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3화
그래 이 정도는 학교로 오면서 각오하고 있었다.
한 발자국 뗄 때마다 무슨 반응이 나올지 걱정하고, 무슨 변명을 둘러대야 할지 걱정하면서 과방에 들어섰다.
솔직히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훈련자가 말한 ‘학교를 정상적으로 다닐 것’이라는 의미는 기존의 내 행동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의미일 것이기에, 평소처럼 과방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동기들이 항상 내 눈치를 봤기 때문에,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만 해도 시선이 쏟아지고, 내게 할 말을 남겨놨던 사람들은 먼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어?”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시선이 내게 쏟아지고 있다. 문을 열자마자 본인들이 하고 있던 일들을 멈추고 모든 남자들이 나를 쳐다봤다.
물론 약간 긴장하고 겁먹은 듯한 평소의 시선이 아니라,
순식간에 내 가슴과 드러난 허벅지를 탐색하는 변태스러운 시선 말이다.
“저, 누구세요?”
바로 옆에 있던 멍청이가 부끄러워하며 내게 말을 걸었다. 여자랑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고 말을 더듬는 꼴이 한심했다.
나는 최대한 평소처럼 건들거리며 소파의 빈자리에 앉으면서 던지듯 대답했다.
“나 유한솜이야.”
“......”
엄청 길게 느껴지는 침묵이 지나간 뒤,
“뭐?....뭐? 유한솜?”
과방에 있던 전원이 뜨악하며 나를 다시 한 번 훑어보면서 소리 질렀다.
나에 대한 잠깐의 탐색이 끝난 뒤, 남자들을 두 부류로 나뉘어 버렸다.
내가 여자 몸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대화를 하기는커녕 눈 둘 곳도 못 찾는 모쏠아다 새끼들과, 은근슬쩍 가까이 다가오려고 눈치를 보는 새끼들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과방에는 1학년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2, 3학년은 각자 다른 실습실을 아지트로 삼고 있었고, 4학년은 그냥 안 보였다.
“갑자기 왜 여자가 된 거야? 개성 발현했어?”
“혹시 한솜이네 누나이거나 그런 건 아니시죠?”
멍청이들이 낄낄대며 말을 걸어왔다.
평소에는 눈치 보느라 농담도 제대로 못하던 것들이, 내가 본인들보다 덩치가 작은 여자가 되자 눈에 띄게 행동이 편해진 게 보였다.
“야, 꺼져.”
그들이 나를 둘러싸고 지껄이는 말들을 잠자코 듣기만 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후우....쓰레기 새끼들.
복도로 나온 뒤 무기 개발과 과방으로 다시 가보면서 아까 훈련자와 했던 내기를 떠올렸다.
그냥 무슨 짓을 당하든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이래서는 내기가 안 되잖아. 무조건 내가 이기는 거지.
그가 단말기 화면에 내 상태창을 띄웠다.
[개발 레벨]
[가슴 : 0/9], [유두 : 0/9], [보지 : 0/9], [음핵 : 0/9], [항문 : 0/9], [요도 : 0/9]
[복종도 : 남 0/9 여 0/9], [노출증 레벨 : 0/9]
으윽....이 역겨운 걸 또 보게 되다니.
그러니까 다른 남자들이 내 몸을 가지고 놀지 못하도록 도망치라는 이야기네. 이 새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즐길 테고, 마치 연약한 햄스터를 고양이들 사이에 던져놓고 낄낄 대는 어린아이처럼.
하지만 이렇게만 보면 별 무리 없어보였다.
남자들을 다루는 법은 쉽다. 압도적인 힘이나 실력차이를 보여주면 알아서 겁먹게 돼 있다. 내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말이다.
“근데 씨발 개발 레벨이라는 게 뭐야? 그게 숫자로 쓸 수 있는 거야?”
“뭐어? 미친 그럼 9레벨까지 올라가면 500배나 되는데? 그게 가능한 소리야?”
나는 잠시 멍하게 어제 이 새끼의 명령으로 자위 했을 때를 떠올렸다. 겁에 너무 질려 있어서였는지, 내가 무성의하게 해서였는지 그때는 별다른 감각을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게 일반적이진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야동에 나오던 여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쾌감에 잘 취하고, 절정에 부르르 떨었던 여자들,
그 여자들이 느끼던 것보다 수백 배에 달하는 쾌감을 느끼는 몸이 돼 버린다면, 졸업하고 정식 헌터가 되기는커녕 일상생활조차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라니?
그러고 보니 대학교를 졸업하면 연락을 끊을 거라고 했었지?
“찐따 아다 새끼, 직접 내 앞에 나타나거나 스스로 날 건드릴 용기는 없나보지?”
“그럼 도대체 이런 짓을 왜 하는 거야? 그리고 만약 내가 패배하게 되면 그 뒤는 어떻게 할 생각인 건데?”
그 말을 봤을 때, 너무나도 순수한 악의만이 담겨있는 게 느껴져서 온 몸에 오소소 닭살이 돋았었다.
그리고 특별한 명령이 내려지지 않고 연결이 끊겼다.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얕보이지 않고,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나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만 하면 내가 이길 수 있다.
방금 과방에서는 내가 자기들보다 덩치가 작아졌기 때문에 아직 똥오줌 못 가리는 것 같았다. 곧 전술 기동 테스트가 있기 때문에 그때 내가 여전히 유한솜이라는 걸 보여주면 정신 차릴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무기 개발과 과방에 도착했다.
다행히 지금은 과방 문이 열려 있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구석에서 돗자리를 깔고 잠들어 있는 무리가 보이고, 한 명이 작업대에 앉아서 이제 막 일어난 건지 퀭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도 없는 게 아니라 문을 잠가놓고 자고 있었던 거구나.
