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불감증 그녀를 몸으로 치료하다. (1)
- 제 43 화 -
다음날, ‘Venus Beauty Shop’ VIP라운지. 오늘도 어김없이 성진을 타박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스트레스가 쌓인 민지와 성진을 혐오하던 주희가 중심이 된 상태다. 그리고 미진과 지영이 그런 그녀들을 조금씩 옹호하면서 갈구는 분위기가 완성되고 있었다.
“성진 씨! 아직도 이걸 못했어요? 하아... 정말 일못하네...”
“정말요. 그냥 가볍게 홍보 프로모션으로 전화를 돌리면 되는데, 이것도 제대로 못하네요.”
“맞아요.”
“호호, 그런 것 같아요.”
성진은 자신의 손아귀에 쥐여진 200명의 명단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VIP단계의 밑인 골드와 실버등급 가운데, VIP로 승격할 만한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자신이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바로 VIP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돈을 샵에 사용해야 VIP이상이 될 수 있었다. 성진은 마케팅의 일환으로 좋은 조건에 VIP고객이될 수 있도록 그들에게 홍보하는 임무를 받은 것이다. 그것은 3시간 만에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몇 분이나 하셨어요?”
“이제, 72명입니다.”
“3시간이 지났는데... 그것 밖에 하시면 어떡해요!”
“...... 고객님들이 관심이 많으셔서 상담 좀 해드리느라...”
“참나... 그게 자랑이에요? 그럼 그분들 가운데 VIP조건으로 ‘재가입 하겠다.’ 하시는 분이 얼마나 되는데요?”
“그런 분은 아직 없었습니다.”
“거봐요. 그러면 지금까지 뻘 짓을...”
“그런데, 28명 정도가 VIP등급에 관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그래서 따로 상담약속 잡아놨습니다.”
“...... .”
민지는 그에게 준 명단을 빼앗아 고객들의 이름과 직업을 살펴보았다. 분명 자신과 다른 직원들이 전화를 했을 때,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다. 그에게는 망신을 한 번 당해보라고 일부러 쥐어준 명단들... 그런데, 성진은 보란 듯이 28건의 상담예약을 잡아버리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흠흠! 저, 정말인가요? 1주일 전에도 저희가 다 전화를 돌린 분들인데... 거짓말 하시는 거면 호, 혼나요!”
“아... 그래서 많은 분들이 화를 내신 거군요. 민지 씨, 거짓말은 아닙니다. 못 믿으시겠으면 여기 표시된 부분으로 전화를 해보셔도 됩니다.”
“하! 좋아요. 누가 못할 줄 알고...!”
다급한 모습의 민지는 그를 밀치면서 앞에 있는 전화기를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는 그들 가운데, 번호 하나를 눌러 그가 한 말이 거짓이 없음을 확인하려했다.
“아, 고객님... 예... 다름이 아니라 예약 확인전화 드렸어요. 네네... 그렇죠. 아, 알겠습니다.”
‘덜컥’
나라를 잃었다면 어떤 표정이었을까? 아마도 지금 민지의 표정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벌리고 있는 그녀는 성진을 독기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볍게 쏘아붙이는 것은 덤이었다.
“참나... 운이 엄청 좋은가 봐요? 저희가 1주일 전에 전화를 드린 것 때문에 고민하시다가, 성진 씨가 전화하니까 상담을받아보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요.”
절대로 칭찬 한마디는 없었다.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만 있을 뿐. 성진은 그녀의 말에 무표정한 얼굴로 무시를 하려한다. 이제 하도 들어서 면역이 된 상태이다. 물론, 마음은 매우 아팠지만...
“저기, 민지 씨. 성진 씨를 칭찬해주지 못할망정... 지금 그게 무슨 말버릇이에요?”
민지가 다시 독설을 시작하며, 성진에게 일을 재촉하려할 때였다. 담당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끝난 현아가 행정 스텝들이 위치한 데스크로다가오고 있었다. 마사지를 하다 와서 그런지 그녀는 손목을 돌리는 모습이었는데, 그것은 마치 싸움을 준비하는 여전사의 그것과 같아 보인다.
“혀, 현아 씨...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아니, 가만 보니까... 성진 씨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자꾸 민지 씨는 거기에 헛소리를 하고 있잖아요. 3시간 동안 200명 가운데 72명, 그리고 상담 예약은 28명. 괄목할 만한 성과 아닌가요?”
“이, 이건 일주일 전에 저희가 미리 밑밥을 깔아놓아서...”
“에이, 말은 바로 하셔야죠. 저도 그 때 지나가면서 봤는데, 1분은커녕 10초도 말 못 거는 전화가 수두룩 하더만... 그런 페이스라면 3시간에 200명. 아니, 500명은 가능하겠어요.”
“...... .”
