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6화 〉음계록(蔭界錄) - 1999[판타지](완) (66/84)



〈 66화 〉음계록(蔭界錄) - 1999[판타지](완)

도란돔의 연구실은 아직도 북적거리고 있다. 언듯 보면 사람 사는 내음이 물씬 풍기는 생김새라 여겨진다.

에니치 팅킨은 연구를 거듭하면서도 맑고 달콤한 눈길로 동혁을 할깃 할깃 보고 있다. 이런 것이 지구에서 이루어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를 참되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야 이루어질 수 있었을 풍경을  체로 꿈꾼다. 서로에게 쉼터  수 있는,  믿음 속에 녹아든 사랑. 그런 사랑 있다면 음계에서의 권력 모두를 내던지고 한칸 사글세 방에서 옹기종기 힘겨이 살아도 좋으리라고 그가 잠깐 여겨본다. 그렇다, 잠깐일 뿐이다. 터무니없다 못해 엉뚱한  행운을 참사랑 따위와 바꿀 바보가 어디에 있으랴.  가지 가운데 하나 밖에 고를 수 없을 때 참사랑을 고를 이가 몇일까. 깨어지기 쉽고, 지금까지 있었는 지조차 수수께끼인 그것을 바라 음계 권력을 버린다는 건 단지 멀리서 바라보는 눈일 따름이다. 스스로와는 아랑곳없는 이만이 그런 소리를   있으리라.

에니치가 꿈틀이고 출렁이는  하나를 허공에 띄운다. 엿 같기도 코 같기도 한 생김새. 그녀가 색정스런 눈길로 그 꼴을 바라보며 고운 혀를 앞뒤로 놀려댄다. 에니치가 말한다.


“ 이건 파라브라자의 가장 작은 짜임새를 동혁 님이 알기 쉽게 나타낸 그림입니다.
이보다 더 깊이 파고들면 짜임새는 사라지고 오직 파라브라자만이 남지요. 이런 짜임새들이 숱하게 모여 음계를 이루고 있는 겁니다. 에너지계에서의  끈 짜임과 엇비슷한 자리를 잡고 있지요.
이들은 세 가지 성질에 따라 나누어지고 모여듭니다. 겹침, 끈적임, 흔들림이 그것입니다. 곁에 있는 다른 짜임에 겹치고 끈적이고 스스로 흔들리는 것이죠. 겹치는 세기, 끈적이는 세기, 흔들리는 세기에 따라 짜임들은 스스로 나누어지고 모여듭니다.
한 짜임이 지니는 파라브라자의 무게는 서로 똑같지만, 겹치면 서로 섞여 넘치는 무게를 짜임 밖으로 내보냅니다. 많이 끈적이면 끈적일수록 서로  겹치지요. 서로 겹치면 흔들림이 느려집니다. 많이 흔들릴수록 잘 겹치기도 합니다. 많이 겹치면 끈적임이 덜해집니다.
한 번 겹칠 때마다 여럿으로 나누어지지요. 하지만 딱히 나눌 수 있는 빗금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답니다. 제가 지금껏 한 말들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

 어쨋든 초 엿(Super Cream) 짜임이라 부르자 ”

“ 예. 초 엿 짜임 하나가 지닌 파라브라자는, 에너지계 모두보다 더 큰 힘을 지니고 있어요. 제가 헤아리는 식으로 보면, 저에게 있는 초  짜임의 숫자는, 에너지계에 있는 초 끈 짜임의 숫자를 그 초  짜임의 숫자로 제곱한 것 보다도 많아요. 초 엿 짜임의 숫자는 힘에 비례하고요 ”

“그런 터무니없는! 하나 이곳은 음계. 넓디 넓은 뜨거운 곳. 옛 사상가들이 말한 참된 누리에, 끝없이 가까운 곳.”

가까스로 얻은 음계에서의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다. 어떤 댓가를 치러서라도 지켜내고야 말리라. 그가 음계에 있을 수 있는 확률은 너무나 적을 것이다. 숨결이 에너지계에서 내쉬어질  있었던 확률을 수없이 제곱해야 그 확률에 이를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물론 대우주의 진리가 필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쌓임이여야 이룩될  있는 글월이지만.

