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7)

토독, 토도록.

깜빡 졸던 베릴은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에 화들짝 놀라눈을 떴다. 그녀는 몇 번 멍하니 눈을 끔뻑이다가 “아......."하는 탄식과 함께 마른세수를 했다.

요즘 들어서 눈만 붙였다 하면 야한 꿈을 꿨다. 방금 꾼 꿈도 그랬다. 누군가 페니스 밑동이 묶인 채 그녀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싸게 해 주세요, 베릴.......)

으악. 마른세수가 한층 더 격렬해졌다. 흥기 같은 그곳에묶인 리본이 크로우 집안 특유의 매듭법으로 마무리되었다.는 걸 떠올린 탓이다. 쓸데없이 사실적인 꿈이었다.

욕구 불만인가?"

그래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남자를 안 만난 지...... 어언...... 음....... 헤아려 보려던 베릴은 문득 슬퍼져서 그만뒀다.

"하아....... 연애는 됐고, 옷이라도 신나게 만들게 울끈불끈한 고객님 좀 오셨으면."

그녀는 '멘탈라인'이라는 작은 의상실의 주인이었다. 무려8대나 이어져 내려온 실력 있는 의상실. 그런 집안의 재단사였지만 몇몇 단골 외에는 좀처럼 손님이 없었다. 현대 센제국의 미인상과 베릴이 그리는 이상적인 몸이 정반대였으므로, 모처럼 영감을 발휘해도 알아보는 사람이 적은 탓이다.

베릴은 푸념을 흘리며 빗줄기가 미끈하게 떨어지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길 어딘가에서 이상형이 튀어나왔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러나 저편 비스듬한 방향에서 가게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기대와 달리 호리호리했다. 베릴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저 인간, 또 왔네."

몇 달 전에 옷을 한 벌 맞춰 갔던 남자였다. 그 후로 이상하게 가게 주변에서 자꾸 눈에 띄는 것 같더니, 최근에는 한자리에 붙박이처럼 서서 가게 안을 들여다본다. 근처 가게 주인들은 '이제 베릴도 시집갈 때가 됐구먼.' 하며 언제 남자가 고백할지 기대했지만, 당사자로서는 기분이 나쁠 뿐이다.

"할 말이 있으면 들어와서 하든지. 감시하는 거야, 뭐야?"

혀를 찬 베릴은 신경질적으로 커튼을 쳤다. 그런데 이게웬일? 커튼 레일이 날카롭게 긁히는 소리와 동시에 입구에 걸린 벨이 딸랑딸랑 올렸다.

붙박이가 움직인 건가? 사람이 그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순간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숨을 들이켜며 돌아본 자리에는 검은 망토와 후드로 온몸을 가린 사람이 서 있었다. 베릴도 꽤 장신인 편인데 그녀가 한참 올려다봐야 할 정도라 사람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그림자 같은 느낌이었다.

들어온 사람이 스토커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신전에서 받아 온 성수를 뿌려야 할지 베릴이 잠깐 고민하던 차였다. 깊게 눌러쓴 후드 사이로 정중한 말투가 흘러나왔다.

“의상실, 아직 영업합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객님이다! 소중한 고객님!

"네! 그럼요. 물론이죠!"

그러자 고객님은 다행이라는 듯 긴 숨을 내쉬며 후드를 젖혔다. 가무잡잡하고 커다란 손, 선이 굵은 턱, 짧게 다듬은 금발이 짧은 순간 차례로 드러났다. 인상은 입에 발린 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맑은 초록색 눈은 순박했다.

망토에서 후두둑 떨어진 물이 나무 바닥을 적셨으나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고객님의 망토를 받아 거는 베릴은 코 평수가 넓어지려는 걸 안간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팽팽해!

얼마나 옷이 따듯했는지 근육의 윤곽이 다 보일 정도였다. 아등바등 버티는 천이 용하다 싶었다. 바야흐로 이상형의 출현!

센 제국에서는 몸을 쓰는 것이 천하다는 인식 때문에 남녀를 막론하고 가느다란 몸과 가녀린 얼굴을 미형으로 쳤다. 여기 제도에서는 그런 경향이 특히 심했는데, 베릴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자라면 크고 굵고! 단단해야지!"

그녀야말로 다들 여리여리가 어쩌고, 날렵한 선이 어쩌고 하는 비실이들의 시대에 묵묵히 근육남의 길을 걷는 투사였던 것이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베릴은 고객님을 자리에 앉히고 안쪽으로 급히 들어갔다. 잠시 후 나은 그녀의 손에는, 보통 사람이 입으면 포대 자루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셔츠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이상적인 몸을 그리며 만들어 두었던 것이다.

