했던 실력이다. 헤라가 보낸 자객이 ‘여자’인 이상 그 어떤 존재라도 녹여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그는 굳었던 표정이 조금은 풀어지며, 자신의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뭐... 할 수 있겠지. 사장님마저 인정을 한 내 실력이니, 그녀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거야. 흐음... 그나저나, 사장님은 왜 연락이  될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걱정이 되네.’

자신은 있었지만,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고 싶은 존재가 연락되지 않으니 걱정이 되었다. 성진은 자신의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녀의 연락을 기다려본다. 1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고... 그녀에게 전화를 시도 해봐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성진은 나지막한 한숨을 쉬면서 액정화면을 바라봤다. 어느덧, VVIP가 예약한 시간에 1시간을 앞  상황이다.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매뉴얼대로 준비하기 위해서 VVIP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전화는 끝끝내 울리지 않았다.



*

그 시각, 미국에 위치한 헤라의 저택. 연회나 할 법한 넓은 공간에서 아름다운 여성  명이 테이블 앞에 마주하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옛날 서양을 배경으로, 영화에서 나올 법한 긴 테이블 위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보지도 못할 진귀한 음식들이 차려져 있는 상태이다.

고요했다. 여성 두 명이 식사를 하고 있었으나, 아무런 대화가 없어서 포크소리나 칼질을 하는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그들의 주변의 메이드들 역시 똑같았다. 그녀들은 긴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그녀들 앞으로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다. 조용한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그들의 눈짓만으로도 원하는 음식을 골라 그녀들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헤라와 마주앉아 식사를 하던 아프로디테는 그녀의 심중을 간파하기 위해서 많은 생각들을 하였다. 일반 인간이라면 그들의 생각을 편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그녀와 동급인 신은 아니었다. 때문에 아프로디테는 그녀에게 저녁식사 초대를 받으면서도 묘한 의구심을 지우지 못했다.

‘무슨 짓일까? 이번 저녁 식사 초대는 분명 무슨 계략이 숨어있는 것 같은데...’

오지 않아도 될 자리이긴 했지만, 그녀의 데미갓을 죽인 것에 대한 사죄를 하고 싶단 그녀의 의도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신들의 왕인 제우스의 부인이기 때문에 그녀가 굽히고 들어온 것에 대해서 적절한 태도를 취해야만 했었다. 때문에 아프로디테는 내키지도 않는 식사를 그녀와 함께하고 있었다.

“헤라.”

“네, 아프로디테.”

“나를 이곳으로 부른 이유가 뭐죠?”

입이 근질근질 거리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녀가 먼저 질문을 하였다. 그녀는 신들 가운데서도 성질이 급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다. 때문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 상황을 잘 참지 못하고 있었다.



“뭐... 말씀 드린 대로에요. 아프로디테, 당신이 낳은 데미갓을 죽인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리려고 자리를 만든 거예요. 또...”

“또?”

“또, 그대가 미국에 출장을 왔다고 들어서 만나보고 싶기도 했고요. 마침 잘되었어요.”



아프로디테에게도 예기치 않은 미국 출장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에 쌓인 성진의 기운을 없애기 위해서 금욕을 하고 있던 상황이다. 그러던 중, 같이 살고 있는 유경과 성진으로 인해 집중을  수 없게 되자, 그녀 스스로 출장이라는 명분을 만들어 미국 곳곳을 떠돌고 있었다.

스마트 폰을 꺼둔 것도 유경 혹은 성진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가장 컸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왠지 질투가 나서 지금의 수련을 참지 못할  같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1달을 다 채워가는 오늘까지 섹스를 하지 않아, 성진의 독한 기운들도 갈무리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헤라가 자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흐음... 정말로 미안한가요?”

“그렇죠. 비록 인간이나 하나 그대의 자식은 분명한 셈인데... 제가 멋대로 죽인 것은 분명 잘못한 일이죠.”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과 더불어 관장하는 업무에 대해 프라이드가 높은 것이 그녀이다. 가정을 수호하는 여신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도 그녀였다. 아프로디테는 와인을 한 모금 머금으면서, 자신에게 사과를 건네는 헤라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녀가 하는 말이 진실일까? 고민을 하는것이다.



‘하긴, 아무리 신탁과 엮여 있다고 해도 다른 신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우리들이 정한 규칙에 어긋나는 경우야. 헤라도 이를 알고 사과를 했을 수도 있어.’

