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54화. regulation (55/80)



〈 55화 〉54화. regulation


좋아하는 남자 등에 업혀가는 건 기분이 황홀해지는 특권이다.

날이 제법 따뜻해진 탓인지 석현이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등에서 뜨거운 공기가 올라온다.

 이렇게 좋지. 왜 이렇게 흥분되는 거야. 진짜.. 너무 좋아.

냄새 맡는 취미 같은건 전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석현이의 냄새를 맡는게 너무 좋아졌다.


혹시 나한테 술 냄새가 날까 봐, 숨을 최대한 조심해서 내쉬니까 아무래도 호흡이 좀 벅차온다. 그리고 숨이 가빠질 수록 흥분감이 더 고조된다.

남녀가 술을 마신 끝에 모텔에 간다, 이게 의미하는  너무 분명했다.

술에 취했다는 이유로 업혀가는 건데, 내 몸은 본능적으로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다.



하아.. 석현아, 이런 황홀한 냄새 맡게 해주면 젖어버리잖아.

내가 좀만  취했더라면, 목덜미도 콱! 깨물어버리고 이런저런 장난도 쳤을 텐데.


하지만 괜찮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훠얼씬 기분 좋은 일을 잔뜩 할  있을 테니까.

날 침대에 던져버리고, 거칠게 키스해줄거잖아. 내가 숨을 못 쉴 정도로 입술을 먹어버리고 나서, 미친듯이 박아줄 거잖아.

느껴져⋯? 벌써부터 이렇게나 젖어버렸어. 상상한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달아오른다구.

빨리 날 데려다 줘. 그리고 나를 안아줘⋯.




아무리 내가 여자라도 등에 업고 오래 걸어가는 건 무리인게 분명하다.


석현이가 적당한 모텔을 찾아 도착했을 때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온몸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후우—”

“미안해 석현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너무 행복해.

사실 새벽공기를  순간부터 술은 어느정도 깨버렸지만, 계속 등에 업혀있고 싶어서 티를 안냈다.

그리고 모텔 앞에 도착하고 나서는, 이제 괜찮다고 내려달라고 하면서도 일부러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기대봐. 부축해줄게.”

“아으으.. 미안해..? 좀 어지럽네에⋯”

내가 연기하는 걸 석현이가 알까? 일부러  걷는 척, 다리를 휘청이는 척을 하면서 석현이한테 안기다시피 한 채로 계단을 올라간다.


적당히 취한 척을 하면서 주변을 종종 둘러보는데, 모텔 안에는 검붉은 카페트가 깔려있고, 벽지에는 장미 따위의 꽃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다지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 것들로 분위기를 애써 내지 않아도, 난 이미 충분히 달아올라 있었으니까.

그리고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간 뒤에는, 석현이의 도움을 받으며 침대에 정성스레 뉘어졌다.


“하아아.. 고마워, 석현아—”

잠시 숨을 고르며 땀으로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석현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확고해진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겠지? 침대에 뉘어진 채로 석현이가 다가와주기를 기다려본다.




그런데 석현이는, 숨을 돌리더니 대뜸 이만 가보겠다는 말을 해버렸다.



“나 갈테니까, 술 깰 때까지 절대 나오지마. 아니다, 그냥 내일 아침까지 여기 있고 나한테 전화 해.”


간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 다른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남녀끼리 술을 한참 마시다가 모텔까지 온 건데 여기서 그냥 가버린다고?

말도 안되잖아.

이런건 내가 알던 석현이가 아니다. 석현이는 줘도 못 먹는 그런 소심한 남자가 아니란 말이야.

“안돼에.. 진짜 갈거야..?”


“⋯응. 가야지. 내일 보자.”


 돼!
지금 그냥 가버리는 건 절대  돼!

모처럼 만난건데 이런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릴 순 없다.

이미 만나기 전부터 한참이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끝내버릴 순 없다.



설마, 아까 술 마실 때 여자친구 얘기 나왔던 것 때문에 꺼림칙한 거야?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데, 나까지 건드는 건 더이상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랑 또 자버리면 바람기 섹스가 되는 거라고 참고 있는 건 아니지? 그런거 말도 안되잖아.


그도 그럴게, 이건 바람피우는 게 아닌걸?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이게 왜 바람이야? 너랑 키스도 내가 먼저 했고, 잠도 먼저 잤는데 이정도면 내가 정실인 거잖아. 내가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그렇담 이건 누가 봐도 순애잖아. 그러니까  안아줘. 나랑 섹스해줘.

으응, 그런 거구나. 너무 다정해서 차마 먼저 다가오지 못하는 거구나.