입어 보라는 말에 고객님은 군말 없이 입고 있던 상의를 벗었다. 움직임에 따라 꿀렁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이 시야에 가득 찼다. 베릴은 저도 모르게 코 밑을 막았다.

'이것도...... 꿈인가?

그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고객님은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셔츠를 입었다. 커다란 손가락에 비해 조그만 단추를 어쩔 그렇게 빨리 끼우는지.

"저...

그러다 그가 난감한 표정으로 베릴을 바라봤다. 다른 부분은 맞춘 듯 잘 맞았는데 가슴 부분만 팽팽하게 벌어져, 그 사이사이로 골이 보이고 있었다.

그 절경을 본 순간 정신 줄이 탁 끊어졌다. 고객님이고 나발이고, 베릴은 평생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이상형의 손을 덥석 부여잡고 외쳤다.

“우리 결혼해요!"

두 남자의 눈이 동시에 벌어졌다. 난생처음 청혼이란 걸 받아 본 고객님, 그리고 창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던 붙박이. 그가 이를 악물며 창문에 바싹 달라붙었다.

***

앙헬 드 모비치는 남부 호르혼 지방의 해군을 통솔하는 제독이다. 오랫동안 백성들을 괴롭힌 해적 세력을 소탕하고 황제의 부름을 받아 제도에 올라왔으나, 그를 맞이한 것은 제도 귀족들의 비웃음이었다.

“아무리 시골뜨기라지만 황제 폐하 앞에 나서면서 복장이 저게 뭐람."

'사람 몸이 저렇게 클 수도 있나요? 야수의 혼혈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설마........"

하지만 그런 취급에 익숙한 앙헬은 별 타격이 없었다. 그를 괴롭히는 건 냄새였다. 독특한 후각 탓에 그는 생선이나 해초, 바닷바람 냄새보다 사람 냄새를 더 맡기 힘들어했다. 제도 귀족들처럼 인위적인 향기를 몸에 입힌 건 악취처럼 느껴져서 더욱 그랬다.

당연히 황제를 알현하자마자 귀향할 생각이었지만, 보좌관을 비롯한 부하들의 생각은 달랐다.

"황제 폐하의 탄신일을 기념해서 이 시기에 불러들이신거 아시잖습니까? 연회에도 꼭 참석하셔야 합니다."

거기에서 마음 잘 맞는 아가씨라도 만나면 더 좋고.

앙헬의 부하치고 그에게 목숨을 빚지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다들 충심으로 그 빚을 갚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적은 제독에게는 소중한 것이 없기 때문에 몸을 아끼지 않고 위험에 뛰어든다. 그 사실을 다들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생일에 이어서 다음 달 축일을 앞둔 의상실들은 모두 예약이 꽉꽉 들어찬 상태였다. 비가 오는데도 사위가 어두워질 때까지 돌아다니다가 겨우 발견한 곳이 바로멘탈라인 의상실이었다.

의상실 문을 열며 버릇처럼 숨을 참으려던 앙헬은 의아해졌다. 이 안에서는 아무런 악취도 나지 않았다. 제도에 올라와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뭘 찾는지 말도 하지 않았는데, 의상실 주인으로 보이는 검은 머리의 여성은 바로 새 셔츠를 들고 왔다. 눈치가 빠르구나, 하고 작게 감탄하는 것도 잠시,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앙헬은 놀라움에 숨이 멎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깨끗하게 빨아서, 남부의 강렬한 햇빛아래 보송보송하게 말린 천이 떠오르는 냄새. 무의식적으로 껴안고 싶어지는 냄새였다.

정말로 일을 칠까 봐 앙헬은 억지로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하지만 이 정도 크기라면 잘맞을 거라고 생각했던 셔츠도 그의 몸을 감당하진 못했다.

팽팽하게 벌어진 단추를 보며 그는 성인이 되며 잊었던 생각을 다시 떠을렸다.

'쓸데없이...... 징그럽게 몸만 크구나, 나는

평소였다면 옷이 찢어져도 배상하는 것으로 잊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람에게는 경멸하는 눈빛을 받고 싶지 않았다.

"저......”

일단 벗겠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려던 순간이었다. 포근한 향기가 훅 끼치며 손이 답삭 잡혔다.

“우리 결혼해요!"

