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47화
유미는 내 옆에 서서 도찬호의 시체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유미도 이번 작전에 소드 헌터로 참가해 있었기 때문에 지휘부에서 내가 복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연락하자마자 혼자서 나를 찾아 온 것이다.
“니가 죽였어?”
“....응....”
그녀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아마 도찬호를 두들겨 팰 때 그가 나한테 한 짓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들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을 것이고.
“이것도?”
그녀가 도찬호의 어깨를 관통하고 있는 철근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 그건 떨어지다가 박혔나봐.”
나는 잔뜩 겁먹어 있었다.
도찬호를 죽일 때는 그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앞이 안 보였지만, 막상 일이 끝나고 나니 치안대에 잡혀갈 생각에 유미와 통화할 때는 눈물범벅이 돼 있었다.
“아무도 못 본 거지? 추락할 때도?”
“아마 그렇겠지. 지금까지 구조대가 안 오는 걸 보면.”
“알았어. 그러면 너는 그냥 조용히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나 믿지?”
그녀가 내 어깨를 꽈악 쥐면서 강인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내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무전으로 지휘부에 연락해서 구조대를 불렀다.
도찬호가 죽은 문제로 우리는 대학부 지휘관 앞으로 끌려갔다. 그와 나, 유미 셋만 떨어져 나왔다.
“그 남자 학생 목에 상처가 있던데.”
“아마 떨어지다가 어딘가에 긁힌 게 아닐까 합니다.”
지휘관이 의심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유미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너는? 너도 그렇게 생각해?”
지휘관은 나에게 재차 물었다.
“네...아마...”
“너랑 같이 떨어졌잖아? 그런데 너는 못 봤단 말이야?”
“한솜이도 같이 떨어져서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겨우 저에게 연락을 했던 거구요.”
“그리고 그 남학생은 이미 죽어 있었고?”
“네.”
지휘관은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으로 유미와 나를 번갈아가면서 쏘아봤다. 나는 그의 눈빛에 완전히 위축돼서 시선을 잘 마주치지도 못할 지경이었지만, 유미는 지지 않고 그를 노려봤다.
“싱크홀이 생기면서 그 남학생은 어딘가에 튀어 나와 있던 쇳조각에 목이 찢겼고, 떨어진 충격으로 철근에 관통 당했다. 그리고 과다출혈로 사망. 같이 떨어졌던 여학생은 충격으로 기절했었다.”
그는 정리하듯 우리를 보며 말했다. 마치 외우라는 듯이.
“또 다른 목격자는?”
“없습니다.”
유미가 대답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너희들 말을 믿는 수밖에. 나가봐.”
우리는 지휘관과 헤어진 뒤로 한참동안 말이 없이 계속 걷기만 했고, 내 방 근처에 있는 버스 정거장에 도착할 때까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흐아아.....”
그리고 의자에 앉으며 겨우 긴장이 풀렸다는 듯이 유미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네.”
“나도....지휘관....진짜 우리 말을 믿은 걸까?”
“그야 모르지. 하지만 니가 죽였다고 하면 너무 귀찮아질 거야. 게다가 타이탄급을 혼자 제압한 영웅이기도 하고.”
유미가 나를 추켜세우듯이 말해줬다.
“영웅까지는 아니고....”
나는 방금 전 살인을 한 사람답지 않은 순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냐, 그거 못 막았으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방위군 헤비 슈터들도 많이 다치고 당황해서 반격을 못 하고 있더라구. 솔직히 그동안은 자잘한 몬스터만 상대했었잖아? 이런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거는 방위군이나 우리 대학생이나 똑같은 처지지.”
그녀가 그렇게까지 말해주니 기분 좋은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나쁜 새끼를 직접 처리하기도 했지.”
유미가 도찬호 일을 끄집어내자, 나는 다시 안색이 어두워졌다.
“과연 잘 한 걸까....”
그러자 그녀가 내 손을 감싸 쥐면서 응원하듯 말했다.
“한솜아, 니 몸은 니가 지켜야 하는 거야. 그런 놈은 불쌍히 여겨줄 필요도 없어.”
“....그, 그래? 그러고 보니 찬호가 너한테 맞았다고 하던데....”
