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노인과 메이드 로봇 2013[SF]
노인과 메이드 로봇
김영호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침침한 시력을 근원시 복합 안경의 힘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안경을 쓰는 것조차 엄밀하게 따지면 사이보그라고 하던가. 그런 옛 말이 문득 떠올라 김영호는 허탈하게 웃었다.
김영호는 2000년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였다.
82세의 노인인 김영호는 아내도 자식도 없이 쓸쓸하게 늙어가는 처지였다. 김영호는 생계를 책임지려 하지 않고 집값도 대지 않으려는 여자를 아내로 삼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낡은 기계처럼 일해 왔다. 사회의 한 톱니바퀴, 빠져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톱니바퀴가 되어 이 일 저 일을 헤매면서 살아 왔다. 자신이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엄혹한 세상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겹게 버텨왔다.
만성적인 실업난 속에서, 득도라도 한 듯, 인생의 즐거움 중 술과 담배와 커피와 컴퓨터만을 즐기면서 살아 왔다. 지금은 술과 담배는 끊었다.
오래 된 의자 앞엔 몇 년이 된 고물 데스크톱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분자 양자 복합 3차원 초전도체 시스템 코어 기술로 CPU는 이루어져 있었다. 김영호는 의자에서 힘겹게 일어나 바닥에 앉았다.
이 낡은 원룸 하나가 김영호가 딛고 선 전부였다.
밝고 경쾌한 하품 소리가 들렸다.
김영호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하품 소리를 낸 건 방바닥에 누워 있는 쭉쭉 빵빵한 새하얀 알몸의 미녀였다. 젊음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미녀가 일어나 앉아 기지개를 켰다. 사람으로 치면 엉치 뼈가 있는 곳에 전기 컨셉트가 연결되어 있었다.
미녀가 초록빛 눈으로 김영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주인님, 치치 충전 끝났어요.”
치치는 김영호가 어릴 적 좋아하던 흘러간 만화 드레곤볼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치치는 국가에서 김영호와 같은 기초생활수급자에게 공짜로 분양해준 메이드 로봇이었다.
치치는 얼굴은 미인형의 동양풍이었지만, 몸은 서양풍이라 늘씬하면서도 확실한 몸매였다. 잘록한 허리에 터질 듯이 풍만한 가슴과 툭 튀어나온 엉덩이가 지탱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은 인간을 인공자궁에서 찍어냈고, 그런 인공자궁 세대에게 인권을 부여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생활을 보장하겠다고 덤비고 있었다. 그 혜택을 인공자궁 세대가 아닌 김영호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불로불사 기술은 언제 나오려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김영호는 어쩌면 불로장생에 대한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은 아직 발전 중이었다. 어차피 우주는 언젠가는 사라지니 그때까지 우주와 수명을 같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김영호는 다시 활력을 찾아 한 번 크게 자신의 포부를 펼쳐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늙고 병든 몸에 갇혀 있었다.
치치는 엉덩이 위쪽에 있는 전기 콘셉트를 떼지 않은 채 바닥에 엎드렸다. 아름다운 여체에 전기 콘셉트가 달려 있는 모습은 약간 그로테스크했다.
김영호는 최대한 오래 치치가 활동을 해서, 김영호 자신에게 위급한 상황이 터졌을 때 도울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콘셉트를 빼지 못 하게 했다. 김영호는 당뇨병에 걸려 있었고, 저혈당 증상이 왔을 때 치치가 상비용 사탕을 먹여 줘 회복된 적도 몇 번 있었다. 치치가 이번에 완전 충전 상태로 들어갔던 것은 김영호가 업어주기를 원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전력을 썼기 때문이었다.
“치치야, 안마해줘라.”
“네, 안마해드리겠습니다, 주인님.”
김영호는 아까부터 발가벗은 체였다. 치치는 엎드리고 누운 김영호의 등에 탄력이 넘치는 유방을 밀착시키고 손으로 어께를 주물거리면서 인터넷에서 받은 안마 프로그램의 명령에 따라 충실히 김영호의 몸을 풀어주었다.
치치의 골수는 기계로 되어 있었지만, 살 부분은 부드러운 인공 근육으로 되어 있었고, 피부는 단백질 복합체였기에, 치치의 몸은 유연했고 부드러웠다. 그러면서도 탄력이 우수했다.
