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72화. 먀몸미
아니나 다를까 모텔에 가서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손을 뒤로 뻗어 석현이에게 잡힌 채 침대가 삐걱거릴 정도로 미친 듯이 박혔다.
“하앙, 앙!, 아앙, 하아앙⋯!”
“허억,헉⋯ 희지야, 좋아?”
“하윽, 죠아, 너무 죠아⋯!”
엄청 격렬해서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한 번 시동이 걸리면 성이 풀릴 때까지 놔주지 않기 때문에 몇 번이고 콘돔을 갈아 끼워야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는 온몸이 다 아프고 곳곳에 키스자국이 가득했다.
“아으으⋯ 아파─”
“많이 아파?”
“헤헤⋯.”
석현이의 부축을 받다시피 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주말을 맞아 곧바로 본가에 가기로 했기 때문에 석현이와 함께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이었다.
온몸이 다 쑤시는데 왜 이렇게 기분 좋은 걸까.
급하게 씻은 탓인지 모텔의 싸구려 샴푸 향이 났지만, 따스한 햇살을 받으니 그마저도 향기롭게 느껴졌다.
“무릎은 좀 어때?”
“으응, 쓰라리긴 한데 괜찮아.”
어제 입었던 원피스를 그대로 입고 있어서, 무릎이 빨갛게 까진 게 다 드러나고 있었다.
가슴도 그렇고, 목덜미 곳곳에 키스자국이 나 있어서 긴 머리로 가려지지 않았다면 쉽게 티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함께 걷는 길이 너무나도 따스하게 느껴진다. 아침을 여는 저 햇살과 새들의 노랫소리가 우리를 반기는 것만 같다.
정취를 느끼면서 석현이에게 부축받은 채로 걸어가는데, 웬 고양이 한 마리가 길가에 앉아 그루밍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우와, 엄청 귀여워!”
“뭐가?”
“저기─ 삼색이 있잖아.”
“어, 그렇네. 귀엽다.”
“너두 고양이 좋아해?”
“음, 귀엽잖아. 꼭 사람처럼 도도한 애들도 있고.”
“도도한 거는 싫어?”
“그것도 나쁘진 않지? 너무 틱틱대지만 않으면.”
음⋯ 도도해도 괜찮구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어깨를 쫙 펴고 고개를 밑으로 내려깐다.
“야옹아? 이리 와보련.”
“뭐야, 설마 도도한 척 하는 거야?”
“있어봐~”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고양이를 부르니까 야옹- 하더니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오⋯ 통했네?”
“헤헤.”
나한테 와서는 다리에 몸을 부비대는 게 너무 귀엽다.
털이 깨끗한 걸로 봐서는 따로 챙겨주는 동네 주민들이 있는 것 같았다.
“쓰다듬어 주니까 골골대는 것 봐. 엄청 귀여워!”
“너 엄청 좋아하나 보다.”
“헤헤⋯ 석현아, 너도 만져봐.”
“그럴까? 야옹아? 우쭈쭈.”
우쭈쭈라니⋯
석현이가 쭈그려 앉아 손을 뻗으니까 고양이가 바로 하악질을 한다.
“풉⋯, 우쭈쭈라고 해서 화났나봐~ 고양이한테 대체 우쭈쭈가 뭐야?”
“아⋯”
“그렇게 아쉬워?”
“그럼. 나도 고양이 좋아한다니까.”
으응⋯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
지난 번에 핸드폰 볼 때 알았거든.
좋아한다고 말로 확인해주니까 참 다행이다 싶다. 조금만 기다려줘─!
고양이를 쓰다듬다보니, 소외된 석현이가 장난스럽게 흘겨본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아 이만 자리를 뜨기로 했다.
“야옹아 우리 간다~”
“인사 해주지마. 쟤 너무 도도하네.”
“에이, 못 만져봤다고 너무 야박해. 귀엽다 그랬잖아.”