전투력이 바짝 오른 현아가 성진을 옹호하면서 민지를 견제하고 있었다. 이를 앙다물며 성진을 보던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민지. 현아는 여유 있는 표정을 지어 그것을 가볍게 넘기더니, 이내 성진을 흘끗 쳐다보았다가 민지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다.
‘현아 씨. 어제는 정말 미안했어요. 제가 좀 심했던 것 같은데... 사과드릴게요.’
그녀의 태도에, 성진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상기시켰다. 지수의 부름으로 그녀를 VVIP실에 버려두듯이 달려간 것이 몇 시간 전이었다. 성진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녀에게 사과를 건넨다. 하지만, 현아는 아무 대답 없이 성진을 올려다보다가, 직원 휴게실로 이동하여 잠시 눈을 붙이는 것 같았다. 그런 뒤, 일은 시작되었고.
그랬던 그녀가 이제 자신의 편에 서서 분위기를 주도한 것이다. ‘이런 적은 처음이야!’라며 반하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알 것 같기도 한다. 처음으로 받아 본 호의에 성진은 감동하고 있었다.
“그만, 그만... 현아야. 민지도 의욕이 넘치니까 그런 거지. 그러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흥분을 한 거고. 이해 좀 해주라. 응?”
민지와 현아가 대립각을 세울 때, 민지의 전 사수이자 행정스텝인 최민지 대리가 그들 사이에 껴들었다. 주현이 말하기로 현아와 자주 어울리는 사이라 친한 모양인지, 곧 바로 편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미진아, 너는 가만히 있어. 솔직히 말해서 성진 씨, 일 엄청 열심히 하고 있잖아. 오늘도 그렇고 손 편지도 그렇고... 그것을 어떻게 하루 만에 다하냐? 손 편지만 하더라도 혼자 하면 1주일은 걸리겠다. 근데, 성진 씨는 이틀 만에 완성했잖아. 그것도 완벽한 퀄리티로.”
“신입인데,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패기? 미진이 너는 ‘혹사’라는 단어를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이게 정말... 말 다했어?!”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져 갔다. 베프라던 그들의 사이도 성진이라는 존재로 인해 깨지기 일보직전이다.
“무슨 일이에요! 도대체.”
“아, 원장님...”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시끄러운 거예요? 고객님들이 다 신경 쓰시잖아요. 피부 관리를 받고 있는 분들도, 대기실에 있던 분들도 저기 보이는 거 안보여요?”
""죄송합니다...""
“이럴 때, 이 실장은 어디 갔어요?”
“잠시, 행정실로 갔다 오겠다고 했습니다.”
“휴... 이럴 때, 이 실장이 통제를 했었어야 하는데... 여러분. 여러분들은 Venus Beauty Shop의 얼굴들이에요. 고객님들 계신 곳에서 경거망동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후에 정확히 짚고 넘어갈 테니까 그런 줄 아세요. 그럼, 다들 일 보세요. 아휴... 고객님들 죄송합니다...”
혜영은 소란스런 행정 데스크를 정리하고 근처에서 구경을 하던 고객들을 다시 대기실과 각 피부 관리실로 들여보낸다. 도대체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구경을 했을까. 데스크와 고객 대기실, 그리고 VIP실들은 적어도 5M 이상 떨어진 곳들이었다.
“흥! 민지야. 너는 잘 못한 거 없어. 그러니까 기죽지 말아.”
“네, 선배님.”
“야, 최미진. 보자보자 하니까...”
“여러분! 제가 방금까지 한 말 못 들었나요?”
성진의 앞에선 순한 어린 양인 그녀가 야차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고객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데스크의 언성이 높아지려 할 때, 주의를 주는 그녀이다. 그 덕분에 모두 입을 꾹 다물어버리게 되는데... 그들은 몇 분 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기만 하였다.
*
“성진 씨. 현아 씨... 아까 보니까 정말 대단하지 않았어요?”
하루에 한 번씩 청소와 재고 조사 같은 관리를 해주는 VVIP실. 성진은 갓 수습 딱지를 뗀 주현과 청소를 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혼자 VVIP실을 청소하고 있었겠지만 이수정 실장이 상황을 전달받은 이후, 주현을 동행하게 하여 VVIP실의 관리를 맡긴 것이다.
“뭐... 대단하긴 했죠.”
“아니... 김민지 선배를 한 번에 제압하고 최미진 대리까지 붙어도 꿀리지 않는 그 박력. 정말 멋있었다니까요. 걸크러시~!”
무언가 만족스러운 모습의 주현이다. 그녀는 밀대 질을 하고 있었는데, 전투력이 높았던 현아의 모습을그리며 사랑에 빠진 여자의 얼굴을 한 상태이다. 그녀가 자신의 롤모델인 것 마냥 행동들을 따라 하기까지 하는 것이 무척이나 귀여운 행동들이다.
“주현 씨. 그렇게 현아 씨가 좋아 보였어요?”
