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원룸크레프트 - 1999[SF]
원룸크레프트
방 한가운데 서있는 테리는 아주 꽉 끼는 바지를 억지로 입느라고 애쓰고 있다. 테리가 연이어 힘을 쓰자 넓은 어께랑 가슴이 세차게 흔들린다.
나는 그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가위를 들고 다가가서 팬티의 왼쪽 엉덩이 이음매를 잘라버린다. 테리가 뒤돌아본다.
-뭐 하는 짓이야!
-테리, 도와준 것뿐이야.
-팬티를 또 사야 되겠네.
테리가 빨강 망사 팬티를 집어던진다. 팬티가 세라믹스 의자에 걸린다. 탐스러운 엉덩이가 바지 위로 잠깐 드러난다. 저 엉덩이 사이엔 잘 조여진 암갈색 항문이 다소곳이 숨어 있겠지. 테리가 아직 깨어나기 앞서, 테리의 항문에 내 유머러스한 페니스를 집어넣었었다. 음경은 길게 서있지만 상당히 가는 상태에서 젤을 바르고 집어넣으면 잘 들어간다. 그런 다음 테리의 알몸을 보면서 페니스를 굵게 만들었다. 앞에서 집어넣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동안 움직이고 있자니까 테리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는 엉겨 붙은 채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테리랑 나는 바닥을 뒹굴다가 내가 사정을 한 덕택에 가까스로 떼어질 수 있었다. 여자는 너무 너무 불쌍해. 남자가 떼어내야지 떨어질 수 있으니까. 테리가 조잘댄 말이었다.
테리가 바지를 허리까지 올리며 말한다.
-오! 이제 잘 들어가는데. 그래도 쓸모가 좀 있구만, 루이.
-당연하지.
나는 어께를 으쓱해 보이고는 마저 계란 후라이를 했다. 불을 끄고 벨브를 잠근 다음 접시에 옮겨 담는다. 가스렌지 옆에 놓인 토스트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오더니 잘 구워진 식빵이 허공으로 치솟는다.
테리가 밝은 노란빛으로 윤기 흐르는 윗몸에 검정 가죽 재킷을 걸치고 지퍼를 올린다. 내가 한 행동적인 충고를 알아들은 테리는 브레지어를 입지 않았다. 그래도 가슴은 꽤 풍만하다.
-넌 늘씬한 애가 바지는 허리에 겨우 걸리는 걸 입냐. 재킷 아래로 배꼽이 보이잖아.
-너 나랑 살기 싫으니?
-또 그 소리냐? 이거나 먹어.
내가 테리에게 쟁반을 보인다. 식빵 사이에 계란 후라이가 끼고 위쪽에 있는 식빵에만 버터를 바른 샌드위치랑 섬유질이 짙게 들어가 있는 시디 신 음료가 나란히 쟁반 위에 놓여 있다.
-또?
-어떻게 하냐. 공급 센터에서 급식이 줄었는데. 아침 식사는 꼭 먹어야 건강에 좋아.
내 잔소리에 테리가 볼멘소리를 낸다.
-알았어.
테리가 샌드위치랑 음료를 해치우고는 문 바로 옆에 놓인 세면대로 가서 이빨을 닦는다. 칫솔이 자동이어서 그리 길게 걸리지 않는다. 물을 받은 다음 손을 양쪽 귀 쪽으로 쓸어 올리듯이 움직여 얼굴을 다시 씻는다.
-수건 줘.
내가 미리 수건을 들고 있다가 테리한테 던진다. 테리가 받아서 얼굴에 수건을 살짝 대는 식으로 물을 닦아낸다.
테리가 침대에 윗몸은 일으킨 채 누워서 침대 옆에 붙은 선반을 앞으로 끌어다 놓는다. 선반 위에는 거울이랑 화장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받아.
테리가 분홍빛 매니큐어를 던진다. 테리가 가지고 있는 분홍빛 매니큐어만 색깔 별로 300가지가 넘는다던데 내 눈엔 다 똑같아 보인다. 밤에, 아침에 어떻게 화장할지 다 계획해서 선반 위에 벌려 놓기 때문에 이렇게 빠르게 할 수 있다.
