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헬 매니아(Hell mania) 1999[판타지](9)
나도 아첼이 동의해야 용기를 내서 갈 생각이었다. 아첼이 반대를 하니 그냥 문에다 주먹질을 해야지 별 수 없다.
살갗이 조금 까진 거 말고는 피해도 없다. 문은 손쉽게 부서진다.
방 안이 아까 본 데 보다는 훨씬 화려하고 넓다. 갖가지 실험 도구들도 비싼 티가 나고 책들도 마찬가지다.
-몇 개 가져가야겠다. 꼴을 보아하니 근사한 게 있을 것 같은데
-그래야겠다
-일단 무기가 될만한 거부터 찾아야지
쇼트 소드를 한 손에 든 다음 이곳저곳을 뒤진다. 우리의 직업은 도둑이 아니라 평전사이기 때문에 도둑질이 손에 익지가 않다. 서랍이 엎지러지고 여러 가지 물건들이 뒤엉킨다.
아첼이 말한다.
-지문을 이렇게 묻히고 다녀도 괜찮을까
-우리가 폰티모스 탑 명부에 올라 있기냐 하냐
문이 열리면서 키가 작고 메마른 사내가 나타난다. 나이는 40살 전후 쯤 되는 것으로 보였고 머리랑 옷은 지나치게 빳빳해 보인다. 잔뜩 힘이 들어간 어께는 부자연스럽고 사내를 더욱 왜소하게 보이게 한다. 하지만 그 눈은 살아 꿈틀거리고 있어 얕보이지 않는다.
사내가 뭐라 중얼댓는 지는 알 길이 없었다.
거의 불빛이 보이지 않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비좁은 방이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널려 있는 것 같다. 위쪽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차디 찬 하얀 빛이 한 조각 비치고 있을 뿐이다.
아첼은 자고 있다. 아첼은 가끔 가볍게 코를 골지만 오늘은 평소 보다 조금 더 심하게 골고 있다.
또 알몸이네. 짜증나는 놈들이다. 동아줄로 묶었는데 너무 세게 조여서 그런지 살갗이 여러 군데 까져서 따갑다. 이러다가 염증 생기겠다. 힐링 포션을 발라주면 좋을텐데. 몸을 움직여보니 바닥에 솟아나온 쇠고리에 동아줄이 걸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아첼의 뺨에 입술을 부비면서 가끔 혀 끝을 댄다.
아첼의 귓볼을 지그시 물고 빨면서 그 짭잘한 살갗의 맛이랑 먼지의 맛을 함께 만난다. 아첼을 만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작게 소곤거린다.
-내 사랑
사랑이란 말을 너무 흔하게 하고 지내는 우리지만 정색하고 하기엔 쑥스럽기 짝이 없다. 듣지는 못했겠지. 괜히 혼자 붉으락거리며 여겨본다.
넌 나한테 별 이야길 다 해줬지. 어릴 때 소꿉 친구 이야기며 가족 이야기며 본 책이나 TV 내용이랑 감상 같은 것들 말고도.
한때 죽네 사네 하다가 끝내 헤어진 남자 친구 이야기를 죽 늘어놓던 너는 불쑥 이런 말을 했다.
-너 왜 고래 안 잡았냐?
같은 몸이래도 그런 말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다.
-잡았어. 여기 왼쪽으로 치우치는 거만 진짜 내 거고 나머지는 어디서 온 건지 몰라
-그래서 얘만 귀두가 드러나있구나
그때 니 볼은 귀 밑까지 새빨게져 있었다. 그런데도 좀더 친밀해지려고 애쓰는 니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포경 수술 필요도 없는데 한국 사회의 그릇된 관습으로 퍼진 거야. 유대인이 종교적인 이유로 하는 거에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선진국들에선 안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그거 안 하고도 따뜻한 물로 잘만 씻어주면 아무런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구
-좀 지저분해 보이는 건 사실이잖아
-살갗이 좀 기니까 그걸로 장난도 칠 수 있고 좋아
-하긴 이건 장난감으로 쓰기 딱 좋은 것 같에. 질도 늘어나긴 하는데 장난감으로 쓰기엔 좀 그래. 너랑 붙은 뒤 진짜 좋은 게 하나 있어
-뭔데?
