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헬 매니아(Hell mania) 1999[판타지](8)
돌도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이제 니넨 끝장이야. 중력을 역전시키는 마법이다. 니네 같은 저등 기형 인간은 모르겠지
-리버스 그래비티 정도는 우리도 알아
-호오~~ 그래?
-중력은 별로 강한 힘이 아니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클레이모어를 등에 있는 칼집에 꽂는다. 한 손을 천장에 댄다. 내가 말한다.
-공격을 할 수 있어
우리는 롱 소드를 허리춤에서 뽑으면서 손으로 천장을 버튕긴다. 아래쪽으로 내려온다. 리첼이 무기를 가지러 다른 곳에 가는 걸 막아야한다.
리첼이 덤벼든다. 이젠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거라 여긴 모양이다. 불쌍한 녀석.
우리가 놈의 가슴을 걷어찬다. 리첼이 기어들어가는 비명을 지르며 반대편 벽에 가서 세차게 부딪치곤 떨어진다. 입에서 피를 흘리는 걸 보니 충격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시 천장으로 몸이 올라간다. 다시 손바닥으로 천장을 친다. 손바닥이 얼얼하다.
롱 소드를 휘두르며 서서히 앞쪽으로 나간다. 손바닥으로 천장을 치려니 미치겠다. 게다가 팔이 너무 아프고 무겁다.
리첼 같은 전사는 두렵지않다. 진짜 무서운 건 돌도 같은 마법사다.
-아악! 오지 마
-안 돼. 널 죽여야겠어
돌도는 어께에 스피어를 꽂힌 꼴로 마법을 시전했다. 꽤 지쳤을 거다. 리버스 그래비티는 상당히 강한 마법인데 말이다.
돌도의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이제 끝이다
아첼이 말한다.
-꽤 아플 거야. 곧 끝날 거라곤 장담 못 해
손바닥으로 천장을 세차게 친다. 몸이 밑으로 내려간다.
발꿈치로 돌도의 뒷통수를 찍는다.
-우아아아!
마법이 풀리면서 우리는 침대의 파편 속으로 가라앉는다.
-아~~
몸 곳곳이 까지고 피가 나고 있다. 침대의 파편들에 긁혀버린 거다.
가슴에 손을 대어본다. 두툼한 지방층 너머로도 거칠게 뛰는 두 개의 염통 소리가 울려온다. 뭐라 한 마리라도 해야겠다.
-젠장. 심장약을 챙겨뒀어야 하는데
-리첼인 지 뭔지도 확실히 해치워야지?
리첼을 바라본다. 기절한 것 같다. 우리한테 제대로 얻어맞으면 웬만한 전사는 한동안 못 일어난다.
돌도의 목에 손을 대어본다. 아첼이 말한다.
-다행이다. 안 죽어서
-그래. 저 자식도 봐야겠지
기다시피 리첼에게 다가간다. 목에 손을 댄다.
-이놈도 죽지는 않았어. 자, 빨랑 가자
휘청이며 일어난다. 걸리는 게 너무 많아서 바닥을 조심 조심 잘 살피며 걸어간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다. 벽이 눈앞으로 확 다가든다. 맞부딪친다.
방 안이 빠르게 돈다.
우리가 몸을 일으킨다. 별로 아프 지는 않았다.
리첼이 비틀거리면서도 몸을 가누고 있다. 그가 말한다.
-나도 마법사란 걸 몰랐겠지. 슬리프!
으아! 안 돼! 잠이 세차게 쏟아진다.
아첼도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쉽게 되지 않는다.
리첼이 다가든다.
롱 소드를 휘젖는다.
리첼이 말한다.
-진짜 엄청난 힘이군. 어떻게 합체시켰길래 그만한 힘이 나오는 지 약물에 튀겨서 알아봐야겠어
롱 소드를 휘젖는다. 아직은 정신이 있다. 그 동안에 저 놈을 죽여야한다.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힘들다.
-이것들, 예쁘지?
-그러네
-이제야 좀 깬 모양이군
내가 말한다.
-이 동네 종자들은 성적 고통 주는 게 취미인 모양이네. 잡히면 꼭 발가벗겨놓는다니까
기둥에다가 쇠사슬로 꽁꽁 묶어놓았다. 상당히 차갑다.
돌도가 말한다.
-꼬라지가 궁금해서 벗겨놓은 거다. 볼만한데. 자고 있는 동안에 씹 맛 좀 봤지
아첼이 말한다.
-내 것이 훨씬 인기가 좋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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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첼이 말한다.
-우리를 죽이지 않은 게 고마워서 니네를 죽이지는 않았다
돌도가 말한다.
