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71화 (71/100)



〈 71화 〉71화

방송을 마친 뒤 스튜디오에 있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몸을 담갔다.

휴우....오늘도 재밌었다.....

그리고 꽤나 짜릿했지.

욕조 앞에는 핸드폰과 연결할 수 있는  스크린이 있었고, 그걸로 오늘 했던 방송들을 돌려 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도게자를 할 때의 모습을 몇 번이고 돌려보게 됐다.

당시에는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감정에 휩싸였었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굴복하는 모습을 3자의 입장에서 보고 있으니 짜릿한 흥분이 올라왔다.

그 꼴을 사람들이 조롱하는 채팅을 보고, 몸을 앞으로 숙이느라 잔뜩 부각된 가슴골을 클립으로 따서 시도 때도 없이 희롱하는 도네가 왔을 때를 다시 떠올리니 정복당하는 묘한 흥분에 온 몸이 찌르르 떨렸다.

하아....

이미 보지는 내가 손대지 않았는데도 잔뜩 젖어 있어서 욕조 안에 있는데도 미끈거리고 있었다.

어떤 걸 더 보여줄  있을까.

알몸을 보여주는  거부감이 강했지만 도게자 같은 것처럼 적당한 수치심과 굴복감을 주는 무언가를  겪어보고 싶었다.


주말 아침 나는 스튜디오 침대에서 눈을 떴다. 매번 내 방으로 왔다갔다하는 게 귀찮기도 했고, 어쩌다 한 번 스튜디오의 고급 침대에 누워보니 내 침대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편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원이 꺼져 있긴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잔다는 게 약간 두근두근한 쾌감을 주기도 했다.

한 번 자고 나니 내 방에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오늘은 야방이야.”

나는 외출복을 입자마자 방송을 켰다. 이제 대부분의 시간을 방송을 켜둔 채로 지냈다. 다른 스트리머들은 방송을 몇 시간이나 하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혼자 생활할 때 오는 적막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사귄 거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두 명이 그런 것들이었으니.

수많은 남자 중 누군가는 나를 소중히 여겨줄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미 동기들 사이에서 긴 시간동안 육변기로 굴렀고, 쓸모가 없어지니 두  없이 버려지기까지 했다.

나를 조금 신경 써줬던 과대도 거부감을 보이긴 했지만 결국 내 몸을 쓰기도 했고,

그나마 한 번도 안 했던 건 김주선 정도인가,

그는 최초의 한 번을 제외하고는 6층  방에 얼굴도 들이밀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이랑 가까이 지내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나쁜 짓을  했다뿐이지 남자다운  아니니까, 그 자식은 어떤 여자에게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혹시 알아보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나는 문 밖으로 나서면서부터 두근거렸다. 이미 평균 시청자가 수천 명이 됐다.

그 사람들 중에 우리 학교 학생이나 모르는 척 내 방송을 보고 있는 동기도 없으리란 법이 없다.

우리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도 당연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번화가 근처에 살거나 외출을 나와 있을지도 모른다.

에휴...

괜히 두근거리면서도 터무니없는 희망이라는 사실에 픽 웃어버리면서 번화가로 나왔다.

흐응....역시 그럼 그렇지.

나는 괜한 기대였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 같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전에는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이 두려웠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히려 나를 알아보고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먼저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살폈다.

방송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게다가 시청자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지.

애써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지만 실망스러운 기분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디로 가볼까, 너네들 어디 가는 거 좋아하니?”

- 대낮 술방 ㄱㄱ

집에 가서 겜이나 

- 저 여자 허리 머꼴 ㄲㄲ

“응? 누구?”

나도 모르게 채팅에서 말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렸고, 크롭티를 입고 있어서 살짝살짝 허리선이 보이는 여자를 찾을 수 있었다.

“야, 그런 거 보지 마, 도촬이잖아.”

- ㅅㅂ 도촬은 지가 하고 있으면서

- ㄹㅇ 집에 가서 겜이나 켜라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람이 없는 골목으로 들어온 뒤, 티셔츠를 살짝 올려서 허리가 드러나게 했다.

“내가 더 쩔지 않냐? 인정?”

- ㅗㅜㅑ.....

그러자 채팅창이 ㅗㅜㅑ와 대꼴로 도배가 되면서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있으니 얼굴에 살짝 열기가 오르면서 기분이 좋아졌고, 바지도 살짝 내려서 아랫배가 드러나게 했다.