앙헬의 의식이 혼미해졌다. 좋은 냄새, 부드러운 손바닥과굳은살 박인 손끝의 감촉, 무엇보다도 평생 들을 리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말의 내용 때문에.

원래 그였다면 그대로 입을 다물고 자리를 떠났을 텐데,이상하게도 이 사람 앞에서는 내심이 흘러나왔다.

"어째서...... 저 같은 것한테 그런 말씀을."

그러자 베릴은 얼굴을 팍 찌푸렸다. 예쁜 꼬리가 위트치솟자 시소처럼 앙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지금 이...... 이렇게 예쁜 몸을 모독하는 거예요? 본인이?"

떨어졌던 심장이 목구멍 아래까지 치솟았다. 지금껏 그의몸을 보고 이렇게 말해 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부모님조차 '웬만하면 평생 군인으로 살아라.' 하고 말았던 덩치였다.

흰 손이 긴장감 때문에 팽팽하게 부푼 가슴 위를 어른거리다가 물러났다. 앙헬은 멀어지는 베릴의 손을 저도 모르게아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심장이 계속 목 아래에서 쿵쿵널뛰는데 어떻게 돌려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쉽고 두근거리는 건 베릴도 마찬가지였다. 저 탐스러운몸을 당장 조몰락거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다. 하지만상대의 반응이 별로인데 별수 있겠는가? 돈이나 벌어야지.

베릴은 속으로 가언을 연거푸 중얼거렸다.

'정신 줄 잡자. 정신 줄.

정신 줄 잘 잡으라고 조상님께서 의상실 이름도 멘탈라인으로 지으셨는데 후손인 그녀는 욕망 앞에서 끊어 먹고 말았다. 빨리 정신을 차렸으니, 그리고 손님이 화를 내며 박차고 나가지 않아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귀한 손님을 잃을 뻔했다.

"어흠, 실례했습니다. 옷을 새로 지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품목으로 몇 벌이나 필요하신지요?"

그제야 앙헬도 여기 온 이유를 다시 떠올리고 부하가 적어준 종이를 얼른 주머니에서 꺼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옷깃이 벌어지고 당겨지며 갈색 속살이 보였다. 베릴은 무표정을 유지하려 얼굴 근육에 힘을 줬지만,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만져 보고 싶다. 핥고 싶다....... 깨물어 보고 싶다......!"

이상형이 눈앞에 있는데 왜 먹질 못하니. 그림의 초콜릿도아니고!

내적 오열과 함께 앙헬이 건넨 종이를 본 그녀는 살짝 놀랐다.

꽤...... 많이 주문하시네요? 이 정도라면 2주일은 걸릴 텐데."

주문 수량을 생각하면 그것도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 재봉사 집안 8대손인 베릴은 가봉 단계 없이도 딱 맞는 옷을 만들어 낼 정도로 피 나는 특훈을 받은 몸이니까.

그러나 의상실에 들어오는 것도 처음인 앙헬은 걱정스러웠다. 당장 모레 있을 연회에서도 입어야 하는데 2주일이라니.

그의 눈썹이 처지는 걸 보고 베릴은 싱긋 웃었다.

"하지만 급히 필요한 것 같으시니까, 바로 한 세트부터 만들겠습니다. 내일 이 시각쯤에 찾으러 와 주세요."

"그렇게 빨리? 가능합니까?"

눈에 띄게 안도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저 탄탄한 턱 끝을앙 깨물고 싶은데, 베릴은 꾸우욱 눌러 참았다.

“물론 추가금이 붙습니다. 철야해야 하거든요."

"금액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망설임 없이 내민 백지 수표가 의외였다. 하지만 베릴의'구심은 오래 가지 않았다. 범죄자도 옷은 필요한 법, 얼마든지 돈을 준다니 환영할 일이다. 더군다나 꿈에 그리던 '드림 바디에 입힐 옷을 만들 수 있다니! 영감이 마구 솟구쳤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치수를 잴게요."

활짝 웃는 베릴과 반대로 앙헬의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읏'

베릴의 손이 닿는 곳마다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어깨너비나 팔 길이를 잴 때는 그럭저럭 참을 만했다. 그러나 가슴둘레를 잰다며 껴안았을 때는 보송한 체향이 확 풍기며 이성이 흐릿해졌다. 머리를 묶어 드러난 흰 목덜미에코를 처박고 싶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결혼하자는 말은 그가 모르는 제도식농담 같은 것일 텐데 믿어 버리면 얼마나 우스워지겠다. 앙헬은 눈을 꼭 감고 상상 속의 배를 한 척, 두 척 세기 시작했다.

