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한 번 하면 각인이 되어버리는 남자. (1) (47/100)



〈 47화 〉한 번 하면 각인이 되어버리는 남자. (1)

- 제 47  -



열흘 뒤, 점심시간의 VIP라운지의 직원 휴게실. 깨끗한 소파와 테이블 위에 차려진 다과, 갖가지 음료& 과일들이 가득한 냉장고가 눈에 띈다. 고급 에스프레소 머신까지 있어서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는 곳. 지금 그 곳에서는 행정 스텝 선후배인 미진과 민지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요즘...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요?”

“아니, 폐기물 들어오고 나서부터 우리 VIP라운지 돌아가는 분위기가 수상쩍잖아.”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봐봐, 폐기물 들어올 때 누가 호의적인 사람이 있었어? 없었지. 원장님도 반대했다고 그랬고, 우리들 가운데서 실장님이나 현아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잖아. 주현 씨나 지영 씨. 그리고 우리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분위기가 180도 바뀐 것 같아. 너도 아까 봤지? 실장님이 도시락 싸온 거. 가끔 다이어트 하신다고 샐러드랑 닭 가슴살을 싸온 것은 봤어도 내가 9첩 반상을 싸온 것은 처음 봤어.  통을 뭐로 만들었다 했었지? 대나무로 만들었다 했나?”

“아니요. 편백나무인데, 시중에 팔지도 않는 거래요. 무슨 장인이 정성스럽게 만든 도시락 통이라는데...”

“어머어머... 정말이야? 그럼 돈도 엄청 썼겠네?”

“그렇대요. 음식들도 하나같이 화려한데 직접 만들었다고 하고...그걸 폐기물 먹이려고 싸가지고 왔나 봐요.”



커피가 든 머그컵을 손에 들고 그들은 이야기에 열중이었다. 대충들어보면 누군가의 흉을 보는 듯  그들의 말투가 느껴진다. 목소리까지 낮추고 계속 휴게실 문이 있는 쪽을 쳐다보는 것을 봐서는, 다른 사람이 들으면안 되는 내용들인가 보다.




‘끼익’

“여기들 계셨네요.”


“아휴... 깜짝이야. 주희 씨랑 지영 씨네? 식사는 하고 왔어요?”

“이따가 1시 10분에 예약이 잡혀서 구내식당 다녀왔죠. 뭘...”


“불쌍하네요. 오늘 ‘프띠프띠’에서 고급 디저트 세일하던데... 나가면서 하나씩 사오지.”


근처에 있는 정통 프랑스 제과를 표방한 제과점에서 행사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민지의 말에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던 지영은 잔뜩 아쉬운 표정으로 말을 꺼내고 있었다.


“저도 알고 있었는데... 어쩔  없죠. 끝나고 가면 다 팔렸겠죠?”

“우리가 좀 사왔으니까 이따 퇴근 때 나눠줄게요.”

“우와~! 고마워요! 정말 먹고 싶었는데...


“뭘요. 이 정도쯤이야.”


“아, 근데... 언니들은 무슨 이야길 그렇게 하고 계셨어요? 저희들 오니까 깜짝 놀라던데.”


“뭐... 폐기물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실장님이 싸온 도시락에 대한 것들이요.”

“어머머... 저도 봤거든요. 실장님이 싸가지고 온 도시락. 무슨 폐기물에게 그렇게 지극정성인지 모르겠다니까요.”

“원장님은 어떻고요. 실장님이 어제부터 도시락 싸오니까, 자기도 싸오셨잖아요. 무슨 장어구이에 버터전복구이, 낙지호롱구이... 디저트는 복분자 디저트였어요.”


“정말... 뭐가 이쁘다고 그런 놈한테 그렇게 잘해주는 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럼, 오늘은 원장님 사무실에서 그 셋이서 점심을 먹은 거예요?”


“주현 씨도가서 먹은 것 같던데...”

“아휴... 민지야. 주현이도 좀 관리 해야지. 애를 그렇게 놔두면어떡해?”


“실장님께서 데리고 다녀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도 제가 계속 세뇌시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마세요.”

‘덜컥’


또 누군가 휴게실에 모습을 드러낸다. 섹시하고 요염한 외모가 특징인 현아였다. 그녀는 오늘도 잔뜩 표정이 굳은 상태로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고객들에 응대할 때는 아니었다. 이렇게 일이 없는 시간에만 그런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아야. 왔어? 커피 줄까?”

“아휴... 그래. 미진아, 하나 줘봐.”


성진으로 인해 생겼던 다툼 이후, 그녀들은 화해를 했었다. 본래 죽이 잘 맞던 그녀들이기도하고 현아가 워낙 털털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서 다시 원래의 관계로 되돌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미진은 다시 친구를 대하듯이 살갑게 그녀를 대하고 있었다.