에니치는 알았을까. 그녀는 지금 음계에 빗금을 그었다는 거. 1이든 7534구골 플렉스든 가이없음에 비하면 똑같기에 음계는 이제 자그마해졌다. 초 엿 짜임은 끝없이 많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초 엿 짜임 하나 하나는 무게가 잡혀 있다. 대우주도 가이없음은 아닐  모르지만, 가이없음이라는 깨달음은 그래도 살아있다.

에니치가 말한다.


“ 그렇군요. 서서히 음계도 자기 사소화를 바라보며 가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요. 그게 참됨이라면 달게 받아들여야지요 ”

“ 자연 과학은 음계에서도 드세군. 초 엿 짜임이 디도 카젤을 어떻게 만드느냐를 제대로 알아? ”


“ 아직은 멀었어요. 워낙에 번잡해서 ”

기능은 매우 간단하여도 바탕의 복잡성은, 사람이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건 에너지계의 여러 얼개들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마당에 에너지계의 뿌리라는 음계는 또 얼마나 더 복잡할까. 사람의 머리론, 아무리 그가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여도 파악할  없다. 오컴들의 시대가 오더라도 더욱 깊이 더욱 높이 알 수 있을 따름일 뿐, 바닥까지 꿰뚫어 보기란 여전히  길로 비춰질 것이다.


음계의 고갱이인 초 엿 짜임이 현실로 올라와, 내 님처럼 굴어대고 있는 디도나 내 깔처럼 굴어대는 수루치가 되려면 얼마나 엄청난 복잡함이 숨겨져 있을까. 에니치, 그걸 좀 알아내 줘. 그러면 너에 대해서도 좀  알 수 있을  아냐


초 끈 짜임은 26차원. 그가 온 볼 수 있는 우주는 3차원. 초 엿 짜임은 끝없는 차원. 머나 먼 높이에서 현실로 내려떨어지는 매서운 진리의 무게가 꾸짖는 바는, 대우주의 알과 좁디 좁게만 여겨지는 나라는 살이 사이엔 어떤 윤리스런 사이도 엮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스스로 말미암는 대우주는 언제나 가이없이 오롯한 살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닐 뿐이다. 목숨은 아무 것도 바꿀  없다. 그저 현실에 가능성을 들이느냐 안 들이느냐의 야바위 놀음을 제 머리 속에서만 할  있을 따름. 절대 진리가 필연의 섭리이든 우연의 쌓임이든 자유 의지란 없다. 헤브라이즘이나 성리학 따위 깡패들이랑 또라이들의 파시즘은 조금도 따질 것이 못 된다.


애쓰지 않을 수는 없지. 대우주는 사람을 아우르고 있으니까. 그는 살아있으므로.

에니치가 싱글거리며 말한다.

 도란돔의 많은 연구소들이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 일이랍니다. 음계는  밝혀질꺼예요. 숨겨진 모든 것들을 까발릴꺼예요! 아폴론은 하데스의 나라에 햇살을 비칠 거라구요 ”


해가 굴 안을 비치면, 모든 곡두는 무너져 힘을 뺀 어떤 가치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속뜻은 조금 스산하지만, 말투가 싱싱해서 견딜만한 이야기로 들린다. 그가 좋아하고 곁에 두는 음계 지성들은 하나 같이들 웃음이 참 많다. 때문에 바짝 굳어있던 동혁에게도 웃음이 많이 늘었다. 웃으면 즐거워지지.

아는 즐거움은 괜찮은 즐거움이다. 보수반동 똘반의 골수 식인종이었지만, 조금의 가르침은 남긴 공자도 그랬잖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디도도 음계의 진화 과정에서 태어난 이이다. 동혁 스스스로의 역할이라곤 좀 빠르게  것 밖에 없다. 지식은 더욱 무자비하고 빠르게 음계를 바꿀 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진화의 뜻이라면, 돌이키기 어려운 것이라면, 받아들여 제 것으로 만드는  나은 법이다.


“ 디도 ”

 왜? ”


디도의 머리가 허공에서 불쑥 튀어나온다. 자궁에서 아기가 나오듯, 뒤이어 아름다운 몸이 따라나온다. 그녀의 다른 조각들은 애써서 꾀를 부리고 있지만, 얼마든지 동혁이랑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해도 어우러짐은 다치지 않으므로.

