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헬 매니아(Hell mania) 1999[판타지](7)
-우리는 싸움에 도움이 될 거예요. 두 손으로 쓰는 커다란 무기는 그런대로 쓴다고요
아첼도 거든다.
-그래요. 저희는 서로 아주 잘 돕기 때문에 잘 싸워요
-용병? 그것도 괜찮겠군. 막노동꾼이야 많으니까. 오크들아, 동아줄을 풀어 줘라
동아줄에 묶여 있던 자리엔 선명한 줄이 그어져 있다. 살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는데 그 자리가 좀 쓰리다. 비니가 말한다.
-포차드를 가져 와
오크들이 손수레에서 포차드를 꺼낸다. 엄청나게 길고 창날이 길어서 찌르기 보다는 베기에 더 좋은 창이다. 비니가 말한다.
-이걸 써. 옷은 좀 나중에 주겠어. 몸이 아주 멋진데, 응. 나중에 기대해도 되겠어
리타가 말한다.
-쓰잘데기 없는 소리 말고 빨랑 와. 우리는 동료들이랑 합류해야 돼. 썅년, 밝히기는
-따돌리지는 않을 게, 이 년아
-흥이다
이들의 동료는 또 얼마나 센 자들일까. 뭐 이들은 상위 모험가들 같지만은 않았다. 우리 보다야 훨씬 세지만. 또 모르지. 지금까지 보여 준 건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지도. 물론 고수들이랑 다니면 아무래도 실력도 경험도 쌓이는 법이야. 비니가 말한다.
-뭐 해. 한 번 휘둘러 봐
우리는 포차드를 휘둘러본다. 손에 익지 않아서 잘 안 된다. 자꾸만 창 끝이 흔들린다. 비니가 말한다.
-거길 잡는 게 아니야. 좀더 위를 잡아
이젠 제법 잘 된다. 비니가 지켜보더니 오크 하나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 놈을 주먹으로 있는 힘껏 갈겨 봐
-죽을텐데요
-죽으면 좀 어때? 기껏해야 오크인데. 리타가 좀비로 만들겠지 뭐
리타가 답한다.
-이 갈보야, 애니메이트 좀비가 얼마나 힘든 지 알아?!
-리타 말 따위는 씹어대라. 날려버려!
생명 경시 사상이 잔뜩 퍼져 있는 세계답다. 우리는 포차드를 벽에 기대어 놓은 다음 온몸의 무게가 실린 주먹을 오크의 얼굴에 작렬시키곤 재빨리 떼기까지 했다.
엄청난 소리가 울리면서 오크는 몇 미터를 날아가 가라앉는다. 비니가 그쪽으로 달려간다.
-이야! 예상대로야. 힘이 머리 셋 달린 트롤이랑 맨주먹으로 붙을 정도는 되겠어. 머리가 오롯이 찌부러져 있는 걸. 잘 됐지, 리타
-그래
-리타, 주문 안 걸어?
-그래, 건다, 걸어. 에니메이트 좀비
우리가 방금 죽인 오크가 좀비가 되어 일어난다. 아무래도 이것들은 기분이 안 좋아. 우리가 죽으면 좀비로 만들어 부려먹을 거 아냐. 만약 좀비가 살아있는 존재 보다 더 빠르고 더 강했다면 온 세상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려고 들었을 것들이다. 하긴 진짜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 눈에 훤히 보인다. 사회는 보다 큰 이득과 다수의 이득이 합쳐질 때 그것을 골라잡기 마련이다. 어떤 종족을 막론하고 어른이 되면 죽임을 당하고 좀비가 되어버렸을 게 뻔하다. 좀비엔 어른이 많다. 좀비가 되면 더 이상 바뀌지 않으므로 어른이 된 다음에 만들어야 가장 이득이다.
비니가 말한다.
-근데, 어째 포차드를 너무 못 쓰는 것 같에. 모험 계획은 얼마 뒤로 잡혀 있는데 말야. 그동안 가르칠 수 있을까?
-지옥 훈련시켜
리타, 저 년 진짜 마음에 안 든다. 얼굴은 예쁜 게 말야. 비니가 말한다.
-원래 쓰던 무기가 뭐야?
아첼이 말한다.
-클레이모어요. 코볼드들의 마차 안에 있을 거예요
-그럼 가지고 나와. 그리고 말 놔
-알았어!
-좋아하긴
우리는 좀비들이 끌고 있는 마차 안에 들어가서 클레이모어랑 하드 레더에 옷까지 가지고 나와 입는다. 짐도 배낭 안에 거의 그대로 있다. 끔찍하게 더럽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하수도에 빨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비니
-응?
