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7)

"흐윽...... 아.... 흡."

“하아, 베릴......."

긴 사정 후 몸을 때낸 앙헬은 눈물범벅이 된 베릴의 얼굴에 꼼꼼히 입맞춤을 했다. 어젯밤 단추에 맞은 부분에는 다행히도 멍이 들지 않았다.

'예쁘다.

처음부터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깔끔했던 그때보다 온통 빨개지고 눈물투성이인 지금이 더 예뻐 보였다.

'내 사람...... 내 여자.'

부모님의 영향인지 앙헬은 성적으로 개방적인 센 제국 사람치고 너무나 지고지순했다. 그가 만난 것이 베릴이 아니라 다른 여자였다면 한번 잤다고 질척거리지 말라며 곧장차였을 것이다.

"으응."

다행히도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 베릴이 칭얼거리며 앙헬의 허리를 껴안았다. 너무 느낀 탓에 그녀의 속눈썹과 작은입술은 아직도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저 작은 입으로.'

자신의 것을 물었다는 걸 떠올리자 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진짜 짐승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자책한앙헬이 베릴에게 들키기 전에 아랫도리를 진정시킬 겸, 그녀를 닦아 줄 물수건이라도 만들어 을 요량으로 조심조심 침대에서 벗어났을 때였다.

“앙헬.......

"예."

그렇게 지친 채로도 베릴이 자신을 찾는다. 그 사실이 기뻐 웃으며 돌아본 앙헬의 얼굴이 굳었다. 어느새 일어난 그녀가 그를 향해 엉덩이를 보인 채 네 발로 엎드려 있었다.

"나아...... 또 하고 싶어."

돌아보는 얼굴은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앙헬이 발기했다.는 걸 그녀가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어서요. 응?"

다리 사이로 흰 액체가 주룩 흘렀다. 홀린 듯 다가간 앙헬이 그것을 손으로 흩어 다시 안으로 밀어 넣었다.

“훗........

그 손길조차 자극이라 엉덩이가 파르르 떨렸다. 앙헬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말랑한 살을 꽉 쥐었다가 놓고 말했다.

"이제 그만, 쉬셔야......."

잔뜩 억누른 목소리가 뚝 멎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여전히 새빨간 질구를 잡아 벌렸다.

빨리 새로운 씨물을 부어 달라는 것처럼 오물거리는 모양새에 이성이 증발했다. 앙헬은 짐승이 되기를 택했다. 올라탄 그는 조심성 없이 허리를 내질렀다. 퍽 소리와 함께 치골이 부드러운 엉덩이에 부딪히고, 아직 녹진녹진한 내벽이 페니스를 단번에 집어삼켰다.

"하으응!"

젖은 마찰음이 또다시 작은 침실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연회에 참석한 앙헬은 또 참한 영애 어쩌고 하며 운을 띄우는 황제에게 딱 잘라 말했다.

"교제하는 상대가 있습니다."

"보아하니 파트너 없이 홀로 왔던데. 왜 안 데려왔나?"

황제가 미심쩍어하는 것도 모르고 앙헬의 얼굴이 머쓱하니 붉어졌다.

"그...... 많이 피곤해해서 말입니다."

베릴의 도발로 다시 시작된 정사는 동이 틀 때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온몸이 정액투성이가 된 채 기절하듯 잠들면서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고는 해가 뉘엿뉘엿 기울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고 푹 잤다. 숨소리까지 작아서 불안해진 앙헬이 몇 번이나 코 밑에 손가락을 대 보기도 했다.

그래도 직업 본능은 남아, 연회에 갈 채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되자 깨우지 않았는데도 스르르 눈을 떴다. 자는 사이 깨끗이 씻겨진 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잠에 취한 상태긴 했지만 앙헬의 옷맵시를 확인하고 머리를 단장해 주는 베릴의 손끝에 실수는 없었다.

밤새 운 탓에 통통하게 부은 눈이 귀여워서 만져 보고 싶었는데, 베릴이 움직이지 말라며 짜증을 내서 실패했다.

'귀여웠지........

작게 하품하며 눈 비비는 그녀를 떠올리자 아래가 묵직해졌다. 밤새 했는데 또 서다니 정말 짐승이 된 것은 아닌가싶어져 앙헬은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빨리 돌아가서 그녀에게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점령했다.

