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그녀들의 반란 (6)
- 제 62 화 -
고요한 새벽. 창으로 비쳐오는 어스푸름한 하늘의 색이 미진의 얼굴에 닿는다. 차가운 공기가 그녀의 몸을 가볍게 쓸면서 새벽의 싸늘함을 느끼던 그녀는 자신의 곁에 있는 누군가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고 있었다. 단단하고 따뜻한 남자의 품 안이었다.
‘으응... 누구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자신의 집에 누군가와 함께 잠을 잤다는 것은. 바쁜 일로 남자친구는 고사하고 원나잇 위주로 성생활을 즐겼던 그녀에게 지금 그의 옆에 자리한 남자는 의외의 존재였다. 미진은 덮여진 이불을 빼꼼히 열어 자신의 곁에 남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려한다.
거뭇거뭇하고 울퉁불퉁한 피부, 찢어진 눈, 넙데데하고 낮은 코, 두툼한 입술. 보기만 해도 역겨운 얼굴이다. 미진은 그가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리고, 깜짝 놀라 그에게서 몸을 멀리하였다. 가까이 다가가면 전염병에 걸릴 것 같은 존재. 그는 바로 이성진이었다.
‘아씨... 내가 왜 이런 놈이랑 같이 잠을 잔거지? 어제 분명 못 들어오게 했었는데...’
미진은 가만히 고민을 하다가 반대편에서 곤하게 잠든 현아를 바라보았다. 아마 그녀가 문을 열어준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취한 상황에서 그를 다시 불러 집 안으로 들여보낸 것이다.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지인들 가운데, 그나마 마음을 터놓고 지낸 그녀가 원망스러워진다. 미진은 갑자기 열이 받아 잠을 자고 있는 그들을 깨우려했다. 당장이라도 이 둘을 자신의 소중한 공간에서 내보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마음과는 다르게 몸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그를 꼴도 보기 싫었는데, 그에게 다가가는 손짓은 부드럽게 그를 쓰다듬고 있었다. 강하게 흔들어 깨우는 것이 아닌 애정이 담긴 부드러운 손길이 지금 성진의 몸을 매만지고 있는 것이다. 미진은 당황하고 있었다.
‘무, 뭐야... 내가 왜 이러지? 당장 내쫒아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몸이 이상해진 것 같아... 이 녀석 때문인가? 이 폐기물 때문에... 자, 잠깐! 뭐야... 불쾌한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 오히려, 멋있고 든든하게 보이고 있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혼란스러웠다. 그를 바라볼 때면 생기던 불쾌감도 이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듬직한 어깨와 쫙 빠진 몸매가 멋있고 다부져 보일뿐이다. 그를 마주하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 미진은 자신도 모르게 열이 뻗혀 손부채질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제의 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상관없으니까... 성진 씨, 마음대로 하세요. 저한테 쌓인 화를 풀어도 좋아요! 흐아앙...’
‘주인님. 감사합니다...!’
그의 물건에 박히면서 오히려 고맙다고 하는 자신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평소라면 남자에게 시킬 법한 멘트들을 막힘없이, 부끄러움도 없이 술술 내뱉던 자신의 입술. 쪽팔렸다. 아니, 지금이라도 당장 목매달아 죽고 싶은 심정이다. 현아와 짝을 이뤄, 남자들을 홀리고 다녔던 ‘섹시한 여우’의 자존심은 사그리 짓밟힌 상태였다.
“하아... 내가 정말 돌았나...? 어떻게 이런 녀석이랑... 참나, 많이도 쌌네.”
미진은 자조적인 말로 자신을 자책하다 자신이 누워있던 이불을 살핀다. 비릿한 냄새들로 끈적끈적한 느낌이 한 가득이다. 그녀의 뱃속도 마찬가지이다. 배가 약간 부를 정도로 정액들이 가득한 상태였다. 오죽하면, 아직까지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는 정액들이 흘러나오고 있을까... 미진은 은근슬쩍 자신의 배 위로 손을 올린다. 그리고 그곳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포만감에서 차오르는 느낌들이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 정말 어쩌지? 이것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네...’
생각지도 못한 고민에 머리가 아파온 그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하다가,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성진의 품 안에 다시 안기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얼굴만 문제가 있을 뿐이지 완벽한 남자이다. 거부감도 줄어든 마당에 미진은 그의 따뜻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다.
“으으으... 미진아, 깼어?”
“현아...? 지금 일어난 거야?”
“으응... 지금 몇 시야?”
“이제 5시. 그런데, 현아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성진 씨가 왜 우리 집에 와있는 거야?”
“일찍도 묻는다. 큭큭... 당연히 섹스를 하려고 불렀지.”
