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노인을 왜 존경 2014[일반]
노인을 왜 존경
“우리가 왜 노인을 존경해야 하지?”
미정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소주잔에 소주를 부었다.
태민이 대꾸했다.
“거러췌!”
태민과 미정은 친 남매로서 오피스텔에서 월세로 동거하고 있었다. 태민이 말을 이었다.
“노인이 되면 악랄해지고 철면피가 될 뿐 여전히 내면이 아이인 건 똑 같지. 여전히 유치하고 여전히 잔인하지만, 부자일수록 탐욕스러운 늙은 애새끼일 뿐이지. 어떤 놈들은 인간은 다들 불쌍하다고 지껄이지만 그건 인간 모두에게 공통되는, 즉 고려사항이 될 수 없는 사실이지.”
“아, 복잡해. 노인 존경은 필요 없다는 거지?”
“그럼, 그럼.”
“난 오빠만 바라보고 있어.”
태민은 대답 대신 소주를 들이켰다.
얼마나 미정을 믿을 수 있는지 태민은 알 수 없었다. 호주로 가면 태민은 지금 가진 용접기능사로 직장 잡기 전까지는 농장에서 땀을 흘려야 할 것이다. 태민은 다른 절대다수의 기득권층 자녀들이 그렇듯 평생 땀 흘려 돈 번 적이 없었다. 용접이 땀 흘려 배운 유일한 공부였고 이제 써먹어야 할 기술이었다. 불안했지만 닥친 일이었다.
미정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좋은 여성인 동양인 여자였고 그것도 탑 클레스인 한국적 미인이었다. 세계적으로 노는 동양인 배우나 모델은 못 생긴 얼굴을 가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에 편승한 결과였다. 미정은 집안이 부도가 났던 2년 전에 미스 춘향으로 뽑혔을 정도의 한국적 미녀였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보는 눈은 비슷해서 미스 춘향으로 뽑힌 정도면 백인들 눈에도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 이상 다리만 벌리고 있음 될 것이고, 그러면 질이 좁다고 백인 남자들과 흑인 남자들에 의해 보지가 마르지를 않을 것이다.
미스 춘향이라. 태민은 썩소가 저절로 나오는 걸 참았다.
태민과 미정은 1년 전 부모에게서 대출을 끼고 30억을 받아서 그걸로 마트 사업을 벌였다가 경험 부족과 사기로 말아먹었다. 3개월 전엔 사채까지 쓰기 시작했다. 남은 부동산을 몽땅 판 뒤 저당을 이중으로 잡은 지금이었다.
내일 호주로 튄다.
워홀 신청은 통과되었다.
걸리적거리는 건 없었다. 지금까지는 빚을 돌려 막고 부모 재산으로 보증을 서왔다. 더는 미래가 없다는 판단 아래 터지기 전에 모든 걸림돌을 한국에 두고 호주로 피난 갈 것이다. 실수는 없어야 했다.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미래가 없는 나라다. 모든 부유층은 영어권 국가에 이미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 태민과 미정도 한때 부유층이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나락만이 남았다. 호주에서 살 것이다. 86세대와 베이비붐 이상 세대 그들 골골거리는 노인들은 자신들 살아갈 때까지만 복지 체계가 동작하도록 교묘하게 만들어 놓았다. 젊은이들을 복지 정책으로 홀리고, 정작 30대 이후부터는 늙어서 복지 혜택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런 추악한 짓거리를 행하는 노인들을 존경해주면서 이제는 부자들에게 피 빨리면서 한국에서 살 이유가 없었다. 돈이 많았던 지금까지라면 하류층들 등 처먹으면서 사는 걸 유지하겠지만 이제는 그렇지도 못 한 태민과 미정이었다.
태민은 계속 술을 따랐다.
미정은 잘 받아마셨다. 다리 벌리면서 살아갈 미래가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 미정이었다. 섹스가 직업이 되면, 흑인 남자들과 놀던 미국 유학 시절과는 달리 취미가 아니니까 고충이 있을 것이다. 뭐든지 직업이 되면 그건 귀찮고 힘든 일이 되는 것이고 섹스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미정은 더 이상 족발을 주서먹지도 않고 술만 마셨다.
“양주 꺼내올게.”
태민은 미정을 골로 보낼 속셈으로 냉장고에서 시바스리갈을 꺼냈다. 위스키 중 제일 싼 축에 속하는 시바스리갈은 박정희가 즐겨 마시던 술이다. 이젠 집이 가난해지다 보니 냉장고에 남은 양주라곤 시바스리갈 밖에 없었다.