침대에 걸터앉는다. 테리는 이미 화장을 하고 있다. 테리의 발을 붙들고 매니큐어를 발톱에다 꼼꼼하게 칠해준다. 테리는 단화만을 고집해서 그런지 발이 아주 곱다.
테리가 말한다.
-너 발 간지럽히면 알지?
-응.
그러면 곤란하다. 테리가 늦어서 일이 틀어지면, 나도 일 하는데 아주 힘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테리랑 아침부터 싸우기 싫다.
테리가 침대에서 일어난다. 귀 옆에 스카우터가 끼워져 있고 눈이랑 입술을 강조한 화장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크고 예쁜 파란 눈이 더 크고 더 화려해 보인다. 스카우터는 안경과 모양은 같았지만 컴퓨터였다.
테리가 기다란 갈색 머리채를 흔들더니 말한다.
-나 머리 밀어버릴까 봐.
내가 황당해하며 묻는다.
-왜?
-어차피 헬멧 쓰고 일 하니까 머리 보일 일도 없잖아.
-그래도 머리카락이 있어야 머리가 지켜지지. 그리고 나 너 삭발한 모습 보기 싫다.
-그래. 관두지 뭐.
테리가 맨발에 샌들을 신는다. 내가 테리 앞에 선다.
-루이, 왜 공급 센터에서 배급이 준 거야?
-버그 약 5만이 드롭해서 242 기를 때려 부쉈데.
-242 기? 그러면 인공 자궁 12만 1천 개에 농장 968개가 날아간 거네.
-그렇지. 물론 버그들은 곧 전멸시켰고.
-5만이면 살짝 기습한 거니까 쉬웠겠다. 근데 그런 것 치고는 피해가 좀 있다.
-며칠이면 다 복구 될 텐데 뭐.
-들어가는 자본과 기술과 자원이 아깝잖아. 인력은 또 어쩌고.
-맞다.
테리가 얼굴을 살짝 내민다. 서로 뺨을 붙들고 입술만 가볍게 맞댄다.
-잘 가.
-있다가 봐.
테리가 문을 나선다.
의자 위에 있는 팬티를 쓰레기통에, 접시랑 쟁반을 식기 세척기에, 빨래감은 세탁기에 던져 넣는다. 선반을 원위치 시키고 침대 위에 몸을 던진다. 아까부터 쿵쾅대고 있던 오디오를 꺼버린다.
정적에 몸을 맡긴다.
허리를 젖혀 단숨에 일어난다. 세면대 옆에 있는 수도꼭지로 가서 우유를 유리컵에 가득 담아 들이킨다. 술이나 커피 같은 걸 마시고 싶지만, 커피는 아까 마셨고, 술은 일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아참, 테리는 옷감을 가지고 노는 걸 좋아하지. 쓰레기통에서 잘린 팬티를 꺼내서 세탁기에 넣는다.
세면대 옆에는 샤워기가 있고 그 옆엔 양변기가 있다. 뚜껑을 둘 다 젖히고 방광에 조금 남아 있는 오줌 한 방울까지 배설한다.
시간이 되면 시계가 울릴 것이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나? 세탁기에 달린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니 확실히 돌아가고 있다. 가위에 잘린 팬티가 돌아다니는 것도 보인다.
테리는 저 팬티를 가지고 뭘 만들까? 아무래도 레이스로 만들어서 옷에다 붙일 것 같다. 그런 짓 많이 하니까.
테란은 모든 걸 다 만든다. 테란이란 모행성에서 기원한 모든 지성체들의 연합이다. 나도 테란의 공급 센터에 속한 인공자궁에서 만들어졌으니까. 옛날 테란이 아직 인간, 엘프, 드워프, 고블린, 오크, 트롤 따위로 나뉘어져 있을 때에는 가정이란 데에서 아이들을 생산했었다고 한다. 그때 사람들이 지금의 테란을 제대로 상상할 수 없었듯이, 나도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다. 테리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내가 어떻게 알겠어.
시계가 울린다.
구두를 신고 원룸 밖으로 나가 문을 닫는다.