-오줌을 누면 타고 내려가거든. 그래서 휴지 같은 걸로 깔끔하게 잘 닦아줘야 돼. 그런데 페니스는 그냥 털어줘도 괜찮잖아
-발그스름해 가지고 그런 말을 잘도 하네
-내가 뭐.... 헤. 너도 빨개져있으면서
-그런가
-나중에 할 수 있음 꼭 하자
-알았어. 아, 근데 만약 우리가 지구로 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잘 알고 지내야지
-아니. 그게 아니라 지금 이 체로
-지금?
-응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결혼은 물 건너 간 건 확실해. 법적으로 사실혼 관계니까. 물론 난 결혼할 수 없고 넌 할 수 있지만 사실혼 관계인 건 변하지 않으니까
-나 지구로 안 가
-왜?
-난 너랑만 결혼하고 싶지 않아. 우리 각자 멋진 사람 만나서 확실하게 사랑하자구
-물론이지
그러므로 너는 이곳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를 잡아 가두는 수많은 동아줄들을 하나 하나씩 풀어헤쳐야 한다.
-빨랑 일어나
-으음~~
아첼이 게츰스레 눈을 뜬다.
-우리 또 갇혔어
-안 죽은 게 다행이다, 야
음침한 목소리가 퀴퀴한 공기 속에 번진다.
-이제 깨어났군
우리가 한꺼번에 비좁은 창을 본다. 해골에 가죽만 붙어 있는 듯한 얼굴이 보인다.
-캬캬캬캬!
가래가 잔뜩 걸린 듯한 웃음 소리다.
-왜 그래요?
-니네 불알을 보니 그러는 거다
아첼이 비명을 지른다.
-꺄! 이게 뭐야
불알이 엄청나게 부풀어올라 있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유방 쯤 크기로 부풀어 있어 다리를 접을 수가 없을 정도다. 페니스 3개도 그에 걸맞게 잔뜩 발기되어 있다.
아첼이 말한다.
-너무 징그럽잖아
사내가 사라진다.
-이봐요! 우리를 어떻게 할 거에요! 말을 하란 말야!
-젠장. 일단 일어나보자. 오줌은 누어야지
오줌을 쌌지만 불알은 여전히 커다랗다.
-이거 불안한데. 기생충들 가운데서는 살갗을 부풀어오르게 만드는 게 있다고 들었어. 그거 걸린 거 아냐?
-그건 나도 알아, 쨔샤. 하지만 엄청나게 간지러울테고, 불알만 부풀 리가 없어
-그럼 설마.... 그 마녀의 농간....
-뭔데?
-좆물이 가득 차서 그런 것 아닐까?
-뭐?!
우리가 아래를 본다. 아첼이 말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한 번 해보자, 갈보야
엉거추춤하게 일어나있는 상태다. 커다랗게 된 불알 덕분에 다리를 모을 수가 없다.
엉덩이를 내밀고 왼손을 뒤로 뻗어 음부랑 항문에 손가락을 깊숙히 집어넣는다. 음핵도 끊임없이 간질인다.
아첼이 신음한다.
유방이 큼직하게 부풀어오르는 게 보인다. 유두도 발딱 선다.
나도 감각은 둔하지만 참을 수가 없다. 고개를 돌려 아첼이랑 입을 맞춘다. 입술을 비집고 혀를 밀어넣어 휘감는다. 침이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 따위엔 신경 끄기로 했다. 그렇게 안 되도록 조심하는 법은 알고 있지만 침을 흘리는 편이 더 즐겁다.
귀두를 오른손으로 붙잡아 위아래로 쓸어간다.
아래를 본다.
도드라기가 유방 전체에 번지는 게 보인다.
등에 압력이 오면서 휘어진다.
곧 시작이야. 호르몬이 엄청난 빠르기로 돌고 있으니까.
준비할 사이도 없이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파오며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홀몸일 때엔 이렇게 아프지않았다. 여자의 오르가슴은 허리가 팽팽하게 멈춰져있고 남자의 오르가슴은 그 반대다. 그 둘이 충돌하기 때문에 허리가 몹시 아프다.
정신이 돌아온다. 하지만 몸을 바로 펼 수가 없다. 아첼은 아직 절정에 들어 있으니까.
아첼은 맹한 표정을 하고 있겠지. 거울을 보면서 할 기회가 있었을 때 본 적이 있다. 그때의 아첼은 진짜 아름다웠다.
다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아주 많다. 좆물에 씹물이 뒤엉켜있을테니까.
-케케케케
그 놈이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좋은 구경이었겠지. 기회가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다. 뒤로 넘어진다. 아첼이 말한다.
