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그의 운명, 데미갓 (5) (6/100)



〈 6화 〉그의 운명, 데미갓 (5)

- 제 6 화 -


“허억... 허억... 휴우...”


“어때, 조금 진정이 됐어?”

“.......”


“뭐... 나도 그런 방법에 대해서는 정말로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이것도 강도를 많이 줄인 방법이야.”

“그게 무슨...?”

“네가 봤을 때는 어때? 헤라님께서 좀 과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가정을 수호하는 여신이라는 분이 10명의 여자랑 사랑을 하라니 뭐라니.”


“조, 조금은요...”

“그래. 아무리 제우스님의 다른 자식이어도 과거에는 적당히 괴롭히거나 헤라클래스와 같이 충분히 달성할만한 벌(?)을 주기도 했었어. 그런데 말이야...”





헤르메스는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과거 신탁에 대한 이야기나, 그 신탁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신들의 자식들에 대한 비극들을 자조적으로 풀어 놓았다. 그러한 비극은  30년 동안 헤라에 의해서 자행이 되고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미갓이 바로 성진이라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 그럼... 저는  다른 데미갓들처럼 바로 죽이지 않은 것이죠?”

“아마도... 운명의 여신들이 점지한 그 신탁의 마지막 당사자라 그런 것이 아닐까?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헤라님께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데미갓에 대해서 다른 때보다 집착이 심해보이는 것 같아.네가 이런 얼굴을 가지게 되었고 그런 운명을 타고난 원인이 그 집착 때문에 이루어 진  같다.”

“그럼 저는 거의 100% 죽은 목숨이라 봐도 무방하군요. 그렇다면 자살이라도...”

“그것도 힘들 거야. 헤라님이 네가 그런 짓을 하도록 가만히 계실 분도 아니고. 어떻게라도 살려서  비참한 운명의 길을 걷도록 만드실 분이 바로 헤라님이거든. 질투도 엄청 심하고 말이야.”


“...... .”


“그렇다고 그렇게 기죽을 필요 없어. 내가 봤을 때는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까.”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털썩 주저앉아 버린 성진은 이어지는 헤르메스의 말에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아 애처로운 눈길을 보낸다.



“저, 정말로요?”

“그래, 아주 어렵겠지만... 99.99% 불가능한 일지만... 0.01%가남아 있잖아?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야. 원래는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하려고 하셨다니까?”

“어떤 방법이요...?”


“뭐였더라... ‘주식으로 1000조를 벌어라.’, ‘축구, 야구, 골프 등 서로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 각각 우승을 해라’, ‘여자 1억 명과 섹스를 해라.’ 등등... 너무 해괴한 해결책에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어이가 없었다고. 그나마 ‘10명의 여자와 사랑을 하라’는 게 쉬울 것 같았거든.”


“아, 아니... 다른 것은 그렇다고 쳐도, 여자 1억...명은 조금 너무한 것 같은데요. 물론 10명의 여자와 사랑을 하라는 것도 이해가 쉽게 되지 않지만요.”


“아마... 네 얼굴을 그렇게 만든 의도이지 않을까? 특히 요즘에는 외적인 것을 엄청 중요시하잖아. 네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그렇고.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얼굴이 그렇게 혐오스럽다면 10명은커녕 명의 사랑도 얻기가 힘들 테니까...”

“헤르메스님! 방금까지 희망을 가지라면서요!”


“아하하... 냉정하게 말해서 그렇다는 거고, 70억 인구 중에 나름 특이 취향인 사람이 있지 않겠어?”



멋쩍은 듯 웃음을 짓는 헤르메스를 보고 성진은 정말 최악이라 생각했다. 그나마 가장 낫다고 하는 것조차, 성공할 확률이 0%에 수렴하는 방법이라니. 지금 그의 상태로는 절대로 불가한 방법이라 느껴졌다. 그러자, 자신은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희망으로 빛이 났던 성진의 두 눈은 점점 초점을 잃어간다.



“나도 그런 헤라님의 결정이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성진아. 너는 제우스님의 아들이야. 어떤 위기가 와도 충분히 해쳐갈 수가 있을 거야.”


“모르겠어요. 제가 그럴 수나 있을지...”



헤르메스는 살아갈 의욕을 잃은 듯  성진의 말에 가벼운 딱밤을 먹인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를 잡아 두 눈을 마주쳤다.



“아악!”

“이 녀석,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어쩌자는 거냐? 사내자식이 말이야.”

“아야야...”

“성진아, 내가 계속 힘을 내라, 포기하지 마라...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야. ‘데미갓의 각성.’ 바로 그거지...”


“그게 무슨 말씀이죠...?”


“자신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는 분의 특성이 발현되는 것. 그게 바로 ‘데미갓의 각성’이야. 예를 들면, 헤라클레스의  무지막지한 힘이 바로 그 증거지. 제우스님은 신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사이시거든.”


“그럼... 저는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을까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전기’를 다루는 능력 같은데...?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도 주위에 스파크들이 방전되고 근처 나무에도 번개가 쳤었어. 그건 네가 각성 이후에 전기를 발산하다보니 그런 현상이 생겼던 거야.”