 궁금해서 부른 것 뿐이야.  부리는 건 제대로 되고 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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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니가 만들어준 이론에 헛점이 있었어.  5단계까지만 하면 싸울 거라 그랬잖아. 그런데 꾀를 부리자마자 싸우더라 ”


“ 야호! ”


“ 문제는 또 있어. 미슈티가 도르바를 금새 없에버렸어. 너는 둘이서 오래 싸울거라 그랬잖아 ”


 그래서 도르바의 파라브라자를 먹었니? ”


“ 물론. 아직 미슈티를 이길 수는 없지만, 이젠 거의 다가가고 있어! 


 나는 니가 소서노가 되기를 바래 ”

 디도가 되는 게 훨씬 나을텐데. 너한테는 말야 


“ 너한테는 소서노가 낫잖아 ”


 난 둘 다 싫어. 자청비면 또 몰라도 


자청비, 참으로 거칠게 살아  무속 신화 속의 땅하나님(여신). 여염 집 따님으로 태어나 옥황상제의 며느님이 되기까지 그녀가 겪은 숱하게 많은 쓰러짐, 절망, 희망, 모험. 사랑과 척에 내몰려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홀로 머나 먼 곳에서 헤메이기도 했다. 오로지 살기 위해 까마득한 어둠 속을 걸어야 했던 그녀였지만 마침내는 지아비와 더불어 하늘나라의 어지러움을 깨끗이 씻고, 땅에 내려와 온갖 무지렁이들의 아픔을 쓰다듬고 제대로 삯을 쳐주는 땅하나님이 된 빛나는 어머니로 자리잡았다. 많은 아픔을 겪은 그녀라면  살이들의 삶의 삯을 오롯이 쳐줄  있으리라 여겨진다. 제발 디떼 스타가 그렇게  수 있기를.

“ 날 지나치게 쳐주는  같다. 하긴 내가 먼저 헛소리를 했지. 날 고추모에 비겼으니까. 근데  더하다. 문도령한테 비기다니 말야 


“ 뭐 어때. 들을 사람도 없는데. 너는 나한테는 문도령이야. 설래이는 마음 속으로 이어지지만 몸으로는 떨어졌다 이어졌다를 거듭해야만 하는 슬프고 아름다운 기나 긴 사랑 이야기 ”

“ 어째서? 우린 같이 있잫아 ”

“ 너랑 난 하나가 될 수 없거든. 가까이 다가가려 애쓸 따름이지. 견우성이랑 직녀성은 절대 만날 수 없어. 16광년이나 떨어져 있으니까. 만나는 날 저주를 받으며 중성자성이 태어나겠지. 지구인들은  기억의 바다 속에서 얼마든지 하나 될  있는 아름다운 길을 찾아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어 ”

“ 난 이래서 니가 좋아. 가끔  어울리는 소리를 해서 사람 놀라게 한다니까. 난 온달이야. 넌 평강이구. 아마 그게 우리 사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아. 나한테 뭐가 있냐. 너 뿐이잖아 ”

디도의 눈길은 뜻밖에 쓸쓸해보인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동혁을 들뜨게 하고 살갑게 하던 디떼가 아닌 것 같았다.


그녀가 말한다.

“ 세찬 적이랑 맞서 싸우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넋만 남아 그 땅에 붙들려 있다가, 사랑하는 이가 달려와 애닳게 울부짖다가 끝내 더불어 사라져버리길 바라고 있는 거야?”


살이에게 해로운  것들에게 짖밟혀 죽고 싶지는 않아. 자연 과학이 그럴 가능성을 드러내고 말았으니까. 음계가 예외라는 믿음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너를 만나기 옛날 아무 것도 모르기에 시름 없던, 음계라는  못 안의 알로 돌아가기도 싫어. 알은 이제야 올챙이가 되었어. 도룡뇽이 되든 개구리가 되든 두꺼비가 되든 너른 곳을 헤메이는 아한카라가  거야. 혹시 알아? 저주가 풀려 두꺼비가 달의 여신 항아가 될지. 지아비인 예를 어떤 일 있어도 저버리지 않는 항아가 되겠어. 그래야 두꺼비로 다시 굴러떨어지지 않을테니까. 그래야 오손도손 오랫동안 제대로 사랑할  있을테니까.


