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1화 1학년 1학기
정체불명 단말기에 메시지가 떴다.
<옷을 벗으십시오.>
<남은 시간 : 1분>
나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돼버린 걸까.
<속옷을 벗으십시오.>
<남은 시간 : 1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방 전체를 채우는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팬티를 내렸다.
쾅! 쾅! 쾅! 쾅!
내가 쏜 헤비캐논 탄환들이 표적들에 정확하게 꽂혔다.
이로써 조별 사격 테스트에서 내가 있는 조가 1등이 됐다.
휴우....
내가 한숨 돌리자, 뒤에서 조원들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와아! 만점이라니! 역시한솜이야!”
“우리 전부 A+인 거지? 역시 한솜이 밖에 없다니까.”
하아, 나한테 빌붙어서 평균이나 깎아먹는 벌레 같은 놈들. 반드시 조를 짜야 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냥 혼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서도 1등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됐어, 술이나 사.”
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역시 까칠한 한솜이.”
같은 조원들이 나에게 엄지를 세워 보이는 걸 무시하고 사격장을 빠져 나왔다.
드디어 지겨웠던 1학년 1학기가 거의 끝나간다. 잔뜩 기대했던 대학교에는 얼간이들 밖에 없었고, 그들과 경쟁한다는 게 이렇게나 지루할 줄 몰랐었다.
그들은 나에게 친한 척을 했지만, 결국 내가 조별 실습에서 하드캐리를 해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빌붙기 위해서 위선을 부리는 것뿐이다.
[이름 : 유한솜]
[클래스 : 헤비 슈터 (숙련도 S)]
[힘 : 113]
[민첩 : 88]
[지구력 : 109]
[정신력 : 95]
[염동력 : 15]
[개성 ; 영재]
그래도 입학할 때보다 약간 높아져 있는 스탯을 보며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염동 특화 클래스가 아니면 의미 없는 염동력을 제외하고 평균 스탯 100을 채웠다. 이 정도면 사실상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 막 투입된 신입 수석 헌터 수준의 스탯이다.
대학생 수준에서는 비교할 만한 놈이 없다는 말이지.
이게 모두 영재 개성 덕분이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개화한 영재 개성은 내 성장 속도를 엄청나게 올려줬고, 제한 없는 멀티 클래스를 가능하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면 클래스 네댓 개 정도를 마스터한 만능 에이스가 돼 있을 것이고, 그 정도면 출세길을 골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대학은 졸업은 해야 한다.
정규 도시 방위군에 들어가든, 사설 자경단을 만들든 대학을 졸업해서 정식 헌터 인증을 따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에휴....이제 막 한 학기 끝났는데 어떻게 견디나.
“한솜아!”
꼴 보기 싫은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헤비 슈터과에서 가장 무능한 놈이고, 재수 없게 이번에 같은 조가 됐던 놈이다.
물론 재수 없다는 말은 이놈 때문에 점수가 낮아질 뻔 했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놈은 나에게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니까. 그냥 못난 놈은 꼴 보기도 싫다.
“내가 제대로 못해서 미안해, 그래도 한솜이 니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가 헤헤 웃어 보였다.
“그럼 연습이나 더 해.”
나는 틱틱대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오늘 조별 사격 1등 축하회 한다던데 올 거지?”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말은 제대로 해야지, 협력해서 조별 사격 1등 한 게 아니라, 내가 1등한 건데.
물론 가긴 갈 거다. 이렇게 무능하고 쓸모없는 자식들이긴 하지만, 완전히 고립된 대학생활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대충 얼굴이나 비추고 자리 채워주는 정도면 되겠지.
스탯과 성적이 좋다보니 내가 이 자식들을 무시하고 깔봐도, 이들은 나에게 까칠하다며 컨셉 같은 걸로 웃어 넘겼다.
차라리 다행이다. 귀찮게 비위를 맞추는 건 피곤할 뿐이니까.
저녁까지 대충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약속 장소인 술집으로 갔다. 도중에 옷가게를 지나치며,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야, 주선이 새끼, 여장 한 번 시켜볼까?”
테이블 주변에 둘러 앉아 있는 놈들이 전부 날 쳐다봤다. 모두 내 말에 터무니없이 놀란 느낌이었다.
“조별 과제에 좆도 도움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헤비 슈터과에는왜 온 거야, 기지배 같은 새끼, 애초에 대학교에 오면 안 되는 새끼였어.”
나는 별 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여자가 들었다면 바로 나한테 쏘아붙일 만한 발언이었지만 사실 헤비 슈터과에는 여자가 하나도 없다. 선배 중에 한두 명 있었다던가 없었다던가 하는 전설은 들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4학년 전체를 통틀어 한 명도 없었다.
묵직한 헤비 캐논을 들고 빵빵 쏴서 죄다 박살내는 클래스니, 애초에 여자들이 좋아하는 과가 아니다.
주선이는 아까 만났던 꼴찌 놈이다. 역시나 꼴찌답게 전부 다 모여 있는데 그 놈만 아직 도착을 안 했다.