그의 말을 듣던 성진은 시선을 돌려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전기는커녕 매끈한 손만 자신의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뭐지...? 아무런 변화도 없는것 같은데... 자, 잠깐... 혹시 내가 나무에 주먹을 내리 꽂을 때, 몸속에서 느꼈던 것을 말하는 건가? 뭔가 찌릿하고 소름이 돋았던 그 때 그 상황 말이야.’



상식 밖의 일에 놀랄 법도 하지만, 성진은 침착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갔다. ‘데미갓의 각성’이란 자신의 능력.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헤라의 저주에 어떻게 맞설지.  자신의 얼굴이 주는 마이너스의 요소를 극복할지 등등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흐음... 이쯤하면 위로가 많이 되었을까? 나도 슬슬 가볼 시간이라서 말이야.”

“...... 자, 잠깐만요.”

“그래, 또 궁금한 것이 있니?”

“헤르메스님께서는 제가 ‘전기’를 다룬다고 하셨는데... 지금 당장 체감되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서요. 방금 전처럼요.”

“아... 그건, 내가 아까 먹였던 만병통치약 때문이야. 너의 상처도 치료해 줬지만, 너의 제어에서 벗어난 능력을 봉인해주는 역할도 하지.”

“그럼, 그 능력은 영원히 봉인되는 건가요?”

“완전한 봉인은 아니고, 약 1년 정도 기간만 봉인이  거야. 그러니, 너도 다시 각성이 되면 당황하지 말고 그 능력을 다루기 위해 노력해봐.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말이야.”


“휴... 그렇군요. 저기, 헤르메스님.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뭔데?”


“아버지... 아니, 제우스님은 제가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누구나 궁금할 법한 이야기이다. 자신이 태어나는 것에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오지도 않는 부정한 아버지가 자신의 존재를 알고는 있는지 궁금한 그였다. 그의말을 듣던 헤르메스는 성진의 어깨위에 손을 올리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대답을 건네고 있었다.


“모르고 계실 거야. 뭐... 알고 있다고 해도 너를 도울 명분도 딱히 없지만 말이야.”


“그, 그렇군요...”


“왜 이렇게 풀이 죽어있어? 너무 기죽지 말고... 너라면 충분히 헤라님의 저주를 이겨낼 수 있을 거야. 알겠지?”

“네...”


“그래, 내가 너무 말이많아서 쓰잘대기 없는 정보를 준 것 같은데... 이만 가봐야 겠어. 아마, 또 볼 일이 있을 거야. 그럼,  있어라.”




그 말을 끝으로 헤르메스는 번쩍하는 빛과 함께 자취를 감춘다. 고요해진 주위의 시야. 매섭게 오던 비와 진눈깨비는 그친지 오래되었고 차가운 주위의 공기만이 그의 몸을 감싸오고 있었다. 성진 외에  누구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번개에 갈라진 나무와 쑥대밭이 된 그의 주변을 통해서 무슨 일이 있었다고 짐작할 수가 있었다.


‘내가... 제우스의 아들이란 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은 뒤, 성진은 아무런 말없이 뒷산의 산책로를터벅터벅 내려간다. ‘아르바이트를 구하려다 성폭행 사건에 휘말린 일’ ‘구타를 당했던 일’ ‘고아원원장님의속마음을 듣게 된 일’등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자신이 신의, 그것도 제우스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서 전에 겪었던 일은 그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고 있었다.





‘신수저.’ 그 생각을 하니 성진은 자신이 기댈 곳이 생긴 것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낀다. 자신이 믿었던 원장이란 거목이 사라진 이상, 믿고 의지할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식으로 헤라가 저주를 내리든지 간에 ‘자신의 능력’은 큰 힘이  것이 분명했고, 때문에 성진은 그 능력을 활용하기 위한 방안들을 곰곰이 생각하려 했다.


*



뒷산에서 내려와 걸음을 옮기던 성진은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고아원의 앞까지 도착하였다. 그 앞에는 몇 대의 경찰차가 있었고 몇몇의 사람들이 웅성대고 있었는데, 여러 생각들로 고민하던 성진은 별 생각 없이 자신이 머무는 고아원의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 저기 있어요! 바로  애에요!”






고아원의 유리문을 열고 들어선 성진이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자신이 ‘어머니’라 여겼던 원장의 삿대질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가리키며 주변에 있던 남성들에게 어떠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남성들은 멍하니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성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성진 군. 맞죠?”

“네. 맞는데요...?”

“현 시간부로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그의 이름을 묻던 남성이 다짜고짜 성진의 수갑을 채우며 ‘미란다 원칙’을 읊어갔다. 영문도 모른 채, 그의 행동에 순응하던 성진은 몸을 비틀어 남성들의 행동에 저항하려고 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죠!”

“...... .”

“지금 뭐하시는 거냐구요! 체포 영장 있습니까! 대답 좀 해주세요!”