“나만 보라고 새끼들아.”

 내려줘 눈나

- 쥬지 터질 거 같다

흐으....어쩌지....젖기 시작했는데....

어쩐지 오랜만에 야외노출을 하는 기분이 됐고, 채팅의 반응을 보며 보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사람이 오는지 눈치를 보면서 몸을 이리저리 틀어가며 교태를 부리다가 거리로 다시 돌아왔다.

“저, 저기요?”

그때 누군가가 내 팔뚝을 쿡 찔렀고, 나는 화들짝 놀라면서 움츠러들었다.

“아, 안녕하세요.”

거기에는 웬 왜소하고 후줄근한 남자 하나가 멋쩍게 웃으면서 서 있었다.

“유한솜님 저 팬이에요, 싸인 좀....”

“아...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팬? 사인? 그런 단어보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이름을 알고 접근해왔다는 사실에서 공포감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기대감이 그렇게 유쾌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고,

이렇게나 손쉽게 접근해올  있다는  통해 어쩌면 얼굴이 알려진다는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네....”

나는 잔뜩 쪼그라든 채로 그가 건네주는 수첩과 펜을 받아 들었다. 그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면서 사인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잔뜩 기대에 차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불쾌하면서 무서웠다.

이미 타이탄급을 제거했다는 이유로 기사에까지 났고, 당시 전투 영상이 떠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이렇게 나를 알아보고 접근해 온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두승이 먹였던 페로몬 약은 어떻게 됐지.

남자들이 내 몸에 끌리게 된다던 그 약을 매뉴얼대로  먹었었기 때문에, 그게 진짜 효과가 있는 거였다면 이 남자도 지금 나를 범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 잊고 있었는데.

육변기 생활이 끝난  시간이 꽤 흐르고 관심 받고 싶다는 욕망을 방송으로 상당히 풀어내고 있다 보니 섹스에 대한 욕망이 예전보다 많이 사그라들어 있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범해줬으면 좋겠다던 시절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남자에게 범해지는 건 다시 내게 공포스러운 일이 돼 있었다.

여자가 길거리를 걷고 있으면 꼴린다고 해서 무작정 덮치지는 않는 것처럼, 내가 걷는다고 해서 무작정 누군가 달려들지도 않았기 때문에, 페로몬에 대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헤헤 웃고 있는 이 기분 나쁜 남자의 얼굴을 보니 온갖 끔찍한 상상들이 하나씩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 ㅅㅂ 어케 찾았냐

- 저기 어디임? 찾아가도 되는 거였음?

- ㅈㄴ 나 저기 어딘지 아는데

반면 채팅창은 나를 직접 만난 이 남자를 부러워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아, 맞다 얘들이 있었다.

설마 방송으로 송출되고 있는데 그 앞에서 나한테 허튼짓을 하진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던 까닭도 납득이 됐다.

오늘 뿐만 아니라 간단하게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산책을 할 때도 항상 방송을 켜뒀으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불안에 떨던 몸에 다시 온기가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자, 이게  싸인이야.”

나는 처음으로 해본 싸인을 방송 화면에 띄워줬다. 수첩에는 그냥 ‘솜’을 갈겨 쓴 게 끝이었다.

- ㅈㄴ 무성의 ㅋㅋㅋㅋ

“어쩌라고, 싸인을 처음 해보는 건데.”

그리고  싸인 위에 일부러 쪽 소리를 내면서 뽀뽀를 해준 뒤 그 사내에게 돌려줬다.

 수첩 삽니다 ㅗㅜㅑ

- 저기 어디냐고 개새끼들아  번을 물어봐야 돼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아, 안녕히계세요.”

남자는 수첩을 만족스러운 얼굴로 받더니, 그것만 하고 그냥 사라져 버렸다.

생각보다 할 만한데?

처음 집을 나설 때 기대했던 것처럼, 누군가 나를 알아봐줬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군가 또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부러 방송에 내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다.

휴우...지쳤다.

한두 명쯤 더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돌아다니거나 식사를 하면서도 잔뜩 기대 어린 긴장을 하고 있었지만, 야외 방송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아쉬우면서도, 집에 도착할 때가 되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가  집을 알아버리면 큰일이 될 테니까.

아까처럼 찐따 같은 자식이면 다행이지만 고선태 같은 놈이 붙지 말란 법도 없다.

다음부터는 근처에서 야방을 하면 안 되겠어.

야방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뒤를 미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거나 집 근처가 아닌 곳으로 가면  것이다.

