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63화
“안 돼! 정말 죽을 거야! 돌아와!”
나도 건물들 위를 폴짝폴짝 뛰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거기 있어! 내가 방어막을 찢어줄 테니 저 자식 죽여 버려!”
지금은 방어막이 많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유미의 실력으로도 방어막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접근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말이다.
텅!
기어이 그녀는 몬스터를 향해 뛰어 들었고, 공중에 생성된 구형태의 투명한 방어막에 달라붙었다.
“으아아아!”
그녀는 장검을 두 개 소환해서 방어막에 꽂아 넣더니, 주리를 틀 듯이 양쪽으로 벌리기 시작했다.
어어, 조금 열렸다.
아주 느리지만 천천히 방어막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몬스터도 유미를 발견하고 유미 쪽으로 염파 폭풍을 날려 보냈다.
“으아아아악!”
“유미야!”
“오지 마!”
그녀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사방에 흩어졌고, 내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려고 하자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녀의 얼굴이 피투성이다. 눈과 코와 귀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죽는다.
유미가 죽는다.
나는 곧바로 헤비 캐논을 건물 옥상에 박은 뒤 야포 모드로 전환했고, 그녀가 문짝하나만큼 벌려둔 틈으로 포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오오오오....”
유미가 벌린 입구가 얼마 안 되긴 했지만, 집속탄을 연발로 쏴서 그 자식의 커다란 눈을 벌집으로 만들어 버리자 몬스터가 고통스러워하며 점점 땅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유미야 조심해!!”
하지만 아직 몬스터는 건재했고, 염파 공격을 유미가 버티자 머리에 나 있던 더듬이가 촉수처럼 길어져서 유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어서 쏴!”
하지만 그녀는 칼을 여전히 박아둔 채로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고, 촉수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래도 조금씩 희망이 보였다. 내가 넣은 공격이 충분히 유효했는지, 유미가 달라붙어 있는 걸 확인한 고위 염파 능력자들이 유미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녀가 벌려놓은 곳을 중심으로 염파 방어막이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염파 타입 몬스터에게 방어막이 없으면 잡몹 수준의 내구도만 남을 뿐이다.
방어막에 달라 붙어있는 유미의 모습을 보고 전의를 상실했던 방위군들이 다시 일어서서 공격을 재개했다.
쿠우웅....
드디어 그 자식이 침몰한다. 나는 사정없이 그 자식의 머리를 공격하면서 소리 질렀다.
“이제 됐어 유미야! 도망쳐!”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는지, 방어막이 사라지자 발 디딜 곳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추락해 버렸다.
“유미야!!”
나는 무기를 회수한 뒤 재빨리 빌딩을 뛰어 내려왔지만, 이미 상황은 종료돼 있었다.
몬스터는 완전히 쓰러져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나는 시야를 가리는 흙먼지 속으로 뛰어들어 유미를 애타게 찾아 다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코어를 찾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 어디 있는 거야.”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투두둑....
어디선가 작게 돌멩이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쏜살같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몬스터의 날개에 깔려 있는 유미가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날개를 들어 올려서 유미를 끌어냈다.
“유미야!”
그러자 그녀가 힘겹게 고개를 돌려 나를 돌아봤다. 얼굴은 물론이고 온 몸이 피범벅이다. 염파 공격 때문에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흘러내린 흔적이 있고, 추락하는 바람에 여기저기가 상처투성이였다.
“....한솜아....코어....챙겨야지....”
그녀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는 코어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아냐! 너부터 살려야지.”
“빨리....방위군이 가져가기 전에 챙겨....염파 코어잖아....”
그녀의 말에 나는 잠깐 정신이 멍해졌다. 타이탄급 염파 코어,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코어다. 그녀는 내가 했던 말을 허투루 흘려버리지 않고 마음에 담고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나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무리한 것이다.
“잠깐만 기다려!”
나는 그녀를 근처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눕힌 뒤 몬스터의 머리 쪽으로 갔다.
내가 쏘았던 집속탄 때문에 녹아내린 눈에서 고약한 냄새가 풍겼지만, 재빨리 코어를 챙겨서 유미에게 돌아왔다.
