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그의 운명, 데미갓 (2)
- 제 3 화 -
“엄마, 나왔어!”
“아영이 왔니?”
어서 슈퍼 밖으로 나가고 싶은 순간에 찾아온 구세주였다. 이 집 슈퍼의 딸내미인 ‘민아영’. 그녀와 성진은 같은 학교에 나이도 같았으나, 같은 반도 한 적이 없고 무슨 접점이랄 것이 그들 사이에 없어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다. 다만, 그녀가 우등생일뿐더러 얼굴과 성격이 완벽한여자애라는 것만 소문으로 알고 있던 그이다.
“으으... 춥다.”
“어머! 얘가... 이렇게 추운데 뭐 그렇게 얇게 입고 갔어!”
“엄마는 참~! 이게 다 패션이라고!”
“아니 그래도 그렇지. 밖에선 눈이 오네 마네 하는데, 레깅스라도 입고 가지 그랬어!”
“몰라, 남자친구가 보기좋다고 그랬단 말이야.”
그녀는 카운터에 멀뚱히 서있던 성진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슈퍼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난로에 다가가며 말을 했다. 그러자, 카운터 쪽에 앉아있던 주인아주머니가 그녀의 복장을 보면서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얀 다리가 부각될 정도로 짧은 청치마를 문제 삼으며 이야기를 계속하는 것이다. 이에 아영은 자신의 남자친구를 들먹여 자신의 복장에 대한 당위성을 찾으려고 했다.
“아이고... 내가 속 터진다. 속이 터져...”
“크음... 저 그럼 가보겠습니다.”
“아차차... 그래, 성진아. 잘 가렴~!”
모녀의 시끄러운 소리가 가게 안을 메울 때... 성진은 재빠르게 인사를 하였다. 그런 뒤, 자신의 필수품인 마스크를 쓰며 가게를 나선다. 아주머니의 입담이 두렵기도 했으나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약간은 부러워 보인 것도 있었다.
슈퍼의 문을 닫고 나서면서 아직도 새어나오는 그들의 말소리. 성진은 ‘부럽다’라는 말을 중얼거리며 자신을 기다리는 고아원이 있는 방향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
얼마 뒤, 고3 학생들의 원서를 접수하는 기간. 성진은 담임선생님의 설득과 원장님의 권유에마지못해 원서를 쓰게 되었다. 마음속에는 과연 ‘자신의 행동이 옳은 것인가’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원장님의 전폭적인 지원과 성진을 좋게 보신 많은 선생님들의 응원에 다시 한 번 마음을 고쳐 잡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힘이 되어 주신 원장님의 말씀이 그에게 가장 큰 위로이자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는 그런 원장님께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오늘도 알바 자리를 구하러 밤늦은 시간까지 거리를 쏘다니고 있었다.
“휴우... 내 외모 때문에 잘 뽑히지 않는 건가?”
하얀 입김이 마스크 사이로 뿜어 나오며 성진은 혼잣말을 되뇐다. 외모가 이런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외모로 생긴 콤플렉스가 또 자신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늘 갔던 편의점 면접도 자신이 마스크를 벗는 순간부터 탈락이 예고되었으니... 그런 콤플렉스를 지워버리고 싶어도 도저히 주변 환경은 도와주지 않았다.
‘나중에 어떻게든 돈을 벌면 성형이라도 해야겠어.’
가장 쉬운 해결책이자 모범답안이던 ‘성형’.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을 성진 본인도 잘알고 있었다. 얼마가 들지 모르겠지만, 아니 수억이 들지 모르지만... 이러한 아픔을 본인 스스로 이겨내고픈 마음이 강하게 몰려왔다. 따돌림이든 공부이든 언제나 혼자 싸워왔기 때문이었다.
‘그래, 내일은택배 상하차를 하는 곳이나 인력 사무소라도 가보자. 그런 곳은 얼굴을 굳이 보지 않을 거야...’
“꺄아악~!”
괴로운 현실을 이겨내고자 성진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다잡던 순간이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인적이 드문 길가에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상념에 빠져있던 성진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주위를 돌아봤다. 그러자, 어둠이 짖게 깔린 폐공장 쪽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입 닥쳐, 이년아...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얼굴좀 반반하다고 그렇게 빼더니... 오늘은 우리가 물 좀 빼보자. 어?”