“너가 더 귀여워.”
“흐엑⋯?”
미쳤어!
이런 멘트 아무대서나 치면 반칙이라니까?
갑자기 귀엽다고 칭찬을 해주니까 부끄러워서 석현이 팔을 팡팡 쳐댔다.
“미쳤어, 진짜로!”
※
“집에 도착하면 톡 할게!”
“그래, 잘 가고.”
“응, 사랑해!”
웃음이 막 나온다. 석현이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버스를 타니까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 같다. 부럽냐!
완연한 봄 날씨 때문인지 버스 안은 꽤나 더웠다.
공기가 하도 답답하길래 위에 걸치고 있는 가디건을 벗고 민소매 원피스 차림으로 자리에 앉았다.
집에 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석현이랑 있었던 일을 생각하다가, 이따가 부모님을 뵈면 어떻게 얘기할지를 고민했다.
그러니까 이름이랑 성별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지가 걱정이었다.
내가 이렇게 변해버렸을 때 빠르게 받아들여 주셨으니까, 이번에도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일이니까 잘 도와주실지도 모른다.
이건 다 석현이 덕분이다.
석현이가 아니었더라면, 바뀐 모습이나 붙잡고 있으면서 매일 우울하게 살았겠지.
날 침대로 데려가 그렇게나 짜릿한 경험을 선사해줬는데, 우울할 틈이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엄청 행복하고, 기분 좋아지는 약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입구멍을 써서 정성스럽게 세워주면, 그걸 단숨에 나한테 꽂아 넣고는 젖가슴이 서로 부딪힐 정도로 격하게 허리를 흔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아⋯ 빨리 또 안기고 싶다.
괜히 본가에 가는 것 같다. 그냥 주말 내내 품에 안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으, 더워─
야릇한 상상을 하니까 몸이 더워졌다. 땀 때문에 온몸이 끈적거리는 것 같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는 탓에 가슴골과 겨드랑이가 다 드러난다.
원래는 키스자국을 가리려고 머리를 풀고 있었는데, 버스 안이 하도 답답해서 좀 묶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머리를 묶기 위해 팔을 들고 있다가 내 옆에 서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나 보고 있었던 거지?
매끄러운 겨드랑이와 가슴을 보고는 넋을 놓은 것 같았다.
기분 나빠. 온몸이 가려워.
미친 거야?
내 몸은 너 같은 게 넘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오직 석현이한테만 허락된 거란 말이야.
제 주제도 모르고 가슴을 쳐다보고 있었던 게 아니꼽다.
집에 가서는 내 몸을 반찬 삼아 꼴사납게 딸딸이를 칠 게 틀림없다.
남의 겨드랑이를 보면서 발기하는 걸 보니 분명하다.
변태새끼.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 남의 여자를 탐내다니, 주제를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한없이 불쾌해지는 감정에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아 시발⋯ 뭘 봐?”
후우- 웬만해서는 고운 말만 쓰려고 했는데 협조가 안된다.
석현이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말조심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방해가 들어온다.
예상치 못한 욕을 얻어먹은 그 남자는 부끄러운 줄은 아는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
한참을 졸다 보니 집 근처에 도착해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내 모습은 누가 봐도 20대 여대생이었다.
깜짝 놀라시겠지?
웨이브한 머릿결에 원피스, 거기다 핸드백까지⋯ 부모님이 보시면 뭐라고 하실지 궁금해진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옷을 넘어서 이제는 내가 코디까지 하고 다니니까 말이다.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갔을 때는 부모님이 두 분 모두 계셨다.
“저 왔어요!”
“희준이 왔니─”
희지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거에 잠깐 멈칫했지만, 부모님은 아직 사정을 모르시기 때문에 꼬투리 잡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거실에서 TV를 보던 중이셨고, 나를 보자마자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질문을 쏟아냈다.
“어, 희준이 너 머리 했니?”