“나 이제 씻을 건데, 니들끼리 놀고 있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서 방송을 옮겼다.  한순간도 방송을 꺼두고 싶지 않았다. 하다못해 지금처럼 욕실에 갈 때도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을 품에 안고 있어야 했다.

시청자들은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했기 때문에  항의 없이 지들끼리만 아는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내 방송은 나를 보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일종의 놀이터처럼 여겨지는 것 같았다.

흥...흐흥.....

콧노래를 부르면서 아주 긴 시간동안 욕조에 몸을 푸욱 담근 뒤, 열기로 뜨끈뜨끈해진 몸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 젖은 머리 머꼴...

슴골  가려라

- 샤워 가운이 집에 있네 ㅗㅜㅑ....

“왜 가려, 더 보여주라고 하지는 못할망정.”

나는 괜히 손으로 가슴을 더 모아서 과시해보이고는 하하 웃어 버렸다. 마스터가 마련해준 깔끔한 인테리어와 고급 조명 아래에서 새하얀 샤워 가운을 입고 있으니 마치 영화에 나온 주인공처럼 보였다.

어쩐지 살 맛 나네.

“이제 뭐 할까. 아까부터 겜 켜라고 지랄하던 놈 갔니? 이제 게임  건데.”

- 기다리다 말라 뒤짐 ㅅㄱ

“아직 있네. 그럼 나 이제 들어간다. 저격할 놈들 알아서 타이밍 맞춰라.”

- 근데 ㅅㅂ 다른 게임은  함? 종겜 아니었음?

- 종겜 아님, ROR도 이제야 겨우 사람새끼처럼 하는데 다른  언제 배우냐

“종겜이 뭐야? 종교 게임?”

- 종합게임 ㅋㅋㅋㅋㅋㅋㅋ

- 종교게임 ㅇㅈㄹ ㅋㅋㅋㅋ

“ROR은 싫어? 이제 질려?”

오래 하긴 했는데, 사실 나는 진작 질렸고 처음부터 그렇게 재밌지도 않았다. 그저 마스터가 이게 가장 무난하고 인기 있는 게임이라며 시켰기 때문에 이걸 계속 한 거지, 방송을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아직도 잘 몰랐다.

차라리 게임 말고 헌터 일상을 찍는 거면 잘 할  있겠는데.

그냥 게임하고, 작전 나가는 거 방송 찍고, 집에서 운동하는 거 찍으면 되는  알았지만, 갑자기 다른 게임은 안 하냐는 반응이 나오자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절반쯤은 그냥 하던 게임을 계속 하라는 채팅이었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다른 게임도 보고 싶다는 채팅이 올라왔다.

“그럼 너네들이 추천해봐. 재밌을 거 같으면 다른 게임도 섞어서 해보자.”

오, 드디어 시간표 짜서 하는 거임?

- ㅅㅂ 여태 ㅈ꼴리는 대로 한 게 이상했지

“아니 계획은 안 짤 건데? 그냥 내 꼴리는 대로 할 거야.”

- ㅅㅂ ㅋㅋㅋㅋㅋ

그럼 그렇지 ㅋㅋㅋㅋㅋ

그러자 채팅으로 무수히 많은 게임 목록이 주르륵 올라갔다.

“미친 몇 개를 추천해주는 거야. 그만해.”

적게 잡아도 백 가지는 될 거 같은 가지각색의 게임 이름들이 주르륵 올라가는 걸 보고 있자 겨우 사라졌던 두통이 다시 생길 거 같았다.

게시판에 글 썼어 해줘 눈나.

그때 갑자기 10만원어치 도네와 함께 메시지가 울렸다.

ㅅㅂ 10만원은 어쩔  없지

- 이것이 자본주의

그러자 주르륵 올라오던 게임 목록이 사라지고 자포자기한 채팅들만 주르륵 올라왔다.

- 이건 ㅇㅈ

- 좆ㄴㅈ임 ㅅㄱ

도네로 올라왔던 추천글을 확인해보자 채팅에서 ‘하자’ ‘하지 말자’ 지들끼리 싸움이 일어났다. 해보자는 반응도 상당수 있는 걸 보니 나쁘지 않은 게임 같아 보였다.

“스카이렘? 이거 재밌어? 모드? 모드가 뭐야?”

단순한 게임 추천글이 아니었다. 스샷이랑 파일들이 첨부된 엄청나게  글이 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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