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68화. 환영회 (3) (69/80)



〈 69화 〉68화. 환영회 (3)



계속 벌주를 얻어 마시니 빠르게 시야가 흐려진다.

왠지 남자 선배들 표정도 심상치가 않고⋯.

“흐에에-”

“으에엑⋯”

으아.. 이제 더 못할  같은데. 너무 취해버렸다.

다른 테이블은 여전히 재밌게 놀고 있는데, 우리 테이블에선 벌써 내가 리타이어  위기였다.

자꾸 내가 걸려버리니까, 차마 봐주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빼버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계속 걸리는 걸 걱정해주는데, 특히나 남자 선배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은게 여자애가 무리해서  마시는  걱정해주는 듯 했다.

다행히 우리 조 선배들이나 동기들 모두 나를 배려한다고, 너무 게임만 했으니 좀 쉬었다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대화나 하자며 술게임을 멈췄는데, 모르는 선배가 포차의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소형 무대에 나오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아, 아. 들리죠? 네, 안녕하세요 경제학과 여러분. 과대표를 맡고 있는─”

자기는 과대표 누구고,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고, 이제라도 신입생 여러분들을 위한 자리를 열게 되어서 다행이고─

과대표 선배는 그리 길지 않은 인사말을 한 뒤에, 본격적으로 해볼 게 있다며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 여러분들이 처음 모인 자리인데, 우리 학과의 전통을 소개해드릴  있습니다. 이게 원래는 새터  진작에 했어야 하는 건데요⋯”

과대표 선배의 말이 이어지자, 우리 테이블에서는 조장을 맡고있는 윤희정 선배가 지금부터 과대 말을 잘 들으라며 주의를 환기했다.


“여러분들 계신 조에서 선배님들이 미리 설명해주셨나요? 아직  들으신 분들도 있을 테니까 설명해드릴게요.”

“신입생 후배님들 자기소개하실 때 규칙이 있습니다. FM이라고 자기 소속이랑 학번 이름 말하는 건데요─”


아 FM⋯ 들어본 것 같다. 유튜X를 보니까 뭐라 뭐라 소리 지르면서 자기 소속을 밝히던데.


“이게 그냥 자기 이름까지 말하면 되는 게 아니고, 저희 과에서 쓰는 구호가 따로 있습니다. 구호는─”


으, 잘 안 들려.

거리가 멀고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웅성거리는 소리에 뭐라 말하는지  안 들린다.

취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민족, 구국 같은 단어를 말하며 설명해주는 거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자기소개하는  중요하지 않나⋯ 모르면 안 될 것 같아서, 시야가 어지러운 걸 참고 선배에게 물어봐야만 했다.

“선배니임⋯ 잘 안 들려서  들었는데 혹시 다시 설명 좀⋯⋯”

“안녕하십니까라고 크게 외친 다음에, 저는 구국종대 민족상경 자주경제 21학번 누구누구 입니다─ 라고 말하면 돼요.”

“아, 네에⋯.”

일단 알겠다고 대답은 하는데 전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안녕하십니까 외치기 전에 뭐라고 크게 소리치는 것도 같은데 정확한 대사 가 뭔지  수 없었다.


그리고 차마 되물어보긴 그래서 풀리지 않는 의문을 되새기고 있는데, 1조에서부터 돌아가면서 FM을 하기로 했다.

테이블마다 돌아가면서  명씩 대표로 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 조에서는 누가 하게 될지 긴장됐다.

“저희 조는 누가 할까요? 후배님들?”

“⋯”


아무리 인싸 기질이 있어도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서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자기소개 마지막에 애교를 부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다들 꺼려할 만 했다.


다들 꺼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1조 대표의 FM이 끝났다.

그리고 2조 차례가 되고, 다음 3조로 넘어가고⋯⋯

이제 우리 5조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정해야만 했다.

“아무도 없나요?”

“우리 조 비주얼 대표 있잖아. 어때?”

비주얼 대표⋯? 아까 비주얼이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거 혹시 나한테 그러는 거였나⋯?


“희지 후배님. 괜찮으시죠?”

“네⋯?”


나보고 하라는 거야? 먼저 나서는 거 절대  하는데 어째선지 다들 날 쳐다본다.

“후배님이 저희 비주얼이니까 제일 좋을 것 같네요. 할 수 있죠?”

“⋯네.”

차마 거절하지 못할 상황이다.

아까처럼 계속 취해있었으면 그나마 정신이 없다고 핑계라도 댔을 텐데,  이럴 때만 취기가 가라앉는다.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고, 선배들이 날 부추겼기 때문에 FM을 준비해야만 했다.

