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그들의 첫 데이트. (3)
- 제 69 화 -
‘성진 - 누나 언제와?’
강남의 프랜차이즈 카페 안. 성진은 유경을 기다리며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데이트에 나가는 사람처럼 깔끔한 캐주얼 룩을 입은 상태. 그의 기나긴 기럭지와 빼어난 몸매는 남들의 이목을 끌만한 것들이다. 거기에, 무슨 유명인처럼 커다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안경까지 쓰고 있자, 주변에 있는 손님들도 그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요...”
“아, 말씀하세요.”
“제가 모델 에이전시 쪽에 일을 하는데, 시간 나면...”
“죄송합니다. 제가 따로 직장이 있어서요.”
“그러시군요. 그럼 명함만 받아주세요. 여기 놓고 가겠습니다.”
스타일리쉬하게 옷을 입은 웬 남성은 그의 앞에 명함을 두고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성진은 그 명함을 슬쩍 바라보고는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는다. 지금까지 이런 명함을 3~4번도 더 받은 것 같다.
얼굴을 꽁꽁 숨기고 있었는데, 자신의 몸매에 이끌려 모델 제의를 해왔었다. 당연히 성진은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고스마트 폰을 확인하면서 유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준비해야 할 게 많으니까 오늘은 나랑 잘 생각 꿈에도 꾸지마.’
‘누나, 그건 너무 가혹한데... 사장님도 장기 출장이잖아.’
‘안돼요. 내일 준비할 게 많단 말이야. 아! 그럼 되겠다. 너 오늘만 경훈 씨 집에서 자고 와. 응?’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제의 일들. 성진은 결국 그녀의 말을들어 레지던스 호텔이 아닌 수정의 집으로 가서 잠을 청했다. 물론... 나머지 직원들도 함께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혜영은 물론이고 주현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모였던 어제의 그 날. 덕분에 성진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을 하게 되었다.
‘정말 이상해... 저번에 사장님에게 당한 이후로 갑자기 정력이 늘어난 것 같아. 유경이 누나 덕분인가? 사장님과 섹스한 이후에 바로 유경이 누나와 했는데 느낌이 달랐잖아. 잠깐, 그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끼고 있는데...’
지수에게 모든 정기를 빨렸던 날 이후, 그의 정력은 끝이 모를 정도로 솟아나고 있었다. 자신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섹스를 할 때면 지치지도 않았고 잠을 안자도 될 정도로 힘이 넘쳤다. 오히려, 그녀들에게 자신의 기운을 충전 받은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오늘 데이트를 앞두고도 밤을 새워, 7명의 여자를 모두 만족시킨 그였다.
‘상대방의 기운을 흡수하는 것인가? 가만 보면 그것도 아니란 말이야. 수정이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도 나와 관계를 갖고 난 이후엔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어. 같이 밤을 꼴딱 새웠는데도 피로감은 느껴지지도 않았고. 뭔가 있다. 나도 알지 못하는 내 능력이 있는 거야.’
자신과 관계를 가졌던 모든 여자들이 피부가 좋아지고 신체에 활력이 솟았다. 그것은 확실해졌다. 아직 피부에 대한 지식이 미천한 그가 보더라도 태가 날 정도이니... 주현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성진은 그 원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전기를 다루는 능력과 페로몬이 뿜어져 나오는 능력에서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몰랐다.
‘하아... 좋다. 정액만으로도 든든하고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구나...’
여러 가지 고민을 하던 그에게, 갑자기 현아가 지난번에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의 정액에 대한 것들이다. 분명, 어제도 자신의 정액을 품앗이(?)하면서 맛을 보던 그녀들은 하나 같이 달콤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의 정액이 맛있는 디저트라도 된 것 마냥 그랬다. 그것도 자신의 능력에 무슨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휴우... 복잡하네. 뭔가 일이 척척 진행되는 것 같으면서도 그 미래는 안개 속이란 말이야...”
