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49화. 옆자리 (1)
덮밥.. 엄청 맛있었다.
불고기부터 연어, 새우 등등 메뉴가 엄청 다양했는데 여기 추천 메뉴는 새우장동이라고 그래서 석현이랑 같이 똑같은걸 시켜먹었다.
간장새우장이랑 계란이 올라가 있었는데, 비릴줄 알았던 첫 인상과는 달리 상당히 맛있었다.
밥에 올라간 소스도 그렇고, 새우장 자체도 꽤나 달달해서 마음에 들었다.
음.. 내가 원래 이렇게 달달한 걸 좋아했나?
왜 여자들이 단 거를 좋아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어느새 나도 좋아하게 된 걸 보니 사람 마음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여튼, 같이 밥을 먹고 나서 잠시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카페에 들어갔다.
길거리에선 다들 마스크를 써야하지만, 카페 내부에서만큼은 마스크를 벗고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부담감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뭐 마실래?"
"음.. 난 그냥 카페라떼."
"오키. 카페라떼 한잔이랑 페퍼민트티 주세요."
흐에엑? 민트..?
지금 민트티 주문한거야?
잘 못 들은거 아니지..? 민트라니?
안돼..! 그런거 먹으면 못써..!
"석현아.. 너 민트 좋아해..?"
차마 민트충이냐고는 말 못하고 좀 순화해서 물어봤다.
아무리 그래도 민트는 아니잖아. 안 좋아한다고 말해줘.
"어. 나 엄청 잘먹어. 민트초코도 먹는다?"
아..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석현이 너무너무 사랑하는데, 민트는 좀..
"우와.. 그건 좀⋯"
"뭐야, 너 민트 안 좋아해?"
"민트 우웩이야. 진짜로."
우리 엄청 잘 맞는줄 알았는데 민트때문에 위기가 왔다. 나, 너 진짜 좋아하는데.. 민트도 내가 감수해야 하는 걸까? 윽, 머리가⋯.
그런 식으로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앉아서 석현이랑 잡다한 얘기를 나눴다.
“...그래서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하더라고. 데이트하기로 했는데 파토났어. 후—”
오늘 나랑 만나도 되는 거였냐고, 그 여자친구.. 홍다희는 어쨌냐고 물어봤더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만나겠다고 데이트 약속도 취소해버렸다고 한다.
“아.. 그래? 너무했네, 정말⋯.”
응. 진짜 너무한 짓을 한 거잖아. 여자친구면 항상 남자친구 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옆에 있어야 하는 거다. 자기 필요할 때만 찾아와서 애정을 받고 가는건 이기적인 거잖아.
그런건 진짜 사랑이 아니다.
역시 석현이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건 나 뿐이야.
난 진짜 석현이만 있으면 되는데. 정말 사랑한다면 하나도 어렵지 않은건데.
그런데도 데이트 약속을 깨고 자기 친구를 만나러 간다니. 그런 여자는 석현이 옆에 있을 자격이 없다.
이걸로 확실해진 거야. 석현이의 여자친구로 어울리는건 역시 나라고.
어쩌면 지금이 기회 아닐까? 그런 여자 따위 만나지 말라고, 차라리 나랑 사귀자고. 난 언제나 네 곁에 있어줄 수 있다고—
“석현아, 차라리⋯”
띠리링—
“미안, 잠깐만.”
그리고 말을 꺼내려는 순간, 석현의 핸드폰이 울리면서 대화가 끊겨버렸다.
아, 정말..
“어, 왜?”
뾰루퉁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왠지 석현이가 내 눈치를 보면서 뭐라 뭐라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전화 그만하고 날 바라봐 줘. 나랑 얘기해줘. 나한테만 목소리 들려줘.
칫..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소리를 내며 입술을 쭈욱 내밀고 있으니까, 전화를 끝낸 석현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정을 말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여기서 헤어져야 할 것 같다. 나 친구들이 나오래.”
으응? 벌써..?
“갑자기..?”
“어, 미안— 친구 하나가 군대간대서 오늘 꼭 만나자고 그러네. 진짜 미안해.”
아, 싫어. 헤어지는 거 싫어. 싫어싫어싫어
너랑 더 있고 싶단 말이야. 오늘 너랑 같이 있고 싶었단 말이야..!
“아, 더 있고 싶은데⋯⋯.”
“진짜 미안해, 응? 다음에 시간 되면 내가 먼저 연락해줄게.”
다음 말고 지금이 좋단 말이야. 제발 나랑 같이 있어줘, 제발.
오랜만에 석현이랑 만나서 너무너무 기쁘고, 또 같이 있을 생각에 한껏 기대했는데 고작 밥먹고 커피 한 잔 마신 뒤에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흐윽, 흑⋯ 안 가면 안돼..? 흑, 헤어지기 싫어⋯.”
그렇게 울먹이면서 석현이가 앉아있는 자리로 가서 확 안겨버렸다.
“제발 나랑 같이 있어줘, 응? 헤어지기 싫다구..”
“야,야 왜 울어 갑자기— 울지마, 울지마. 응? 뚝—”
나도 왜 이렇게까지 슬픈지 모르겠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고, 먼저 연락을 주겠다고까지 했는데 지금 이 순간 헤어지는게 너무 속상해⋯.
토닥토닥-
석현이 품에 안겨서 위로해주려고 등을 두들겨주는걸 받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좀 진정할 수 있었다.
“미워.”
“후으— 미안해 진짜. 군대간다는데 어떡하냐. 나도 오늘 만나자고 할 줄은 몰랐어. 진짜 미안해.”
“그래도 미워..”
“미안해, 응? 다음에 내가 먼저 연락해줄게. 그때 다시 만나자.”
