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쿈코 팬픽 - 2008[패러디]
쿈은 자신이 어느날 여자로 바뀌었다는 걸 알았다.
"또 무슨 변덕인 걸까, 하루히 녀석."
쿈 아니 쿈코는 최대한 쿨하려고 애썼다.
별 일 아니지 않은가.
쿈코는 자신의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이 여자 아이가 쓸 법한 것들로 채워져 있는 걸 보았다. 아마도 이 우주의 모든 기억과 물질도 그렇게 재편되어 있을 터였다.
학교에 가서 일상생활을 했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자신이 여자로 지금껏 살아 온 것처럼 이 우주가 설정되어 있다는 점 하나만 빼고는. 나가토는 쿈코가 원래 남자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가토는 SOS단에서 넌지시 말했다.
"쿈코, 조심해. 하루히가 너를 향한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제거해 버린 거야. 뭐가 더 변화될지 알 수가 없어."
쿈코는 무사히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갔다.
쿈코는 방문을 잠그곤 옷을 모두 벗었다.
거울에 미소녀의 알몸이 비췄다. 한 명의 미소녀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되었다는 묘한 정복감이 일어났다. 쿈코는 여자의 오르가즘이 남자의 10배라는 상식을 체험해 보고 싶었다.
'음핵과 G스팟이 여자의 가장 민감한 성감대라고 했지.'
막 빛깔 고운 음부에 고운 손가락을 대려는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웅얼거리는 소리는 곧 비명으로 바뀌었다. 세상 전체가 비명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쿈코는 재빨리 옷을 입고 창문을 통해 바깥을 내려다 보았다.
도마뱀처럼 생긴 이족 보행 생물체들이 길거리에 가득 차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사람 크기만한 이 괴생물체들은 벽에서도 튀어 나왔고 허공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괴생물체들은 조악한 고대 무장을 하고 있었다. 창 끝이 날카로웠고 갑옷이 조야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도망쳐 쏟아지듯이 기어 나왔다가 도마뱀 인간들에게 꿰뚫려 죽곤 했다.
쿈코는 가슴이 두근거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재빨리 창문을 잠그고 문을 잠궜다. 하지만 소용없을 터였다. 저 도마뱀 인간들은 아무데서나 튀어나온다.
나가토가 갑자기 콘코의 방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가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가토는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려했던 일이 터지고 만 거야. 우주는 하루히의 무의식의 잔영이지. 하지만 하루히도 인간에 지나지 않아. 인간은 쿼크로 이루어져 있고 진공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결국엔 고기로 이루어진 생존 기계지. 하루히는 너에 대한 이성으로서의 호감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제거했어. 현실에 만족하고 긍정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것을 바꾸겠다는 쪽으로 방향선회를 한 거야.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말이야."
쿈코는 평소에 그랬듯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사방에서 사람 죽어가는 소리가 들려 오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마음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쿈코는 외쳤다.
"그거랑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랑 뭐가 관계있어?! 앗!"
벽은 아무 변화도 없었는데 한 도마뱀 인간이 방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나가토가 노려보자 도마뱀 인간은 한순간에 분해되어 사라졌다. 나가토가 말을 이었다.
"진화론에 대해 조금은 알 거야. 인간은 한때 대장균, 아메바와 한 조상이었어. 파충류와도 한 조상이었던 적이 있고 두뇌의 깊은 곳은 아직도 파충류의 뇌지. 파충류의 뇌는 그 어떤 감정도 없는 것이 특징이지. 그 무의식을 하루히는 세상에 풀어 놓은 거야. 바다에선 물고기인데 비늘 있는 팔다리가 달린 것들이 창궐하고 있어."
"뭔가 막아야 하지 않겠어? 너라면 할 수 있잖아."
"내가 한 거야."
"뭐, 뭐라고?"
"우주 정보 통합 사념체가 내게 명령했어. 그래서 하루히를 정신병자로 만들었지. 정보 통합 사념체는 우주에 하루히가 미치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 실험하고 싶어했어. 결과는 이것이고 만족이야. 하루히는 이제 절단되어 분석되어 나누어질 수 있는 연구 대상이 된 거지. 실험의 대상일 수 있는 하루히가 된 거야. 지구인 같이 열등한 종족에게 저자세를 취해 왔던 시절은 이제 끝이 난 거야."
쿈코는 말이 없었다. 이것은 옳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명했다. 나가토는 지구에 강림하고도, 지구의 빈곤을 퇴치한다거나 전쟁을 종식시킨다거나 하다못해 인간 의식을 영생시킨다거나 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같은 반의 이지메 당하는 학생에게도 무심했다. 나가토는 처음부터 지구인을 존중해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가토는 감정없는 어투로 계속 말했다.
"그럼 안녕. 쿈코 너에게 볼 일은 끝났어."
나가토가 사라졌다.
도마뱀 인간이 사방의 벽에서 튀어나왔다. 뽀족한 성기가 발기되어 있었다.
-------
2008년 4월 23일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