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67화. 환영회 (2) (68/80)



〈 68화 〉67화. 환영회 (2)


마침내 내가 자기소개할 차례가 되었다.

아으, 긴장돼. 침착하게. 침착하게.


안, 안-


“안, 안녕하세요오⋯ 21학번 박희지이구요⋯ 아, 이름은 조만간 바꿀 거라서요⋯ 사는 곳은 지금은 서울에서 자취하구요⋯⋯”



으아아아아⋯ 완전 절었다. 학번 말할 때 이일 학번이 아니라 이십일 학번이라고 말해버렸고, 너무 재미없는 말만 한 것 같았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반응이 좋았다.




“박수!”
“박수우우─!!”


짝짝짝짝─

⋯이 반응 뭔데.

너무 나데나데하는 반응이잖아..?



너무 띄워주는  같아서 굉장히 민망해진다. 다 티나잖아!


아닌가? 다들 박수 열심히 쳐주는데 괜찮은 거 같기도 하고.

엎드려  받기는 아닌데, 왠지 비슷한 말이 해당될 것 같은 이 느낌. 별거도 아닌 평범한 자기소개인데 무려 이런 반응⋯

결국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 숙인 인사로 마무리를 해버렸다.


“아하하⋯”


그리고 모두의 자기소개가 끝난 뒤, 미리 주문돼있던 소주 여러 병이 테이블마다 세팅되기 시작했다.

안주가 나오고, 먼저 따라주겠다며 옆자리에 앉아있는 선배들이 잔을 채워주고⋯

그러면서 우리 과는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안 받아도 된다더라.


이게 맞지. 마침 석현이도 술 마시지 말라 그래서 원래는 거절하려 했었다.



하지만 나 말고 모두들 술을 받는 분위기였고, 왠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어울리기가 힘들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한 잔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감사합니다⋯.”

딱 한 잔이면 괜찮겠지?


그래도 석현이 덕분에 술 경험이 좀 늘어서, 예전만큼 바로 취하지는 않을 자신이 있다.


석현이가 분명 마시지 말라고 했지만⋯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가 다른 사람 다 있는 곳에서 일일이 허락을 맡으면 민망할  같아서 그냥 알아서 판단하기로 했다.

응,  잔만 마시는 거는 석현이도 이해해줄 거야.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술 한 잔이 비워져 있었다.

“저희 과는 원래 개강총회랑 신입생 환영회를 같이 하는데요~ 올해는 환영회만 따로 하는 거예요. 오늘  선배들도 다 2학년 위주니까 친해지시면 학교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될 거에요!”


아⋯ 그래서 홍다희도 안 온 거구나. 너무 고학년들이  있으면 서로 어색하니까.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지.




“저기, 선배님.”

“네. 희지 씨, 궁금한  있나요?”


“저기, 저쪽 방에 계신 분들이요. 누구신가 해서요⋯.”

구석 쪽에 외딴 방이 하나 있는데, 약간은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분명 포차 전체를 우리 과가 빌렸다고 했는데 학생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물어봤다.


“아하, 저희 한참 위에 선배님들이신데⋯ 화석이에요, 화석. 하하─”

“혹시.. 가서 인사도 드려야 하는 건가요?”

“아녜요- 잠깐 오신 거라서 저희랑은 따로  거에요. 복학한 선배들 가끔 올 수도 있는데 그때 인사 정도만 하시구요.”




으, 다행이다.


나이 차가 엄청 많이 나보이는데, 거의 아저씨뻘인 남자들한테 따로 인사를  해도 된다니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우리가 작은 방을 쳐다보며 대화하는 동안, 시선을 느낀 선배님들이나 그쪽 방향 테이블에 앉아있던 다른 학우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왠지 지나다니는 사람도 그렇고 자꾸 흘겨보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후배님이 저희 조 비주얼 담당이네요?”


“네⋯?”




갑자기 비주얼 담당이라니,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진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조원들의 시선이 다 나한테 쏠리는데, 아까 방나래라고 했던 선배가 맞장구를 쳤다.


“진짜~ 처음부터  생각 했는데. 그치, 현성아.”


“어, 어.”

“부끄러워하는 것 봐. 그나저나 희지 후배님~?”


“네? 아, 네⋯!”

“혹시 노래 잘 불러요? 저희 동아리 오실래요?”

“앗, 죄송해요⋯. 노래 잘 못 불러요.”


지난번에 노래방 갔을 때 칭찬받기는 했는데, 아직도 자신이 없다.