“으, 어쩌죠⋯ 헷갈려요.”

“안녕 하십니까 크게 외치고. 저는 외치고. 구국 종대 외치고. 저희 학교가 한국종대니까요. 그리고 그 다음에 민족 상경, 자주 경제 외치고. 이일학번 박  지 입니다 하는 거에요.”

“네, 네⋯”

어렵다. 무조건 목소리 크게 외치면 된다는데, 안녕하십니까 외치기 전에 크게 외치는 대사가 뭔지 모르겠고, 마지막에 무슨 애교를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결국 무슨 애교를 할지 정하지 못한 채로, 내 차례를 맞아야만 했다.


“자, 이번에는 우리 5조. 5조 대표 일어나 주세요. 박수-”

“와아아─”

떨려. 실수하면 어쩌지.

아직 술이 다 깨지는 않았는지, 비틀거리면서 일어나게 된다.

드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의자를 밀고 일어나니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린 게 보였다.

“자, FM 외칠까요?”

“에프엠! 에프엠! 에프엠! 에프엠!”

아으⋯ 시작, 해야겠지?

“⋯발 한잔 하겠습니다⋯”


부끄러워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선배들은 만족스럽지 않았던지 다시 해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안들려! 다시, 다시!”

아, 정말. 정확히 무슨 대사인지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야.

이거 나만 헷갈리는 거야?

‘시발 한잔 하겠습니다’인지, ‘사발 한잔 하겠습니다’인지 잘 모르겠지만 자꾸 다시 하라며 재촉하기에 눈을 딱 감고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에이씨..!


“아- 씨─발 한  하겠습니다아아아아아아─────!!!!”


이거 맞지? 일단 아무도 태클은 안 걸었으니 맞는  같다.

다시 숨 크게 들이키고.


“안녀어어엉───!!”
“““어이!”””

“하십니까아아아────!!”
“““어이!”””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어이! 라는 후렴구호가 돌아온다. 건물이 다 떠나가도록 크게 외치지만, 여기엔 우리 학과밖에 없다.

“저느은──!!” “““어이!”””

“구국 종대──!!” “““어이!”””


“민-”

잠깐 까먹었다. 뭐였지.

아..!


“민, 민족 상경──!!” “““어이!”””

실수했지만 아무도 꼬투리잡지는 않는다.

“자주경제──!!” “““어이!”””

“이일 학번──!!” “““어이!”””


이제 이름을 말해야 한다. 석현이가 지어준 이름. 이것만큼은 헷갈리지 않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박─!!” “““어이!”””

“희─!!” “““어이!”””

“지─!!” “““어이!”””

“입니다───!!!!” “““어이!!”””


“내 이름이 뭐라고──?” ““박희지!””



⋯그리고 이제 애교를 부릴 차례였다.


분명 석현이가 다른 남자들 앞에서 끼 부리지 말랬는데.

이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급조한 애교를 준비한다.


침을 꼴깍 삼키고, 잠깐 주위의 눈치를 보다가⋯

어서 해보라고 격려해주는 우리  선배님들의 손짓을 보며 용기를 내었다.

“..희지, 예쁘게 봐주세요오⋯?”


대단한 애교는 생각이 안 나서, 그냥 예쁘게 봐달라면서 콧소리를 냈다. 이름을 붙여야 하는 게 오글거리지만 이게 규칙이라니까 어쩔 수 없다.


“아.”

그리고 이걸로 통과인 줄 알았던 내 기대는 바로 깨지고 말았다.

어떤 선배가 다짜고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음을 넣어서 처음 듣는 멘트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판~은 나가립니다! 다음 판을 기대하세요~!” “““어이! 어이! 어이!”””

어, 뭐라고⋯?

“다음 판도 나가리면~ 소주 한~ 병 원샷입니다─!”

“““어이! 어이! 어이!”””


나가리라고? 다음 판도?

여짓껏 대충 넘어갔던 것 같은데, 갑자기 내 차례가 되자마자 나가리를 시켜버렸다.


무슨 소리인지 몰라 우리 테이블을 쳐다보는데,  선배가 다시 하라면서 이거보다 훨씬 더 애교를 부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거보다 애교를 더 해야 한다고⋯?

부끄러운 걸 참고 콧소리를 냈는데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번 퇴짜를 맞았다는 생각에 열이 확 오르면서 몸이 더워진다.

석현이 보기 좋으라고 입고온 네이비색 민소매 원피스가⋯ 왠지 두껍게만 느껴진다.

