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Prologue
- Prologue(1화) -
위대한 신들이라 불리었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인간을 지배하는 것보다 공존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기술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들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고 대부분의 일들을 스스로 해결 가능했기 때문에 신들은 그러한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에 신들은 무거웠던 책임감을 벗어던지고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인간과 함께 가정도 꾸려보고 전쟁도 함께 했으며 그들의 과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이바지하기까지 하였다. 인간들이 위대한 발명가, 과학자라고 했던 위인들 가운데 몇몇의 존재들도 신들이 인간으로 변신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신이라고해서 항상 인간들에게 이로움만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우스가 변신했던 ‘카사노바’, 아프로디테가 변신했던 ‘양귀비’, 아레스가 변신했던 ‘히틀러’등 인간들에게 고통과 쾌락을 안겨주었던 적도 종종 있었던 일이다.
이처럼 신들은 점차 인간들 사이로 녹아들고 있었다. 물론 신의 본분을 자각하며 그 정도를 지키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신의 삶을살아가던 그들은 어느날,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로부터 신탁이 내려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
“10년 이내로 신의 자식들 가운데 부모 이상으로 뛰어난 인간이 태어날 것이다!”
미국의 위치한 어느 대형 연회장. 수천 명의 여러 남녀들을 불러 모은 3명의 노파들이 그들에게 한 가지 신탁을 내렸다. 바로 여기 모인 신들의 자식 가운데 부모 이상으로 뛰어난 자식이 태어난다는 것이었다.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던 연회장의 사람들은 단상 위의 그녀들의 외침에 언제 그랬냐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것... 뿐인가, 모이라이?”
장내가 고요해진지 몇 분이 흘렀을까.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의 대표격으로 보이는 자가 다시금 질문을 건넨다.
“그래. 이것으로 끝이다.”
“모이라이. 지금까지 당신들이 말해 온 신탁들은 너무 두루뭉술해서 알기도 쉽지 않다고. 좀 풀어서 설명해 줄 수 없어?”
“훗... 제우스. 지금까지 내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어놓고선, 엄살은 무슨...”
“이봐, 모이...”
“그만하지. 내가 더 이상 알려줄 것도 없을뿐더러 우리도 이런 신탁이 오랜만이라 피곤하다고. 모두들 가자.”
계속 붙잡으려는 제우스를 두고 연회장 바깥으로 나가버리는 3명의 노파들. 제우스는 그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우스. 모이라이가 뭐라 그래?”
“여전히 똑같지. 해줄 말이 없다면서 빠르게 사라지잖아.”
“젠장할... 운명의 여신들이면 다야?”
“포세이돈, 진정하라고. 일단은 다 같이 고민해봐야지 않겠어? 방금 내려준 신탁의 의미에대해서 말이야.”
제우스는 앞서 사라진 3명의 노파에게 열을 내고 있던 포세이돈을 진정시키며, 연회장의 단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가 단상 위로 올라서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은 모두 그를 향해 쏟아지는데...
“크음... 그래, 누가 방금 신탁에 대해서 말해볼 자가 있나?”
“...... .”
그의 질문에도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 제우스는 그들의반응에 가볍게 이마를 짚어본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신탁 중에 지금처럼 두루뭉술한 신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메티스 때의 신탁은 ‘그녀가 낳은 아들’이라는 구체적인 특징도 있었건만, 지금은 ‘신의 자식인 인간’이라는 특징을 제외한다면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저... 아버지?”
제우스가 고민에 빠져있을 무렵, 수많은 군중 속에서 여성 하나가 손을 들어 보인다. 베레모를 쓰고 타이트한 군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행동에 제우스는 반색하며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오, 아테나! 할 말 있으면 해봐라.”
메티스의 딸이자 이와 비슷한 신탁의 당사자였던 그녀. 만약 그녀가 아들로 태어났다면 아버지를 위협할 수 있었겠지만, 딸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운명을 피해갈 수 있었던 신이었다. 제우스가 아끼는 신들 가운데 하나였던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의 입을 열어 고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번 신탁에 대해서 너무 고민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지?”
“지금 걱정하시는 게, 저희들보다 뛰어난 인간이 나와서 지금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을지 걱정하시는 거죠?”
“그래.”
“그렇다면 간단하게 생각하세요. 모이라이가 말했던 10년 동안 인간이랑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요.”
지혜의 여신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명쾌한 해답을 주고 있었다. 맞다. 그렇게 하면 운명의 여신이 말한 그런 신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제우스를 비롯해 여기 모인 대다수의 신들은 아내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거기에 모자라서 인간 여성들과 하룻밤 잠자리는 우습게 아는 신들이 태반이었다. 특히 제우스만 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든 여인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꼬시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여신들도 마찬가지다. 결혼을 했다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인간 남성들과사랑을 나누었다. 또한 그들 가운데 여자 제우스로 불리는 아프로디테는 ‘사랑을 지켜야한다’는 명목을 앞세워 자신의 마음에 드는 남성들과 무차별적으로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은 그녀의 말이 썩 반갑지는 않은 것이다.
“저기... 제가 말을 잘못했나요?”
“아, 아니다. 네 말대로 그러면 될 거야. 그렇다면 문제도 없겠지...”
아테나의 말을 듣던 제우스는 그녀의 말에 마지못해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그 역시도 이번 신탁에 대해서 아테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 방법 외에 더 좋은 방안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을 뿐이다.
과거에 비해 인간과의 접점이 사라진 요즘, 소소한(?) 섹스 라이프는 그들에게 유일한 놀이이자 해방 창구였기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긴, 처녀인 아테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별 생각이 없을지 모르겠군...’