“의무대!! 의무대 좀 불러줘!!”
하지만 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유미는 눈을 감고 반응이 없었다. 나는 다급해져서 주변을 돌아보면서 소리 지르다가 그녀를 들쳐 업고 방위군 지휘본부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누가 유미 좀 살려주세요!”
나는 엉엉 울면서 계속 달렸다.
수술은 열 시간이나 계속 됐고, 나는 수술실 앞 의자에 계속 앉아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수술실 문을 바라봤다.
중간에 전해 듣기로는 염파 공격에 장기들이 많이 손상됐고, 무방비로 떨어지면서 곳곳의 뼈가 으스러졌다고 한다.
정말 운이 좋으면 목숨을 부지하겠지만, 눈을 뜬다고 하더라도 헌터 생활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제발 그런 거 상관없으니 살려주세요.”
나는 그 말을 전해주던 간호사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삐....
그리고 드디어, 수술이 끝났다는 알림이 표시되고, 잠시 뒤 유미가 누워있는 침대가 드르륵 빠져 나왔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내가 그녀의 곁으로 가려고 하자 간호사가 날 제지했다.
흐윽....
그리고 마치 잠들 듯이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메말랐던 눈물이 다시 왈칵 쏟아져 흘렀다.
“괜찮아요. 수술은 잘 됐어요. 몇 시간 뒤에 마취가 풀리면서 잠에서 깰 거예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위로해주며 간호사가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상태가 호전되고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 긴 시간동안 주머니 안에 있는 그때의 코어를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만들어준 기회다. 그러니 이것도 당연히 그녀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호자분, 이제 면회 가능한데 들어오시겠어요?”
나는 당연히 들어갔고, 십 분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유미야....”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허리를 세우고 앉아 있는 그녀가 날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대신 그녀의 손등에 조심스럽게 내 손을 올려놨다.
“정말 다행이야....죽는 줄 알았어....”
“하하, 내가 왜 죽어. 그래도 우리과에서 꽤 상위권이라구.”
그녀는 방금 전까지 죽을 뻔한 사람 같지 않게 여전히 유쾌하게 웃어보였다.
“그런데 죽을 거 같이 아프긴 하네. 앞으로 몇 달은 요양하면서 재활치료를 해야 한대.”
“아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나는 주머니에서 코어를 꺼내서 보여줬다.
“우와, 이게 그 코어라는 거구나. 잘 됐다 한솜아.”
“아냐, 이건 니 거야.”
내가 억지로 그녀의 손에 쥐여 주려고 하자 그녀가 손을 피해버렸다.
“아냐, 너 가져. 나보다 너한테 더 중요한 거잖아?”
“무슨 소리야! 니가 목숨까지 건 덕분에 만들어진 기회였는데! 당연히 니가 가져야지.”
“한솜아, 기회는 또 다시 올 거야. 하지만 지금은 너한테 더 간절하잖아? 그러니 너 가져.”
그녀가 씨익 웃어보였다.
그녀의 유쾌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나도 미안한 마음이 담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대신 더 많은 코어를 얻게 해줄게.”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나고 병실에서 나오자, 잊고 있던 엄청난 피로가 쏟아져 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았지만 억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미에게는 코어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내가 가진 많은 코어 중 그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걸 주겠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스스로 얻은 게 아니면 의미가 없다고 했고, 그런 식으로 남이 주는 걸 받아먹기만 하면 스스로가 나태해질 거 같아서 거절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잘 다녀오셨어요 선배?”
집에 돌아오자 여전히 선태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은 그의 비위를 맞춰줄 기분도 아니었고, 그럴 기운도 없었기 때문에 대충 인사하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다행히 내가 잔뜩 지쳐있는 걸 본 그도 오늘은 건드리지 않았다.
나는 얼마나 지쳐있었는지 다음날 오후가 다 돼서야 깨어났다. 주말인 게 다행이었다.
후우....
핸드폰으로 보니 유미로부터 문자와 사진이 몇 개 와 있었다. 지루하다는 내용과, 병원 밥이 맛없다는 내용의 사진들, 그걸 보니 웃음이 픽 나왔다.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
숨겨뒀던 나비의 코어를 분석해보고 있을 때였다.