10명의 여자와의 사랑, 1000명의 여자와의 섹스. 그에게는 필요 불가분한 것이었다. 자신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꼭 해야 할 과업들이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1명을 사랑하기도 벅찬데, 10명의 여자를 사랑해야 했고 그것이 또 진심이어야 한다. 그런 와중에 1000명의 여자와 섹스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항상 새로운 여자를 만나야한다는 부담감과 그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거기에, 기존에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던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모두 고려해야 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아버지 제우스였다면 모든 과업을 이루어 냈을 수도 있었다. 그는 정말 인간의 기준에서양심(?)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진은 그렇지않았다. 기본적으로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막상 이런 일을 하면서도 계속 마음이 찔리는 것이 그의 마음을찝찝하게 만들었다. 오늘의 데이트도 그것을 풀기 위해 마련한 데이트이다.
가장 사랑하는 유경에게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기 위한 그런 자리였다. 성진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또 한 번 들여다보며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딸랑~’
한참, 스마트 폰을 바라보던 그가 다시 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을 하기 위해서이다. 벌써, 30분 이상을 늦어버린 상황. 인내심 강하고 아무리 참을성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 아무 말 없이 늦은 상황에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어디 사고라도 난 것이 아닌가 걱정도 생기기 시작한다.
“우와... 대박.”
“연예인인가? 얼굴 정말 예쁘다.”
“몸매도 죽여주는데? 번호나 한 번 따볼까?”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다가 옆 테이블에서 출입구 쪽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 것이 들렸다. 그녀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기 위해 앉은 자리는 출입구에 반대되는 창가였다. 성진은 유경의 모습을 계속 살펴보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호기심을 느낀다. 남자라면 예쁜 여자가 나타났단 소리에 무조건 반응하게 되는 것이 진리이다.
‘어디 한 번 봐 볼까?’
“성진아~!”
“어...? 누구세요?”
“뭐야, 못 알아보겠어? 유경이 누나잖아.”
눈을 껌뻑거리던 그가 자신의 앞에 있는 미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얀색 털모자를 쓰고 머리를 단정하게 꾸민 그녀. 화장법도 살짝 바뀌어 청순함이 더욱 강력해졌다. 그녀의 복장도 포슬포슬한 하얀색 니트와 플레어스커트로 완벽한 여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평소 정장만 입은 그녀를 보다가 새로운 모습을 바라보니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유경은 그가 자신을 못 알아보자 살짝 삐진 척을 하면서 그의 반대편 좌석에 앉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들고 온 자그마한 가방을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다.그녀의 어깨에 매달린 작은 핸드백과 또 다른 종류의 가방이다.
“누나, 이건 뭐야?”
“한 번 열어봐.”
성진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가방을 가져와 그것을 천천히 열어보았다. 그러자, 그의 눈에 여러 개의 플라스틱 통이 보이기 시작한다. 대충 봐도 도시락 통이었다. 그는 그것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안에 있는 음식을 살폈다. 서툰 솜씨지만 나름 열심히 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샌드위치, 김밥, 유부초밥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성진은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유경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그녀는 그를 똘망똘망 바라보며 무언가를 요구하는 듯하다. 마치, 그것은 시험 1등 성적표를 받아와 부모에게 들이민 아이 같은 모습이다. 성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선 잠시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누나.”
“응?”
“이것 때문에 늦은 거야? 도시락 싸느라고?”
“아니, 뭐... 여러 가지로... 신경 쓰느라고.”
“누나, 혹시... 어디 밖에서 도시락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이렇게 날이 추운데?”
“그, 그냥... 우리 첫 데이트니까... 여러 모로 기분 좀 내보려고 싸봤어.”
“하아... 그래. 알았어. 그 정도까지 하자.”
말을 끊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 남자. 유경은 그의 눈치를 계속 살피면서 자신이실수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창가로 비친 자신의 모습은 완벽했고, 데이트의 로망이라는 도시락도 싸가지고 왔다. 이젠 그가 짠 스케줄대로 데이트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헌데... 그의 표정이 영 불편하다. 분명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어 보인다. 유경은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그에게 말을 걸기시작했다.
“성진아... 혹시 나한테 화난 거라도 있어?”
“아니. 그건 왜?”
“표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아니야. 그냥, 누나가 오해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
“...... .”
“흠흠... 이제 누나도 왔으니까 슬슬 나가 볼까? 우리 데이트하기로 했잖아.”