“응. 지난번에 학교 앞에서 하고 왔어. 염색이랑 펌이랑.”
“옷도 잘 입었네. 그래그래, 잘 꾸미고 다니는 게 최고야─”
“크흠, 무릎은 왜 그러냐.”
“아 아빠⋯ 이거 그냥 다쳤어. 러닝하다가.”
내가 꾸민 것부터 무릎이 까진 것까지 한눈에 알아차리는 게 꼭 애지중지하는 딸을 보는 것 같았다.
혹시나 뭐라 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따뜻하게 맞아주는 걸 보니 얘기도 잘 풀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우리 희준이, 예뻐진 것 같은데─?”
“예뻐졌다니. 당신은 그런 말을 왜 해?”
“어휴, 그럼 예쁜 걸 예쁘다고 하지, 뭐라고 해?”
“아, 둘 다 됐으니까. 나 씻고 올테니까 밥 차려줘.”
두 분이서 투닥거리는 게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이런 분위기라면 오늘 말해봐도 될 것 같다.
마스크를 벗어두고, 기분 좋게 씻고 나오니 맛있는 밥이 차려져 있었다.
이런저런 시사 이슈나 학교생활에 대해서 대화하며 밥을 먹고 나서, 같이 TV를 보며 적당한 타이밍을 봤다.
“저기⋯ 엄마, 아빠.”
“으응-?” “왜 그러냐.”
“나 여자 된 거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구?”
“응, 나 이렇게 돼서 싫다던가, 아니면 상관없다던가⋯ 아무거나.”
“음⋯ 엄마는 괜찮아. 예쁘니까 좋네.”
“아니 그런 거 말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고. 처음엔 당연히 놀랐는데 네가 힘들어하다가 지금은 또 좋아진 거 보니까 엄마도 힘내야겠지 싶네?”
“응⋯”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며. 엄마는 그냥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기다리기로 했단다. 다 뜻이 있으니 이렇게 된 거 아니겠니?”
“흠흠,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어⋯
좋게 생각해주시는 거는 분명 좋은 일이다.
내가 여자가 됐다고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던가,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방법을 찾느라 헛수고를 하지 않는다던가⋯
분명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형편 좋은 일이지만, 딱 하나 걸리는 말이 있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말.
처음에 여신이 약속하기도 했었던 말이다. 미션을 끝까지 다 하면 원래대로 돌려주겠다고.
지금 와서는 정해진 미션을 개수만큼 다 하라는 건지, 아니면 마지막 미션을 언젠가 줄 테니 그걸 하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약속이 있었다.
문제는 언젠가부터 여신 대신 악마가 나와 제멋대로 나를 갖고 놀려고 하면서 종잡을 수 없게 됐다는 거고.
무엇보다도 지금 나한테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절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정사의 여운으로 몸이 아플 때마다 석현이가 생각나는데 다시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억지로 다시 되돌려지면 어쩌냐는 걱정과, 부모님이 언젠간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마음이 심란해졌다.
“음, 엄마, 아빠.”
부모님의 말을 끊고 얼굴을 쳐다보며 잠시 뜸을 들인다.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다느니, 여자로 쭉 살고 싶다느니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이름이나 성별 같은 문제는 말해볼 만하지 않을까.
“사실은 말할 게 있는데⋯.”
“으응? 그래, 우리 희준이. 말해봐.”
“어⋯ 그니까, 지난번에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그랬는데 신분증 검사를 받은 적이 있거든⋯”
“신분증?”
“응, 미성년자는 밤늦게 못 들어가잖아. 하여튼 신분증 검사를 받았는데⋯ 그⋯ 내가 여자가 됐잖아⋯.”
“혹시 신분증 때문에 못 들어갔니?”
“아니이, 그런 건 아니구. 신분증 내라 그랬는데⋯ 거기 사진이랑 지금 나랑 다르니까 못 냈거든. 그냥 잃어버렸다 해서 통과하긴 했는데⋯ 나 신분증도 그렇고, 군대 문제도 그렇고⋯ 언제 돌아갈지 모르는 거잖아.”