동아리 하면, 사람들 많은 곳에서 부르라는 거잖아. 그냥 못 부른다고 하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요? 아쉽다~ 비주얼이 되니까 딱 좋아 보였는데.”


방나래 선배님의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나와서 노래 부르는 코너도 있다면서 경품이 있다고 해보라는데.. 내겐 거절해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석현이가 다른 남자들 앞에서 노래 부르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노래를 불러보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나서도, 우리 조 선배님들은 나한테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끼가 엄청 많아 보이는데 혹시 춤은 좀 추냐, 동아리 생각해둔  있냐부터 해서  옷 어디서 샀냐, 머리는 어디서 했냐 등등⋯

그리고 제일 곤란한 질문은 남자친구 질문이었다.



“희지 후배님. 남자친구 있죠?”


“네? 아, 네. 있어요⋯!”

순간 석현이가 생각났다.

홍다희와 같은 학과인 게 신경 쓰이지만, 이 자리에 없으니까 괜찮을 거란 생각에 남친이 있다고 대답했다.


물론 누군지 밝히지는 않았지만 다른 동기들의 표정을 보니 꽤나 아쉬워하는  같았다.

그러면서도 사소한 질문들을 해오며 조금이라도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리고 점점 대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면서, 조장을 맡고 있던 윤희정 선배님이 술게임을 하자며 운을 띄웠다.



“자! 저희 FM 하기 전까지 술게임 먼저 할까요? 다들 술은 마신다고 하셨고, 혹시 술게임 해보신 분?”

“처음이에요.”


“저도 처음입니다.”

술게임 할  모르는데. 다행히 나 말고 모르는 사람이 두 명 더 있었기 때문에 설명부터 들을  있었다.



쉬운 게임은 뭐가 있고, 이건 어려운 게임이니까 마시라는 소리로 알아들으면 되고, 규칙은 어떻고⋯



다른 테이블에서도 술게임을 시작했기 때문에 시끄러워서 잘 들리지가 않았다.


규칙도 복잡한  같아서 한 번에 이해가 안 된다.

“죄송한데 한 번만 다시 알려주실 수 있나요? 이해가 잘 안 돼서요⋯.”


“에이, 한 번에 몰라도 괜찮아요. 마시면서 배우면 되죠!”

“아⋯?”




큰일 났다. 그냥 처음부터 술 못 마신다고 할걸.

게임 규칙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술게임을 시작하게 생겼다. 어떡해.




“병뚜껑 치기부터 해볼까요? 이건 별로 안 어려워요. 이거 소주병 있죠? 뚜껑에 달린 꼬리를 툭 쳐서 떨어뜨리는 사람이 걸리는 거예요.”



다행이다..!
걱정과 달리, 첫 게임은 쉬운 걸로 시작할 수 있었다.


마시면서 배우는 신나는 게임~ 이러면서 시작하길래 긴장했는데 별거 아니었다.

탁-

“오⋯”




탁-


“우와, 떨어질 뻔했네.”



탁-


“아! 걸렸다. 아오⋯”

아하하⋯ 점잖아 보이던 남자 선배가 걸렸다.

바로 소주 원샷을 하고 다음 게임을 정하는데 이번에는   다운이라는 게 나왔다.

소주병 뚜껑 안의 숫자를 맞추는 게임인데 이것도 그다지 어렵지가 않았다.

뭐야, 생각보다 쉽네?



이후로도 술게임이 몇 개가 지나갔는데, 벌주를 서너  밖에 안 마실 정도로 나름 선방하고 있었다.

그런데 입이 좀 쓰긴 해도 생각보다 버틸 만하다고 생각한 순간 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이십일 이십이 이십삼!”


“이십사.”


“이십오 이십육!”



베스킨라빈스 31 게임을 하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숫자가 31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설마⋯?

“이십칠 이십팔!”



여기서  옆의 동기가 29, 30을 외쳐버리면 내가 걸리게 된다.


나를 마시게 하려는 게 아니라면 29만 외치던가, 혹은 31까지 세 번 외쳐서 대신 마셔줄 수도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어본다.

어쨌든 걸리지 않고 싶은 마음에 간절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올, 흑기사 가나요~”

“에이- 그런게 어딨어!”


“어, 어⋯ 크흠. 이십구 삼십!!”



안돼에에⋯

“삼십⋯일⋯⋯”


걸려버렸다.


바로 술잔이 채워지고 ‘마셔라! 마셔라!’라며 구호가 외쳐지는데 차마 입이 열리질 않았다.

“동구밖~ 과수원샷!”