“난  관 옆에서 울다가 쓰러져 죽기는 싫어. 그건 진짜 싫어! ”

 니 마음이 곧 내 마음이야! ”



그는 숱한 마르가랑 더불어 여러 자료를 모아서 디도가 이길 수 있는 꾀를 어떻게든 만들려고 애쓴다.


“ 헤이! ”


햇볕에 그슬린 노랑 살결을 지닌, 풀 넘치는 아가씨 하나가 나타난다. 컷트  머리는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검정 빛깔이다. 그로서는 처음 보는 얼굴로, 조금 드세 보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러니까 핑클의 옥주현이랑 어딘지 닮은 데가 있는  같아 보인다. 누나라 부르며 쫓아다니거나(그가 나이가 1살 많다),  클럽에 들지는 않았지만(그럴 마음까지는 안 들었음), 잡지에 있는 브로마이드를 벽에 오려 붙일만치는 좋아했는데 음계의 딸에 닮았다 여기니 좀 캥긴다. 더구나 머리 위에 자그마한 페니스 한 쌍이 뿔처럼 달려 달랑거리고 가끔 꼴리기까지 하는 계집애하고 말이다.

수루치가 묻는다.


“ 무슨 일로 오셨어요? ”

그가 묻는다.

“ 도란돔 사람이야? 


도란돔의 음계 지성이라면, 힙 합 차림을 하고 있다고 별 나게 보여 사회에서 왕따가 되기 쉽게 몰리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이브닝 드레스를 맵씨 있게 차려입은 수루치가 언제나처럼 곱다시 답해준다.


“ 예. 게다가 아디카리(Adhikari, 베푸는 이) 사람이기도 하네요 ”


디도는 요즘들어 아디카리라는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그가 생각거리를 주어 태어난 것이다. 거진 다 서로 돕지 않고 홀로 사는 다른 아한카라들과는 달리, 서로에게 베푸는 이들이 있기는 있다. 그런 이들을 모아서 아디카리라고  것이다. 아디카리에 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이들도 잘 일깨워 아디카리로 이끌어냈다. 아디카리라고 마음이 다 있는 건 아니다. 도란돔이 다 아디카리는 아니다. 아디카리는 도란돔에서도 너무나 드물다. 아디카리가 태어남으로서 디떼의 권능은 더욱 더 널리 떨쳐지게 되었다. 그는 아디카리하고만 일하길 좋아한다. 스스로의 마음으론 아디카리가  수 없다는 것이 까닭 가운데 하나다. 아디카리는 오롯한 무정부주의 공동체라 할만하다. 그 어떤 무정부주의자들이 말한 것보다도 헐겁고 넓지만 말이다. 하지만 도란돔은 어딘지 파시스트의 유토피아에 가까웠고  점은 동혁의 마음에 앙금으로 남았다.

디도 카젤은 아디카리가 아니다. 짱은 꼬붕들이 스스로를 믿도록 만들어야하지만, 일이 벌어지면 얼마든지 없에버릴 수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아직 민주주의를 쫓아갈 겨를은 없다 여겨진다.

“ 이름이 뭐지? ”


“ 모히니(Mohini)라고 해. 내 머리 위에 있는 페니스들 너무 너무 작고 귀엽지? 한  말할 게 있어서 왔어. 상징을 하나 이야기하려고. 디도와 벗들의 상징 ”

디도가 음계를 다스리게 되면, 음계 모두의 상징이  그런 가지의 것이므로 무거이 거듭 거듭 여겨 마음 잡아야  일이다.

“ 디도와 벗들? 어딘지 베낀다는 느낌이 들지만, 관두자.  나도 좋아하는 밴드니까. 어떤 상징인데? ”

“ 파라브라자를 가지고 만든 거야 ”


“ 뻔한 소리잖아. 넌 음계의 아한카라니까 ”

모히니가 말을 잇는다.


“ 음계에서 으뜸 가는 파라브라자는 대우주의 씨앗에 머물러 있는 소니까 상징은 소가 되어야 해. 근데 어떤 소가 되어야할까. 가짓수가 아주 아주 많잖아. 그러니까 동혁이가 이야기해 줘 ”

 음~~~. 소인  괜찮네. 사람의 슬기가 나아감과 더불어 이를 떠받들어 준 소중한 도깨짐승이지.”