괜히 민망해서 얼굴이 달아오르고, 드러난 가슴골 사이에서 열기가 나오는  같았다.

“으⋯”

“다시 다시!”

어쩌지. 이거보다 더한 애교를 하기에는 너무 부끄럽다.

TV에서 봐왔던 드라마의 이미지 때문에 대충 생각이 나기는 하는데 직접 하자니 민망하다.

그렇다고 갑자기 뺄 수도 없고⋯.

다행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눈에 석현이를 발견하긴 했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얼굴이 잘 보이질 않아 확실하지가 않았다.

으⋯ 이럴  석현이라도 근처에 있었으면 용기를 내 볼 텐데.


이대로 시간을 끌면 분위기가 가라앉을 게 뻔했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FM을 해야만 했다.


“안녕! 하십니까! 저는! 구국종대! 민족상경! 자주경제! 21학번! 박 희  입니다!”

“““어이! 어이! 어이!”””

“내 이름이 뭐라고─!”

으, 으⋯
어쩔 수 없다. 이런 거 남들 앞에서는 안 해봤지만 지금 당장을 넘어가야만 한다.

“‘사랑스러운’ 붙여줘!”
“좋다! 사랑스러운으로 가자!”

민망하게 자꾸 뭘 시킨다. 이름 앞에 사랑스러운을 붙이라니.

그래, 빨리 끝내는 게 나으니까 그 정도는 해주기로 했다.

제발 이걸로 통과시켜 줬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사랑스러운 희지, 예쁘게 봐주세요─”


예쁘게 봐달라는 말과 함께 양볼을 크게 부풀리고는 검지 손가락을 찔러넣었다.

그러자 다행히도 박수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박수치기 시작은 했는데 또 다른 선배가 손을 휘휘 저으며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다시다시다시! 이번 판은 나가립니다! 다음 판을 기대하세요!”


뭐?
이상하다. 분명 방금 전에 다들 박수를 쳐주려고 했잖아.

하지만  선배는 계속 노래를 부르며 나가리를 시키려고 했다.

“다음 판도 나가리면 소주   원샷입니다!”


나가리라면서 다시 하라고, 그러니까 더 센 애교를 하라고 바람을 잡고 있다.

그리고 그냥 선배만을 따를 수밖에 없는 신입생 동기들이 어이!를 외치면서 거기에 동조하는데⋯


다행히도 그때 우리 조의 선배님이 나서주었다.

“야, 야 이정도면 됐지─!!”

 천사가 도와주러   같았다.

술게임 할 때는 나 위주로 공격하던 여자 선배였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대신 소리쳐준다.


그리고 맞다, 이 정도면 됐다- 아니다, 다시 해라- 라며 선배들끼리 고함을 질러대는 바람에 여러 테이블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어⋯ 이거 싸우는 거는 아닌데. 술자리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높아진 건데 싸우는 줄 알고 괜히 놀랐다.


  더 시키느니 마느니 하는 것 때문에 소란스러워지자, 뭔가 발언권이 있어 보이는  선배가 나서서 마지막으로  번만 하고 넘어가자고 중재를 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괜찮죠?”

“아, 네⋯ 네!”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잖아. 어차피 여기서 내가 안 할 수는 없는 분위기이다.

그냥 애교 한 번 더 부려주고 깔끔하게 마치기로 했다.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서 날 보고 있는 석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여러 번 하는 것보다 마지막 한 번으로 끝내는 게 낫잖아.

응, 여기서 더 하라느니 그런 말 못 하도록 확실하게 애교 한  해주지, 뭐.

“⋯희! 지! 입니다!” “““어이!”””

정말 누가 봐도 열심히 애교떠는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준비한다.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애교라면,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그리고  몸⋯ 그런 애교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딱 맞다.

잘 보라고.

“내 이름이 뭐라고!” “““박희지!”””


그리고  이름이 호명되고 사람들의 기대가 모인 순간, 예쁘게 봐달라는 말과 함께

“사랑스러운 희지, 예쁘게 봐주세요♡”


양팔을 가슴에 모으고 아잉- 하는 자세로 몸을 흔들어주었다.

소매가 없는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얇은 팔뚝이 다 드러나고, 반대로 그 크기 때문에 생겨있는 깊은 가슴골이 옆으로 흔들리는데⋯

마치 가슴이 통통 튀기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것 같았고, 그걸 보던 남자들은 잠시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있다가⋯

 엄청난 것을 본 것처럼 모두들 헉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나를 지켜보던 석현이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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