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화 〉69화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지? 이 안의 사람들이 널 필요로 해줄 거야. ㅋㅋㅋ>
직접 만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방송을 시작해보니 느낌이 달랐다.
일단은 그가 시키는 대로 유명하다는 aos게임을 하나 켜서 플레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시청자수가 한 명 올라가더니 채팅이 틱 올라왔다.
그러자 갑자기 가슴 속이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입에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 존나 못 하네 ㅅㅂ ㅋㅋㅋ
라는 내용이었지만, 내용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마스터가 말한 게 이런 거였구나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고, 어쩐지 앞으로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임도 안 해봤어?>
“조금은 해봤어...고등학생 때 친구들이랑....”
일단은 방송을 켜긴 했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게임이 하나도 없다고 하자 마스터가 당황했다.
<확실히 대학생 때도 게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긴 했는데....>
나에게는 헌터로서 성장하는 게 가장 재밌고 뿌듯했기 때문에 굳이 게임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여자가 된 뒤로는 그럴 여유도 없었고, 나중에는 섹스를 하면 했지 게임을 할 생각이 들지는 않았으니까.
야한 방송을 찍게 될 거라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평범한 플랫폼에서 평범한 게임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심지어 방송을 시작한 뒤로도 지금 이게 뭐하는 거지?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나? 라고 나 스스로도 의아해 할 정도였다.
“아, 또 죽었다.”
다만 내가 이 게임을 아예 처음 하는 대다가, 게임을 하는 거 자체에 별로 안 익숙하다보니 좀처럼 제대로 된 게임이 이루어지질 않는 문제가 있었다.
- 아 ㅅㅂ 왤케 못함 ㅋㅋㅋㅋ
- 명치 존나 쎄게 때리고 싶다 ㄹㅇ
- 팀원은 뭔 죄임
“아, 미안, 내가 게임은 처음이라 잘 안 되네.”
겨우 며칠 사이에 시청자가 두 자릿수로 조금 늘어나 있었다. 유입은 상당히 많았지만 워낙 게임 실력이 엉망이다 보니 어금니 어쩌고 하면서 대부분 떠나 버렸고, 그래도 꽤 남아 있는 편이었다.
대부분은 스냅샷의 내 몸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인지, 일단 인사처럼 내 가슴골 이야기부터 박고 시작했지만 인방이라는 게 꽤 재미를 붙일 만했다.
물론 방송을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직도 무슨 재민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게 재밌었다.
대부분은 욕이나 조롱이었지만 어쩌다 플레이가 잘 풀리면 칭찬도 쏟아졌다. 시청자들은 마치 자판기 같았다.
<제법 소질이 있나봐? 관심을 끄는 거라서 그런가?>
방금 막 오늘자 방송을 마친 참이었다. 마스터조차도 빠르게 늘어나는 시청자 수와 금방 익숙하게 방송용 멘트를 칠 수 있게 된 나에게 감탄할 정도였다.
“대학교에서 발표하는 거랑 큰 차이 없네. 반응이 좀 더 즉각적이고 난폭한 거만 빼고 말이야.”
<욕을 들어도 기분 안 나빠? 신기하네.>
“그냥 원초적인 욕이잖아? 금방 잊어버릴 수 있어.”
물론 듣는 순간에는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겨우 게임 실력에 대한 조롱에 불과했기 때문에 몇 분 뒤면 깨끗하게 잊어버릴 수 있었다. 만약 헌터 실력에 대한 것이나 인간적인 면에 대한 비난이나 조롱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재수 없다 역시.>
“응? 왜?”
하지만 그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는 잠시 방송이 종료된 내 페이지를 멍하게 바라봤다.
‘유한솜’
무려 내 실명을 채널 이름으로 쓰고 있다.
그가 실명으로 만들라고 했을 때 잔뜩 긴장하고 걱정했었지만 아직까지는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아, 저 때 꽤 잘 들어갔지.
방송을 끝낸 뒤에 다시 한 번 내 영상을 돌려보는 것도 일과 중 하나였다. 특별히 사람들이 놀랐거나 칭찬을 해줬던 구간을 골라서 돌려보는 것이었다.
흐으....
내 하반신은 알몸인 상태였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주는 채팅을 보면 야릇한 쾌감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돌려보면서 자위를 하는 게 나만의 방송 마무리였다.