“하아... 고마워.”


“현아야. 요즘  이상해.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고민은 무슨... 그냥 힘들어서 그렇지.”


확실히 이상했다. 항상 활달하던 그녀가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아저씨들이나 내뱉을 한숨을 푹푹 쉬는 것이 뭔가 고민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친한 친구이자, 취미를 공유하던 미진도 괜히 그 모습이 안쓰러워 마음이 착잡하다. 미진은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어제 있던 일을 꺼내 그녀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야, 어제 그 남자 어땠어? 잘생긴 백인 애 말이야.”


“우와... 선배님, 어제 한탕 뛰고 오셨나 봐요?”

“뭐... 기분 전환 좀  겸? 어제 강남에 있는 클럽에 다녀왔어. 어제는 물이 좀 괜찮아서 외국인 몇  건졌지?”

“그래서요?”

“뭐가 그래서야. 건지면 바로 자빠뜨리는 거지. 크큭... 나랑 만났던 외국인 애는 미국 흑인이었는데, 완전 대물에 스킬까지 빠방했다니까. 그런데, 내가 누구야. 최미진 아니야. 내가 어제 반쯤 죽여 놨지.”



민지와 주희은 그녀의 말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남자들이나 여자들이나 서로 하는 생각들은 비슷한지, 서로 오고 가는이야기들의 내용은 하나 같이 음탕해 보인다. 성별만 바뀌었어도 하나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진하고농후한 그런 이야기였다.



“아... 좋긴 좋았어... 야, 현아야. 어제 네가 데리고  백인 남자애도 힘 좋아 보이던데... 너는 어땠어?”

“그냥... 별로였어. 느낌도 안 나더라.”


“에이... 나도 눈이 있는데,  애 물건도 내가 만났던 남자랑 비슷했을 거 같은데?”


“정말이야. 별로 느낌도 안 오더라.”




미진의 말에 현아는 바로 어제의 일을 떠올린다. 섹스를 좋아하는 그녀들답게 각자 남자를 끼고 방을 잡았던 그들. 현아도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자신의 파트너인 백인 남성과 함께 했었다. 방을 잡고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격정의 몸짓으로 서로 애무를 주고받던 그들은 이내 흥분하여 섹스를 했던 기억이있었다.



분명 그 녀석의 물건은 두께도 굵고 길이도 좋았었다. 파워는 물론 테크닉도 괜찮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만족을 주지는 못했다. 요즘 들어 생긴 불감증을 외국 남성 역시, 해결해주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녀는 연기만 잔뜩하다, 피곤에 지친 채로 집에 갔던 기억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지? 옛날 같으면,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크기인데... 내가 미쳤나? 아니면 병에 걸린 건가...? 아... 정말 모르겠다.’




현아는 깊은 고민에 잠긴 채, 고개만 까닥까닥 움직이고 있었다. 의욕도 없고 살아갈 희망도 없어진 모습이다. 미진도 뭔가를 더 이야기하려다가 말 정도로그녀의 표정은 어두워 보인다. 삶의 양식과도 같았던 섹스의 즐거움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



“원장님, 실장님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고급 한정식식당을 차려도 될 만큼요.”


“그래요, 주현 씨.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워요.”


“저도 고맙네요. 별로 한 건 없지만...”



5명의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잡담을  때 쯤, 원장 사무실에 있는 4명의 사람들도 거의 식사를 마쳐가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위치한 원장을 중심으로 그녀의 왼쪽에는 성진이,오른쪽에는 수정과 주현이 자리하였다.
그 가운데 테이블에는 도시락의 빈 통들이 여러  쌓여 있어, 음식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가득하였다. 처음엔  양도 꽤 많아 보였는데, 누구의 뱃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두 사라진 상태이다.




“후르릅... 저도 잘 먹었습니다.”


‘움찔...!’


‘움찔...!!’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을 입 안에  털어 넣고, 성진은 근처에 있는 삼계탕 국물을 호로록 들이킨다. 그리고 자신을 똘망똘망한 눈으로바라보는 두 명의 여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자, 그 말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여인들의 몸이 가늘게 움찔하는 모양새이다.





“흠흠... 성진 씨. 어땠나요? 제 도시락 맛은 괜찮았나요?”

“서, 성진 씨? 어제보다 더 신경 썼는데...입맛에는 맞나 모르겠어요. 맛은 어떠셨어요?”






두 명의 여자들이 성진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몹시도 부담스런 상황이다. 옆에 자리한 주현까지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그 정도는 상당히 치열해 보인다.



“듣고 싶으세요?”


""네.""