<안녕 한솜아.>
마스터가 다시 접속했다. 지난 번 아인종 때문에 연결이 끊겼을 때는 노발대발하더니, 이번에는 유미의 일 때문인지 잠잠했었다.
<요즘 한솜이가 꿍꿍이가 있는 거 같은데.>
“무슨 소리야? 잘 따르고 있잖아?”
<어제 또 어플 연결이 끊겼지? 혹시 또 부정행위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해서.>
“아냐, 그럴 생각 없어. 이젠 임신 회피도 없고....”
<그래도 너는 믿기 힘든 여자니까, 찬호 건도 있고 말이야.>
나는 가슴이 뜨끔 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선태를 버리고 이두승한테 가. 그놈이 해주는 게 더 재밌을 거 같네. 선태가 해주는 거 이제 재미없지?>
뭐? 재미?
잠깐 뜨악했다가, 그의 말을 인정하고 말았다.
선태는 사이코이긴 했지만 성적 쾌감을 주는 대에는 능숙하지 못했다. 내 몸을 인형처럼 다루기는 했지만 단지 그뿐, 여자로서의 큰 쾌감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동기들의 육변기로 지내던 때가 그리울 때도 있었던 것이다.
내 몸이 어떻게 돼 버린 거 같아서 두렵던 시기는 이미 지나 버렸다.
[개발 레벨]
[가슴 : 5/9], [유두 : 4/9], [보지 : 5/9], [음핵 : 4/9], [항문 : 5/9], [요도 : 2/9]
[복종도 : 남 5/9 여 1/9], [노출증 레벨 : 4/9]
그들에게 수백 번은 범해지다보니 보지와 항문의 개발 레벨이 5까지 올라가 버렸다. 그냥 레벨로만 보면 최대치의 절반인 걸로밖에 안 보이지만, 사실상 일반적인 여자의 32배나 민감하고 쾌감을 잘 받는 상태인 것이다.
어쩌다 손길이 스치면 화끈 달아오르기 일쑤였고,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여야 했다. 그러다 어떻게 발정이 나기 시작하면 근처 아무 화장실에라도 들어가서 자위로 풀어야 하는 몸이 됐다.
게다가 이두승이 요도를 개발해놓고 거기에 탄력 크림까지 발라놓은 바람에, 소변을 눌 때도 야릇한 쾌감을 받고 있었다.
이만큼이 되고 보니 성적 쾌감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사라져 있었고, 기회만 된다면 누구라도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강제로 범해지는 건 싫었다.
보통의 여자들처럼, 상냥하게 대해주고 부드럽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선태처럼 마구잡이로 만지는 게 아니라 말이다.
그런데 마스터는 선태보다 최악인 이두승에게로 가라고 말하고 있다. 선태가 나를 인형으로 보고 있다면, 이두승은 나를 실험체로 보고 있다. 자신이 인터넷에서 본 약물에 대한 효과나 여자를 개발하는 방법에 대한 효과를 테스트 해보는 실험체.
“하지만 선태가 싫어할 텐데....지난번 그 일도 있었고....”
<.....응? 한솜아, 선태가 니 주인이야?>
“그렇지? 아냐?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건 선태인 걸....괜히 걔한테 밉보였다가 체벌당하기도 싫고....”
<뭐? 니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해. 선태는 널 조교하는 내 도구에 불과해. 그놈 조교 방식이 나쁘진 않았지만, 내 노예를 뺏어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지. 걱정 마. 내가 처리해 줄 테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저녁이 되기 전, 선태가 돌아오기 전에 집을 나와서 이두승의 집으로 갔다.
그러면서도 계속, 내가 집에서 선태를 기다리지 않고 이두승에게 온 것을 들킬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이두승은 집에 없는지 벨을 눌러도 대답이 없었다. 계단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자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이 나를 잡으러 온 선태의 친구들인 거 같은 착각이 들면서 부들부들 떨려왔다.
“어? 한솜이?”
지난번 호되게 당했던 이두승이 당황하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봤다.
“두승아....날 니 노예로 삼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