바빌로니아 신화의 하나님는 깊은 못 속에 사는 검은 숫소지. 옛 이집트의 으뜸 하나님인 아멘 래도 숫소의 생김새고. 옛 동양권에도 소를 거룩히 여기는 건 널리 퍼져 있어. 러브크래프트의 호러에서도 숲 속의 검은 산염소 슈브 니크라토가 나오지. 시카고 불스를 그런대로 좋아하긴 하지만, 숫소는  맞는 것 같에. 다른 틀에 기대어야만 목숨을 낳을 수 있는 수컷 따위는 오롯하지 못한 목숨일 따름이지.


“억센 뿔이 달린 튼튼한 암젖소를 상징으로 하자. 사실 디도 가슴은 거의 젖소를 떠오르게 만들잖아 ”


멋진 암젖소 한 마리가 허공에 뜬다. 진짜 튼튼하게 생겨먹었다. 모히니가 쏘아붙인다.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라도 있어? 


 글세 있을 지도 모르지. 어쨋든 지금 디도는 내 우상이니까. 상징의 이름은 카마데누(Kamadhenu, 하늘의 암소)라 하고 말야. 수루치, 이걸 디도의 모든 땅에 알려. 도란돔 가운데서는 아무 꿈도 없이 그저 힘을 쫒는 부나비들도 있다니까 조금은 쓸모가 있을 거야 ”

 알겠습니다 


수루치가 에너지계의 숱한 톨들만큼이나 많은 마르가들을 부려 디도의 땅에 카마데누를 알린다.


모히니라 - . 동혁은 도란돔의 아름다운 길 안쪽으로 사라져가는 모히니의 뒷생김을 바라보며 생각 속에 잠겨든다. 그는 요즘 음계의 이름들이 스스로가 나중에 지은 것이라 여기고 있다. 일이 움직여 끝을 볼 때 나타난 열매를 보고 지었다고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진짜라면 모히니는 디도 카젤의 다스림을 거스를 것이다. 디떼는 마존이고, 모히니는 악마를 무찌르는 하나님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섣부른 짐작일 뿐이다. 그가 갑자기 떠올려진듯 수루치에게 문득 묻는다.


“ 모히니의 마르가는 어디지? ”

“ 모히니 세르다냐086rRt라고 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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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가 이름 뒤에 붙은 기호는, 마르가를 더욱  나누기 위한 것으로, 아라비아 숫자 3자리를 먼저 쓰고 다음부터는 영어 대소문자, 그리스 대소문자, 마야 문자, 명나라 천자문, 한글 알파벳, 거란 문자, 마지막엔 수학을 쓴다.  점은 동혁을 뒤숭숭한 느낌에 빠뜨리기에 나위없다. 그는 그리스 대소문자나 수학이나 명나라 천자문은 처음 조금을 겉핥기 식으로 밖에 모르고, 마야 문자나 거란 문자는 학자들조차 거의 모른다. 그런 마당에 음계에서 그런 게 쓰이다니. 하기사 그렇게 따지면 디도랑 이야기가 되는 게 알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끊임없이 궁금해하는구나. 지구에서의 버릇이 뿌리 깊이 남아 정치를 또다시 믿지 못함의 판으로 만들려들고 있다. 믿어야하는데. 그가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아직 그는 음계조차 믿지 못한다.

디도 카젤이 개념처럼 느껴지지 않고, 스스로와 마찬가지로 고깃덩어리로 느껴졌더라면 좋았을 것을. 헬레니즘은 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사람의 운명을 꿰뚫어보았다. 헬레니즘의 하나님은 사람과 다름없이 어둠 속의 모이라이에 휘둘리는 살이이지만, 올림포스에서 끝없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도 사람도 둘 다 땅님인 가이아의 아들딸들이건만, 사람은 그만 쇠의 때를 만나 황금 시절의 즐거움은 먼 곳으로 사라져버린다. 쇠. Fe. 쇠를 뭇 톨들의 뿌리로 받아들인 3차원 우주는 아무런 빛도 내지 못하고 그 어떤 목숨도 키워내지 못하는 그런 누리로 떨어져버리고 만다. 쇠는 죽음이다. 목숨을 짓이기는 마(魔)다. 한 방울의 물에 잠겨 도는 쇳덩어리 위에 태어나 초존재를 바란다는 건 더욱 많은 문제만을 생기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을까. 몇몇 가진 이들만이 날뛰는 그들만의 오키를 만들어내는 데 그치지나 않을까. 다른 이들은 발을 묶인 채 시나브로 잦아들겠지. 나아가 바이러스, 물러나 짚신벌레가 될테지. 기껏해야 디떼 스타는 음계라는 크나 큰 오키에서 에너지계를 내려다볼 뿐일 것이다. 힘들지 않은 시대 따위는 사람에겐 허락되지 않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아직 알 수 없는 일. 동혁은 디도를 기다리며 키보드를 연거푸 두들기길 쉬지 않는다. 음계를 초문명으로 만들 수 있다면, 에너지계에서 초존재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굳게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내는 불행할테니까. 다른 사람 아닌 그가.