-무슨 계획이야
-미노타우로스 사냥. 멋지지 않아?
으악! 갈수록 태산이다. 인간 보다 덩치 큰 괴물이랑은 아예 싸워 본 적도 없는 사람한테 집체만한 미노타우로스라니.
-괜찮겠는데. 오우거랑 싸워 본 경험을 살려서 잘 해봐야지
거짓말이 잘도 나오는군. 비니가 롱 소드를 던진다.
-자. 이걸 허리춤에 차고 있어. 클레이모어 하나 뿐이면 그걸 빼앗겼을 때 곤란해지잖아
고맙게 받겠어.
오크 하나가 하수도 어딘가로 사라진다. 하수도 복도 한 켠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서 문짝을 달아놓은 것이다. 이들의 소굴인 모양이다.
생각 보다는 넓고 아늑하다. 리타가 말한다.
-염병. 야! 빨랑 시궁쥐들 몰아 내!
오크들이 시궁쥐들을 쫓아내고 가끔씩 잘 씹어 먹는다.
비니가 말한다.
-이 썅년아, 좀비들은 바깥으로 치우라고 그랬잖아!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도 왜 무시하는 거야?!
-힘들여 만든 건데 문 밖으로 보내라구?! 싫어, 이 계집애야. 그러다간 들키기도 쉬워
-좀비들이랑 먹고 자고 싸고. 한 번 시체들이랑 뒹굴어봐라, 이 걸레야
비니가 문 밖으로 나가버린다.
아첼이 묻는다.
-안 잡아도 돼?
리타가 말한다.
-저러다 춥고 외로우면 기어들어오겠지. 좀비랑 자는 게 뭐게 싫다는 거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데. 자위 행위 하는 느낌까지 든다 이거야
돌겠다. 오나가나 변태들 뿐이니 우리가 이 꼴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리타가 말한다.
-잘 지키고 있어
그러더니 골아떨어진다.
아첼이 소곤댄다.
-빨리 도망가자
-안 돼. 비니가 이곳에 돌아와서 잘 때까지 잠깐만 더 기다리자
난 그때 이미 리타의 치마를 들추고 있었다. 이곳의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리타도 속옷을 조금도 입고 있지 않았다. 아첼은 처음엔 오크들이 스스로를 괴롭히느라 속옷을 안 주는 줄 알았다 한다. 하지만 이곳엔 속옷이 애초부터 아예 없었다. 겉옷, 속옷을 나누는 낱말 부터가 없다. 나중에 생길 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속옷 만든 다음에 속옷 가게나 열까? 그럴만한 기술이 있어야지. 기술자를 고용한다 해도 그곳에서 버틸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직업은 광대랑 모험가랑 용병이랑 노예 뿐이다.
아주 길고 미끈한 다리다. 긴 로브 자락 아래 놀랄만치 희고 부드러운 속살이 숨어 있었다. 아첼이 말한다.
-우리 이래도 될까
-괜찮아
-너랑 붙은 뒤부터는 알몸에 좀더 잘 들뜨는 날 느낄 수 있어
-나도 너랑 붙은 뒤부터는 분위기에 좀더 잘 들뜬다
당연한 일이다. 뇌는 단지 세포들 사이의 의사소통 수단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나랑 아첼이랑 닮아가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아예 하나가 되는 일은 없겠지만. 장기 이식 받은 사람은 그 장기를 기증한 사람의 버릇이나 기억까지도 지니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같이 지닌 장기는 한 둘이 아니니 비슷해지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리타가 게슴츠레 눈을 뜬다. 그녀가 푸른 눈을 치뜬다. 홍체랑 수정체랑 똑같은 빛깔이어서 대단한 깊이와 섬뜩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염통이 한 번 크게 뛴다. 시간이 너무나 느리게 흐른다. 리타가 입술을 여는 움직임들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보인다.
-으음. 날 기절하게 만들어 줘. 피곤한데 잠이 안 와....
-그걸 바라니?
-물론
우리는 그녀를 뻗게 만들어주었다. 원체 피곤해하는 리타인지라 별로 어렵지는 않았다. 아첼이 말한다.
-리타 음부 진짜 괜찮았어. 아주 좋은 느낌이었어
-손가락에 묻은 그년 애액이나 닦아
-뭐하러 닦니? 빨아먹어야지. 음~~
우리는 문 밖으로 나간다. 어떤 오크도 우리를 잡지 않는다. 벌써 주인 취급을 해주고 있다. 저것들 얼마못가 리타한테 바베큐 신세가 되겠군.
