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73화
“어때? 이 정도면 방송 안 터지겠지?”
나는 방송 화면에 전신이 잘 나오도록 떨어진 뒤, 섹시한 포즈를 잡으면서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지금 나는 수영복을 입은 상태였다. 물론 집에서 말이다.
한 번 바니걸 옷을 입어줬더니 사람들이 이런 저런 요구들을 마구 해오기 시작했는데, 바니걸 옷이 잘 어울린다고 잔뜩 칭찬해주던 걸로 자위를 이미 해버린 뒤라서 거부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옷을 입을 때마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감에 찰 정도였다.
점점 노출 수위가 올라가기 시작하더니 이득고 비키니 모습을 보고 싶다는 사람까지 나온 것이다.
“속옷이 아니니까 괜찮겠지? 진짜 괜찮지?”
뒤쪽이 T백이었기 때문에 완전히 뒤로 돌아설 자신이 없었고, 슬쩍슬쩍 옆모습을 보여주면서 불타는 채팅을 즐겼다.
“그럼 이제 게임 켠다.”
전에 하던 스카이렘은 몇 번 더 하다가 내가 질려서 안 하게 됐고, 결국 다시 전에 하던 ROR로 돌아오게 됐다.
특별히 이 게임이 재밌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극적인 장면도 잘 나오고 승패가 명확하게 갈리다보니 방송하기에 딱 알맞은 게임이었다.
- 이번 벌칙은 뭐임?
- 섹시 댄스 ㄱㄱㄱ
“씨발 내가 춤추면 그게 섹시 댄스지, 뭐가 더 필요해.”
- ㅇㅈㅇㅈ
나는 아예 벌칙을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시청자가 늘어나니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저격하는 사람들의 수가 엄청 많아졌고, 굳이 저격이 아니더라도 도무지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실력으로는 벌칙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꼭 나쁜 것도 아니었다.
벌칙이라고 부르기는 했으나 사실상 팬들을 위한 서비스 같은 거였고, 오히려 게임할 때보다 그런 서비스를 해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더 좋았기 때문에 특별히 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근데 나 레알 춤 못 추는데, 한 번도 춰본 적 없어.”
- ㅅㅂ 클럽 죽순이 같이 생겨놓고
- 근데 방에만 처박혀 있기는 함 ㅋㅋㅋ
“아무 거나 도네로 보내봐, 그거 따라서 쳐줄게.”
그러자 무수히 많은 영상 도네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이돌 영상부터 시작해서 해외 슈퍼스타의 영상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애니메이션 캐릭터 영상도 섞여 있었다.
- ㄴㄷㅆ
- ㅆㄷ 아웃
“니은 디귿 쌍시옷이 뭐야? 네다씹? 네다씹이 뭔데?”
방송을 진행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내가 모르는 새로운 단어들이 있었다.
“그럼 괜찮아 보이는 걸로 하나씩 해보자.”
특별히 하나만 춰줄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적당히 사람들이 추천을 많이 해주는 것들을 골라서 춰주기 시작했다.
- ㅗㅜㅑ....
- 가슴 흔드리는 거.....ㅗㅜㅑ....
당연히 나는 수영복을 입은 채로 영상을 보면서 따라 춤을 쳐줬고, 춤이 아니라 맥없이 허우적거리는 것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내 몸을 보면서 감탄만 연발했다.
“휴우, 오랜만에 움직이니까 기분 좋다.”
역시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몸을 움직이는 게 나에게는 더 좋았다.
그래서 가끔 운동이나 헤비 캐논 연습 영상도 찍어봤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찮았고, 게임이나 켜라는 반응으로 도배가 됐기 때문에 조금 아쉽던 참이었다.
“니들도 운동 좀 하고 그래, 계속 방송만 보고 있지 말고.”
- 응 니가 제일 오래 해.
- ㄹㅇ 하루 종일 방송밖에 안 하면서 ㅋㅋㅋ
그 뒤로도 춤을 춰달라거나, 화보 배우 같은 포즈를 잡아달라거나, 성인 만화에나 나올 법한 음탕한 자세를 보여 달라는 등의 요구들을 들어주다가 방송을 마쳤다.
- 오팬무?
다음날 방송을 켜자마자 또 알 수 없는 단어의 도네가 날아왔다. 그러자 채팅창에서는 미친놈이라며 낄낄대는 채팅들이 마구 올라왔다.
“오팬무는 또 뭐야? 너네들 왜 이리 어려운 말을 쓰냐.”
- 오늘 팬티 무슨 색
- 미친놈임 무시해
- 저 새끼 여자 스트리머 방마다 저러고 다님
“팬티? 흰색인데?”