-아파서 미칠 뻔했다. 난 리첼처럼 마법 전사가 아니라 그냥 순수 마법사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게 패?! 게다가 내 실험실 다 때려부쉈지. 그 돈 물어 내
-우리 돈 없어
-나도 알아. 그래서 팔아먹을까 하고 생각 중인데 니네 생각은 어떠냐? 판다면 환관이 좋을까 노예가 좋을까. 환관이 좋겠지. 음낭까지 통째로 자른 다음에 음핵까지 자르면 완벽하겠어. 오버 로드들이나 매스터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끔찍한 소리를 지껄이는군. 리첼이 말한다.
-음부는 뭘로 막을래? 정조대로? 너 환관 뭐하러 만드는 지 모르냐?
-.... 그게 문제군. 뭐 그야 대충 갈비뼈 안에 있는 근육을 빼서 막아버리면 되지
아첼이 말한다.
-폰티모스 탑에서 가장 큰 여관 로비에 우리 친구들이 있다
-오호~~
젠장 걔네한테 돈이 어딧냐. 하지만 일단 몸을 빼고 봐야겠지.
-옷 좀 줄래?
-벌써 팔았어. 금화 4개 밖에 못 받았다. 부서진 게 좀 많아서 말야. 한 금화 500개는 채워야되는데....
-도둑놈들
-누가 이따위로 해놓으래?!
-니네가 먼저 죽이려고 그랬잖아
돌도가 내 따귀를 탁탁 가볍게 치더니 말한다.
-칼을 쥔 쪽은 우리야
-여관으로 안 갈 꺼야?
리첼이 말한다.
-먼저 돌도 실험실부터 깨끗하게 해 놔. 그러면 금화 1개는 빼주지
돌도가 껴든다.
-누가 맘대로?
-니가 치우고 싶냐?
-아니
-그럼 이것들 시켜. 1개면 파출부 시키는 것 보다는 싸네
무거운 쇠뭉치가 달린 차꼬를 채우고 나서야 리첼이 쇠사슬을 느슨하게 만든다.
돌도가 말한다.
-문짝도 있고 못이랑 망치도 있고 걸레랑 빗자루도 있으니까 잘 정리해야 돼. 책은 그냥 대충 끼워. 열심히 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니네한테 질병을 하나 넣어뒀거든. 결과를 보고 알려주든지 말든지 할께. 흐흐, 귀여운 것들
내가 말한다.
-우리를 친구들한테 돌려 줄 생각이라면 그런 식의 모독은 신상에 안 좋을 거다
-알았어, 알았다구
돌도랑 리첼이 희희덕거리며 방문을 나선다.
너희 실수한 거야.
-아첼
-왜?
-어께뼈 탈골시키자
-뭐?!
아주 경악을 하는군.
-탈골되면 맞추는 방법을 검투사들한테서 배운 적이 있지. 내 관절들 장난으로 탈골시켜 놓고는 맞춰주기 귀찮으니까 아르켜 준 거야. 그거 하나는 제대로 배웠으니까 걱정 마
-그게 아니야. 우리가 뭐하러 그래야 돼? 그냥 청소해주고 여관 로비로 가면 되잖아
-저 새끼들 말을 어떻게 믿어. 마음이 바뀌어서 경찰이나 노예 상인 부르러 갔으면 어떻해. 나 같으면 노예 상인 부르겠다. 잘만 흥정하면 본전은 뽑고도 남지
-타냐가 폰티모스 탑엔 노예들 별로 없다고 그랬잖아
-마법사들은 골렘이나 클론 부리는 걸 더 좋아해서 별로 없는 것 뿐이지 노예 상인들은 많아. 폰티모스 탑에서 쓰다가 버린 클론이나 골렘이나 여러 합성 생물체들은 품질이 좋아서 비싼 값으로 거래되거든. 우리를 폰티모스 탑에서 만든 합성 생물체라고 속여서 팔면 돈이 적잖게 나오겠지
-좋아. 그렇게 하자
-어께에 힘을 아주 심하게 주는 거야. 한 순간에 줘야 돼. 안 그러면 안 부러지니까
-젠장. 가뜩이나 어께가 아픈데 더 아프게 생겼잖아
-하나
-둘
-셋!
으윽! 진짜 아프다. 어쨋든 어께가 탈골되니까 쇠사슬에서 풀려나는 건 어렵지않았다. 아첼이 말한다.
-빨리 맞춰
-보채지 마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지만 몇 차례 시도하자 다시 붙는다.
-옛날처럼 움직이기는 어려울지도 몰라
-차꼬는 어떻게 풀 거야?
-그거 문제네
-뭐야?! 이 좆 같은 새끼가
-뻥이야, 이 년아. 스파르타의 어떤 왕이 하던 식으로 할까
-그게 뭔데?