“하여튼 그 새끼는 편의점 알바 하면서도 지각해서 민폐 끼칠 거야. 진짜 왜사냐.”
내가 너무 심하게 짜증내자, 주변 애들이 나를 달래며 헤헤 웃었다.
“야아, 아무리 그래도 농담이 심하다. 하하.”
한 놈이 상황을 대충 얼버무리려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한솜이 가끔 농담하면 빵빵 터진다니까. 하하하...”
다른 놈이 어떻게든 받아보려고 했다.
나도 더 이상 상황을 험악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따라서 픽 웃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나중에 주선이 놈이 도착해서 재미없고 지루한 술자리를 가졌고, 밤이 시작될 무렵 모두 자기 자취방으로 흩어졌다.
술을 많이 마신 건 아니었지만 밤이 됐는데도 후텁지근한 밤공기가 기분 나빴다.
모든 것이 짜증났다. 사실 주선이놈 자체에는 큰 화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그런 놈 없어도 나 혼자 다 할 수 있고, 그 놈이 아싸로 눈에 안 띄고 혼자 다녔으면 졸업할 때까지 그 자식의 존재도 몰랐을 것이다.
첫 번째 학기가 거의 끝나가면서 대학 생활에 대해 기대했던 게 허튼 망상이었다는 걸 느껴서일까, 그냥 요즘 모든 게 지루하고 짜증났다.
이럴 거면 차라리 여자들 많은 서포터쪽 학과로 할 걸 그랬나.
영재 개성 덕분에 여러 직업을 할 수 있으니 최종적으로는 대여섯 개 정도 멀티클래스를 할 생각이고, 대학생 중에는 적어도 서너 개 정도를 마스터할 생각이었다.
대학을 벗어나면 연습하기 힘든 헤비캐논을 먼저 배우자는 생각으로 이 과에 들어왔는데, 남자들만 모아놓은 게 이렇게까지 칙칙할 줄은 몰랐다.
나는 괜히 땅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들에 화풀이를 하며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응?”
문을 열기 직전, 문 앞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택배 올 건 없는데.
그러나 상자에는 운송장이 붙어 있지 않았다. 누군가 직접 놓고 간 것이었다. 상자에는 분명히 내 이름 <유한솜>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잘못 놓고 간 것도 아니었다.
나는 약간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켕기는 일이 없어서 그냥 집어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상자 안에는 포장된 약 한 알과, 핸드폰처럼 생긴 단말기가 하나가 들어 있었다.
핸드폰인가?
라고 생각하자마자 단말기 화면이 켜지면서 문구가 뜨고 그걸 읽어주는 여성 음성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특수 훈련 앱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훈련 대상자 ‘유한솜’과의 접촉이 확인 되었습니다.>
<초기 설정을 시작합니다.>
<동봉된 알약을 섭취해 주십시오.>
<제한 시간 : 1분>
씨발, 가뜩이나 수상한 기계 주제에, 수상한 약을 먹으라고 지시하고 있다.
나는 당연히 먹을 생각이 없었고, 제한시간이 떠 있길래 그게 줄어드는 걸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경고, 제한 시간이 10초 남았습니다. 임무를 완수하지 않을 경우 사망합니다.>
뭐? 사망? 웬 헛소리야?
“아아악!”
남은 시간이 0초가 되면서 동시에 나는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바닥에 쓰러졌다.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눈앞이 깜깜해졌고, 목구멍으로 뭔가가 넘쳐 올라오려고 했다. 정말 죽겠다는 공포가 온 몸을 엄습했다.
“먹어! 먹을게!”
나는 다급하게 소리 질렀다.
<추가 시간 10초.>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나는 재빨리 일어난 뒤 손을 덜덜 떨면서 같이 있던 약의 포장을 벗겼다.
우욱....
나는 뱃속에서 뭔가 올라오려고 하던 걸 기어이 토해냈고,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오바이트가 아닌 핏덩어리를 토해낸 것이다. 음식물이 아닌, 내 몸 구석 어딘가에 붙어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살점이 피범벅이 돼서 쏟아져 나왔다.
씨발....씨발....뭐가 어떻게 돼 가는 거야....
나는 눈물을 머금은 채로 수상한 약을 재빨리 삼켰다.
<초기 설정을 시작합니다.>
<대상자는 안전을 위해 평평한 곳에 편하게 누워주십시오.>
문구를 듣고 나자 어쩐지 두통이 생기며 어지러워지기 시작했고, 나는 겨우 침대로 가 드러누웠다.
눈을 감은 것도 아닌데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아무것도 안 보였다. 온 몸에서 식은땀이 계속 나고, 꽉 조이는 전신 타이즈를 입은 것처럼 불쾌한 상태가 지속됐다.
그러다가 피가 전부 빠져버렸던 몸에 다시 피가 돌기 시작하는 느낌으로 조금씩 몸이 편해지는 감각이 들면서 시력이 되돌아왔다.
<초기 설정이 끝났습니다.>
<훈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튜토리얼과 시스템 기동을 확인합니다.>
<창문 앞에 서십시오>
<제한 시간 : 1분>
나는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
그런데 어쩐지 내 몸이 작아져 있는 느낌이 들었고, 가슴이 무거웠다.