“어, 어⋯ 그렇겠구나.”
“그래서⋯ 그⋯ 이대로는 불편한 게 너무 많아서⋯ 신분증을⋯”
“⋯성별을 바꾸겠단 말이냐?”
조용히 듣고만 있던 아빠가 중간에 끼어들어서는 신분증을, 그러니까 성별을 바꾸고 싶다는 소리냐고 물어봤다.
“어, 응⋯. 성별이랑, 또 이름이랑⋯ 이름도 바꿨으면 좋겠다 싶어서⋯.”
“절대 안 돼! 난 반대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며, 무슨 성별을 바꾼다고 그래? 그리고 개명도 반대야!”
역시 아빠는 이런 걸 탐탁지 않아 하신다. 영 못마땅해하며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는데 엄마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어휴,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 봐. 그래, 어, 희준아⋯?”
“응, 엄마⋯.”
“나도 네 아빠랑 비슷한 생각인데, 꼭 바꿔야 하는 거니? 그 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거라고 하지 않았니⋯?”
당연히 돌아갈 수 있기야 하다.
그렇게 약속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지금 와서는 여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내가 돌아갈 생각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솔직한 마음은 감춰두어야 했다.
“근데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지금 이 모습으로 학교 다니는 거 불편하기도 하고, 나 군대 문제도 있잖아.”
“그래, 군대⋯ 그런데 군대는 공익인지 뭔지 그걸로 가면 되는 거 아니니? 예전에 TV에서 보니까 그 트랜스⋯”
“트랜스젠더.”
“그래에- 트랜스젠더. 걔들은 검사받으면 공익 가던가 면제받는다고 하드라.”
그게 아니란 말이야⋯!
난 그냥 내 민증의 뒷번호가 2나 4가 아닌, 3으로 시작하는 게 정말 싫다.
이름도 석현이가 지어준 이름을 쓰고 싶고, 사진도 내 얼굴로 바꿔서 당당하게 신분증을 들고 다니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말이 통하질 않아서 속상하다.
“그런 게 아니야⋯! 너무 불편하다구⋯! 다 됐으니까, 그냥 개명이랑 성별 정정시켜달라니까─!”
차분한 설득은 포기하고 감정이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너무 성급하게 결정할 수 없다며, 갑자기 변한 거니 언젠가 다시 변하지 않겠냐며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사실상의 반대 의사였다.
그리고 뜻대로 대화가 풀리지 않아 흥분한 나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악에 받친 소리를 지르며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아악⋯! 싫다구, 짜증 난단 말이야! 여자가 됐는데 신분은 그대로이고⋯! 왜 못하게 하는 거냐고─!”
“너, 너 지금 화내는 거니?”
“아아악──! 짜증 나게 하니까 그러지! 아악! 아악──! 아아아아악──!!”
“그렇다고 소리를 지르는 게 말이 돼!”
“아아아아아악─────────!!”
“박희준! 어디서 소리를 질러!”
“씨발! 씨발──!! 아아아아아악───────!!”
“너 이럴거면 자취 하지 마! 그냥 집으로 들어와!”
“아아아아아악────!!!!”
씨발, 씨발⋯!
다 원망스럽다.
뜻대로 안 풀리는 게 원망스럽고, 그걸 도와주지 않는 부모님도, 그리고 그렇다고 화를 내며 발악해버린 나도 다 원망스러웠다.
나도 왜 이렇게 소리를 질렀는지 모를 정도로 흥분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슬리퍼를 신은 채 밖으로 뛰쳐나가 있더라.
챙겨온 거라고는 달랑 핸드폰 하나 뿐이고, 감정에 휩싸여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내가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밤이 되도록 놀이터의 그네 위에 앉아 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르는 남자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나한테 말을 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