-차꼬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만치만 용의주도하게 발을 자르는 거야
-싫어. 게다가 무기도 없어
-쇠뭉치로 내리치는 거다. 각도를 잘 봐야 돼. 안 그랬다가는 우리 발목 뼈까지 같이 부러질거야
겨드랑이에서 식은 땀이 저절로 흘러내린다. 아첼이 말한다.
-털을 못 깍은 게 며칠째냐. 나가면 털 부터 싹 밀어야지
-넌 왜 털 있는 걸 싫어하냐
-좋냐, 그게. 있어봐야 노린내 나기 쉬워지고 이나 벼룩 따위가 꼬여들기나 하지. 근질근질한 게 이는 벌써 생긴 것 같에
-너 또 다리 털 다 밀거지
-당근이지
-으~~. 이번엔 좀 제대로 된 면도날 써라. 털 뽑힌단 말야
-너 구렛나루 좀 밀어야겠다. 듬성듬성 조금씩 났어. 난 저런 수염이 제일 싫어
-덥수룩한 건 좋냐?
-싫어. 솜털이랑 머리카락만 빼면 다 싫어하는 거 알잖아
-이 년은 내 페니스 털까지 다 깍는다니까
-이번에도 아주 짧게 만들테니까 각오 해
-나중에라도 항문에 난 털은 건드리지 마라
-거긴 안 건드려
-너절한 소리 그만하고 차꼬나 풀자
-응
걸터앉아서 쇠뭉치를 단단히 붙잡고 치켜든다. 생각 보다는 무겁다. 15kg는 얼추 될 것 같다. 그 두 놈이 언제 돌아올 지 알 수 없으니까 시간 끌 여유는 없다.
쇠뭉치를 차꼬에 가볍게 대어보면서 각도를 잰다. 발목을 움직여가며 몇 번이고 해본다.
-하나
-둘
-셋!
한쪽 차꼬가 으스러진다. 발목도 부어오른다.
-한 번 더
가까스로 두쪽 차꼬를 다 해치우자 안도감이 찾아든다. 잠깐 그대로 있는다. 하지만 이게 시작일 뿐이지.
한켠에 걸린 로브를 찟어서 몸에 둘둘 감는다. 발목이 퉁퉁 부어올라 있어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끊어진 차꼬 끄트머리로 그어서 피를 내어 발목이 빨리 낫도록 하고 싶지만 피자국으로 추적을 할까 봐 못하겠다.
-거기 서!
뒤돌아본다. 리첼이다. 펄쩍 뛰어 덤벼들어 넘어뜨리고는 가슴 위에 올라타서 주먹으로 마구 내려친다.
한참 때리고나서야 정신이 되돌아온다. 리첼의 얼굴이 본디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만치 일그러져 있다.
목에 손을 대어본다.
-죽었어
우리 힘을 감안해보면 처음 때렸을 때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아첼이 말한다.
-으으으. 빨리 째자
우리가 정신없이 문 밖으로 달린다. 하수도랑 이어져 있던 그곳이다. 이곳에 와서 살인이 처음은 아니다. 지구에 있는 안정된 나라들에서는 웬만한 깡패들도 한 번 사람 죽여보기 힘들지만 모험가의 삶은 훨씬 난폭하고 지저분하며 고달프다. 느낌은 야릇하다. 금기를 어겼다는 쾌감과 언제 복수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우러지면서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인간을 이곳까지 밀어붙인 진화는 도덕의 자기화랑 사회의 구속이라는 두 가지 방어 기제가 별다른 힘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살인을 아주 적은 확률로 밖에 고를 수 없게 만드는 데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살인을 반드시 피하는 본능은 없다.
계단이 보이자마자 정신없이 올라간다.
이 층에는 계단이 없다. 이 층 위부터는 좀더 막강한 권력을 지닌 마법사들이 사는 모양이다.
조금 정신이 돌아온다. 염통의 헐떡거림이 줄어든다. 시체는 많이 봤지만 아직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좀더 많이 봐두는 게 좋겠다. 시체가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에 익숙해지기 앞서까지는 말이다. 피나 썩어가는 주검을 데면데면하게 대할 정도가 되어야 모험가로서의 기본이 다소나마 쌓이는 거겠지.
아까 그 방으로 돌아가서 리첼의 허리춤에서 쇼트 소드를 빼낸다.
-겨우 이거야? 구역질을 참으며 온 보람이 없네. 적어도 롱 소드 쯤은 되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대거나 망고슈 보다는 낫잖아. 로드나 블랙 잭이 아닌 것만도 얼마냐
우리는 위에 층으로 간다. 벽을 두들겨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텅 빈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낸다. 재질도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