“그럼요! 저는 약간 소심한 편이라 평소에 할 말이 있어도 다 못해요. 솔직히 저도 선배들이 성진 씨에게 하는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혼자 끙끙 앓고 있었다구요. 그런데... 현아 씨는 남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하잖아요.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하하... 여기 제 편이 하나 더 있었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아, 아니에요. 선배들이 너무 심하게 하는 편이라 당연히 들 수밖에 없는 생각들이었어요. 과도한 업무량을 짧은 시간에 끝마치도록 하잖아요. 더군다나 신입 직원한테... 그건 아마 선배들도 못할 걸요?”
“그런가요? 저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데...”
“우와... 저는 꿈도 못 꾸는 일이에요. 그저, 업무들을 바라만 보다가 펑펑 울었을걸요. 그러고 보면, 성진 씨는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선배들이 그렇게 쪼는데 잘 버티고 있고... 아, 이건 비꼬는 거 아니에요! 그, 그리고... 일처리도 확실하고. 손 편지도 보니까 유려한 글씨로 잘 썼던데요. 정말 대단하세요.”
괜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진다. 성진은 그녀의 말에 더 이상 말대꾸를 하지 않고 묵묵히 일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스마일 복면과 중절모를 쓴 채로 열심히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으응...? 이거 뭐지? 바닥에 무슨 하얀 액체 같은 게 있네...?”
“?!!!”
“끈적끈적 하기도 하고... 화장품인가?”
“아, 아!! 주현 씨. 밀대 질은 힘드니까 안에서 재고나 확인해주세요. 그, 그건...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아... 그럴까요? 근데... 저게 뭔지 궁금하네요. 계란흰자 같기도 하고...”
끝까지 관심을 놓지 않는 그녀이다. 성진은 그녀의 등을 떠밀어 VVIP실 전용 상품들이 보관된 창고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어제의 흔적들을 말끔히 지워내고 있었다. 그의 정액과 현아의 애액이 섞인 그것을 최선을 다해 인멸을 시도한다. 그리고 또 그런 것이 없나 열심히 청소를 하는 그였다.
“성진 씨. 아주 청소를 열심히 하시네요.”
현아와의 흔적을 없애려고 빡세게 일을 하고 있던사이, 누군가가 올라와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바닥에 있는 잔해들을 확인하던 성진의 시선도 그 목소리를 듣고 VVIP실의 문이있는 쪽으로 향하게된다.
이수정 실장. 그녀가 와서 그에게 칭찬을 건넨 것이다. 항상 무표정하고 침착하던 모습만 보여주던 그녀였기에 자신을 칭찬하는 그녀를 보고 성진은 당황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복면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 어쩌지. 현아 씨가 청소를 하긴 했는데, 꼼꼼하게는 하지 않은 모양이야. 그러다보니 약간의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실장님이 발견하기 전에 어서 그녀를 내보내야겠어. 주현 씨도 마찬가지고...’
“시, 실장님. 여긴 무슨 일로...”
“아까 데스크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잠깐 위로 차 방문했어요. 많이 힘드시죠?”
냉미녀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얼굴이다. 성진을 위로하기 위해 왔다는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무엇보다 차가워 보였다. 위로를 한다는 사람의 얼굴 같지 않은 것이다. 허나,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투영하는 것인지 까지는 미처 판단을 하지 못하였다. 그 정도로 그녀는 VIP직원들 가운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이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나름 즐기면서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가요? 그러면 다행이네요. 일도 잘하셔서 직원들 괴롭힘에 그만두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럼 당신이 커버를 쳐주던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도는 성진이다. 이렇게 와서 자신의 속만 박박 긁어대는 것 같으니, 그녀가 자신을 위로하러 왔는지, 놀리러 왔는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렇죠...”
“실장님, 그럼 하실 말씀은 다 끝나신 건가요? 제가 아무래도 일이 바빠서... 또 늦으면 혼날 것 같거든요.”
자꾸만 현아와의 흔적들이 신경 쓰였다. 성진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그녀를 빨리 내보내려한다. 이수정 실장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VIP라운지로 내려가려고 하였는데... 뒤를 돌아 다시 그에게로 다가왔다.
“실장님, 더 하실 말씀이라도...”
“아, 현아 씨가 그러는데... 성진 씨가 그렇게 마사지를 잘하신다면서요?”
“뭐... 그냥 조금 하는 정도이죠.”
“원장님도 그러셨고, 실력이 좋으신 것 같은데요 뭘... 저도 한 번 받고 싶은데...”
“언제든지 말씀만 하시면 가능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모시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일 끝나고 뵙는 걸로 해요. 그 때가 시간이 남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VIP라운지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단발 커트에 전체적으로 차가워 보이는 인상. 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면서 그녀에 대한 생각을 이어간다.
‘이 실장님은 또 무슨 맛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