헤라의 일관된 사과에 아프로디테도 가지고 있던 의심을 조금씩 덜어내기 시작했다. 자존심이 센 그녀가 이 정도로 굽히고들어왔다는 것은 진심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한다.



“헤라, 그렇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겠단 뜻인가요?”

“그래요. 우리처럼 고위 신이 인간들처럼 싸울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하위 신들에게 모범을 보여야죠.”

“좋아요. 그럼 그 부분에 있어서 사과는 받아들이겠어요. 가슴이 아프지만... 모두를 위한 일이니까요.”

“잠깐... 그 부분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죠?”


긴장된 분위기가 풀어지고 간만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참이었다. 헤라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면서 아프로디테에게 반문했다. 그녀가 말한 것에서 ‘그 부분’이라는 것 때문이다. 그 뉘앙스가 다른 것을 또 사과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알고 계시잖아요. 모르는 것처럼 굴지 마세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분명 그대에게 사과드릴 부분은 다 사과 드렸는데...”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헤라의 모습. 아프로디테는 가증스런 그녀의 표정에 옅게 피어난 미소를 일그러트렸다.

“당신이 괴롭히고 있는 이성진이란 데미갓에 대해서도 사과를 하셔야죠.”

“그건 제가 사과할 부분이 아닌  같은데요? 제우스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어서 낳게  자식인데,  그대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거죠?”

“그는 저의 권능을 받게 된 인간이에요. 피그말리온 이후, 유일하게 저의 인정을 받게  존재라고요. 그를괴롭히는 것은 저를 괴롭히는 것과 다름이 없어요.”

‘쨍그랑!’

“기어코 저랑 척을 지고 싶은 건가요?”

헤라가 쥐고 있던 와인 잔이 바닥을 향해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아프로디테는 그에, 눈 하나 깜박 하지 않고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의 시선을 무덤덤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을 살기가 헤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것이다.

“척이라... 저는 상관없어요. 나도 당신에게 꿇리지 않는 신이란  잘 아시죠? 그런 식의 감정소모는 불필요하단 말이에요.”

“으으윽!”


헤라는 그녀의 말에, 주위가 타오를 것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낸다. 그녀의  주위로 수증기가 피어오를 정도이다. 뭐라도 터질  같은 그녀들의 눈치 싸움. 헤라는 여유로운 아프로디테의 모습을 보고 침을 꿀꺽 삼키며 마음속의 분노를 차분하게 다스려간다.

어차피, 지금의 굴욕은 그녀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분노의 기운을 순식간에 정리한 그녀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흠흠... 제가 많이 흥분을 했군요. 미안해요.”

“...... .”

“오늘은 일단, 당신의 데미갓을 죽였던 부분만 사과하도록하겠어요. 이성진이란 데미갓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분하게 생각해 보고 결정하도록 해요.”


지금 그녀의 모습은 아프로디테가 상상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화를 모두 폭발시켜 이곳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차분한 그녀였다.
제우스의 데미갓이라면 이성을 잃는 그녀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차분했다. 약간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취하면서 말이다. 아프로디테는 의심 섞인 눈초리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인가요? 지금 헤라 당신이 말한 것은 협상의 여지를 보인다는  같은데요.”

“그럼요. 그대의 데미갓을 죽인 것도 제가 성급해서 벌어진 일인데, 아무 문제가 나중에 없으려면 당신과 나의 의견 조율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여태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환한 미소를 보이던 헤라는 메이드를 불러 자신의 새 와인 잔에 술을 담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들어 보인다. 건배를 하자는 제안이다. 아프로디테도 약간 당황한 모습으로 그녀를 향해 잔을 들어 건배를 완성시킨다.

그녀를 향한 찝찝한 감정 때문일까. 입 안에 담은 와인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술을  모금 마신 그녀는 자신의 턱을 괴고 헤라가 있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분명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을 숨기는 듯한 그녀의 행동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헤라도 그녀의 의구심 섞인 눈초리를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누구보다 증오하는 제우스의 데미갓을 끝까지 괴롭히기 위해서, 자신이 마련한 계획이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여신이 마주한 테이블에는 처음처럼 묘한 긴장감이 흘러  수 없는 그들의 미래를 반영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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