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55화
“이야....태서 너는 이런 곳에 다니는구나....”
태서를 제외한, 나를 포함한 나머지들은 룸에 들어서면서부터 화려한 내부 모습에 눈이 홱홱 돌아갔다.
“여기 이상한 곳은 아니지?”
한 놈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낄낄댔다. 룸주점이라고 하면 유흥업소가 떠오르는 게 먼저니까.
“미쳤냐, 한솜이도 있는 데 그런 데로 오게.”
태서도 낄낄대며 대답했다.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애초 음침한 느낌도 아니었고 번화가 중심에 보란 듯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퇴폐업소 같지는 않았다.
“씨발....괜찮겠어?”
그리고 메뉴판을 펼치자마자 우리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 버렸다.
10만원 이하인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용돈을 많이 받는 놈도 있고, 스스로 알바를 하는 놈도 있었지만, 대학생 수준이 다 고만고만했기 때문에,
뭐라 할 엄두가 안 나는 가격에 전부 얼어붙어서 뭘 먹자고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 여자친구랑 몇 번 와봤어. 전부 내가 낼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골라.”
아무리 그런 말을 한다고 한들 20만원짜리 안주를 시킬 용기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우리들은 해결책을 찾았고, 메뉴판을 태서에게 넘겨버리는 것이었다.
“주는 대로 먹겠습니다. 태서님.”
한 놈이 능청맞게 연기를 하면서 그에게 메뉴판을 건네줬고, 그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받고는 능숙하게 이것저것을 시켰다. 그리고 모두 그가 주문하는 꼴을 보면서 가격을 합쳐보고 있었다.
게다가 마치 오면 안 될 곳에라도 온 죄인처럼, 웨이터 앞에서 잔뜩 얼어붙어 있는 꼴들이 우스웠다.
물론 나도 똑같았고.
너무....비싼데? 굳이 여길 왔어야 했나?
그냥 학교 앞에서 먹던 안주와 비슷한, 몇몇은 그보다 덜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다른 동기를 표정을 보니 나랑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가 나에게만 시켜준 파란색 칵테일은 끝내줬다.
“여자들이 그거 좋아하더라구.”
능숙한 여자 취급에도 나는 특별히 반발하지 않았다.
맥주 같은 거로는 느낄 수 없는 강한 탄산과 함께 올라오는 강렬한 취기가 기분 좋았다.
“자, 그럼 놀아볼까.”
이제 흠뻑 취해 버린 한 놈이 폴짝 날아오르더니 노래방 기기와 벽에 있는 스크린을 켰다.
그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인지 고성방가인지 구분이 힘든 고함소리를 빽빽 지르기 시작했다.
적당한 취기와 함께 마주하는 이 난장판은 내 기분을 아주 들뜨게 해줬다.
내가 조금밖에 남지 않은 칵테일의 빨대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남자들이 노는 꼴을 보고 있을 때였다.
“흐으응....하아....좋아....더.....”
노래 가사가 나오던 스크린에서 갑자기 섹스 중인 여자 엉덩이가 나오고, 음탕한 신음소리가 흘러 나왔다.
나는 빨대를 입에 문 채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좋아....하읏....안에 싸줘....”
엉덩이를 비추던 화면이 점점 올라갔고, 절정에 빠져 흐트러져 있는 내 얼굴이 나왔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빨리 뛰기 시작했고, 노래방 기기 앞에 앉아 있는 규태에게로 시선이 갔다. 저 영상은 방학 동안 규태와 돌아다니면서 찍은 것 중 하나였다. 그는 기기를 조작하면서 거만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이게 뭔 짓이야....”
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칵테일 잔을 테이블에 올려놨다.
찰칵....
어느새 한 놈이 문을 잠그고 있었다.
“한솜이 니가 이런 여자일 줄은 몰랐어.”
“미리 우리한테 말을 했으면 도와줬을 텐데 말이야.”
남자들이 낄낄대면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구석으로 도망쳤다. 문 앞에도 이미 한 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창문으로 뛰어 내릴까.
하지만 이미 그것까지 계산했던 것인지 내 자리는 벽 쪽이었고, 남자들을 헤치고 지나가야만 문이든 창문이든 도달할 수가 있었다.