86세대, 저주받을 것들. 그것들은 반드시 망해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운 좋게 박정희 때 어린 시절을 보내 고생하지 않았고, 운 좋게 대학 시절엔 전두환을 만나 열흘만 공사판에서 일하면 대학교 등록금을 낼 수 있었다. IMF 때엔 운 좋게도 회사에서 중간에 위치해서, 윗대가리라고 잘리지도 신입이라고 안 뽑히지도 않았다. 덕분에 운 좋게 86세대는 자산이 제일 많은 부자 세대였고 그러면서도 복지를 타내려고 발악하는 늙은 파렴치한들이었다. 박정희가 총대를 메고, 당시 1인당 GDP가 꼴찌에서 두 번째였던 나라 한국을 경제 성장시키지 않았음, 평생 똥지게나 지고 살았을 86세대들이 박정희를 욕하는 사상을 마구 퍼뜨리고 있었다.
태민과 미정의 부모는 86세대였다. 태민과 미정의 부모는 요즘 들어 부쩍 태민과 미정이 돈을 벌으라고 타박했다. 자신들은 일제시대 때부터 축적된 자신들 부모의 재산으로 평생 제대로 된 일 한 번 하지 않고 떵떵거리면서 살아왔음에도 말이다. 이제 태민과 미정이 사기치고 호주로 뜨면 그들의 부모는 가진 재산 전부를 날리고 사채 빚까지 지게 될 것이다.
태민은 맥주잔에 시바스리갈을 부었다. 미정이 단숨에 들이켰다. 태민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고 미정에게 물었다.
“비싸게 먹고 토할 거야?”
“나 마시는 거 방해하지 마!”
“그래, 그래.”
미정은 계속 술을 마셨다. 시바스리갈이 떨어지자 이번에는 막걸리였다. 술자리의 끝판에 태민과 미정은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최근에 돈이 떨어지자 소주, 맥주, 막걸리 같은 서민 술에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이들 남매였다. 막걸리에는 유산균이 요구르트 보다 많이 들어 있었지만 그 점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애초에 요구르트의 유산균들은 장까지 가지 못 하고 위액에 다 죽는 법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이 하는 성에 대한 생각 대신에 음식에 관한 생각을 하고, 음식 배가 여럿 있다고 하던가. 여자치곤 크긴 해도 균형 잡힌 늘씬한 몸을 가진 미정의 어디에 그토록 많은 술이 들어가는지 태민은 문득 궁금해졌다.
미정은 손을 휘젓다가 쓰러졌다. 태민은 미정을 들어 안고 침대에 눕혔다. 미정은 침대 위에서 손을 저으면서 뻗어 있었다. 곧 미정은 잠들었다.
버리고 갈까.
태민은 미정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창녀 하나에 대해 기둥서방 노릇을 하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미정이 아직 태민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이를 이용하는 것도 상등의 계책일 터였다. 태민과 미정, 이 남매는 서로를 예전부터 이용해온 듯 하다고 태민은 생각했다. 애초에 인간은 생후 3년 이내에 인격이 결정된다. 되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오늘까지 자신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없었다.
“나도 자야겠다.”
그렇게 중얼거린 뒤 태민은 믹스커피를 네 봉 한꺼번에 타서 마셨다. 잠깐 자고 깰 요량이었다. 인간은 우주의 사용법에 관해 많은 걸 알아냈다. 인간은 잔인함에 있어서는 다른 생물들과 차이가 없지만, 자비로움에 있어선 상위 0.1% 안에 속했고, 지식에 있어선 모든 생물들의 정점이었다. 때문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태민은 과중하게 불어난 빚 때문에 지식에 기대어 효도라는 자비를 버리고 잔인함을 선택했다. 태민은 어릴 적부터 그리 부모에게 효도할 작정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태민은 족발 남은 것과 술병을 손으로 밀어 방 한 구석에 몰아넣었다. 버리고 떠날 세상이니 당장 하룻밤 잘 자리만 있으면 되었다. 태민은 이불을 깔고 불 끄고 누웠다. 어쩌면 뜬 눈으로 지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오피스텔은 넓지 않았다. 규칙적으로 몰아쉬는 미정의 숨이 배경음으로 깔렸다. 누워만 있어도 피곤은 꽤 풀린다. 태민은 182cm, 90kg의 당당한 체격으로서 문신도 몸에 새겨 넣은 체였다. 호주에서도 꿀리는 덩치가 아니기를 바랐지만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미정이 뒤척였다. 태민은 일어섰다.
태민은 형광등을 켜고 침대 위에 올랐다. 미정의 옷을 벗겨 알몸으로 만들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콘돔을 끼지 않았다. 태민은 페니스를 세우고는 미정의 항문에 아무런 준비 없이 꽂아 넣었다. 필연적으로 똥이 묻을 것이다. 미정의 몸이 버둥거렸다. 태민은 미정의 팔을 손으로 누르고 다리를 다리로 결박했다. 미정의 방귀가 새어 나왔다. 리드미컬하게 태민은 미정의 엉덩이에서 경쾌한 소리가 나도록 허리를 거침없이 움직였다. 10대 초반부터 해왔고, 호주에 가서도 한동안 이렇게 할 것이고, 미정과 인연이 끝날 때까지 할 일이었다. 호주에 가선 모든 것이 낯설 것이니 익숙한 것 하나라도 있으면 좋으리라.
[2014.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