어께에 살짝 손길이 느껴진다. 동혁이 소스라친다. 어찌나 놀랐든지 딸국질이 나올 것만 같다. 지구로 돌아온 것이나 아닐까. 그가 서서히 고개를 돌린다. 고개를 따라 허리도 조금 돌아간다. 기대가 반쯤 담긴 눈빛이 가 멎은 곳엔 따끈한 커피잔과 몇 조각의 과자를 쟁반에 받혀든 채 수루치가 신화처럼 서있다. 그가 한숨을 내쉰다.


“ 놀랬잖아 ”

“ 제가  놀랬어요~~. 이거 드시고 하세요. 참, 디도 님이 일이 잘 되어 가고 있다고 전갈을 해 왔어요 ”

신화라. 옛 신들의 시대. 투쟁과 모략으로 날밤을 꼬박 지세우는 못되먹은 신들의 이야기. 그 속에 담긴 건  된 문화다. 형이상학, 유심론, 정신 우월주의, 보수주의, 귀족주의, 권력주의가 한통속이 되어 돌아가는 커다란 반가치(反價値). 음계가 그것에 물들어간다는 느낌을 도저히 지워버릴 수가 없다. 더욱 두려운 일은 음계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먼 뒷날에서 온 장난꾸러기가 베푼 가상 현실이라면 너무나 좋을 것이라 여겨질 뿐이다.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조각들 보다 훨씬  큰 것을 책임진다는 건 짐스러울 따름이다. 때가 되면 오줌이 마려운 몸을 지닌 처지. 몸은 세포들에겐 더할나위 없는 낙원일  몰라도 의식에게는 감옥으로도 느껴지는 법이다. 감옥에선 머리 속으로나마 신화를 꿈꾼다는 것마저 버거운 법. 또한 그래야만 정상인 것.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이 짝짓기를 하여도 그 거스르는 뜻이, 두루 통하는 가치가 아닌, 무리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로 말미암은 넘겨집기로 조금 별 난 삶을 보내고 있는 것 뿐이라 여길  있는 슬기를 얻더라도, 너무나 커다란 틈새로부터 오는 날카로운 바람은 조금도 무디어지지 않은 채 동혁을 때때로 괴롭히고 있었다.

수루치가 쟁반을 책상 위에 올려놓더니 자그마한 머리를 그의 무릎 위에 가볍게 올린다. 그녀가 손을 살폿 놀려 허리띠를 풀르는 것만으로 수루치는 알몸이 된다.


무겁다, 진짜 무거워. 수루치를 받아들이지 않을 방법은 없다. 아무리 달아나고 달아나도 그녀는 그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좋은 맛]을 바라는 이는 너무나 많기에 혼자서만 옹송거리고 있다가는 채이기 십상이다. 아니 채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동혁은 수루치 곁에 딱 붙어 있어야만 한다. 아니 떨어지지 않으려 애써야만 한다. 관성의 섬찟한 무게.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바람은 커지기만해 덜미를 억세게 잡아붙든다. 퇴화하지 않는 한 그 길에서 빗겨 갈 수는 없고, 퇴화는 죽음으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애벌레는 힘겹고 허망한 바벨탑을 쌓아야만 한다. 나비가 되는 건 새로운 탑의 비롯됨일 뿐이다. 지구의 신화를 음계에 옮겨 담았으므로 물러날 수 없다. 앵글로색슨이 되기는 싫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이 되어 학살을 당하기는 더 싫다. 그런 두 갈래 길이 주어진다면 양키가 되는  좋다.