억울하게 울려 퍼지는 성진의 외침에도 꿈적하지 않는 형사들은 강압적으로 그를 끌고 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악을 쓰던 성진도 변함없는 형사들의 모습에 진이 빠져 더 이상 저항을 하지 않는다. 아니, 헤라와 헤르메스를 만났었기 때문일까? 그들을 만나기 전보다는 조금 진정된 모습을 보이는 그였다.





차가운 얼굴. 끌려가는 성진을 바라보는 고아원 원장이 그의 눈에 보였다. 자신을 보면 항상 웃음으로 대해주었던 그녀가 이젠 ‘남’인 것 마냥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이구나...’





고아원 원장과 사업가가 했던 이야기를 듣고도 그 사실들을 모두 믿지 않으려 했던 그에게 ‘진실’이라는 날카로운 화살이 마음속에 박힌다. 성진을 대하는 태도로 인해서 그녀와의 관계가 확실해진 지금, 성진은 그녀에 대한 미련의 끈도같이 놓아버리고 있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든 간에 그녀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


3달 뒤, 미국에 있는 어느 고급 저택. 응접실로 보이는 넓은 공간 안에서 어느 아름다운 여인이 벽난로의 따스한 불길을 쬐며 책을 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누구라도 그녀를 ‘여신’이라 숭배할 법한 미모는  주위를 환하게 하였고, 그녀가 읽고 있던 ‘가정에 대하여’라는 책은 그녀가 인자하며 가정적인 성격을 가졌을 것이라 상상하게 했다.




“헤라님, 휴식중에 죄송합니다만 제우스님의 전갈입니다.”



난롯불에서 장작 타는 소리만이 울리던 공간에 번쩍하는 빛이 퍼지면서 어떠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성진에게 자신의 운명을 가르쳐 주었던 헤르메스. 그는 딱딱한 양식의 서류철을 들고 책을 읽는 헤라에게 다다가 그것을 건네고 있었다.




“으음... 그래. 수고했어. 헤르메스. 너도 참 고생이구나. 이런 것은 인간들이 만든 E-mail이나 메신저로 통지하면 될 것을...”


“아닙니다. 저의 임무인걸요.”


가끔씩 보는 얼굴이다 보니, 서로를 향해 가벼운 인사치례가 지나간다. 그리고 그녀는 헤르메스가 전달해  서류철을 펴서 그것들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흐음... 임시총회를 소집한다라...  무슨  일이 일어나나?”


“네, 지금 중동 쪽에서 이슬람 교리에 따른 전쟁이 2개의 파로 나뉘어 일어날 것 같습니다. 때문에 제우스님도 과거처럼 많은 학살을 막기 위해서 임시총회를 개최하기로 하셨습니다.”



직접적으로 신들의 영향력을 드러낼 수는 없으나 간접적으로는 인간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그들이다.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 선진국들의 수장들과 암암리에 끈이 닿아 있어 마음만 먹으면 중동 지역 전쟁도 막을  있는 것이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임시총회는 인간들에 일에 개입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투표가 있을 것이 유력했다.


헤라는 헤르메스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년필을 들어 가볍게 서명을 했다. 그러자 바로 그 때, 검은색 로브를 두르고 음침한 분위기를 흘리던 여성이 그녀 쪽으로 다가와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저 여자는 불행의 여신인 아테(Ate)가 아닌가?’


아직 서류철을 받아들지 못했던 헤르메스는 갑자기 나타난 불행의 여신을 보고 그 이유를 궁금해 했다. 그러다 그는 3달 전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신탁에 관련된 마지막 데미갓. 한국에 살고 있는 ‘이성진’에 대한 것이었다.





“헤르메스... 헤르메스!”

“네, 헤라님.”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멍해 있던 거야?”



그가 그렇게 혼자만의 생각을 갖는 동안, 그녀의 옆에있던 불행의 여신 ‘아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오로지 헤라만이 약간 기분 나쁜 미소를 띠며, 자신을 향해 서류철을 내밀고 있을 뿐이다.


“헤라님, 방금 봤던 ‘아테’는 이 자리에 무슨 일로...?”


“아, 그건... 한국에 살고 있는 데미갓의 일 때문에 방문한 것 같더군.”



역시 그의 생각이 들어맞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성진의 일 때문에 방문한 것. 아무래도 그녀와 불행의 여신 간에 모종의 계약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에게 약간의 동정심이 들었던 헤르메스는, 그의 근황이 궁금하여 헤라에게 가벼운 질문을 건넨다.





“그, 그렇군요. 그나저나 그 애는 지금 잘 지내고 있답니까?”


“뭐, 지금 여러 죄를 뒤집어쓰고 소년교도소에 가있는 모양이던데...”

“흐음... 불쌍하네요.”

“이 정도는 아직 약과야.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일들이  녀석에게 많이 남아 있거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불행의 여신이 개입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으리라 생각하는 헤르메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그를 동정하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를 직접적으로 도와주게  경우, 헤라와 척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앞에서 잔인하게 웃고 있는 헤라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그는 두려움에 몸을 살짝 떨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