문을 살포시 열고 밖으로 나온다. 문을 살며시 닫는다. 진짜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훔쳐 온 부싯돌을 쳐서 횃불을 밝힌다. 고래 기름이 듬뿍 발라져 있는 횃불이다. 이곳엔 고래가 엄청 흔하다. 바다의 지배자인 레바이어던들이 고래 목장을 운영하면서 크라켄들로 하여금 경비를 서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네레이드랑 머메이드랑 사이렌은 허구헌날 다른 종족들 물에 빠뜨려 죽이곤 그 고기랑 피로 잔치를 한다.
이곳의 바다도 육지 못지않게 생산성이 높다. 막대한 인산염과 질산염이 끊임없는 해저 화산 분출을 통해 공급되어 먼 바다까지도 플랑크톤이 가멸지다. 그런 생산성이 이 모든 것들을 낳은 모태지. 그런데도 생태계 파괴만 좆 빠지게 하고 있으니 이곳의 미래도 알만하다.
클레이모어에 롱 소드까지 있으니 비니가 지금 나타나더라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어디가?
비니 목소리다. 근처에서 서성대고 있었던 거다. 아까 리타랑 비니가 이야기한 건 우리를 안심시켜 믿을만한 가를 실험한 거였나. 엉겹결에 말이 튀어나온다.
-화장실
-뭐 화장실?! 꺄하하하. 웃기고 있네. 여긴 하수도야. 아무데서나 까고 싸면 돼
-실은 지리 좀 익혀두게
-멀리 가지 마
흐아, 미치겠다.
비니가 딴 청 보는 틈을 타서 횃불을 복도에 있는 횃불 걸이에 건다. 이러면 이 근처에 있는 줄로 알겠지. 아무리 생각해도 금방 들킬 게 뻔하다.
발자욱을 죽여 걷는다.
계단을 만나면 무조건 올라가는 걸 되풀이한다. 벌써 몇 개째냐. 이 하수도 장난이 아니게 크다.
-힘들어죽겠다
한동안 제대로 쉬거나 먹지를 못했으니까. 아첼이 답한다.
-니 상태를 보면 내 상태를 알 수 있겠지
-그래
하수 물은 제법 잘 흐르는 것 같다. 빛이 아직도 새어들지 않는다.
-또 계단이야?
-이건 좀 심하다
다리에 쥐나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이곳에 온 다음부터는 허구헌날 체력 단련 밖에 안 했는데도 이 모양이다. 얼추 몇 십 층은 올라 온 것 같다.
-아무래도 좀 이상해
-그래도 어떻해?
-이제부터는 문 좀 찾아보자. 일단 좀 쉬고
네 활개를 치며 드러누워버린다.
7
-이제 일어나자
뿌옇게 빛이 새어나오는 곳이 보인다.
-봤지?
-응
가까이 다가가보니 문 틈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거였다. 밀어본다. 열리지 않는다.
-손잡이가 있나?
손 끝으로 더듬거려 찾아본다. 없다. 문 틈에 손톱을 끼워놓고 열어본다.
아첼이 말한다.
-옴짝달싹 안 하잖아
-부숴버릴까?
-안 돼
-구멍을 뚫을까?
-우리한테 에스테크가 있냐?
-롱 소드나 클레이모어로도 잘만 하면.... 그냥 소리나 듣자. 내가 먼저 들을께
문에 귀를 댄다. 차가운 문이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멀리서 시궁쥐 소리가 들릴 뿐 문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그저 평범하게 지루하지만 안정된 하루 하루를 보내던 대학교 2학년생이던 내가. 열심히 공부를 하고 틈틈이 짬을 내서 여자 친구를 사귀고 통신을 하던 내가. 어느 한 순간 나는 이곳에 오게 되었다. 너무나 자연스레 이 낯선 세계의 공포스런 질서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언젠가는 군대에 갈 처지였던 나인지라 그리 크게 나빠진 것은 아닐 거란 생각도 해보았었다.
아첼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악마 도시의 하수도에 서 있었다고 했다. 시키는대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가끔씩 미팅을 하고 스타를 좋아하고 쉬운 게임을 즐기고 포르노 비디오에 아직 관심을 가지던 평범한 19살이던 그녀가.
아첼이 내 왼쪽 뺨을 문다.
-왜 그래?!
-왜 넋 놓고 있는 거야? 잘 들어야 할 거 아냐. 내가 들을께
아첼이 문에 귀를 빠짝 댄다. 내가 말한다.
-우리가 이곳에 올 때 생각했어
-.... 그런 말 하지 마. 괜히 눈물 나오잖아.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빌어먹을 새끼! 쓸데없는 말 해서 정신이 없잖아
-좀더 마음을 튼튼히 해라. 내가 들을께
-좋아
내가 문에다 귀를 댄다. 귀를 댄 체 여러 번 두들긴다. 전혀 아무런 반응도 없다. 클레이모어를 한 손으로만 쥔 다음 자루 끝으로 세차게 문을 쳐댄다. 아무 반응 없다.
