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그의 운명, 데미갓 (4)
- 제 5 화 -
“형...이 라고요? 이복형?”
“그래.”
성진은 그의 대답을 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복형’이란 말의 뜻이 가슴 속에 확 와 닿았기 때문이다. 고아로 자라온 그에게 피가 섞인 친족의 개념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많이 놀랐나 보네? 괜찮아?”
“...... .”
“휴우... 그나저나 많이 아프겠다. 일단 이거라도...”
“헤르메스, 그만해라.”
헤르메스라 불린 남성은 성진에게 자신의 외투를 덮어주려는지 그의 앞으로 다가오며 외투를 벗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뒤에서 등장한 어떤 여성으로 인해멈춰지고 말았다.
“어...? 헤라님,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임무는 저에게 맡기셨던 게...”
“흥, 내 맘이지. 헤르메스, 하던 짓 멈추고 뒤로 물러나 있어.”
헤라, 헤르메스. 공부를 잘하던 성진이라면 익히 알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러나 상태도 많이 안 좋을뿐더러 오늘 있었던 여러 가지 일에 정신이 없던 그에게 그들의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흐음... 내가 저주를 걸었지만, 정말 징글징글하게 생겼어.”
헤르메스를 한마디로제압하고 그녀는 무릎을 꿇고 있던 그에게 걸음을 옮긴다. 그런 뒤, 그의 턱을 들어 꼼꼼히 얼굴을 관찰하였다. 마치, 그녀의 모습은 성형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의사 같았다. 한참을 살펴보던 그녀는 성진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평가를 내리며 턱에서 자신의 손을 떼어낸다. 그리고 그에게말을 걸기 시작한다.
“어떠니, 아이야. 그런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
“그게 무슨 말씀인지... 그리고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시는 거죠...? 콜록...”
“그냥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어떠한가? 그런 인생을 살아보는 것이.”
“저주스럽습니다. 신이라는 작자가 있다면 멱살을 잡고 싶을 정도로요.”
“훗, 그렇지? 그럼 네가그런 인생을 살아야할 이유도 알고 싶나?”
“당연합니다. 제가 왜 이러한 삶을 살아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성진은 헤라가 질문한 것들에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대답을 하였다. 다른 아이들은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정상적으로, 아니 평범하게 잘 살아가는데 자신은 왜 남들의 눈치를 보고 경멸적인 시선을 받아야 했는지 정말 궁금했다.
“좋아, 지금부터 그 이유를 알려주마. 그 전에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제우스의아내이자 가정을 수호하는 여신, 헤라이다.”
“헤...라요?”
“너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 등장하는 절대 신들. 그건 나를 비롯한 여러 신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 .”
“그 옛날, 과거에는 인간들에 부족한 점이 매우 많아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도와주어야 했지. 그러다 보니 지금보다는 인간들과 교류가 활발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려준 지식들에 힘입어 너희들이 발전을 이루었을 때, 그 교류도 점차 뜸해져 가다 현대에 와서는 우리가 ‘상상의 존재들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 .”
“뭐, 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신’이라는 것이야.”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헤라...님이라 하셨죠. 그럼 당신께서 제 앞에 나타나신 이유가 뭔가요? 그게... 제가 이런 인생을 살아야할 이유와 관련이 있습니까?”
“그래, 네가 말한 그대로다. 나는 그 이유를 말해주기 위해 지금 너의 앞에 서있는 것이다. 사실, 헤르메스만을 보내서 너의 운명을 통보하려 했으나 너의 그 가증스럽고 역겨운 얼굴을 직접보고 싶어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성진은 분노에 찬 헤라의 말투가 자신을 압박하여 옥죄어 오는 것을 느낀다. 여신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 역시 인상을 가득 찡그리며 애꿎은 주름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성진은 그러한 모습의 헤라로 인해 몸을 벌벌 떨어가며 엄청난 두려움을 느껴갔다.