어느 지구인도 얻을 수 없는 기회를 저버릴 수는 없다. 초존재가 일으킬 또다른 문제들은 파라브라자를 통해 웬만큼 이겨낼  있으리라 믿고 싶을 따름이다.

드디어 부조리하기 짝없는 권력의 다스림이 나타난다. 거의 모든 살이가 아무 마음도 없는 곳을 목숨의 맹목으로 채우고자 함조차 아닌,  뜬 맹목인 아한카라가. 너무나 느리게 나아가 맺어진 파라브라자인 아한카라 가운데서도 디도와 같은 이는 거의 없다.
양반은 못 되겠군. 디도가 멀찍이서 달려오더니 그의 옆에서 멈추고는 두 손을 무릎에 댄다. 그녀가 숨을 몰아 쉬며 말한다.


“ 일이 아주 잘 됐어. 센트리랑은 잘 지내게 되었어. 걔가 가지고 있던 파라브라자는 나에게 넘겨졌어 ”


“ 센트리는 뭘 가졌어? ”

“ 내 아한카라의 시스템이 훨씬 나은 걸 보더니 그냥 주더라. 이곳엔 공짜가 있잖아 ”

디도가 양 팔을 벌리곤 휘돌려 커다란 동그라미를 허공에 그린다.

 내 시스템에 센트리의 파라브라자를 넣으니까 훨씬 더 빨리 늘어나는 거 있지. 이젠 센트리의 전성기 보다도  91.1892 제곱 401푸르미곤 제곱 39 구골 플렉스나 더 세어진 거라구! ”

“ 푸르미곤이 뭐냐? ”


“ 요, 옛날에 니가 멋대로 만든 거잖아. 그걸 니가 모르면 어쩌자는 거야? 지구에 있는 개미 수가 1경 마리 쯤으로 헤아려진다 해서 만든 거잖아 ”


 아, 맞다. 10의 1경 제곱에 10의 1경 제곱을 또 제곱한 거지? ”


“ 맞아, 맞아! 이제 마하 지바는 조금씩 흔들리게 되었어 ”


“ 이제야? ”


“ 마하 지바가 얼마나 대단한데 이 쯤 가지고 어떻게 되기를 바라겠어. 아직 멀었다우~~ ”


“ 그래도 뭔가를 주는 게 좋겠어. 에너지계에서의 버릇이 남아있어서. 센트리에게는 카젤 마르가의 오롯한 지배권을, 이스비니에게는 본디 가지고 있던 영역 보다 훨씬 더 큰 영역의 자치권을 내주는  어때? ”


“ 알았쩌 ”


얼마못가 일어난 것이 바로 모히니의 반란이다. 지향성 하나 가지고 움직이기는 음계의 지향계들도 마찬가지여서, 모히니와 같은 반골 기질도 태어날 수 있었다. 물론  꼴은 지구에서의 그것과는 많은 다름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나중 일. 그때 시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센트리는 같은 카젤 마르가에 들어있어서 그러는지 디도와 생긴 게 무척이나 비슷했다. 다른 것이라면, 뿔이 얼추 곧게 서있고, 얼굴이 좀더 갸름하고 길며, 눈이 좀더 옆으로 째지고, 검붉은 터럭을 지니고 있어 훨씬 드세고 날카로운 인상을 준다는 점일 터였다.

센트리의 길고 검붉은 머리카락은 멋지게 빛나고 있다. 그에게는 그녀의 머리카락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 센트리 카젤? ”


“ 그래. 잘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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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리의 목소리는 지성과 야성이 가장 바람직하게 어우러진 이미지가 되어 그에게 다가선다. 센트리는 지금껏 온갖가지 잔폭한 방법으로 마하 지바에서 억센 자리를 잡아 왔다. 그녀의 역사를 훑어보면 합종 연횡의 현란함 따위는 없지만 휘두르는 힘의 크기나 계산의 꼼꼼함은 에너지계의 싸움꾼들이 결코 따라갈 수 없는 자리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있음이 거의 틀림없어 보인다.