뭔가 시무룩해진 그녀의 표정.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서 성진은 괜히 헛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뒤, 유경을 이끌고 카페에서벗어나려 한다. 그들을 향한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성진은 밖으로 가자는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테이블 위에 남아있는 그녀의도시락 통. 유경은 그것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어 그를 뒤따라 나선다. 화기애애한 그 전의 분위기와 다르게 지금 그들의 데이트는 처음부터 삐거덕대기 시작했다.
*
“우와, 방금 영화 정말 끝내준다. 그치?”
“응...”
“사운드도 그렇고, 화면이 넓어서 보는 맛도있는 것 같아. 나 사실... 누구랑 영화 보러 온 거 처음이다?”
“응...”
“누나, 지금 내 이야기 듣고 있어?”
“어... 다, 당연히 듣고 있지.”
“조금 이상한데? 아까부터 왜 그렇게 풀이 죽어 있어? 우리 첫 데이트잖아.”
“으, 응... 그렇지. 웃어야지...”
그의 말에 유경은 입 꼬리를 들어 올려 억지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은 성진이 보아도 많이 부자연스런 웃음이다. 그 모습에 연애고자 성진은 꺼림칙한 감정을 느꼈다. 분명히 ‘인터넷’에서 첫 데이트 코스로 추천한 극장과 수족관에도 다녀왔고, 맛집이라고 알려진 유명 식당에서도 식사를 했었다. 그런데, 유경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뭔가 피곤한 듯한 인상만그에게 주고 있을 뿐이었다.
“누나, 피곤해? 오늘 좀 많이 돌아다녔지?”
“아니야. 하나도 안 피곤해.”
“에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는데 뭘... 이제 좀 쉴까? 내가 아주 좋은 곳에 예약을 잡아 놨거든. 저기 보이지?”
그가 손가락을 가리킨 곳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5성급 호텔이었다. 1일 숙박에 몇 십만 원이나 하는 그런 고급 호텔이었다. 성진은수습 기간에 탄 첫 월급으로 그녀와의 행복한 데이트를 꿈꾸면서 이 호텔을 예약했다. 비록, 스위트룸까진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돈을 지불했다. 오로지유경과 행복한 하루를 꿈꾸면서 말이다.
“.......”
“오늘 저 곳으로 가자.”
“하아... 성진아, 우리 그냥 집으로 가자. 따지고 보면 우리 숙소도 호텔이잖아.”
“무, 무슨 소리야. 이런 날에는 저런 호텔에서 묵어주면서 하루를 보내기도 해야지. 분위기도 좋고 다른 사람들 평도 좋더라.”
“미안, 집으로 가고 싶어졌어. 피곤해.”
“피곤하면 저기 호텔로... 어? 누나!”
유경은 근처에 오는 택시를 잡아 뒷좌석에 탑승하였다.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 또한 택시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택시는 그들의 숙소인 강남의 호텔로 출발하고... 그와 그녀는 호텔로 이동할 때까지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성진은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그들의 숙소에 도착하고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까지 어떠한 문제점도 찾지 못했다. 다만... 지금 그녀가 기분이 다운되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 역시 숙소에 도착한 뒤로 그녀의 방문 앞에서만 서성이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쌩쌩 돌던 그의 머리도 완전히 굳어 버린 상태였다.
‘흑흑...’
유경의 침실 문 뒤로 그녀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성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방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지수가 있었으면 어떻게라도 도움을 요청했겠지만, 그녀는 현재 장기 출장에 나선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그가 나서야만 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얼굴을 감싼 채로 흐느끼고 있었다. 아주 서럽게 우는 그녀의 모습에 천천히 그녀의 옆으로 다가서는 그이다.
“누나... 괜찮아? 무슨 일이야.”
“훌쩍... 훌쩍...”
“누, 누나? 왜 그렇게 울어?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미안해. 내가 이렇게 사과할게.”
“...... .”
“누나...”
“흐아아앙~”
유경은 그의 품에 안기면서 목을 놓아 울었다. 항상 그에게 웃음만 지어주었던 그녀의처음 보는 모습이다. 그의 품이 그녀의 눈물로 축축이 젖어도 전혀 불쾌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그 슬픔이 전염되어 마음이 울적해진다. 성진은 그녀의 몸에 자신의 팔을 둘러 꽉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이면서 그녀가 진정이 될 때까지 한 참을 그렇게 다독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