사람이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
내 방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방송에 대한 생각만 했다. 게임을 하는 게 상당히 피곤했기 때문에 방송 시간을 더 늘리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대학생활도 포기해 버린 건 아니니까.
방송에 대한 생각에 푸욱 취하자 더 이상 외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핸드폰으로 계속 내 방송을 돌려보거나 다른 사람들 방송을 보면서 말투나 밈 같은 걸 연구했다.
방송을 마치고 내 방에서 잠들기 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는 허망함과 고독이 몰려오긴 했지만 다음날 아침 늘어나 있을 내 영상의 조회수를 기대하면서 잠들 수 있었다.
실시간 방송만 하는 게 아니었다. 마스터가 하는 건지 내 방송을 편집해서 뮤튜브에 올리기까지 했다. 염파 능력을 사용해서 하는 건지 편집 속도가 상당히 빨랐고, 내가 방송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이면 이미 내 영상 편집본이 올라와 있었다.
그 영상의 조회수나 추천수를 보는 게 또 짜릿한 쾌감을 줬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페이지를 새로고침 하면서 조회수가 오르는 걸 계속 감시하듯 바라봤고 추천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절정에 취할 때처럼 기분 좋았다.
“어어....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게 일주일 정도 방송에 푸욱 빠져서 지냈을 때였다. 여느 때처럼 방송을 켰는데 미리 기다리고 있던 시청자 수가 천 명이 넘어 있었다.
“왜? 도대체 왜? 무슨 일 있었어?”
나는 너무 당황스럽기도 하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 바람에 평소와 달리 긴장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 ㅅㅂ 진짜 유한솜이네
- J대학 그 유한솜 맞음?
- 가슴 성형임 ㄹㅇ임?
내가 캠을 켜자 채팅이 우루루 올라와서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지만 대충 분위기는 파악할 수가 있었다. 대부분이 자신들이 알고 있던 ‘유한솜’이 맞는지 확인하는 듯한 내용이었고, 대학교 이야기와 도시, 타이탄 이야기가 나오는 거 보니 타이탄을 제압한 걸로 기사에 실렸던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인 것 같았다.
사람이 갑자기 많아진 게 기분 좋으면서도 너무 긴장돼 심장이 떨리고 손이 파르르 떨려서 마우스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J대학 그 유한솜 맞고, 에이스 헌터 유한솜 맞으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 좀 해줄래?”
똑같은 내용이 계속 올라오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아 씨발 맞다고 몇 번을 말해야 돼!”
하지만 계속 해서 사람들이 들어오고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며 똑같은 질문이 계속 반복됐고, 맞다고 맞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던 나도 기어이 폭발해 버렸다.
- ㅗㅜㅑ 한 번 더 해주세요
- 헤비 캐논 랭크 뭐임?
- 만세 한 번만 해줘 눈나
와 이 미친놈들 천 명이 다 제각각 서로 연관 없는 천 가지의 말을 쏟아놓는 기분이었다. 눈이 홱홱 돌아가서 두통이 생길 지경이었고, 눈을 감은 채로 마사지를 해야 했다.
“잠깐만 창문 좀 열고 올게, 머리가 아프다.”
하아....
나는 창문에 기대서 깊이 심호흡을 했다.
“마스터.”
<왜? ㅋㅋㅋ>
“저거 사람 좀 줄일 수 없어? 너무 머리 아픈데.”
<이야, 역시 엘리트는 사고방식이 다르네. 누구는 사람을 못 모아서 안달인데 누구는 시끄럽다고 줄이려고 하고.>
“아니, 하다못해 채팅이라도 좀 천천히 올라왔으면 좋겠는데.”
<그냥 신경 꺼. 도네 온 거만 읽어주면 되지.>
“그래도 돼? 채팅 안 읽어주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나라면 그럴 거 같았다. 기껏 나한테 채팅을 쳐줬는데 내가 신경 안 쓰면 당사자는 허공에 대고 말하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뭐 그런 거까지 신경 써. 그냥 읽고 싶은 거만 읽고 나머지는 신경 꺼. 생각보다 귀엽네 한솜이 ㅋㅋㅋ>
빰빠라빰빰!~
그때 갑자기 스피커에서 팡파레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후원금을 보낸 소리다.
- 어디 갔어. 빨리 돌아와.
나를 찾는 TTS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온 뒤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주 보이는 질문 몇 개를 골라서 그에 대한 대답을 화면에 써 놨다.