그래도 싫어.
품에 안겨서 가슴팍에 얼굴을 푸욱 파묻은 채로 투덜거렸다. 정말 속상하다구.
“진짜 미안해, 화 풀어. 응—?”
“..그럼 나도 데려가.”
“어?”
나도 데려가.
네 친구들 꼭 만나러 가야 하는 거면, 나도 데려가라구.
“나도 같이 갈래. 나도 데려가줘.”
“나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라 너랑 아는 사람도 없잖아. 그러지 말고, 일단 데려다 줄테니까 다음에 다시 만나자. 응?”
“싫어. 나도 같이 갈거야.. 네 옆에 있을거야..!”
“야 무슨, 너 가도 어색하기만 할텐데 왜 그래-”
“하나도 안 어색해..! 네 친구니까 내 친구이기도 하잖아..! 애초에 난 네 옆에 있기만 하면 된다구..”
응, 사실 누가 있어도 상관 없다. 난 그냥 석현이 곁에 남아있고 싶은 거니까.
난 홍다희랑은 다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석현에 옆에 있어줄 수 있으니까 전혀 상관 없단 말이야.
그렇게 고집을 피우고 또 피워서, 결국 같이 따라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하긴, 원래 건너건너 아는 사이끼리 만나면 초면일지라도 금새 친해질 수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 말을 하며 꼭 체념이라도 한 듯이 중얼거리는 석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기뻐—!”
너무 기뻐. 말로 다 표현을 못할 정도로 행복해. 네 옆에 있기만 해도 세상 그 어떤 것도 안 부러울 정도로 행복해.
후흣, 아까 전에 울먹였던건 금새 떨쳐내버리고 내 얼굴에는 다시 웃음이 피어올랐다.
석현이 정말 착해. 너무 좋아. 미친듯이 사랑해.
※
석현이와 친구들이 만나기로 한 장소는 우리가 갔던 카페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이라서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했다.
“고마워—”
내가 정말정말 사랑하는 석현이가 힘들까봐 서 있지 말고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는데, 석현이는 오히려 나한테 양보하며 앉으라고 그랬다.
한참 가는데 여자애가 뭘 서서 가냐고, 까불지 말고 나보고 앉으라고⋯.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데도 나한테 자리를 양보해주는 게 너무 고맙고 멋있었다.
그리고 창가 쪽의 1인 좌석에 날 앉혀두고, 그 옆에 딱 붙어서는 마치 나를 보호해주려는 듯 굳건하게 서 있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키가 참 커서 옆에 서있기만 해도 너무 듬직하고 안심이 된다.
아.. 오늘 진짜 행복 수치가 계속 쌓여가고만 있다. 이렇게 멋진거 반칙이잖아.
자꾸 가슴 콩닥하게 만들어 버리면 난 어떻게 하라구. 여기서 더 반해버릴 것도 없단 말이야. 이러다가 정말로, 심장 콩콩콩 하는거 신기록 경신 해버릴지도 몰라.
‘사랑해..♡’
사랑해, 엄청 사랑해. 사랑한다고 마음 속으로 백번 천번 말하면서 석현이를 바라봤다.
“헤헤⋯”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서 석현이를 쳐다보고 바보처럼 웃고 있는데, 석현이는 나를 보고는 귀엽다는 듯이 흐뭇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다 침 흐르겠다.”
엑.. 부끄러워..!! 나 바보 아니야!
사실, 너밖에 모르는 바보야...♡
...
...
...
“일어나, 우리 이제 내려야 돼.”
으앗.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나 바보처럼 잔거 아니지? 아니, 바보 맞긴 한데⋯ 하여튼.
“으응.. 깜빡 졸아버렸어.”
“큭큭, 잘 자더라. 친구들도 와 있대. 여기서 내리면 별로 안 머니까 조금만 걸어가자.”
응, 알았다고 대답을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덜컹—
버스가 좀 험하게 운전을 하는 걸까, 예전보다 더 몸이 심하게 휘청이는 것 같아서 엉겁결에 석현이한테 안겨버렸다.
순간적으로 팔을 벌려서 날 꼬옥 안아주는게 너무 믿음직스럽다.
“어후, 조심해야지. 괜찮아?”
“고마워...”
기사님 최고.
아무래도 5월이라 그런지 저녁 시간이 된지 한참이었는데도 밖은 그렇게까지 어둡지는 않았다.
신종 바이러스가 좀 잠잠한 탓인지 사람들도 꽤나 많았고. 하긴, 이렇게 날씨가 좋은데 외출을 자제하라는 건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석현이는 지도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저쪽으로 가면 된다고 날 데려갔다.
“너 근데 술 못하지 않아? 괜찮겠어?”
“이제 잘하는걸—! 많이 늘었어!”
사실 여전히 못한다. 몰라. 난 그냥 석현이 옆에만 있기만 하면 돼.
애초에 적게 마시면 되는 거고, 좀 취하더라도 석현이가 알아서 잘 챙겨주지 않을까? 너 엄청 믿고 있다구.
이번에 석현이와 친구들이 만나기로 한 곳은 지하에 있는 포차였다.
사실 예전부터 지하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냥 석현이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아무튼 저렴하고 구성도 좋아서 학생들이 자주 찾는 곳이라는데, 과연 내부도 꽤나 깔끔하고 잘 정돈돼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을만 했다.
“석현— 여기—!”
둘이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는데, 어떤 남자가 석현을 먼저 알아보더니 이쪽이라고 크게 외쳐댔다.
저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석현이 친구들인가봐.
그저 등만 바라본 채, 석현이를 앞세워서 그 테이블 쪽으로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