생글거리는 아테나를 바라보며 제우스는 가볍게 이마를 짚는다.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말대로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휴우... 어쩔 수 없나...?”
“제우스! 왜 그런 거죠? 무슨 불만이라도 있나요?”
여러 고민 끝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제우스는 체념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와 제우스의 귓가에 날카롭게 꽂혔다.
“헤, 헤라. 왜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야?”
멀리서 제우스에게로 걸음을 옮기는 여신의 자태.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빛나는 매력을 갖춘 여인이 화가 난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제우스는 그녀를 향해 말을 더듬으며 뭔가를 부인하는 행동을 취한다. 그러나 헤라는 그의 시커먼 속마음을 훔쳐본 듯이 강력하고 직설적으로 말을 하기시작했다.
“아테나가말한 방법이 무슨 불만인가요? 표정이 왜 이렇게 좋지 않죠?”
“무슨...! 내 표정이 어쨌다고 그래?”
“아니, 인간들과 성관계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을 가지고 뭘 그렇게 한숨을 쉬고 고민을 하냐구요!”
“그게 말이지... 나, 나는 괜찮지만 다른 신들이 불쌍하잖아. 그, 그리고 과거와 다르게 우리들은 인간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기도 하고 말이야... 혹시라도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 보는 것이었어.”
“훗... 여기에 모인 신들 가운데, 자신보다 위대한 사람이 나오면 위협을 받을 작자는 누가 있을까요? 포세이돈! 어떻게 생각해요!”
“어, 어... 그게 제우스 정도 아닐까 생각되는데...”
“그렇죠. 제우스 당신이 가장 요주의 인물이라고요!”
“아, 아니... 포세이돈도 있고, 하데스도 있고 많이 있잖아. 대상들은...”
자신의 본처라고 할 수 있는 헤라의 밀어붙임에 제우스는 멀뚱히 서있던 포세이돈과 유명한 애처가인 하데스를 걸고 넘어졌다. 그러나 그의 변명은 그녀의 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정말 이 사람이!! 계속 그렇게 변명하면 나도 생각이 있을 줄 알아요!”
제우스에게 엄포를 놓던 헤라는 그에게 향하던 시선을 거두어 운명의 여신들이 신탁을 내렸던 단상 위로 걸음을 옮긴다. 그녀의 무지막지한 행동에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제우스와 다른 신들은 앞으로 그녀가 어떤 행동을 보여줄지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모두 주목해주세요. 방금 운명의 여신이자 세 자매인 ‘모이라이’가 했던 신탁, 똑똑히 기억하고 있겠죠?”
“...... .”
“그리고 아테나가 했던 방안도 똑똑히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시간부로 ‘가정을 수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신’으로서 여러분들에게 선포합니다. 모이라이가 말했던 10년 동안 신과 인간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제가 철저하게 고통을 주도록 하겠어요.”
‘웅성웅성’
강한 결심을 했다는 듯이 말하는 그녀이다. 헤라의 발언에 좌중에 모인 신들도 웅성웅성 대면서 각자의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들은 뭔가 불만어린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 받는 듯하다.
“잠시만! 헤라! 당신이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그래요! 헤라. 무슨 권리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웅성거리던 좌중들 가운데 한 쌍의 남녀가 단상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제우스가 이름을 팔아먹은 ‘포세이돈’과 미의 여신으로 유명한 ‘아프로디테’였다.
“당연히 제가 관장하는 부분이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우스만 조심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애꿎은 우리까지 피해를 봐야하는 거야? 다른 신들이 하는 생활은 암묵적으로 건들지 않았잖아.”
“어쩔 수 없어요. 포세이돈. 지금까지는 제우스로만으로도 버거워서 다른 신들에게 차마 이야기하지 못했는데, 이번 신탁을 계기로 질서를 바로 잡아야겠어요. 세상의 질서를 위해 협조해 주셨으면 해요.”
정중하고 합리적인 그녀의 대답에 포세이돈은 얼굴을 찡그리며 별 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포세이돈의 표정을 보며 헤라는 그 옆의 아름다운 여신을 바라본다. 아프로디테. 아마 명분 싸움만 놓고 보면 가장 어려운 상대로 생각되는 존재였다.
“아프로디테. 당신도 이번 일에 따라주었으면 좋겠어요.”
“헤라. 미와 사랑의 여신인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엄연히 섹스도 저의 관할에 속해있는 임무라고요.”
“아프로디테. 그대에게 언제 섹스를 하지 말라고 했어요? 10년만 참아달라는 부탁이죠.”
“흥! 저는 저보다 뛰어난 자식이 나와도 상관없으니까 괜찮아요. 그러니 간섭하지 말아주세요.”
“아프로디테!”
“헤라!”
서로의 명분에 꿀릴 것이 없어지자, 그녀들은 강한 기운을 발산하며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이 회의장이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발산되는 것이다. 이것을 보던 제우스는 약간의 손짓으로 기운들을 무마시킨 이후에 그녀들을 중재하기 위하여 말을 건넨다.
“그만, 그만. 이런 자리에서 그럴 필요까지 없잖아.”
“제우스. 당신도 뭐라고 좀 해봐요! 아프로디테는 항상 말썽이라니까요!”
“제우스! 저도 제가 관장한 업무를 하겠다는데 방해하지는 않겠죠?”
“끄응... 이봐들. 적당히 좀 해달라고.”
“몰라요. 저는 제가 알아서 할 거에요!”
“아프로디테! 저도 제가 한 말을 지킬 테니 그런 줄 아세요!”
두 명의 여신들은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리며 회의장을 벗어나 버렸다. 제우스는 이런 그녀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버린다.
이로부터 약 10년 뒤, 한 아이가 ‘대한민국’이라는 혼돈의 땅에서 태어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