“호호, 오늘따라 내가 너무 친절한 것 같구나. 아이야. 내게 이런 말까지 하게 하다니... 아무래도 네가 마지막아이라그런 듯하구나.이제 슬슬 네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마. 그 이유는... 네가 제우스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네...?”
“정확히 못 들었나? 네 녀석이 제우스의 아들이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거다.”
그녀의 말에 잠깐 동안 멍해있던 성진은 고개를 흔들어 최대한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 한다. 맨 정신에도 믿기 힘든 그녀에 말을 이해하기 위한 그의 노력이었다. 성진은 그녀의 말을계속 곱씹으며 무언가를 깨닫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헤라는 그런 그를 보며 말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많이 혼란스러운가 보구나. 좀 더 쉽게 말을 해주마. 네가 고통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제우스의 아들이기 때문이고, 그의 부인이자 가정의 수호여신인 나에게 그러한 너의 존재는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보다 못한 존재이다. 지금까지 네가 이렇게 살아온 것도 모두 내가 뒤에서 조정한 탓이지.”
“그럼... 당신이 저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라는 건가요...?”
“아니지. 사람이 아니라 ‘신’이 더 정확한 말이다. 말은 똑바로 하렴.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던 원인에 대해서 말이야. 내가 아니라 제우스 때문이야. 제우스가 애초에 처신을 똑바로 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 그건 궤변입니다! 애초에 탓을 하려거든 제우스한테 할 것이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저에게 해코지를 하십니까!”
“나도 네 말처럼 제우스에게 그러고 싶지만... 그는 신들의 왕이자 가장 힘이 센 권력자이기도 하다. 내 힘으로 그를 벌할 수가 없어. 그래서 너같이다른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식들을 죽이거나, 죽도록 괴롭히는 것이지.”
말을 듣고 있던 성진은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세상 어느 사람이 듣더라도 그녀의 말에 동의할 사람은 99%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남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는, 오로지 자신만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그녀였기에 한낮 인간인 성진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말들뿐이다.
“그건 헤라, 당신만의 입장 아닙니까! 왜 그런 잣대를 저에게 들이대시는 겁니까?”
“난 ‘신’이다. 미천한 존재인 너에게 평가받거나 너의 입장을 이해해 줄 그런 존재가 아니다. 다만, 우리들은 너희를 심판하거나 상찬을 줄 수가 있다. 고귀한 ‘신’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뒤에 있던 헤르메스 또한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헤라의 질투에 고통 받는 성진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자신도 제우스가 바람을 펴서 탄생된 그런 존재였기에 절망에 빠진 성진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에 헤르메스는 그와의 대화에서 방해가 되는 헤라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저... 헤라님? 여흥을 즐기시는 와중에 죄송합니다만, 이제 슬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마침 신들이 모이던 정기총회 일이지 않습니까?”
“흐음... 그렇구나, 헤르메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
“그럼 헤라님. 저에게 마무리를 맡기시고 돌아가심이 어떠십니까?”
“그래, 너의 말이 맞다. 나도 준비해야 할 것이 있으니 이만 가봐야겠구나. 저런 버러지 때문에 그런 시간을 낭비할 수 없지. 헤르메스!”
“네.”
“본래 너를 통하여 내가 하려던 말을 똑똑히 전해 주거라. 알았느냐?”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번쩍하는 빛과 함께 사라진 헤라의 모습. 성진은 자신이 목격한 것이 꿈이 아닌지 눈만 껌벅인다. 오늘 하루 당했던 자신의 아픔들 역시 꿈이길바라며 그녀와 만났던 사실들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했다.
“짧게 신탁을 전해주려고 했는데, 괜히 오셔서 시간만 길어졌네. 크음... 성진아.일단 이거하나 먹어라.”