“맞아, 방학 때 너희집 앞을 지나가는데 찬호가 니 집에서 나오는 게 보이더라. 그래서 홧김에 손 좀 봐줬지.”
나는 칼로 찔렀냐는 질문은 굳이 하지 않았다.
나를 응원해주는 그녀가 고마우면서도, 사람에게 칼질을 하는 그녀가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나도 그녀와 같은 사람이 됐다. 아니 아예 죽여 버렸으니 더 심하다.
어쩐지 살인을 했다는 사실을 유미가 알아버렸다는 게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그녀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무난하게 해결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미는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내가 방에 들어가기 전에도 나를 꼬옥 안아줬다. 그녀의 품이 너무 따뜻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 며칠간, 나는 살인을 한 게 들킬까봐 공포에 떨면서 지내야했다.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고, 수업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병과장의 방에서 그와 섹스를 하면서도 그의 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이 작전을 나갔던 도찬호가 죽은 걸 목격한 것 때문에 정신적 충격을 받은 거라고 넘겨 짚어줬고, 나도 대충 얼버무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나는 답답해 미치고 밤마다 공포에 질려 있었다.
작전에서 복귀한 날부터는 민규와 호수가 내 방에 오지 않았고, 실습실에서도 내 옆으로 오지 않았다.
도찬호와 같이 작전을 나갔는데, 공교롭게 그가 사고로 죽었다. 도찬호가 한 짓을 알고 있는 그들에게는 이 일이 단순한 사고로만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가 죽고 상을 치른 뒤, 며칠 뒤에야 타이탄 제압 축하 파티가 열렸다.
“우선, 찬호가 죽은 거에 대한 애도부터 하자.”
작년 과대였던 놈이 2학년이 돼서도 2학년 대표 역할을 계속 이어서 했다. 사실 누군가 한 명쯤은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게 편하긴 하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애도주가 한잔씩 돌아가고, 그 뒤는 나를 축하하는 본격적인 자리가 시작됐다.
“기어이 우리 한솜이가 사고를 냈습니다!”
“씨발 왜 우리 한솜이냐, 니가 한솜이 뭐라고. 낄낄.”
나는 사고라는 말에 흠칫 놀랐지만, 그건 도찬호 일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학생 최초로 타이탄을 단독 제압한 걸 말하는 거였다.
덕분에 나는 며칠간 기자들과의 인터뷰와 촬영에 시달려야 했지만, 입이 찢어지게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역시 한솜이가 해낼 줄 알았어. 솔직히 찬호보다는 한솜이가 에이스에 어울리지.”
찬호 이름이 언급되자 분위기가 살짝 얼어붙었다가, 그 자식이 말실수를 했다는 표정이 되자 다른 애들이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시켜줬다.
“선배, 축하드립니다. 한 잔 받으세요.”
누군가가 내 옆으로 와서 술병을 들었다.
“저 고선태요. 선배 진짜 너무한다. 두 번이나 인사했는데 아직도 못 외우시네.”
“야, 한솜이 쟤 아직 동기들 이름도 다 모를 걸.”
동기들이 낄낄대면서 난리가 났다.
씨발, 사실이긴 하다.
이 놈 웃는 게 너무 불쾌하게 느껴져서 꺼림칙했다. 눈은 가만히 있는데 입만 웃는 가식적인 웃음이 다 보인다. 뭔가 목적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모두가 나를 축하해주는 분위기에 기분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특별히 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주는 술을 받지는 않았다. 작년에 배운 게 있다.
나는 옆에 있던 새 소주를 까서 스스로 내 잔을 채웠다. 그리고 그걸 들어서 그에게 건배하자는 시늉을 했다.
“선배 존나 쿨하네요.”
그도 자기 술잔을 채운 뒤 건배를 하고, 1학년들이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나를 축하해주기 위한 2학년 모임이었지만 구석에 사교성 좋은 1학년 몇 명도 조금 있었다. 3,4학년은 없었다. 자존심 상하긴 하겠지.
민규와 호수가 나에게서 관심을 꺼준 덕분에 그동안 모은 코어들의 분석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대단한 물건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얻었던 사마귀의 코어는 날붙이 무기 숙련도를 올려줬다. 덕분에 B등급이었던 소검술 숙련도가 바로 A등급으로 올라 버렸고, 배우지도 않은 대검술 숙련도도 잠정 B등급으로 올라 있었다.