치치는 똥 찌꺼기가 묻은 김영호의 항문을 혀로 깨끗이 닦아냈고, 고환도 페니스도 세심하게 핥고 빨았다. 발기도 되지 않는 페니스였지만, 귀두에 느껴지는 치치의 혀는 달콤했다.
비록 나라에서 공짜로 나눠 주는 배급품이었지만 치치는 이미 실제 인간 여자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봉사력이 뛰어났다. 인간 여자라면 이런 언행을 할 때 응당 크게 느낄 스트레스가 조금도 없었다. 물론 여자 인간에겐 따로 다른 형태의 봉사 로봇이 공급되고 있었다.
좀 더 비싼 상품을 산다면, 보다 특이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었지만, 배급품인 치치는 인간 여자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띄고 있을 뿐이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제조업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어 봤을 경구였다. 김영호는 치치를 겪으면서 그것을 느꼈다. 컴퓨터로 여러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치치에 설치해 보는 것이 주요 일과였다. 컴퓨터를 거치는 건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바이러스 검사도 하기 위함이었다.
인공지능이라 하기에 치치는 어폐가 있었다. 정교하게 짜인 프로그램대로 행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그래도 일상생활에 있어 사람으로 착각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치치가 인공지능조차 아님을 느낄 때면 허망해지지만, 예전에 비관론자들이 예견했듯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는 사태가 오지 않은 것이 어디냐는 생각이었다.
김영호는 치치에게 정액 대신 소변을 먹였다. 물과 같은 액체 정도는 마심으로서, 성기능에 필요한 애액과 타액 정도는 자기 생산하는 치치였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치치가 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언제나 알몸인 메이드 로봇들이 많기 때문에 배달원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배달원이 물건을 건냈다. 식재료였다.
식재료 배달로 장보기를 대신하고 있는 김영호였다.
범죄율은 극히 낮게 유지되고 있었다. 김영호가 주사 한 방으로 주입받은 뇌파 진단기를 통해 김영호의 시각정보가 무선 전송되어 경찰청 서버 컴퓨터에 저장되고 있었다. 즉 김영호의 눈 자체가 CCTV 노릇을 하고 있었고, 치치의 눈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배달원이 사라졌다. 로봇이 할 수도 있는 비교적 쉬운 업무였지만, 로봇을 취업시킬 수 있는 일자리는 법으로 제한되어 있어 배달원은 사람이었다. 애초에 치치와 같은 로봇이 인공지능도 아니기에 로봇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다.
치치가 말했다.
“주인님, 무슨 음식을 해드릴까요?”
“미역국. 소고기 넣고.”
“예, 알겠습니다.”
좀 더 맛있는 걸 먹고 싶었지만, 김영호의 유일한 수입인 기초생활수급비로는 지금 생활에도 허덕이고 있었다.
치치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김영호는 컴퓨터로 3D 입체영상을 보았다. 치치가 3명의 남자에게 윤간당하는 상황을 세심하게 본 떠 찍은 영상이었다. 실제로 치치가 윤간당한 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실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가상 화면으로 예전에 만들어 둔 화면이었다. 김영호는 치치를 많이 좋아했다.
“식사 준비 끝났습니다.”
치치가 언제나 그렇듯 애교가 넘치는 소리로 말했다.
“그냥 둬.”
“알겠습니다. 산책나가실 시간입니다, 주인님.”
“그래, 가자.”
김영호가 옷을 챙겨 입는 걸 치치는 도왔다. 그런 뒤 치치는 메이드복을 입었다. 외출할 때면 메이드 로봇은 반드시 메이드복을 입도록 되어 있었다. 안 그러면 실제 사람과 혼동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외출하면 치치와 같은 메이드 로봇은 이마에서 빛을 내도록 되어 있었으므로 딱히 우려가 꼭 있는 건 아니었다.
김영호는 지팡이를 짚었다. 치치가 옆에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을 맞춰 걸었다. 아직은 지팡이를 굳이 쓸만치 걷는 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함이었다.
김영호는 당뇨병 관리를 위해 하루 1시간씩 집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이마에서 빛이 나오고 메이드복을 차려 입은 메이드 로봇들이 많았다. 노인들이 젊은이들만큼이나 숫자가 많은 시대였다.
낮이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공원에 나오지 않는다. 다들 김영호의 집에 있는 컴퓨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성능의 스마트 기계들에 둘러 싸여 일하고 있을 터였다.
김영호는 그런 이들의 활력이 부러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치치의 복종을 받으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노년의 일상이 그렇게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2013.05.07.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