-부수자
-좀더 올라가서 해도 되잖아
-들키면 죽여버리면 돼
클레이모어를 몇 차례 거세게 내리치자 문이 부서져내린다. 빛이 삽시에 쏟아져든다. 눈이 빛에 익숙해간다.
허름한 방이다. 곰팡내가 훅 끼쳐온다. 맞은 편에 있는 커다란 책장에서 나는 냄새다. 오른쪽 벽은 휑덩그렁하다. 아무 것도 없다. 왼쪽 편엔 플라스크 같은 갖가지 실험 재료가 어질러져 있다.
-역시 너무 많이 올라 온 거였어
낯선 이의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바로 앞에 있는 침대 밑으로 재빨리 몸을 던진다.
귀를 기울인다. 억양이 좀 센 남자 목소리.
-이 봐 리첼, 그 년은 언제 오는 거야?
굵지만 어딘가로 바람이 새나가는 듯한 남자 목소리.
-오겠지, 뭐
-리첼, 넌 걱정도 안 되냐?
-하루 이틀이냐. 그 년 약속 잘 안 지키고 일 대충대충 하는 거 지금까지 겪어봐서 알잖아
발 소리가 가까워진다. 침대 위에 앉을려는 모양이다. 억양이 센 남자가 말한다.
-거래처를 바꾸든가해야지
-발 넓으면 해 봐. 웬만해서는 찾기 힘들 거다
-젠장. 마스터가 비밀로 시키고 계신 거만 아니면 당장 때려치우는 건데
-때려치웠다간 넌 도망자가 돼. 폰티모스 탑에서의 니 삶은 끝나는 거야
-새끼. 겁주기는. 나도 알아
갑자기 머리 옆으로 침대를 뚫고 뭔가가 떨어진다. 우리는 즉시 몸을 버튕겨 일어난다.
억양이 센 목소리가 우리가 날려버린 침대 너머로 들린다.
-제길. 내 아까운 도구들! 죽여버려, 리첼!
우리 앞엔 리첼이라 불린 사내가 서있다. 생긴 게 어떤 지는 알 바가 아니다. 윤곽이 보이자마자 그곳을 향해 클레이모어를 갈긴다.
상대가 피한다. 우리가 지닌 4개의 눈이 둘레를 본다. 손에 힘이 왼쪽으로 간다. 그렇다면 아첼이 적이 왼쪽에 있다는 걸 찾아낸 거다. 그쪽을 보면서 같이 힘을 넣어준다.
리첼이 외친다. 목소리 듣고 아는 것 뿐이다.
-돌도, 놈을 붙잡고 있어
클레이모어를 그쪽으로 휘두른다. 워낙에 좁은 방이라 벽에 클레이모어가 긁히면서 매우 듣기 싫은 소리가 난다. 돌도가 외친다.
-미쳤냐, 임마! 나 침대에 깔렸어, 짜식아!
리첼이 우리가 온 문에서 반대쪽에 있는 움푹 파인 곳으로 가려 한다. 그 너머에 다른쪽 문이 있는 모양이다. 그에겐 무기가 없다. 그의 무기였던 스피어는 지금 쓰러진 침대에 꽂혀 있다.
클레이모어를 내리갈긴다. 리첼이 뛰어오르면서 내 눈앞으로 달겨든다. 그의 주먹이 커진다. 팔을 얼굴 앞으로 모은다.
리첼이 옆으로 사라진다. 클레이모어가 닥쳐드는 바람에 피한 것이다.
그가 피한 쪽으로 클레이모어를 휘돌린다.
아첼이 외친다.
-야! 이 것들아, 우린 너희 죽일 생각없어. 그러니까 공격을 멈춰!
-안 돼! 확실히 죽이는 게 차라리 나아!
-너 왜 그래?!
이 둘을 다 죽이고 나가는 게 증거도 안 남고 훨씬 나을 거다. 믿음이라는 믿기 어려운 것에 기대기 보다는 보다 확실한 것에 의존하는 편이 낫지.
갑자기 어두워진다. 책 한 권이 눈 앞으로 떨어지는 게 보인다.
우리는 반대편으로 뛴 다음 공중에서 몸을 돌려 벽에 등을 대고 선다.
책장이 넘어지며 커다란 소리를 낸다.
클레이모어를 휘젖는다.
아첼이 말한다.
-클로드, 지금 우리 뜨고 있는 거 맞지?
-그런 것 같은데
머리가 천장에 부딪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