-허리 아파 죽겠네
-이러다가 허리 버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임마, 끔찍한 소리 마라
-젠장. 섹스하는 거 별로 느낌 좋지도 않은데 허리에도 안 좋고. 이거 큰일이잖아. 그나마 옛날엔 스포츠로서 괜찮았는데 지금은 이게 뭐야
-저기 벽 좀 봐
벽에 덩어리져 묻어 있다. 마치 젤이 잔뜩 묻어 있는 것 같다. 다리 사이에도 칠갑이 되어 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오크의 그것에 버금갈 것만 같았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불알이 평소보다도 작게 오그라들어 있다는 것이다.
아첼이 말한다.
-이게 뭐야. 난 많은 거 별로 안 좋아한다구
-나도 싫어
스산한 목소리가 깔린다.
-너희를 그런 꼴로 만든 마녀가 체 발현시키지 못한 속성들을 일깨워준 것 뿐이야
-또 있나?
-물론. 우선 좆물로 말하자면, 매일 아침 그렇게 많이 쌓일 것이고, 그날 그날 배출하지 못하면 며칠 안으로 페니스가 썩어버릴 거다
아첼이 고개를 돌린다. 뺨에 눈물이 흐르는 게 보인다. 젠장. 저 염병할 새끼.
-그럼 우리 허리는?
-글세. 곧 반신 불구가 될 것 같은데. 그밖에도 말해주지. 유방이 지금 5개지? 12개로 늘어나게 될 거야. 어께 사이에 있는 등엔 엉덩이 보다 조금 작은 살덩어리가 부풀어오르고 그 골짜기 아래쪽엔 가짜 음부가 하나 생길 거다
-그 마녀 완전히 변태였군
-나도 그렇게 여기고 있어. 아마 레즈였던 것 같아. 니넬 데리고 놀 생각이었겠지
갑자기 허벅지를 타고 뜨끈하고 덩어리진 게 내려간다.
-아첼!
사내가 말한다.
-여자를 탓하지 마라. 마녀는 니네한테 만성 설사병을 주었다. 무슨 생각에서인 지는 모르겠지만. 그밖에도 몇 가지 더 있지만 니네가 알아서 찾아보아라
사내가 사라진다. 아첼이 소리낸다.
-으으으
-슬퍼하지 말자. 솟아날 구멍이 있을 거야
-그래. 맞아. 지금까지도 잘 해왔는데
-어디 설사를 닦을 수 있는 게 있는 지 찾아보자
없다. 이러는 동안에도 설사는 흘러내려 발뒤꿈치에까지 묻었다. 냄새가 너무 심하다.
-그냥 아무데나 문지르는 게 낫겠어
아첼이 대꾸하지 않는다. 텅 빈 느낌이 든다.
-굴욕감에 괴로워할 거 없어
-그런 건 이미 나한테 없어. 나 따위한테 그런 게 남아 있기나 하겠어? 이렇게 모욕당하면서 괴로워할 줄도 몰라. 나란 건 너한테 짐이나 되고. 죽으면 편하겠지?
-이 년아! 니가 그러면 난 어떻하라는 거야?! 내가 널 짐으로 아는 줄 알아? 난 널 사랑한다구! 그걸로 여기까지 버텨왔는데....
-많이 들은 말이네. 너한테도
억지로 팔을 움직여 아첼의 머리를 내 쪽으로 돌린다. 그리곤 아첼의 입에 혀를 밀어넣는다. 아첼이 애타게 응해온다.
아첼이 조금 기운을 차린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도 널 사랑해! ....어 근데 뭔가 튀어나오고 있어
어께 아래 겨드랑이 근방을 만져본다. 도드라기 같은 게 조금씩 올라오는 게 느껴진다.
-새로운 유방인가 봐
-여자는 유방이란 말 별로 안 쓴다며
-그건 그래. 하지만 이건 가슴에 없잖아
잡동사니 곳곳에 설사를 대충 문질러 닦아낸다. 그러고나니 촉각의 불쾌감은 많이 줄었지만 냄새는 더 심해졌다. 뭐 후각은 쉽게 지치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아첼이 말한다.
-파리 많이 꼬이겠다
-그 바람에 저 놈도 골치 아파질 거 아냐
-그렇겠구나. 하하하하
-아하하하
한바탕 웃고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1999년 10월 22일 작[미완][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