“좋습니다. 그럼 맛만 가볍게 평가를 해드릴게요. 원장님의 것은 탱글탱글하면서 씹는 맛이 일품이네요. 특히, 깊은 맛이 우러나는 국물은 일품입니다. 누구의 것처럼 말이죠.”


“...... .”


“다음으론 실장님의 것은... 쫄깃쫄깃하면서 쫀득한 느낌이 아주 좋았습니다. 코로 올라오는 향기도 달콤하고 더 먹고 싶은 향이네요.”


“성진 씨? 원장님의 것에서 탱글탱글한 식감의 음식은 없는 데요? 실장님의 것에서도 역시 쫄깃하고 쫀득한 식감을 가진 음식은 없었고요.”

“...... .”



주현은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그의 시식 평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말했던 탱글탱글한 식감을 가진 음식과 쫄깃, 쫀득한 음식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대충 엇비슷한 것을 치면 전자는 과일이 되겠고, 후자는 떡이 떠오르는데 모두 그러한 음식은 없었다. 디저트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혜영과 수정은 얼굴이 벌건 상태로 고개를  숙인다. 그가 말하는 시식평의 오묘한 의미를 왠지 알아들은 것 같아서였다. 혜영이 들은 탱글탱글한 것은 그에게서 언젠가 들었던 가슴에 대한 이야기였고, 깊은 국물 맛은 애액에 대한 감상평이었다. 수정이 들은 쫀득하고 쫄깃한 것은 그녀의 조임에 대한 것이고, 향기는 그녀의 음부에 대한 향기를 말했다. 즉, 그가 말한 시식 평은 그녀들의 ‘신체’에 대한 시식 평이었던 것이다.



“흐음... 어때요? 만족 하셨나요?”

“네... 고마워요. 주이... 아니, 성진 씨.”

“제가 그런 느낌을 드릴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네요. 저야 말로 고맙습니다.”


“???”


주현은 그녀들이 말한 것을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화에 끼고 싶어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가급적 이해할 필요가 없기도 하였고, 남자친구가 있는 주현이 이해해서도 안  말이었지만...
성진은 그 이야기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이동한다. 주현도 혜영과 수정에게 인사를 한 뒤, 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성진 씨. 방금 하신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이에요?”

“무슨... 아! 시식 평이요?”

“네, 저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궁금해서 그러는데, 알려주시면 안 돼요?”





데스크에 들려 자신의 양치도구를 꺼내던 그는 슬며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현은 그의 흉한 얼굴이 자신을 향하자 몸을 가볍게 떨었지만, 이제 적응이 돼서 그런지 버틸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그녀의 노력은 성진의 눈에도 여실히 보이는 것들이었다.


“궁금해요?”

“네! 정말로 궁금해요.”

“알면 큰일 나는데... 그래도 정말 알고 싶나요? 온 몸(?)을 다해서요?”

“알고 싶다니까요. 온 몸(?)을 다해서요.”





160초반의 그녀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니, 무척이나 귀여워 보인다. 처음에는 유경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가면 갈수록 귀여운 동생의 느낌이 드는 그녀. 자신보다 3살이나 누나였지만 그 귀여움은 숨길 수가 없을  같았다. 남이 보면 역겨울 법한 미소를 짓던 성진은 양치도구를 챙기면서 슬쩍 그녀의 양쪽 볼을 살짝 꼬집어버린다.


“그건, 비밀.”


“우아앙, 씅진 띠!”

“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너무 귀여워서 그만...”

“무, 뭐에요! 제가 성진 씨보다 3살이나 누나인데~!”


많이 친해진 모습이었다. 갈굼을 당하던 성진이 안쓰러웠던 주현은 그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었고 이렇게 가벼운 스킨십을 하는 사이까지 발전이 된 상황이다. 주현의 투정에 성진은 그녀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은 다음, 재빠르게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누나, 미안해요. 크큭...”


“아앗...!”

‘덜그덕.’




주현을 피해 달아나던 성진은 남녀 화장실이 갈리는 곳에서 현아와 몸을 부딪쳤다. 그러자, 그의 손에 들려있던 양치도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성진은 재빠르게 그것을 주워들고 현아에게 사과를 하였다.


“미안합니다. 현아 씨, 어디 다친 데라도 있어요?”

“...... .”

“없나요? 하아... 오늘도 말이 없네요. 혹시나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파스 같은 거라도 사다드릴게요.”


그녀와 관계를 가진 뒤에 항상 말이 없는 그녀이다. 성진은 그것을 깨닫고 괜히 말을 꺼냈다며 속으로 자책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에게 사과는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는 성진.
그것을 끝으로 몸을 돌려 화장실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현아는 그가 들어간 화장실 입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도  시선은 한 동안 계속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