씨발?
이제 보니 내 몸이 여자가 돼 있었다. 머리카락은 길어 있고 손으로 다 쥘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묵직한 가슴이 생겨 있었다. 물론 사타구니에 있던 내 물건도 사라지고 보지가 생겨 있었다.
<제한 시간 : 10초>
씨발, 당황하는 사이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급하게 내 방에 하나밖에 없는 창문으로 가 섰다.
<창문을 열고 옷을 벗으십시오.>
<제한 시간 : 1분>
“씨발! 뭐? 장난해?”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덜덜 떨면서 창문을 먼저 열었다. 이 좆같은 단말기와 약을 보낸 새끼가 밖에서 보고 있는 거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면서 눈알을 굴렸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심정으로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거리에나 다른 건물에나 사람 그림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닫혀 있는 창문들 중 하나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사람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도 없어서 점점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분이라는 짧은 제한시간이끝나간다.
나는 그 자식을 찾는 걸 포기하고 천천히 옷을 벗었다. 내장이 뒤틀리던 그 고통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내가 토해낸 핏덩어리는 방 중앙에서 말라가고 있다.
창문에서 벗어나면 안 될 거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나는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섰다. 옷은 원래 내 옷이었기 때문에 속옷은 팬티 한 장 뿐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방금까지 남자였는데도, 마치 여자처럼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씨발, 그 약 때문에 성격도 여자가 돼 버렸나?
<속옷을 벗으십시오.>
“제발....그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여자가 된 탓인지 너무 쉽게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나는 기계에 대고 애원했지만 화면의 숫자만 줄어들 뿐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는 가슴을 가리고, 한 손으로만 내 팬티를 내리고 완전히 알몸이 됐다.
<튜토리얼이 끝났습니다.>
나는 재빨리 창문을 닫고 옷을 입었다.
<사진 촬영 기능을 확인합니다.>
마치 반대편 건물의 누군가가 찍은 것처럼, 방금 전 알몸인 채로 창가에 서 있던 내 모습이 단말기에 떴다.
<사진 촬영 기능 정상.>
<영상 녹화 기능 테스트를 시작합니다.>
<넓은 장소로 가 앉았다 일어서기를 세 번 반복해 주십시오.>
나는 대충 물건들을 치운 뒤, 방 가운데 서서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자 방금 내가 한 행동을 녹화한 영상이 그 단말기에 떴다.
씨발, 어디서 찍는 거야?
나는 영상의 구도를 보고, 영상을 찍고 있을 법한 곳을 바라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몰래 카메라 같은 게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안 들 정도로 아주 깨끗한 천장이었다.
<영상 녹화 기능 정상>
<훈련자가 설정해둔 조건에 맞는 상황은 모두 촬영되며, 모든 사진과 영상은 훈련자에게 자동으로 전송됩니다.>
씨발, 훈련자라는 놈이 이걸 보낸 새끼겠지. 그 놈을 찾아서 족쳐야 할 텐데.
<튜토리얼과 기능 테스트가 끝났습니다.>
<정식으로 훈련 앱을 시작합니다.>
<훈련자 : ???>
<훈련 대상자 : 유한솜>
<훈련 타입 : 마조 노예>
<훈련자가 대상자에게 명령을 내리면, 대상자는 제한 시간 내에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만약 이를 어길 시 훈련자는 대상자에게 패널티를 부여할 수 있으며 최대 목숨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대상자의 스테이터스에 특수 항목들이 추가되었습니다.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분노와 공포로 부들부들 떨면서 스탯창을 열어봤다.
겉모습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나는 절망스러운 변화에 다시 한 번 눈물이 날 거 같았다.
[힘 : 7 / 300]
[지구력 : 31 / 300]
다른 스탯은 그대로였으나 힘과 지구력이 절망스러울 정도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여자 대학생 헌터 평균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힘은 거의 저학년 초등학생 수준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헤비캐논 숙련도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게 겉보기에는 묵직해 보여도 사실 헌터 무기라는 게 특수 광물로 만들어서 무게 개념이 없다. 숙련도만 높으면 힘이 유아수준이어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말기 새끼가 말한 추가된 특수 항목이라는 게 보였다.
[개발 레벨]
[가슴 : 0/9], [유두 : 0/9], [보지 : 0/9], [음핵 : 0/9], [항문 : 0/9], [요도 : 0/9]
[복종도 : 남 0/9 여 0/9], [노출증 레벨 : 0/9]
이런 좆같은 것들이 달려 있었다.
<시스템 안내가 끝났습니다.>
<즐거운 훈련 되십시오. 이제 훈련자와 연결됩니다.>
그리고 단말기 화면이 꺼져버렸다. 잠시 기다려도 아무 것도 뜨지 않길래 일단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핏덩어리를 치웠다.
띠링!~
히익!....
잠시 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단말기 화면이 켜졌고,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깜짝 놀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단말기 화면을 바라봤다.
<튜토리얼 끝났냐? 유한솜? ㅋㅋㅋ>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