자유롭고 꿋꿋한 얼을 지니고 있을 음계의 딸을 바라본다. 센트리는 도란돔에 들어가야 한다. 그녀를 도란돔에 집어넣고 포식과 피식, 경쟁, 기생이 없는 상태로 밀어넣을 수 있을 지가 문제다. 디도는 지금껏 모든 적들을 조금도 봐주지않고 때려부숴왔다. 하지만 센트리와만은 어우러져 살기로 했다. 때문에 도리어 불안하다. 권력이란 시스템에 있어서 공생이란 힘겨루기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서로가 어떻게든 남을 숙주로 만들기 위해 진 빼는 짓인 것. 그 관계는 겉으로 보기엔 평화롭고 평등하게 보이는 상태로 영속될 수도 있지만 본질까지 감출 수는 없다.

어쨋든 너무 멋진 엉덩이를 지녔어. 도란돔을 난혼제 마을로 만든  너무 잘  짓 같다. 헤로도투스도, 모두가 가족인 부족엔 시기나 질투 같은 것이 서로에게 조금도 짐지워져 있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그건 사실과는 다르지만 다른 부족들 보다 나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인간이 아니기에 사회학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테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즐거운 일이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 디도 ”


“ 응? 왜 그랭~~ ”


 센트리를 다스릴 수 있겠어? 

“ 그저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면 돼. 그게 도란돔이랑 아디카리의 꿈이 아니었어? ”


“ 하지만  든든한 권위는 있어야 해. 지성의 방어 폭력은 오로지 너에게만 모아져 있어야 하고, 그 폭력은 음계의 그 무엇도 거스를 수 없을만큼 드세야 해 

“ 센트리 카젤이랑 손 잡을 때부터 그건 이루어진 거야.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해야 하지? 모두가 서로를 믿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거 아냐? ”


“ 도란돔에서도 그럴 수 있는 이는 매우 적어. 그리고 아디카리는 지성이 아니라 얼개로 서로를 돕는 것이기 때문에, 얼개만 부서지면 흩어지고 말 거야. 이 같이 취약한 얼개에서는 엄정한 법칙의 다스림이 나위하고, 때때로 절대 폭력도 불러들어야 해 ”


“ 그런데 내가 지금 움직일 수 있는 파라브라자가 아주 많거든. 이  파라브라자를 움직일 수 있으면, 타마(Tama)를 만들 수 있고, 계약을 강제로 부술 수도 있어 ”

 굉장한데, 디떼! 

“ 나 예쁘지! 뽀뽀해 줘 


동혁이 디도의 통통하고 작은 배에 입술을 부빈다.


 근데 타마가 뭐야? 

“ 그것도 모르면서 기뻐한 거야? 뭐야, 괜히 좋아했네. 파라브라자는 스스로보다 4091 곱하기 993.481 푸르미곤 곱하기 71823.0901 푸르미곤 배 많은 파라브라자에는 없어질 수도 있어. 이때 파라브라자가 없어지면 남는 상태가 바로 타마야 ”

뭔가 차갑고 거센 것이 동혁의 가슴  켠을 횡하니 치고 나간다. 그의 느낌은 그랬다.


“ 음계에서도 무신론이 진리가 되는 순간이군. 두려워지는데. 애니미즘은 모든 살이가 끊임없이 살리라고 믿는 것. 유신론은 모든 살이의 목숨은, 끊임없이 사는 오로지 하나의 살이인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여기는 것. 무신론은 우리 살이는 끝없이 이어지리란 보장이 거의 없다는 거지 뭐. 내  맞지? ”

“ 그렇지 뭐. 내 지바는 내가 지켜야지. 아니지. 서로가 서로를 굳게 지켜줘야지. 섬찟한 법칙들이 지켜주기를 바라고 있으면 어려워. 그건 홀딱 발가벗은 젋은 계집이, 한 발은 아무 것도 없는 쪽배에 다른  발은 공에 두고는 세찬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는 거랑 똑 같에 ”


“ 지금 니 지배력은 얼마나 돼? ”


 음계에서 가장 억세다고 봐도 돼. 아한카라들에 대해서는 이미 오롯한 다스림을 굳건히 세웠어 ”

“ 널 절대음존(絶大蔭尊) 또는 음계의 절대자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런 칭호로 다스려야 뒷탈이 없는 놈들에게만 강요하고, 다른 이들에겐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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