'아, 그런데.

앙헬은 어떤 사실을 깨닫고 빙긋 웃었다. 발기 상태인데도바지에 눌려 아프지가 않았다. 어제 입었던 옷과는 딴판이다.

"재단사로서도 대단한 사람이다.'

원래의 그라면 감히 바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기도 했다. 까맣고 긴 머리카락이 남쪽에서는 볼 수 없는 새하얀 피부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인상을 찌푸릴 땐 파란 눈이 어둡게 가라앉는데 딱 한 번 가 봤던 북해의 색깔같았다.

그런 사람이 거침없이 다가와 준 것도 고맙고 감사하고...... 뭐든 솔직하게 표현해 주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앙헬도 스스로 두른 벽 밖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잡을 수 있었다.

'결혼...

결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베릴과 함께 살고 싶었다. 그저 교제 상대가 아니라, 그녀가 처음에 말해준 것처럼.

이미 평생 그녀만 보겠다고 했고, 그녀도 그와 함께 갈 생각을 하는 눈치이긴 했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요청하고 싶었다.

'평생 당신 옷만 입고 싶다고 할까.

하지만 너무 멋이 없었다. 

“좋을 때구먼."

붉어졌다가 심각해지기를 반복하는 앙헬의 얼굴을 보고, 황제가 혀를 찼지만 들리지 않았다. 김이 날 정도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으니까.

***

앙헬은 황제가 자리를 뜨자마자 멘탈라인 의상실로 돌아갔다. 연회가 끝나건 말건 관심 밖이었다.

막 잠에서 깬 베릴의 손을 잡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반지와 함께 건넨 건 결국 맨 처음 떠올렸던 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끔찍이도 낭만적이지 못했지만 의외로 베릴은 뛸 듯이 기뻐했다.

"좋아요! 잘 만들 자신 있어요!"

오늘만 해도 튼실한 몸을 맵시 있게 감싼 자신의 작품이 얼마나 뿌듯했는지.

"그런데 오늘, 연회에 가서 춤췄어요?"

왜 그런 걸 묻는지, 영문을 모른 채 앙헬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베릴이 이불을 확 젖히며 말했다.

"그럼 지금 나랑 춰요."

위로 말려 올라간 잠옷 때문에 흰 다리가 고스란히 보였다. 더한 것도 봤는데 이상하게 부끄러워서 앙헬은 헛기침하며 그녀의 옷을 정돈해 주었다.

"저....... 저는 춤을 출 줄 모릅니다."

“춤이 뭐 별건가? 껴안고 돌면 돼요."

베릴은 정말로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다. 잠옷 차림인 것도, 음악이 없는 것도, 앙헬이 춤출 줄 모르는 것도,

그녀는 밝은 곡조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한쪽 손은 그의 허리를 안고, 또 한쪽 손은 그와 맞잡은 채 즐겁게 빙글빙글돌았다. 그녀가 맨발인 것이 신경 쓰였던 앙헬이 번쩍 안아들어서 돌아 주자 까르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앙헬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베릴의 눈 위에 지그시 입을 맞춘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희는 며칠 후에 호르혼으로 돌아갑니다. 저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대대손손 이어 오던 자리를 떠나는 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베릴은 자신이 있는 곳이 바로 멘탈라인 의상실이라고 생각했다.

일은 슬슬 잘도 흘렸다. 그녀는 다르게 짐을 정리했고, 가게를 인수할 사람도 그들이 떠나기 전에 나타났다.

거스러미가 생긴 건 호르혼으로 출발하는 당일이었다. 앙헬의 최측근만 얼굴을 알던 베릴이 모두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인사한 후,

“저어, 혹시.....

부사관 중 한 명이 베릴에게 쭈빗쭈 말을 걸었다. 예쁘장한 생김새를 보고 대번에 눈썹을 치켜세운 앙헬과 달리, 베릴의 눈은 휘둥그레진 채 반짝거렸다.

"너 리온이니? 리온 오도브?"

'기억하는구나, 릴리 누나!"