수많은 문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복도다. 끝을 향해 걷는다. 지나가는 테란들이 가끔씩 있다.
복도 끝에는 수많은 갈림길들로 갈리는 움직이는 길이 있다. 상당히 넓어서 테란들이 아무리 많아도 넉넉하다. 길 위에 눕는다.
천정에는 어디까지 왔는 지 표시하는 문자들이랑, 새로운 테란이랑 상품이 나왔다는 공급 센터의 광고, 어떤 기지에서 어떤 유닛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 지의 정보들이 차례로 지나가고 있다.
갈림길이 나온다. 손가락으로 바닥을 누른다. 바닥이 나를 태운 체 떨어져나가 마이크로 웨이브 덕으로 날아서 아래층에서 움직이는 길에 가 달라붙는다. 천정은 곧 채워진다. 테란은 조상들과는 달리 마이크로 웨이브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는다. 처음엔 혼혈로 생겼지만, 그것을 바탕 삼아 생명 공학 연구실에서 한 조각씩 꼼꼼히 만들어진 까닭이다. 이제 테란은 노동력을 공장식으로 생산한다.
몇 차례 그렇게 내려간다.
마침내 엘리베이터에 이른다. 엘리베이터에는 테란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서있어야 한다.
주차장이다. 길고 포개져 있는 선반들 위에 모터 보드들이 수십만 개 늘어서 있다. 아무 거나 하나 빼서 탄다. 아무 헬멧이나 빼서 쓴다.
문이 열린다.
중앙 본부를 떠나 야만과 적이 우글거리는 세상으로 간다. 아군을 뺀 엄청난 다양성을 세상이라 부르는 것에는 반대지만, 그러한 정서 밖에 들지 않는다.
헬멧 앞에 있는 안경에 갖가지 정보들이 표시된다. 내가 교대할 해병대원이 어느 벙커 안에 웅크리고 있는 지도 나온다.
테리는 잘 있을까.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남녀로 짝 지워져 원룸 안에 넣어진다. 테리는 3번째 짝이다. 첫번째는 교대하러 가던 도중에 익룡에게 걸려 죽었고, 두번째는 날 마음에 들지 않아 했다. 테리는 디텍터다. 며칠만 더 버티면 비교적 안전한 중앙본부에서 오퍼레이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에 죽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요즘 버그들의 침공이 더욱 거세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땅은 온통 갈라진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대가 움직이는 중이다.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든 피를 부른다. 그렇다고 내가 피를 흘리지 않으면 내 지인들이 목숨을 잃겠지. 테리와 사이에서 인공자궁에 태어난 것이 아닌 내 진짜 아이를 낳고 싶었고 그러려면 부모 자격증을 따고 제대로 된 양육 환경에서 키워야 했다. 모든 건 버그들을 무찌른 다음 문제다.
난 포보병(砲步兵)이다. 포보병과 공해군을 모두 겪고 버그와의 싸움터에서 무수한 아수라를 돌파한 자들만이 고위층이 될 수 있기에 우리 테란은 고위층에 명령권을 위임한다. 인공자궁에서 태어나 평생 가족을 이루지 않는 이들이 대부분인 우리 테란이기에 가족을 빌미로 충성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권력만을 누리는 그런 파렴치한이 있다면 난 그의 머리에 권총을 당길 것이다. 누구는 목숨 걸고 현장에서 싸우는데 누구는 권력만을 이용해서 모든 권리를 가져간다는 것인가.
근무를 끝내고 테리와 나의 방으로 돌아오니 테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스럽고 자긍심이 일었다. 테리는 날 보자 몸이 달았는지 씻지도 않은 내 앞에서 뒤돌아서서 발가벗은 엉덩이를 내밀었다. 그 서슬에 테리의 허리가 굽혀졌다. 분홍빛 음부가 선명하게 내 눈에 밟혀왔다. 난 테리의 엉덩이에 손을 대고 크게 벌려 음부에 내 페니스를 깊이 박아 넣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싸움터에서 테리와의 사랑은 큰 위안이었고 또한 허무를 느끼게 하는 일이었다.
[199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