“정말... 너 때문에 죽는 줄 알았잖아.”
“나도 죽는 줄 알았어. 정말 천국에 다녀온다는 말이 뭔지 알았다니까?”
“큭큭... 맞아. 나도 이제 알겠어.”
그의 양 옆에 누워 대화를 하는 그녀들을 보면 세상 누구보다도 다정한 사이 같았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그림이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그런 어색함도 상쇄시킬 만큼의 자연스러움이 보이고 있었다.
“야, 너 어제까지는 성진이를 죽일 듯이 대하더니... 오늘은 어떻게 된 거야? 드디어 성진이의 위대함을 알게 된 거야?”
“...... 응...”
“히히, 너 이제 큰일 났다. 다른 사람이랑 잠자리는 글렀어.”
“그게 무슨 소리야?”
“말한 대로야. 성진이랑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이제 다른 남자는 못 만나. 너... 그 때, 기억나? 내가 한 창 기분이 다운되었던 시기.”
“당연히 알지. 그 때, 내가 네 기분 풀어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남자들도 막 꽂아줬잖아. 근데, 너는 다 별 볼일 없다고... 으응? 서, 설마...”
“맞아. 그 때는 성진이랑 섹스한 이후였어. 다른 남자랑 해보니까 아무 느낌도 없더라고... 그래서 내가 계속 꿍해 있다가 다시 성진이랑 한 판 했지. 그런데... 정말 미친 듯이 기분이 좋은 거야. 이제 나는 시집 다갔어. 솔직히 얘 곁에서 어떻게 벗어나냐? 섹스를 그렇게 좋아하는 내가...”
“에이... 설마... 신이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그럼, 다른 남자들이랑 섹스하고 와 보던지. 대신 내가 성진이한테 이를 거다? 경쟁자가 너무 많아. 혜영 언니, 수정 언니, 주희, 지영이, 성비서님, 사장님까지...”
“미, 미친... 정말 인간 맞아? 그 사람들이랑 섹스를 다했다고?”
“그런 것 같아. VIP라운지 멤버들 중에 민지랑 주현 씨를 제외하면 다들 한따가리 했지. 저번에 5P도 했었는데 무슨...”
몸이 자연스럽게 부르르 떨린다. 그런 엄청난 남자와 자신이 관계를 맺었다는 것에 흥분한 것이다. ‘Sex is Life’라는 신조로 살아온 미진. 그녀의 말이 맞다면, 아마 자신은 평생 그의 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자신을 제외해도 모든 여자들이 그의 곁에서 평생을 맴돌게 될 것이다.
“으으음... 여긴...”
“성진이 깼나보다. 성진아... 일어났어?”
“현아 누나...? 내가 왜 여기에...”
“어제 미진이 설득한다고 왔었잖아. 그리고 미진이랑 나랑 같이 섹스하고...”
“아, 그랬지...? 매일 자던 침대가 아니니까 뭔가 어색하네. 응? 대리님?”
정신을 차린 그는 현아와 잠깐의 대화를 나누면서 어제의 일을 상기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오늘도 역시 급하게 경훈이를 팔아서 하게 된 외박이다. 유경에게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그였다.
분명 하고 싶은 말이 많을 텐데도, 아무 말 없이 아낌없는 사랑을 나눠주는 그녀. 항상 소중했다. 지금도 그녀의 곁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잔 것이라 약간의 어색함이 들었다. 대화를 마친 성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자신의 오른팔에 누워있는 미진과 시선을 맞추게 되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리님...?”
“아... 성진 씨...”
“왜... 제 옆에...”
“그, 그게... 여기가 편해서요...”
독기 어린 표정으로 독설을 퍼붓던 그녀가 아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이 더해져 매우 순수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다. 지금도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의 품에 얼굴을 묻어버린다. 성진은 뭐가 뭔지 몰라, 현아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간단하지. 그냥 네 섹스 실력에 녹아버린거야. 얼마나 잘했으면, 너를 그렇게 혐오하던 녀석이 한 순간에 조신한 처녀가 되버리냐? 쟤도 만만치 않은 자존심의 여자인데... 이제 너 없으면 살지도 못할 거야.”
“왜?”
“내가 저번에 말했잖아. 너랑 한 번하면 다른 사람이랑 못한다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다 그럴걸?”
“그게... 정말이었어?”
“그렇대도?”
그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능력이 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그의 능력 중에 미처 알지 못하는 능력이 또 있을 수도 있었다. 성진은 뭔가 복잡한 심정을 느낀다. 책임감. 그와 한 번 섹스를 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다. 과거 지수가 한 이야기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여자들을 소중하게 대하라고...