- ㅅㅂㅋㅋㅋㅋㅋㅋ
- 존나 쿨하다
- 그걸 말해주네 ㅋㅋㅋㅋ
“아니, 왜? 팬티 색이 왜?”
오히려 내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팬티 색이 도대체 왜?
“팬티 색이 왜 궁금해? 여자 팬티 본 적 없어?”
그러자 채팅창이 지랄이 났다. 쌍욕을 박는 놈부터, 갑자기 가슴에 칼을 꽂는다고 징징 우는 놈까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울분에 찬 채팅들이 주르륵 올라가기 시작했다.
“레알? 여자 팬티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씨발 엄마 거 봤다는 놈은 뭐야.”
흐으응....그렇단 말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셔츠를 올려서 허리가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마치 팬티를 보여줄 것처럼 바지를 잡고 슬며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제 욕을 했었냐는 듯 두근두근 기대하는 채팅들이 바글바글 올라왔고, 한참이나 아랫배를 조금씩 보여주다가 결국 팬티는 보여주지 않은 채로 앉아 버렸다.
“오구오구 기대했쪄요? 니네 여친 거나 보세요.”
내가 낄낄대면서 조롱하자 또 다시 화난 채팅들로 가득 찼다.
그러고 보니 나도 남자이던 시절에 여자 알몸은커녕 속옷도 본 적 없었지. 물론 나는 엘리트였으니까 이놈들이랑은 다를 것이다. 충분히 여자친구를 사귈 수 있었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 미션 : 다음 게임 패배시 속옷 인증하기
- 미친 ㅋㅋㅋㅋ
- 또라이쉨ㅋㅋㅋㅋ
너무 약을 올렸던 것인지 결국 한 놈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야, 그럼 방송 터지는 거 아냐? 수영복은 괜찮았으니 괜찮나?”
나는 살짝 흥분되면서도 긴장됐다. 수영복차림을 보여주는 건 이미 1학년 때 동기들에게 해봤기 때문에 그나마 거부감이 덜한 편이었지만, 똑같은 면적인데도 속옷차림을 보여준다는 건 거부감이 심했다.
하지만 미션을 준 사람이 진심이라면 저걸 거부할 수가 없다.
‘마스터?’
결국 나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분명 그도 내 방송을 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스카이렘 때부터 의심이 들었다. 몇 번인가 그의 요청으로 보이는 선 넘은 벌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고만고만한 미션이나 벌칙들 사이에서 갑자기 수위가 확 올라가는 요구가 튀어 나올 때가 있었다. 그게 분명 마스터인 것 같았다.
그런 도네가 올라오면 시청자들은 처음에는 그 사람을 욕했지만, 막상 내가 그 요청을 수행하는 걸 보면 다 같이 흥분해서 점점 더 수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이 미션도 마스터가 보낸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에게 직접 물어볼 수는 없었다.
‘속옷 인증 할 수가 있어? 그럼 방송 터지는 거 아냐?’
나는 마치 그가 방송을 강제로 해야 한다고 했던 것처럼 물었다.
사실 방송은 내가 관심을 갈구하고 있을 때 마스터가 한 번 해보라고 권해본 거였지,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강제로 시킨 게 아니었다.
강제하는 게 있다면 방송 중에 나온 요청들을 반드시 수행할 것이라는 정도, 방송 자체에 대해서는 강제하는 게 없었다.
하지만 방송 정지를 당하면 우선 나 자신이 그 고독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방법이야 많지, sns에 올려서 인증해도 되고, 다른 메신저 채팅방을 이용해서 해도 되고, 성인 방송 채널을 파서 해도 되지.>
나는 그 중 성인 방송 채널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다른 건 겨우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서 올리는 걸로 끝이지만, 그건 방송의 형태를 하고 있을 테니 그쪽이 끌린 것이다.
하지만 성인 방송이 돼 버리면 온갖 미친놈들이 날뛸 텐데.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광기 어린 성욕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야, 니들이 골라봐.”
결국 나는 시청자들에게 맡겨 버리기로 했다. sns에 인증하기, 메신저 채팅방에 인증하기, 임시 성인 채널을 뚫어서 인증하기, 세 항목을 놓고 투표를 시킨 것이다.
예상외로 성인 채널까지 가는 건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sns가 표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근소한 차이로 임시 성인 채널을 뚫는 걸로 결정 됐다.
- ㅅㅂ 이걸 한다고?