베릴이 알았다면 귀여워서 홀라당 삼켜 버렸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등 뒤로 손을 돌려 껴안은 건 불과 1, 2초나 될까말까 했으니까.

앙헬의 생각은 몰랐지만 그녀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잘록한 허리를 재면 힘이 꼭 들어가 단단해지고, 한 아름으로는절대 안을 수 없는 가슴을 잴 때는 대흥근이 팽창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

왕가슴 너무 좋아! 왕가슴 최고! 딴딴한 왕가슴!'

그러나 가슴탈트 붕괴가 을 정도로 머릿속으로는 대흥근을 외칠지언정, 입으로 내보내야 하는 건 재단사로서의 질문이었다.

수납은 어느 쪽으로 하시나요?"

수납?"

완벽히 못 알아들었다는 표정에 베릴도 감을 잡았다. 이 남자는 의상실에서 옷을 맞춰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굳이 설명하는 대신 아래를 확인했다.

하마터면 사레가 들릴 뻔했다. 이 명확한 윤곽을 두고 질문을 하다니. 그녀는 어지간히도 왕가슴에 정신이 팔린 자신을 책했다.

"아...... 네. 오른쪽이네요."

그제야 앙헬도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 알아차렸다. 그의 목덜미가 달군 쇠처럼 시뻘게졌지만, 아래에만 시선을 고정한 베릴은 보지 못했다.

'진짜...... 실하다.......'

지금껏 봤던 페니스들을 모조리 수수깡으로 만들어 버리는 위용에 숨이 다 떨렸다.

어느새 의상실 내부의 공기는 긴장으로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베릴은 후들거리는 손끝에 힘을 주며 굵은 허벅지에 줄자를 둘렀다. 그 작은 자극에, 앙헬의 것이 꿈틀 반응하며 커졌다.

"맙소사.

발기한 것이 확실했다. 앙헬은 민망해서 죽을 것 같았지만베릴의 눈은 반짝거렸다. 아까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비발기 상태였다니. 사람을 흘리는 열기에 그녀도 모르게목 뒤로 침이 넘어갔다.

입에 넣어 보고 싶어.

펠라티오에 거부감이 있던 그녀로서는 처음 해 보는 생각이었다. 무슨 맛이 날까, 어디까지 찌를까, 얼마나 더 커질까. 생각하면 할수록 몸속에 열기가 쌓였다.

무슨 정신으로 치수를 다 잤는지 몰랐다. 출자가 닿는 곳마다 만지고 주무르고 깨물고 싶었다.

떨리는 손으로 대충 줄자를 감은 베릴이 빨개진 볼을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저기. 혹시......”

만나는 사람 있나요? 결혼이 부담스러우면 사귀는 사이로도 괜찮으니까 아무튼 사귀는 사람만 없으면 일단 2층으로올라갑시다! 은밀한(?) 부위도 한번 재 보도록 해요!

줄줄이 이어지려던 말은 앙헬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틀어막혀 버렸다.

빨개진 눈 밑, 조금 부푼 채로 겉이 마른 입술, 힘이 들어간턱, 꽉 쥔 주먹.

'이 사람도...... 원해.'

말이 필요 없는, 본능적인 신호였다. 결심한 베릴이 그의 손을 잡아채 끌어당기려던 순간이었다.

투웅!

지금까지 용케도 버티고 있던 단추가 뜯겨 나가며 그녀의 얼굴을 가격했다.

"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베릴이 뒤로 넘어갔다. 앙헬이 어쩔줄 몰라 하며 그녀를 잡아당겼다.

괜찮으십니까?"

다행히 눈은 피했지만 광대뼈 윗부분에 제대로 맞아 멍이들 것 같았다. 흥분을 참느라 숨을 크게 들이마셨을 뿐인데 이런 참사가 일어나다니. 앙헬은 자책하며 연거푸 사죄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새 옷을 망가뜨리고 얼굴에 상처까지 냈다. 치수를 재다가 흥분하다니 이 무슨 짐승 같은 짓인지. 이렇게 예쁜 사람이나 따위에게 관심을 둘 리가 없는데...... 눈빛을 오해해서.......

앙헬이 계속해서 땅을 파는 한편, 어쩌다 보니 그의 품에 안긴 베릴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탄탄하면서도 말랑한 감촉이 온몸을 감쌌다. 게다가 눈앞에서 울렁이는 목젖에,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울먹거리는 목소리까지.

'이걸...... 버티면...... 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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