괜찮아, 괜찮아.  이해할  있어.  무조건 다 괜찮아.


남자가 먼저 다가오지 못하면, 내가 신호를 보내주면 되는 거잖아.

남녀관계에 있어서 무조건 남자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둥, 그런 수동적인 자세같은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걸.

왜냐하면..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그딴 말도 안되는 프레임 때문에 이런 걸로 줄다리기를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

줄다리기같은  필요 없어. 준비과정같은 것도 거칠 필요 하나도 없어.

나 이렇게나 젖어있다구. 진작부터 푸욱 젖어서 널 원하고 있었어.

봐봐—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나는, 입고 있던 미니드레스를 살짝 들춰내고는 속옷도 벗어 내려버렸다.

그리고 등을 돌린 채 방에서 나갈 채비를 하던 석현이를 끈적이는 목소리로 불러세웠다.

“하아.. 석현아⋯”

그리고 잠시 내려놨던 짐을 챙기던 석현이가 돌아보며  바라보는 순간,



“나 젖었어⋯”


“보여..?”

양 다리를 M자로 들어올린 채로, 진작부터 젖어있던 보지를  손으로 활짝 벌려댔다.



“앗...!”

그리고 석현이는 그걸 보자마자 짐을 다 내팽겨치고는 내가 누워있는 침대까지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 아아...!

이거야..!  표정이야..! 저 성난 표정, 못 참겠다는 표정, 한껏 흥분한 표정..!


나 여기 있어. 너만을 위한 여자가 여기 있어. 너만을 기쁘게 하기 위한 여자가 여기 있으니까 어서 와줘..!


석현이가 성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온몸이 기뻐하고 벌벌 떨어대면서 기대감을 표출한다.

그리고 석현이는 침대에 다가오자 마자 날 그대로 침대에 깔아뭉개고는 거칠게 입을 맞춰왔다.


“흡...!”


체격 차이가 현저하게 나는 몸이 위에서부터 짓누르니까 숨을 쉬기가 어려워진다.

어떻게든 숨을 쉬고 싶어서 입을 벌리고 헐떡이지만, 그럴수록 더 깊게 혀가 들어오며 내 모든 걸 먹어버린다.

 곳을 잃은 팔이 허공을 헤매이다가 자연스럽게 몸을 껴안는다.




“하읍.. 흡.. 흐앗... 하앗....”

숨을 쉬는 걸 허락하지 않을 기세로 내 입술을  틀어막고 키스를 하는데, 이내 츄읍- 츕— 하는 끈적이는 소리가 마찰음을 내며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숨을 못쉬어서 머리가 몽롱해지는데, 그럴수록 달콤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며 내 몸을 하릴없이 녹여대고 있었다.

머릿속을 나른하게 만드는 달콤한 키스를 한참이나 주고받다가, 마침내 석현이가 입을 떼고는 나를 또렷하게 쳐다봤다.




아.. 머리가 찌잉찌잉하고 울려⋯
날 내려다보는 시선.. 너무 짜릿해⋯.


숨을 거칠게 내쉬며 벌써부터 풀려버린 눈으로 석현이와 시선을 맞춰본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던 석현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그르렁거렸다.



“하 시발⋯. 너, 술 마시면 다른 남자한테도 이래?”

“아냐아.. 너밖에 몰라.. 너밖에 없어.... 나 취했는데, 너밖에 몰라....”

키스의 여파가 너무 황홀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석현이에 대한 넘치는 내 맘을 다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그냥 아니라고, 너밖에 모른다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아쉬운 마음에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자 석현이는 다시  입술을 먹어버리고는 혀와 입술을 살짝씩 깨물어댔다.




하으읏⋯


아까 모르는 남자들한테 희롱을 당했던  때문에 혼나는 것만 같다. 희미한 피 맛이 입 안을 적실 때마다 눈가도 촉촉해진다.

석현이는 그렇게 한참을 키스하더니, 다시 한숨을 돌리며 두 번째 말을 꺼냈다.



“너. 앞으로 다른 남자랑 술 마시지 마.”


단호한 명령조로 다른 사람과 술 먹지 말라는 말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알겠다는 대답이 튀어나온다.

“응.. 안 마실게⋯”


그러자 이번에는  입술을 핥아주더니, 혀를 쪼옥 빨아대며 또 한 번의 키스를 선사해준다.




“츄웁.. 츕— 흣, 하아.. 너무 좋아⋯”


“그리고, 다른 남자 앞에서 노래 부르지마. 알았어?”


“응.. 응, 절대 안할게.”