“으⋯”

“아~ 빨리. 빨리!”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으, 으아아⋯”

빨리 마시라며 재촉을 한다. 다들 웃는 표정으로 시키기는 하는데⋯

처음에만 해도 점잖던 김현성 선배마저 나서서 마시라고 하고 있다.


“원샷을  하면 시집을 못 가요~  씨발년아~”


으아아⋯
어서 마시라며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다. 여기서 더 버텨버리면 오히려 흥이 식게 된다.


결국 어쩔  없이 원샷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 쭉쭉쭉쭉~!”


“읏.., 흐아아─”

으, 머리아파⋯.
좀 전까지만 해도 버틸 만했는데,  잔이  들어가니까 머리가 핑 돌면서 시야가 흐려진다.



어지러워⋯


 다들  쳐다보지.



“왜요오...?”

“어떡해. 후배님 취했나 봐─”



취하면 안하면 안대요...??
흐에...



“희지 후배님~ 다음 게임 하시면 돼요~”

“아? 아아아⋯ 께임 하께요?”



모하지─?
어지러워서 헷갈린다. 나 안 걸릴 만한 거 없나아⋯.



“헤에⋯ 잠깐만요⋯?”


“쉴 틈이 없어요~, 쉴 틈이 없어요!”


“야, 있어봐 좀~ 귀엽잖아.”

아! 생각났다!
처음에 설명을 들었던  중에 내가 안 마실만 한 게임, 그러니까 마실 사람을 고르는 게임이 떠올랐다.



“흐, 진짜루 하께요..!”

“오올~ 가자, 가자!”

다행히 정신은 말짱한가 봐! 이런  생각해내다니! 다음 게임을 말하래서 잠깐 당황했지만 좋은  생각해냈다.


“““희지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무슨 게임~”””

“““무슨 게임!”””


“공  당 게임!  산 당 게임!”


이건 생각 못 했지! 다른 사람 마시라고 고르는 게임!

엄청 뿌듯해하며, 기발한 생각을 했다고 자신만만하게 공산당 게임을 외쳤다.



그런데 사람들 표정이 묘하다.



“?”


“공산당?”


뭐지. 나 뭐 잘못했나.

“어⋯ 진짜 그거 할거에요?”


“녜에─ 공산당 께임⋯ 흐~”

왜 두 번 물어봐. 이거 한다니깐─



“야, 야! 그냥 해!”


“““⋯게임 스타트!”””


하다 보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갈 테니까 걱정이 없는 게임이다!

그래서 적당히 넘길 생각으로 인트로를 외친  곧바로 선배 한 명을 지목해버렸다.



“공 산당, 공산당  산당, 공산당!”
“동무!”



이제  선배가 다른 사람을 지목하고, 그러다 보면  마시는 사람이 나오겠지!






그런데 선배 표정이 이상했다. 자기가 지목되자마자 갑자기 씩 웃는데⋯


왜 웃지?



“풉⋯”



다른 사람들도 재밌다는 표정이다. 어쩐지  보는 것 같은데 뭐지.



⋯어?


어어?



설마. 아니지?


“동무.”



안돼-


“마시라우.”


으아아아⋯!

내가 걸려버렸다. 이거 뭐야? 주최자는 안 고르는 거 아니었어?

안 걸리는 건 줄 알고 공산당 게임을 한 건데, 첫 차례 만에 내가 지목되어 버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엄청 웃어대면서 벌주를 외쳐댔다.


“병신샷! 병신샷! 병신샷! 병신샷!”
“으, 으아⋯”

“마셔라, 마셔라!”



흐읏⋯ 흐아아, 너무 써서 인상을 쓰게 된다. 나 진짜 바본가봐. 술게임 설명해줄 때 이상하게 들어서 착각해버렸다.

“후배님, 공산당껨은 왜 한거에요?”


“으우⋯ 시작하는 사람은  걸리는 건줄 아랏서요⋯”

“하하─ 취했나 보다. 괜찮아요?”


“아직 갠차나요⋯”

그리고 내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신 차리고 해야겠다는 다짐도 잠시, 얼마  가  걸리고 말았다.



딸기당근수박메론인지 딸기수박메론참외인지 하여튼 딸기..어쩌고저쩌고 게임을 하다가 혀가 꼬여버려서 벌주를 마셨다.

“크으─”




한참 하다가 또 걸려 버렸다. 이번에는 아이엠그라운드.


“으─”


나의 벌주 퍼레이드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아예 정신을 놓아버린 것 마냥 한 게임 걸러 한 번씩 걸리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 선배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