코어를 흡수하는 순간 몸에 상쾌한 분위기가 들며 어쩐지 조금 몸이 가벼워진 거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상당히 귀중한 물건이라는 걸 알게 되자 사마귀 코어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일단 남겨뒀다. 편리한 건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영재 개성이 있기 때문에 시간을 아껴주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었다.
그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귀중하긴 했지만, 성급하게 써버리는 것보다는 일단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가 정해졌다.
염파형 몬스터의 코어를 죽어라 모은 뒤, 한꺼번에 사용해서 염파 능력치를 쭈욱 올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마스터가 손쓰기 전에 어플을 제거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코어의 정확한 효과가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방위군 상급자이거나, 나처럼 직접 가진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스터도 아직은 내가 코어를 모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는 듯했다.
물론 어플을 제거해 버리면 영영 남자도 돌아갈 수 없게 돼 버린다. 하지만 지금까지 마스터의 행동으로 보아 나를 남자로 돌려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더 망가지기 전에 그로부터 벗어나는 게 좋아 보였다. 남자로 돌아가는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안 되면....어쩔 수 없고.
사실 요즘은 여자로 사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겠다 싶기도 했다. 나한테 접근해오는 놈들만 없다면 말이다.
여자랑 섹스를 해본 적은 없었지만 남자일 때 자위했던 거에 비하면, 병과장이 주는 성적 쾌감은 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유미처럼 스스로 보호할 힘도 기르고 법적으로 내 몸을 보호받을 수만 있다면 여자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은 남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가슴도 무겁고, 행동하는 것도 불편하단 말이지. 키가 작은 것도 불편하고.
으윽!....
“괜찮아 한솜아?”
나를 추켜 세워주는 분위기에 취하고, 일이 희망적으로 돌아가는 거 같다는 생각에 취해서, 술을 많이 마셨더니 다리가 조금 풀렸다.
“누구 한솜이 집 아는 사람? 얘 좀 데려다줘야 할 거 같은데.”
대표가 나서서 말했다.
“아냐, 됐어 혼자 갈 수 있어.”
철푸덕!!
“흐아아...아파라....”
하지만 나는 몇 걸음 걷다가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남자애들 몇 명이 나를 부축해서 세워줬다. 대표가 내 집을 아는 사람을 계속 찾고 있었고, 민규와 호수가 눈치를 보면서 손을 슬며시 드는 게 보였다.
“제가 갈게요!”
하지만 아까 그 고선태라는 놈이 손을 번쩍 들어서 내 옆으로 왔다.
차라리 민규랑 호수가 나을 거 같은데. 그 놈들은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으니 날 건드리지도 않을 것 같고 말이다.
“아냐...됐어. 나 혼자 갈 거야.”
“에이, 선배 너무 그러지 마요.”
그리고 분위기는 이놈이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걸로 돼 버렸고, 남자 놈들은 집에 가거나, 2차를 가는 놈들로 나뉘어 흩어졌다.
“너, 내 방에 들어오면 죽는다.”
나는 그놈한테 기댄 채로 휘청거리면서 걸었고, 계속 그놈한테 삿대질을 하면서 위협했다.
“안 들어가요. 문 앞까지만 데려다 드릴게요.”
“안 돼 안 돼, 문 앞도 안 돼.”
나는 술에 완전히 꼴아서 횡설수설했다.
“선배, 저랑 사귀는 거 생각해 보셨어요?”
“좆까, 나는 아무하고도 안 사귀어.”
“작년에 도찬호 선배랑은 사귀었다면서요? 이번에 죽은 그....”
“그건 그 새끼가 억지로 사귀자고 한 거고. 씨발, 사귄 것도 아니었지. 잘 뒤졌다 씹새끼.”
“...그래요?....”
그는 씁쓸하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고, 내 방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 없었다.
“됐어, 이제 가.”
나는 열쇠를 꺼내서 구멍에 꽂으려고 했지만, 몸이 휘청거려서 잘 꽂을 수가 없었다.
“제가 해드릴게요.”
그가 내 열쇠를 뺏더니 대신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는 나와 함께 내 방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