그러니 좀 채팅이 줄어든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가슴골 좀 보여 달라는 등의 변태적인 채팅은 끊이질 않았지만 그것조차 나에 대한 관심으로 보여서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럼 오늘도 게임이나 해보자.”
- ㅗㅜㅑ
- ㅗㅜㅑ
내가 아이스크림을 빨면서 게임을 켜는데 갑자기 채팅창이 ‘ㅗㅜㅑ’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 ㅗㅜㅑ가 뭔 뜻이야?”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 대답해주지 않았고, 또 자기들만 아는 이상한 말을 쓴다고 생각하고 잊어 버렸다.
- 근데 이 방 뭐하는 방임?
- 게임하는 방임?
내가 평소 하던 aos게임을 켜자 그제야 방송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평소처럼 내 실수에 대한 조롱과 욕으로 가득 차 버렸다.
이야 어떻게 천 명이나 모였는데 모두 한결같을 수가 있냐.
놀라울 정도였다.
그때 처음으로 받아보는 형식의 도네가 떴다.
- 20데스 찍으면 만원.
뭐지? 하라는 건가?
부탁인지 명령인지 모를 것이 뜨자 나는 본능적으로 온 몸이 경직되면서 움츠러들었다. 명령에 대해서는 아직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뭐야? 20데스 하라는 거야?”
내가 긴장한 채로 사람들에게 묻자 채팅창이 난리가 났다.
- 미쳤음?
- ㄹㅇ 개트롤 ㅋㅋㅋ
- 저거 진짜로 하면 님 신고할 거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나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는 남자들이 시키는 걸 그대로 하기만 하면 됐는데, 갑자기 하라는 사람 절반, 하지 말라는 사람 절반으로 나뉘어 버리니 어쩔 줄을 몰랐다.
- 미션 성공
- 미친, 이걸 성공 하네
- 근데 ㅅㅂ 고의로 한 것도 아닌 거 같은 게 소름임
“야, 나 이 게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못 할 수도 있지.”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20데스는 평소에도 자주 나오던 결과였기 때문에, 하고 싶지 않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으으....살짝 젖은 거 같은데....
다름이 아니라 미션 성공했다면서 만 원어치 도네를 받자, 보지가 살짝 뜨거워지면서 야릇한 쾌감을 받은 것이다.
“야, 미션 더 줘봐.”
- ㅁㅊ 구걸
- 구걸 메타 뭐임 ㅋㅋㅋ
- 이 집 방송 신기하게 하네 ㄹㅇ ㅋㅋㅋ
“왜 이러면 안 돼? 너네 어차피 헛소리나 써서 도네 보내잖아. 기왕 보낼 거 미션 달아서 보내라고, 천 원씩 걸어도 되니까.”
- ㄹㅇ 얘 뭐임 ㅋㅋㅋㅋ
사람들 반응이 엉망이었다. 도둑년이라는 말도 많이 올라왔지만 천 원짜리 미션도 해준다며 내 방식이 특이하다면서 좋아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
그냥 도네를 받을 때는 그저 돈이 또 들어왔구나 하는 심심한 감상이 들었지만, 미션을 성공했다면서 받은 도네는 나에게 묘한 쾌감을 줬다. 그러니 기왕이면 뭐라도 칭찬을 들으면서 받고 싶었다.
- 다음 게임에서 10데스 이상 하면 만세 10초 하기
그리고 다음 미션이 떨어졌는데, 미션이라기보다는 벌칙에 가까웠다.
- ㄹㅇ 여기는 이런 식으로 가야할 듯
- 미션이 아니라 벌칙으로 ㅋㅋㅋㅋ
“야, 너무 어려운데? 10데스 안 한 적이 없어.”
나는 미션이 떨어지자마자 숨기지 않고 입에 함박웃음이 걸린 채로 히히 웃었다.
- ㅈㄴ 특이하다 진짜 ㅋㅋㅋ
“근데 만세는 왜 하라는 거야?”
나는 뭐 신기한 일이라도 일어나는지 양 팔을 들어서 머리 위로 팔꿈치를 잡아 보였다. 나시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매끈하게 빠진 겨드랑이가 시원하게 드러났다.
“왜? 만세가 왜?”
채팅창은 ㅗㅜㅑ와 눈나 나 죽어로 도배가 되기 시작했고,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혼란스러운 채팅창을 보다가 게임을 다시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