- 결국 창녀 엔딩 ㅋㅋㅋ
- 여스트리머들은 왜 다 한결 같냐 ㅋㅋㅋ
- 결국 벗죠 ㅅㄱ
“씨발 니네들이 하라고 해놓고 이제 와서 지랄이야, 그래 싫은 사람은 꺼지고 보고 싶은 사람들한테만 채널 링크 보낼게.”
그러자 죄송합니다.라는 채팅이 우루루 올라왔고, 그 꼴을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 ㄹㅇ 하려고?
- 제정신임?
- ㅈㄴ 빠꾸없네 이 방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마스터가 알려준 방법대로 성인 채널 신청을 하자 채팅방이 혼돈 그 자체가 됐다. 다행히 같은 플랫폼에서 만들 수 있었고,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단순한 농담에 불과한 줄 알았던 사람들과,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횡재했다는 사람들이 섞여서 개판이었다.
“근데 이 사람들 전부 데려가는 건 좀 무리가 있겠다. 그래도 성인 채널이잖아? 조건을 정해야겠는데.”
흐음....
나는 짐짓 고민하는 척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뜸들일 때마다 사람들이 보이는 애타는 반응을 보는 것도 큰 재미 중 하나였다.
사실 그런 거 없이 다 데려가도 상관없었지만 하나라도 뭔가 안전장치를 달아두고 싶었다. 고선태 같은 놈이 흘러 들어오는 걸 막고 싶었다. 막지는 못하더라도 하나쯤은 약점을 하나 잡아두고 싶었다.
“10만원 이상 도네한 사람들한테만 채널 열어줄게. 이미 누적된 사람들은 괜찮고.”
결국 생각해낸 것이 결제 정보라도 남겨두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할 수 있으리란 것이었다.
이참에 생활비도 좀 벌고.
그동안 어마어마하게 많은 도네를 받긴 했지만,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자낳괴 ㅅㅂㅅㅂㅅㅂ
- 입장료 개비쌈
시청자들은 욕을 하면서도 속속들이 도네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속옷차림을 보냐 아니냐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단순히 속옷차림을 보는 것뿐이라면 스샷으로 찍혀서 돌아다니는 걸 보면 되니까.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면, 시키는 걸 다 하고 속옷 색깔 물어보는 것조차 쿨하게 다 대답해주는 나를 성인 채널에서 마음껏 주무를 수 있다는 특혜에 비해 10만원은 아주 싼 가격이었다.
쉴 새 없이 도네 알림음이 울려 퍼지는 걸 듣고 있자니 살살 흥분되면서 보지가 젖어오기 시작했다.
내 몸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나를 정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속옷 인증을 위한 임시 채널이라고는 말했지만, 이미 채널까지 파 버리고 거금까지 도네로 받은 이상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본인들이 투자한 돈을 보상받기 위해 내게 무리한 요구들을 할 것이고, 나는 수치스럽고 곤욕스러워하면서도 다 따라야 하겠지.
그리고 지금 우루루 돈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도 그런 것일 터였다. 단순히 속옷차림 보자고 10만원이나 쓰진 않는다.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었다.
“다 됐니?”
도네를 전부 스킵하면서 받고 있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수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도네를 보낸 것 같았다.
“근데 그거 알아? 나 이미 게임 시작함.”
나는 낄낄대면서 구석에 숨겨놨던 게임 창을 보여주며, 이미 대기실에 들어와 있는 걸 보여줬다. 슬슬 도네가 끝나갈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몰래 숨겨둔 곳에서 ROR 방을 잡아둔 거였다.
“속옷 인증 정도 되면 저격 허용해주기 힘들잖아?”
- 환불해줘 ㅅㅂ
- 꺼어어억ㅋㅋㅋㅋ
- 변태 새끼들 꼴좋다 ㅋㅋㅋㅋ
그러자 속았다는 채팅이 우루루 올라오면서도, 돈이 없어서 도네를 못 했던 사람들의 조롱섞인 채팅들이 올라왔다.
- 그걸 사네
- ㅈㄴ 아쉽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살아남거나 내가 조금이라도 좋은 플레이를 보이면 채팅창에서 희비가 엇갈리며 난리가 났다.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죽기를 바라며 기원하는 놈들이 많았고, 필사적으로 자신은 들어가지 못할 속옷 인증을 막기 위해 나를 응원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엉망으로 게임을 망친 탓에 우리 팀이 졌다.
“아, 아쉽다. 거의 이겼는데.”
- ㅈㄹ 너 때문에 졌죠
-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존나 부럽다
“이쪽 채널은 이만 닫는다. 링크 받은 사람들은 저쪽으로 넘어와.”
나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이면서 방송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