“씨발 규태 이 새끼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언제 빼돌렸지? 영상을 찍는 척 하면서 자기 핸드폰으로 전송한 건가?
꼼꼼하게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은 도대체 뭐지?
구석에 몰아놓고 내가 덜덜 떠는 꼴을 낄낄대며 즐기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니, 이미 처음부터 이렇게 할 작정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나 혼자서는 니 성욕이 감당이 안 돼서 말이야. 동기들한테 말했더니 도와준다잖아.”
규태 놈이 능글맞게 말했다.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를 단순한 섹스 파트너 취급했던 것과 영상을 주지 않았던 것에 앙심을 품었던 것 같다.
“선태가 알면 가만 안 둘 거야.”
내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다. 하지만 내가 기댈 곳은 그곳뿐이다. 유미는 끌고 오고 싶지 않다. 차라리 이 자식들이랑 선태가 서로 박 터지게 싸워주면 내게 유리할 것이다.
“그깟 후배새끼 한 놈 안 무서워.”
“꺄앗! 이거 놔!”
천천히 다가오던 남자들이 기어이 내 손목을 잡아 버렸다. 그래도 일 년 동안 헬스를 하면서 완력을 좀 키웠는데도 아직 남자들에게 저항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야, 드디어 한솜이랑 해보는구나.”
남자들이 낄낄대면서 나를 소파 중앙으로 이끌었다.
“니가 벗을래? 우리가 벗길까?”
네 명이나 되는 남자에게 둘러싸이자 오한이 든 것처럼 덜덜 떨리는 몸이 멈추질 않았다.
으으....
나는 덜덜 떨면서 천천히 속옷차림이 됐다. 하지만 여기서 더 벗을 엄두가 나질 않았다.
“왜 그래? 영상에서는 잘만 벗더니.”
“히익! 거, 건드리지 마.”
옆에 있던 남자 하나가 브라 끈을 잡아 당겨서 옆으로 내려 버렸다.
나는 브라가 벗겨지지 않도록 잡은 채로 나를 찍고 있는 규태의 핸드폰을 노려봤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이런 짓을 일으킨 걸까.
그는 내가 노려보든 말든 계속 내 얼굴과 몸을 찍어댔다.
남자들의 손이 점점 내 몸을 건드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손들을 물리치고 속옷을 벗기 시작했다.
“오오, 존나 대담한데?”
나는 알몸이 돼서 재빨리 손으로 가슴와 사타구니를 가렸지만, 남자들이 속목을 잡아서 벌려 버렸다.
그리고는 내 몸의 피어싱들을 툭툭 건드리며 감탄했다.
“이런 년인 줄 알았으면 작년부터 귀여워해 줬을 텐데 말이야.”
“흐윽....건드리지 마....”
남자들은 이미 내 보지를 벌려서 거칠게 비비고 있었고, 나는 손목이 잡힌 채로 교성이나 내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하나둘씩 본인들도 알몸이 되기 시작했다.
한 놈이 마이크 선을 뽑아 오더니 내 팔을 뒤로 돌려서 칭칭 감아서 묶어 버렸고, 결국 나는 남자의 다리에 올라타서 보지를 박히기 시작했다. 입에도 자지가 물렸고, 차례가 밀린 남자들은 범해지고 있는 내 모습을 찍거나 내 가슴을 가지고 놀았다.
으읍....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거야.”
남자들은 내 피어싱에 엄청난 흥미를 보였고, 그 점이 그들을 더욱 흥분시키고 있는 듯했다.
“찬호자식은 이런 걸 혼자 독차지했었다니. 매너 없는 자식.”
그들은 죽은 자에 대한 패륜적인 조롱도 서슴지 않았다. 술에 취하고 내 몸에 취해서 이미 제정신들이 아니었다.
“지금은 선태랑 사귀고 있다고? 그렇게는 안 되지. 그 자식 손 좀 봐줘야겠어. 감히 하늘같은 선배를 건드려?”
그들은 낄낄대면서 계속 나에게 박아댔다. 그리고 규태가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줬다.
“짠!~”
그가 보여준 건 2학년 동기들 전체가 사용하는 단체 채팅방이었다. 그리고 방금 그가 찍고 있던 내 모습을 그곳에 올려 버린 것이다.