현실을 도피하던 성진에게 옆에 있던 헤르메스는 자그마한 환약을 그의 입에 가져갔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힘이 없던 성진은 헤르메스가 유도하는 대로 그것을 삼킬 수밖에 없었고, 그러자 그의 몸에서 빛이 나면서 몸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어오른 눈두덩이와 시퍼런 멍, 벌어진 상처들이 말끔하게 없어진 것이다.
“이게 어떻게...”
“후후, 그건 내가 아폴론님께 받아놓은 만병통치약이야. 어때? 몸은 좀 좋아졌지?”
“네... 정말 감사합니다.”
방금까지 성진을 괴롭히던 나쁜 악마와는 천지차이의 모습이다. 헤르메스의 친절함은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한 성진에게 신선한 청량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성진도 그의 친절이 고마워 약간 울먹이는 말투로 그에게 감사인사를 전한다. 헤르메스는 그의 인사에 작은 손짓으로 화답하며 그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휴우... 많이 힘들지? 만약 내가 너와 같은 모습에 그런 운명을 가졌다면 버티기 어려웠을 거야. 그것을 버텨낸 너는 정말 대단한거고.”
“고맙습니다...”
“그래, 일단은 나도 내 임무부터 수행해야겠다. 갑자기 헤라님이 오셔서 좀 지체되었지만, 너의 그 운명에 대해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줄게.”
“그, 극복이요?”
“응, 더불어 너의 저주받은 얼굴도 그 운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너도 점점 자라면서 느끼는 점 없어? 운동도 하지 않고 화장품도 바르지 않는데, 너의 몸은 세상 그 누구보다 완벽하고 이상적인 상태라는 것을.”
성진은 그의 말에 달빛에 비친 자신의 몸뚱이를 바라본다. 수억 원의 비용을 들인 것처럼 맑고 고운 그의 피부, 키는 187센티의 아주 장신에 복근과 잔 근육이 드러날 정도로 이상적인 그의 몸매.
그의 몸에서 문제는 오로지 얼굴뿐이었다. 썩은 것처럼 문드러진 피부와 혐오스러울 정도로 못생긴 그의 얼굴. 헤르메스의 말로 인해, 이제는 그것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 한 줄기 희망의 서광이 그에게로 비치는 듯 했다.
“그, 그럼... 정말로 제가 다른 사람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죠...?”
“당연하지. 하지만... 헤라님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해.”
“그게, 뭔데요...?”
항상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던 성진은 그 해결 방법을 듣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켜고 헤르메스를 쳐다보았다. 헤르메스는 못생긴 외모와 더불어 그 뜨거운 눈길이 매우 부담스러웠으나 어떠한 불쾌감도 가지지 않으며 함박웃음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그 해답을 내뱉기 시작한다.
“그건 바로... 네가 ‘10명의 여자들’과 사랑을 하는 거야. 그것도 동시에 말이야.”
“10명의 여자와... 사랑을 하라...?”
“그래,헤라님께서 말씀하신 방법은 10명의 여자와 사랑을 하라고 말씀하셨어.”
성진은 기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린다. 자신이 이 운명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아주 행복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런 표정은 30초도 채 가지 않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곰곰이 곱씹어보고 계속 머리를 굴려 보아도 지금 그의 상황으로는 10명은커녕 1명의 여자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진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그의 이름을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헤르메스님...”
“그래,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니?”
“과연 제가... 이런 얼굴을 가지고도 10명의 여자와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으음... 그러니까 헤라님께서 그런 해결 방법을 내놓은 것이 아닐까? 내가 봐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만...”
“아니요, 헤르메스님! 이건 완전히 불가능한 방법이라고요! 제가 봐도 역겨운 이런 얼굴을 어떻게 무시를 할 수 있겠어요!”
마지막 희망의 끈도 놓쳐버렸다는 생각에 성진은 자신이 ‘헤르메스’라는 신에게 화를 낸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그였지만, 지금 성진의 심정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그렇게 악을 쓰던 성진을 차분하게 바라보며 그가 차분해질 때까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