“으윽....이게 무슨 냄새야.....”
시큼하고 역겨운 구린내가 코를 확 찔렀다.
좀 씻어라 새끼들아.
“무, 무슨 일이세요?”
작업대에 앉아 있던 남자가 힘겹게 나를 보며 물었다.
“혹시 민태 여기 있어?”
나는 고등학생 시절 친구 이름을 말했다. 그러가 그가 다 죽어가는 듯한 모양새로 손가락을 들어 시체처럼 뭉쳐서 잠들어 있는 사람 덩어리를 가리켰다.
저기 어딘가에 있으리란 손길.
으으....가까이 가고 싶지도 않다.
“너 몇 학년이야?”
“2학년인데요.”
차라리 이 새끼한테 물어보자.
나는 훈련 어플 단말기를 꺼내서 그에게 보여줬다. 훈련 어플에 대한 말을 하지 말라고 했지 단말기까지 비밀로 하라는 말은 없었으니, 이 정도는 허용될 것이다.
“혹시 이거 열어보거나 해킹할 수 있어?”
그러자 갑자기 그의 눈이 동그래지며 눈빛이 달라졌다.
하여튼 공돌이새끼들이란, 이런 장난감 만지는 일이라면 사족을 못 쓰지.
“잠시만요, 한 번 봐볼게요.”
그는 나에게서 단말기를 받아간 뒤, 해체할 수 있을만한 틈이 있는지 살펴봤고, 꺼져 있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겨봤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전원 버튼이 없고 핸드폰처럼 터치한다고 화면이 켜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오로지 훈련자 쪽에서 내게 접근할 때만 화면이 켜졌다.
그러자 그가 신기한 물건을 본 아이처럼 눈이 초롱초롱해지며 더욱 몰입하기 시작했고, 여러 도구들을 써가며 해체해보려고 낑낑댔다.
“와아....이거 도대체 뭐예요? 핸드폰인 줄 알았는데 버튼도 없고 틈이 하나도 없네.”
“못 열어?”
“네, 일단은 지금은 못 할 거 같아요. 남친 폰인가봐요? 혹시 괜찮으시면 여기 두고 가실래요? 선배들한테 물어보면 알 수도 있는데.”
“아니야,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혹시 망치 있어?”
그가 단말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걸 보다가 문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게 작업용 망치 하나를 건넸다.
텅!
“우왓!”
내가 단말기를 바닥에 놓고 망치로 때리자 그가 깜짝 놀라며 몸을 비켰다.
씨발, 존나 튼튼하네.
하지만 단말기가 부서지기는커녕 스크린에 흠집 하나 안 났다.
그러고 보니 나 힘이 7이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완력이다. 나는 사내에게 망치를 건네주면서 대신 때려보라고 했다.
“정말 이래도 돼요? 해킹하려던 거 아니었어요?”
이제 보니 이 새끼도 도덕관념이 어떻게 된 건지, 수상한 사람이 핸드폰을 보여주며 해킹해달라고 하니까, 그냥 덥석 해주려고 했다.
양심은 좆까먹어 버리고 결국 공돌이의 호기심이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는 살살 내 눈치를 보다가 내가 계속 아무 말이 없자 조심스럽게 망치로 단말기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와이씨, 뭐로 만든 거지? 게이트리움으로 만든 건가?”
결국 그도 망치질을 몇 번 해보다가 포기했다. 허망할 정도로 단말기는 멀쩡했다. 이 세상 물건이 맞긴 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나중에 다시 한 번 가지고 와주세요.”
내가 단말기를 챙겨서 과방을 나오자 그가 등 뒤로 소리쳤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있어서 나는 사격 연습장으로 갔다.
과녁에 단말기를 고정시킨 뒤, 나는 사로에 서서 내 헤비 캐논을 소환해서 들었다.
휴우....다행히 멀쩡히 쓸 수 있네.
헌터 무기는 사용자에 한해서 무게 개념이 없기 때문에 초등학생 완력이라도 충분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막상 소환하려고 하니 긴장이 됐다.
하지만 역시 무난하게 꺼내 들 수 있었고, 남자이던 시절 쓰던 감촉과 비슷했다. 다만 크기가 남자 몸일 때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너무 커서 들고 있기 불편했다.
그 점도 무기 튜닝을 하면서 조절하면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단은 이거부터 해볼까.
쾅! 쾅!
나는 헤비 캐논에 관통탄을 장전한 뒤 단말기에 몇 발 맞췄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이 정도 정밀 사격은 식은 죽 먹기다.
씨발, 어떻게 돼 먹은 거야.
하지만 S급 숙련도의 헤비캐논에도 흡집 하나 나지 않은 걸 보니 허망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실탄 공격이 통하지 않으면 레이저는 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랫동안 단말기를 지졌지만, 그마저도 소용이 없었다.
하아....이거....혹시 그 자식의 개성 능력인 건가?
이렇게까지 논리를 벗어나버리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엄청난 수준의 염동 능력자가 만들어 낸 염파 사물이라면 이런 미친 내구도를 설명할 수가 있다.
하지만 대학생 수준에서는 이 정도 능력자가 있을 리가 없고, 교수나 고학년 대학원생 정도는 돼야 가능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새끼들이 나한테 이런 걸 왜 보내냐는 말이지....
교수나 대학원생 중에는 나를 고까워하던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게다가 그 정도의 능력을 가진 변태새끼라면 굳이 나를 여자로 만들지 않아도 다른 여학생을 가지고 놀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띠링~!
내가 허탈한 심정으로 과녁에서 단말기를 떼어낼 때였다.
단말기 화면이 켜지며 문자가 떴다.
이 모든 걸 보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온 몸에 소름이 쫘악 돋으면서, 동시에 어떤 패널티를 받게 될지 걱정에 심장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