분명 그 때는 무시했었다. 자신과 같은 얼굴에 그런 삶이 가당키나 하단 말인가... 반면, 지금은 자신의 능력이 점점 무서워지고 있었다. 그저, 아름다운 와이프를 만나 오순도순하게 가정을 꾸렸으면 했는데,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것 같았다. 정말 이러다간, 1000명의 여자를 데리고 사는 의자왕이 될지 모른다.
“작가 이 미친 새끼...”
“그게 무슨 소리야? 작가라니?”
“아... 왠지 그런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상한 말이 무심코 튀어나갔네.”
“에이... 싱겁기는.”
“그건 접어두고... 대리님, 지금은 제가 밉지 않으세요?”
“네...”
“저랑 섹스한 것도 후회 안하시고요?”
“...... 네.”
“하아... 좋아요, 그럼. 대리님... 아니, 미진이 너도 내 노예 리스트에 올려야겠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말을 짓거리는 성진. 처음 보는 사람이 그랬다면 매우 기분이 나빴을 테지만, 그라서 그런지 별로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박력 있고 남자다워 보였다. 미진은 얼굴을 붉히면서 또 한 번 몸을 가녀리게 떨기 시작한다.
“성진아, 설마... 나도 거기 들어있어?”
“당연하지. 현아 누나는 두 번째로 올라가있지.”
“에이... 뭐야! 첫 번째는 누군데?”
“혜정이.”
“응...? 성비서님이 아니라?”
“유경이 누나는 내 사랑하는 사람 리스트. 수정이도 일단 그 쪽에 있고.”
현아의 표정이 볼만해졌다. 그녀의 양 볼이 빵빵하게 부어올라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의 몸을 꽉 껴안아버리는 그녀.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조금 과한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다.
“아앙~ 왜! 나는 사랑하는 리스트에 없어~!!”
“왜긴... 아직 그런 느낌이 없으니까 그렇지... 불만이야?”
“불만이야! 노예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더 어감이 다정하고 좋잖아. 나도 사랑하는 사람 리스트에 넣어주면 안 돼?”
“...... .”
“아잉~! 가슴 만지게 해 줄게. 마음껏 나를 다뤄도 좋아. 나도 같이 사랑해 줘.”
“풋, 알았어. 생각해 볼게.”
“생각은 무슨! 그럴 때는 ‘감사합니다!’하고 예쁜 여자 말에 따르는 거야. 알았어?”
“예쁜... 여자?”
“표, 표정이 왜 이래? 내가 예쁘지 않다는 거야? 지금도 밖에 나가면 나랑 만나려고 줄을 슨다고.”
그와 섹스를 했던 여자들 가운데, 지수를 제외하면 유달리 튀는 사람은 현아였다. 다른 사람과 섹스에도 적극적이고 활달하여 행동반경이 넓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잘 통하는 만큼 다른 사람의 상황에 공감을 하거나 이해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그러기에, 그가 여러 사람과 섹스를 했다고 가장 먼저 털어 놓은 사람이기도 했다. 성진은 그런 그녀의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쥐며 그녀의 입술에가벼운 뽀뽀를 하였다. 그리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누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순위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지?”
“네 마음에 들어야겠지...”
“그렇지? 그럼 어떻게 해야 돼?”
“...... .”
“말해 봐. 누나는 내 취향 잘 알잖아.”
“주인님! 사랑해요. 저도 사랑해주시면 안돼요?”
영화 ‘슈렉’에 나온 고양이처럼 눈을 똘망똘망 뜨면서 잔망을 떠는 그녀였다. 성진은 그 모습을 보고 물건이 빳빳하게 발기가 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몸 위로 올라올 것을 요구하였다.
“누나, 내가 이래서 누나를 미워할 수 없어.”
“왜에~? 꼴렸어? 꼴려서 죽겠지?”
“그래, 꼴려서 죽겠다. 그러니까 누나도 죽을 준비해.”
“아흐응... 옆에 미진이도 있는데...”
성진의 품에 안긴 그녀는 현아와 성진의 시선을 받자, 가볍게 몸을 떨었다. 그것은 육식동물 앞에서 잡아먹히길 기다리는 초식동물의 모습과 같았다. 성진은 육식동물답게 그녀의 몸도 거칠게 만지며 현아에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걱정하지마. 오늘 둘 다 천국으로 보내줄게.”
“추, 출근은... 흐으응!!”
짧은 잠을 자고 다시 성욕의 늪에 빠져가는 남녀들. 그들은 출근을 앞 둔 1시간 전까지 쾌락을 느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 뒤, 후들거리는 다리로 출근을 하기 위해 미진의 집을 나선다. 물론, 성진과 현아의 옆에는 미진도 함께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