당연하지

'릴리 누나는 또 뭐란 말인가. 앙헬의 이마에 살짝 핏줄이섰다가 사라졌다.

..... 제 부하와 아는 사이입니까?"

"어릴 적에 우리 옆집 살던 꼬마예요. 신기해라."

“친했나...... 봅니다."

“엄청 친했죠! 키가 이렇게 자라다니....... 남부로 이사 간다더니 설마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이야.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네요."

그래서 '릴리'라는 애칭은 대체 뭔데. 궁금해서, 그리고 자신도 애칭을 부르고 싶어서 앙헬이 전전긍긍했지만 베릴은 눈치채지 못하고 그냥 넘겼다. 그도 괜히 질투하는 것으로 보일까 봐 또 묻진 못했다.

문제는 그 뒤로 베릴과 리온이 찰싹 붙어 다녔다는 데 있었다. 앙헬이 있는데 굳이 호위로 달라고 하질 않나, 둘이서 무슨 얘기를 소곤소곤하지를 않나.

베릴만큼은 아니지만 리온도 꽤 미인이었다. 객관적으로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불안해질 때마다 앙헬은 자신을 다독였다.

'베릴은 내가 좋다고 했다. 내가 이상형이라고 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베릴이 폭소하며 리온의 머리를 쓰다듬는 걸 목격했을 때도,

날 좋아한다고........

리온의 장갑을 본 베릴이 너무 낡았네. 네 것도 하나 만들어 줄게. 하고 말하는 걸 우연히 듣기도 했다.

그녀는 앙헬의 옷을 평생 만들어 주기로 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다독일 수가 없었다. 리온이라는 존재 하나가 걸리니 요즘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다 수상쩍게 느껴졌다.

호르혼으로 내려가는 내내 베릴이 그와 방을 따로 쓰는것. 길을 나서자마자 섹스는커녕 가벼운 입맞춤조차 안 해주는 것까지. 아니, 생각해 보니 거의 옆에 오지도 않았다.

앙헬은 본래 사근사근하다기보다 날카롭고 무뚝뚝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무의식중에 풀어지는 건 오로지 베릴에게만이었고, 덕분에 그녀가 합류한 요즘 다들 숨 쉴 맛이 나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가 저기압이 되니 일행의 분위기도 자연히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워졌다.

그렇다고 여정을 멈출 수는 없는 법이라 꾹꾹 눌러 놓기만하던 어느 날, 결국 사달이 났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진 앙헬이 작은 선물을 준비해 들고 베릴의 방을 찾은 날이었다.

"후우.

긴장 때문에 심호흡을 하고 노크하려던 순간, 문이 열리고리온이 안에서 나왔다.

"히익, 제독님?"

참고로 지금은 밤이었다. 남들 다 자는 시각이란 말이다.게다가 리온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놀란단 말인가. 무슨 비밀이라도 들킨 것처럼.

앙헬이 음산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자, 눈치를 살피던 그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아." 하며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뭔가 잘리는 것처럼 구는 건 베릴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이 시간에.......

저놈은 괜찮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앙헬은 꼭 참고 말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합시다."

“피곤한데 내일 하면 안 되나요?"

"오늘 해야겠습니다."

밀고 들어간 앙헬이 문을 세게 닫자 베릴은 초조하게 벽장 쪽을 흘긋 쳐다봤다. 그녀만 보던 그는 기민하게 그 시선을 알아챘지만, 일단 그건 나중에 묻기로 했다. 지금 중요한 주제는 따로 있었다.

"나로는 부족합니까?"

......네?"

방어적으로 가슴 앞에서 팔짱을 꼈던 베릴의 자세가 스르르 풀렸다.

"아니면 벌써 질린 겁니까? 그래서 나보다 리온 오도브한테 곁을 주는 겁니까?"

"그게 지금 무슨 소리예요?"

"나는 다가오지도 못하게 하면서 오도브와는 이런 시간까지 있지 않습니까!"

베릴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늘한 인상인데 지금은 거의 북풍한설이 휘몰아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앙헬 드 모비치 제독님. 잘 생각하고 말하는 건가요?"

“우리가 제도에서 출발한 뒤로 내내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고 나온 결론이 그거예요? 나와 리온 사이를 의심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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