“춤도 추지 말고.”


“응, 안 출게. 노래  부르고, 춤도 안 출게. 너한테만 보여줄게. 다른 사람 앞에서 안 할게⋯.”



다른 사람 앞에서 끼 안부릴테니까, 그러니까 빨리 다시 키스 해줘.




“입 벌려.”


앗.. 기뻐. 정말 기뻐.
석현이 말에 잘 대답하니까, 마치 보상인 것처럼 키스할 기회를 부여받는다.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서는 자꾸만 미소가 번지려는걸 참으면서 석현이 말대로 입을 벌리고 키스를 준비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석현이는 곧장 키스를 해주지 않았다.

“아으.. 빨리 키스해줘, 응⋯?”



빨리 입 맞춰줘. 심술 맞게 굴지 말아줘. 응?  놀리면 안돼.. 키스 못하면 속상하단 말이야. 애타우지 말라구.. 빨리 너랑 츄— 하고 싶어⋯



자꾸만 애태우는 석현이 때문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왜 키스 안해주는거야? 나 속상해⋯.




  것 처럼 눈망울을 적시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석현이가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츄 하고 싶은데, 왜 안 해주는거냐구⋯ 서러워서 눈물이 한 방울 똑 떨어지고 말았다.

“석현아 빨리이, 응..? 그만 괴롭히고 빨리 츄우 해줘어⋯”




그러자 석현이는 순간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고개를  번 털어내고는, 사뭇 달라진 표정으로 훨씬 단호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후우, 시발⋯ 희지야.”


“으, 응..?”



갑자기 목소리가 너무 그르렁대고, 딱딱하고, 꼼짝없이 눈을 마주보게 되고, 호흡을 빼앗길 만큼 위압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갑자기 손을 뻗어서  얼굴을 부여잡더니 아까보다도 훨씬  거칠게 혀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하읏..! 읍...!”

이번에는 다른 생각도 못 할 만큼 거칠게 혀가 얽혀온다.

다른 데로 도망  가게  기세로 빨아대고, 마치 각인이라도 시키려는 것처럼 입천장을 꾸욱꾸욱 눌러대는데, 그럴 때마다 뱃속 깊은 곳에서 따스한 기운이 퍼져나간다.



“하앙, 하앙.. 츄읍—”

숨도 못 쉬게 하려는 기세로 입을 틀어막고 내 호흡을 앗아갈 때마다 서로의 연결고리가 진해지는 것만 같다.

정말 남자답고, 암컷을 휘어잡는 키스였다. 또 내가 여자란 걸 자각시켜주고, 수컷을 원하게 되는 진짜 키스였다.

이런 멋진 키스를 경험하게 되면, 당연히 여자로서 애정을 갈구할  밖에 없게 된다.

또다시 이런 키스를 선사받기 위해 어떤 아양이라도 떨어댈 준비를 하게 되고, 최대한 사랑받기 위해 그를 우러러 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석현이가 입을 뗀 순간에도 아쉬움을 느낀 나는, 그저 헥헥대면서 혀를 내민 채 키스받기를 애원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보던 석현이는 내 볼테기를 꾸욱 쥐어잡더니 이마를 바짝 마주대고는, 나한테 또다른 지시를 내렸다.


“너. 나 없을때 혼자서 돌아다니지 마.”


아아.. 너무나도 단호한 명령이다. 자기 없을 때는 혼자서 다니지도 말라는 명령이다.

이건  자유를 박탈하는 억압의 명령이라기보다는, 내가 암컷으로서 그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게 해주는 허락인 셈이라서 너무나도 황홀할 뿐이다.


그러니 이런 말을 들으면 존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는게 당연했다.

그래서 나는 한결  조신하고 고분고분한 목소리로 최대한의 애정을 담아 대답하였다.




“네, 네에⋯♡”

그리고 그 순간, 마치 내가 순응한 것에 대한 보답인 것처럼 또다시 키스를 허락받았다.



아아⋯ 너무 황홀해. 머리가 지릿 울려대고 거의 앙탈이나 마찬가지인 신음소리가 나온다.

다리가  의지랑은 상관없이 움찔움찔 떨려대고 뱃속이 기뻐하며 계속 큥큥거린다.


“야, 대답해.”

“녜에♡”


“너 그냥, 나 말고 다른 모르는 남자 절대 만나지 마. 알았어?”

그리고,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르고 시야가 하얗게 변하면서, 그를 꼬옥 붙잡은 채로 가버리고 말았다.


“앗, 흐앗? 힉..? 앗..♡ 흐악, 학..♡ 아앗.. 하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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