폐공장의 닫힌 문을 두고 자그맣게 들려오는 남자들의 목소리. 성진은 이 상황의심각성을 느끼고 근처에 있는 창가로 다가가 공장의 안을 슬며시 들여다보았다. 옷이 반쯤 찢긴 여성을 가운데에 두고 네댓 명의 남성이 그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그 모습을 본 성진은 급하게 스마트 폰을 들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젠장할... 하필 이럴 때, 배터리가 다 되어버렸네.’
성진은 쓸모가 없어진스마트 폰을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창가를통해서 다시 그들의 정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더 노골적으로 그녀의 몸을 만져가던 녀석들.
성진은 그 상황을 두고 급하게 자신의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른들을 모셔올지, 아니면 그녀를 구하러 뛰어들지. 그렇게 수초를 생각하던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 폐공장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으아악! 너 뭐야!”
문이 열리는 둔중한 소리와 함께 성진은 여자를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여자를 겁탈하려던 그들도 미처 그 공격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씨발! 너 뭐하는 새끼야!”
거칠 것 없이 이어지는 성진의 공격에 여자에게멀어진 남자들은 이를 바드득 갈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성진은 그들의 위협보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울고 있던 여자의 안위를 걱정했다.
한껏 꾸미고 나온 복장이 처참히 찢겨진 모습에 너무나도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한 모습을 잠시 바라본 성진은 흐느끼던 그녀의 몸 위로 자신의 외투를 벗어주며 잠깐 피해있으라는 말을 건넨다.
“저기요, 잠깐 물러나 있어요.”
“야! 미친 새끼를 봤나. 내가 한 말을 무시해? 어디 한 번 뒤져봐라.”
자신들을 없는 취급을 하는 그에게 단단히 화가 난 남자들이다. 그들은 폐공장에 버려져 있던 각목과 폐자재들을 들고 와 인정사정없이 공격을 하였다. 성진도 위협적인 그들의 공격에 최대한 몸을 아껴가면서 카운터를 먹이려 한다. 가장 약해 보이던 남자에게 주먹을 휘두른 뒤, 아까 자신이 발차기를 먹였던 남자에게 강력한 일격을 날린다.
‘휘익’
“으악!”
“호오... 이 새끼, 힘은 꽤 좋은 것 같은데? 뭐하는 새끼지?”
“야, 지훈아. 이 새끼, 그 놈 아니야? 얼굴 이상하게 생긴 놈?”
“아~! 그 징그럽게 못생긴 고아 새끼? 마스크로 매일 가리고 다니던 놈이지?”
그렇게 두 명을 순식간에 박살내자, 남아 있던 남자들이 성진을 알아본 모양인지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그의 콤플렉스인 얼굴과 가정환경을 들먹이고 있었다. 성진은 그들이 그렇게 조롱할수록 자신의 입을 앙다물어 간다.
“너 같은 새끼는 그냥 뒤져야 하는데... 애비, 애미도 없는 놈이 그렇게 살고 싶냐?”
“야, 시끄러우니까 그만하고. 저 새끼 그냥 여기에 묻어버리자. 어차피 고아라며?”
모멸적인 어조로 서로 웃고 떠들던 그들은 가만히 있는 성진에게 각목을 휘둘렀다. 어찌나 거칠게 휘둘렀는지, 그의 뒤에있던 여자아이는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성진은뒤에 있는 여성이 혹시나 다칠까봐 그들의 각목을 맞아가면서 반격을 시도한다.
‘휙, 휙’
“이 새끼 맷집도 엄청 좋네! 죽여 버려!”
각목을 휘두르는 그들의 거친 호흡처럼 성진의 몸도 상처가 늘어 피투성이로 변해갔다. 만약 일반 사람이 보았다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잔인한 모습에, 뒤에 있던 여자도 자신의 입을 꾹 막으며 점점 그들의 주위를 벗어나고 있었다.
본래의 목적대로라면 도망치는 그녀를 잡아야 하지만, 성진의 존재 때문인지 그 누구도 여성이도망치는 것에 대해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하아...하아...”
“쿨럭, 쿨럭...!”
“이 새끼 정말로 질기네... 뭐야? 여자 애도 도망쳐 버렸잖아!”
“됐어, 인마. 널린 게 여자인데, 그냥 없는 셈 치지 뭐.”
“미친... 그럼 만약에 우리를 신고하려고 들면 어떡하려고?”
“야, 야. 호들갑 떨지마.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으니까. 그 애 집도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한다는데, 돈으로 무마시키면 되겠지. 우리 아버지 비서한테 지금 문자넣었어.”