“미친.....하읏.....미쳤어....”
“한솜이 너는 우리 학년의 아이돌이니까, 아무도 독차지 할 수 없어. 안 그래?”
“흐윽....너희들 전부...미쳤어....”
“맞아 다들 미쳐 있어. 생각해봐, 게이트가 열리는 걸 막을 수는 없는데 사상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어. 다음에는 누가 다치고 죽을지, 어쩌면 내일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 제정신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언젠가는 타이탄급 몬스터를 막지 못해서 도시가 사라져 버릴 거야. 그 다음으로는 세계가 멸망하겠지. 미친 건 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이야.”
그러더니 남자들의 피스톤질이 더욱 격렬해졌고, 그들이 자궁구를 거칠게 찔러댔기 때문에 송곳에 찔리는 것처럼 뱃속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는 보지나 항문, 입 등 자신들이 좋아하는 곳에다가 정액을 싸질러 놓고는 엉망이 돼 있는 내 모습을 채팅방에 올려댔다. 나는 그러는 걸 막지도 못하고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자, 마지막이야.”
규태가 내 입 안에다가 흠뻑 정액을 싸서는 머금고 있게 했다. 굴욕적인 표정으로 정액을 머금고 있다가 꿀꺽 삼키는 비참한 모습도 영상으로 찍혔다.
“휴우, 잘 놀았다. 돈 쓴 보람이 있네.”
몇 시간이나 나를 가지고 논 뒤 남자들이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한솜아 공강 때마다 실습실로 와. 다른 동기들도 위로해줘야 하지 않겠어? 우리는 너처럼 대단하지 않아서 항상 위로가 필요한 상태거든.”
“내가 왜....”
“선태한테 알리고 싶지 않으면 할 수밖에 없을 걸.”
그들이 낄낄대면서 협박했다. 당연히 선태의 정체를 모르는 그들은 다른 의미를 상상하고 한 협박이겠지만, 충분히 내게 효과적인 협박이었다.
강제로 범해진 것조차 바람 폈다고 할 자식이니까, 그에게 들켜서는 안 됐다.
내가 차마 그들에게 수긍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있자, 그들은 협박이 먹혔다는 걸 깨닫고 나가버렸다.
‘위로’
나는 그 단어가 뇌리에 박혀서 떠나질 않았다.
그 단어를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바로 선생님이 했던 말이다.
여자 헌터로서, 다른 남자 헌터들을 위로해 주는 것도 내 의무라고 했던 말. 그가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는 어려움 없이 수긍할 수 있었지만, 그것이 동기들 입에서 나오자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섹스가 뭐길래.
이미 남자이던 시절 성욕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나도 저렇게 광적이었나. 아니, 저들처럼 생존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면 나도 저렇게 광적으로 됐을까.
“여기서 좀 쉬다 가지?”
술기운과 범해진 고통 때문이 비틀거리면서 걷고 있자 툭하면 남자들이 접근해왔다. 낄낄대는 그 얼굴을 보며, 이 남자들도 웃음 뒤에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을까 생각했다.
지금 같은 시기에는 차라리 헌터 능력이 있는 게 안전했다.
나는 그들에게 대꾸할 기력도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완전히 지쳐서 다음날 아침까지 죽은 듯이 잠들어 있다가 선태가 내 방에 들어온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는 아침 일찍 방에 들어와 있었고, 잠에서 깼을 때는 내 옆에 앉아서 내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일어났어요 선배?”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만 해도 잠결에 받는 손길이 기분 좋아서 아양을 떨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바로 그 분위기를 깨버렸다.
그의 목소리나 표정을 보니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모르는 듯했다. 일단은 입을 잘 다물고 있나보다.
차라리 이 녀석이 어제 연락이 돼서 나를 개강파티에 못 가도록 잡았더라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결국 나는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는 건가.
1학년 때 찬호가 지켜주고 있는 게 맞았던 건가.
규태는 이미 우리 학교 자위녀 영상의 주인공이 나라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 다른 동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짓을 벌인 거겠지.
나는 차라리 찬호를 죽이지 말고 그에게 잘해주면서 보호를 받았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그러면 어제 있었던 일은 물론이고, 선태에게 붙잡힐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꿈속으로 도망쳐 버리고 싶은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