“그럼 다행이고...”
“쫄보 새끼, 아버지가 폭력배 보스라면서 그렇게 겁이 많아서 뭐하냐?크큭...”
그 말을 끝으로 한바탕 큰 웃음을 짓는 그들.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진 성진은 그들의 대화소리를 듣고서 피해를 입은 여성이 이 장소를 빠져나갔음을 알게되었다. 충분히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그녀를 보호한답시고 많은 상처를 입게 된 성진에게마지막 남은 희망은 그녀였다.
제발,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경찰에 신고를 해주기를... 성진은 바라고 있었다.
“휴우... 그건 그렇고... 어떻게, 이 새끼 진짜로 죽여 버릴까?”
“됐다. 대충 보니까, 치료해도 반병신 될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 상관없겠지.”
담배를 꼬나물고 성진의 곁으로 다가온 지훈은 그의 머리카락을 잡고 대충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세워진 그의 눈가에는 상처로 된 피가 흐르는 것인지, 피로 된 눈물을 흘리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피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어이, 이름은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대충 부를게. 못생긴 병신아.”
“쿨럭...”
“휴...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가던 길 가지 그랬어. 그러면 이런 개고생도 없었을 텐데... 안 그래?”
“...... .”
“우리도 좀 피곤하니까, 그냥 이쯤에서 그만하려고 하거든? 그러니까... 신고 같은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고... 알았지?”
“으으...”
그의 몸짓과 말하는목소리, 권태로운 표정까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행동이었다. 마치 여러 번 해본 듯한 지훈의 행동. 그렇게 그는 피에 절어 비몽사몽 하는 성진의 머리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린다.
“아~ 아쉽네. 오늘... 여자는 도망쳐버리고 애꿎은 산송장만 하나 만들어냈으니...”
“그래도 재밌었는데? 저 녀석을 때릴 때, 생각보다 타격감이 좋더라고.”
“킥킥킥... 그래. 손 맛 죽여줬지?”
“아! 지훈아, 우리 심심한데 그냥 이 새끼를 성폭행 범으로 엮어 버리면 더 좋지 않을까? 어차피감싸줄 보호자도 없잖아.”
“그것도 재밌겠네. 뭐... 일단 술이나 마시면서 생각해보자.”
“오~ 좋지! 기분이다. 오늘은 내가 여자까지 쏜다!”
역겨운, 아니 인간 같지 않은 음담패설이 쓰러져 있는 성진에게서 점점 멀어진다. 성진은 그들이 떠남과 동시에 근처에 있던 각목을 짚고 자리에서 겨우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장난기 있는 어조였지만, 자신을성폭행 범으로 몰겠다는 그들의 대화.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그럴 때, 가장 먼저 성진의 머릿속에 떠올린 사람은 고아원의 ‘원장’님이었다.
“으으윽... 아프다...”
경기불황 탓인지 인적이 뚝 끊긴 거리. 그러자 늦저녁까지 문을 여는 가게는 그 주위에 찾아볼 수 없었다. 성진의 쓰린 상처를 달래줄 사람은 그 주위에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고아원의 ‘원장님’께서 그의 아픈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주시리라 그는 생각한다. 피해를입은 여성에게 외투를 벗어준 탓에 자신의 상처를 파고드는 이 아픔들까지도 치료해 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아무런 생각 없이, 오롯이 ‘원장님’만을 생각해서 달려온 고아원. 건물에서 새어나오는하얀색 불빛이 아픈 그에게 따스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도 그러한 느낌에 안도감을 느낀 것일까? 거칠어진 호흡도 멎고 추위에 고통 받던 아픔도 약간은 사라진 것 같았다.
성진은 자신이 들고 있던 각목을 대충 벽에 기대어 놓고 느린 걸음으로 고아원의 현관 유리문을 열었다. 그런 뒤, 아직까지 불빛이 새어나오던고아원의 원장실로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긴다. 바로몇 걸음이면 닿을 자신의 희망의 끈.
‘어...? 열려있네...?’
몇 걸음을 더 걸어 원장실의 문을 열려던 성진은 그 문이 약간 열려져있는 것을 보고 무심코 그 안을 쳐다보게 되었다. 그러자, 자신의 아픔도 싹 가실만큼의충격적인 모습을 두 눈에 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끈적거리는 애욕의 장이 바로 그가 본 원장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