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45화. 순애 (2) (46/80)



〈 46화 〉45화. 순애 (2)


“자기야, 무슨 생각해?”
“어.. 별거 아니야.”

석현은 자기 친구를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가, 옆에서 부르는 여자친구의 목소리에 긴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친구, 대학교에 올라와서 사귄 친구.
여자가 아니었다가 어느 순간 여자가  친구.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제는 그녀가 되어버린 친구.



그리고 석현은 아마도 그녀 주변에서 그녀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변했다—


그저 평소처럼 한 명의 친구로서 대하려 했지만,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여성스러운 말과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 걸까. 아무 스스럼없이 대하기에도 곤란한 면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여자가  친구는 얼굴이나 몸매 할 것 없이 다른 여자들보다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여자로 보이는데 어떻게 여자로 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건 너무나도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감각으로 인한 거여서 예전에 여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친구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할 수 없어 애써 마음을 감춘 채 그녀를 조용히 지지하고 응원해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것과 같이 그녀 역시 점점 변해가고 있었고, 결국 그날이 되어 둘의 관계가 완전히 변해버리고 말았다.


시험을 보고 조금 쉬고 싶다며 연락을 안 하던 친구가 갑자기 만나자고 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흔쾌히 만나서 밥을 사주려고만 했다.


하지만 이게 여자라는 걸까—
그녀는 잘하지도 못하는 술을 사달라고 하더니, 역시나 거나하게 취해버렸다.
아니, 석현이 취한 것인지 그녀가 취한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그녀는 정확히 취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묘한 눈빛으로 석현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옷깃을 푸르고 석현의 곁에 다가와 바싹 달라붙었다.

알고서나 이러는 걸까, 그녀가 내뱉는 뜨거운 숨결과 끈적한 목소리는 석현의 이성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겨우 그걸 참아가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와중에, 그녀는 심지어 석현의 몸에 손을 대기까지 했다.
허벅지를 쓸어내리고, 남자의 다리 사이를 어루만지고—.


그리고 그녀는 남녀 사이의 신호를 보내오며 석현을 유혹해댔고, 거기서 석현의 인내심도 끊겨버렸다.



석현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기에 그녀의 손을 거칠게 붙잡은 채 붉은 네온사인의 덫으로 가득한 밤거리로 데리고 나갔다.


사랑하는 남녀를 위해 준비된 방으로 들어가 그녀와 뜨거운 키스를 나눴고, 마침내는 그녀를 침대에 눕혀버렸다.

그녀는 수줍다는 듯 석현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두 남녀는 서로의 처음을 가져갔다.

그렇게 그와 그녀 모두 변했다.


둘은 이제 친구가 아니라 남녀 사이가 되어버렸다.



석현은 자기가 남자인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

그녀가 아직까지도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픔들을 달래주기 위해 온전히  명의 여자로 대해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한 명의 짝으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과 진심을 담아 그녀를 보살펴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둘의 결합은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부서져버렸다.


그녀는 전날과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로 석현의 손길을 뿌리친  도망가버렸다.


그건 자기 자신에 대한 도망이었는지, 아니면 석현으로부터의 도망이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석현은 그래도 그의 진실된 책임감에서 나오는 당연한 의무로써 그녀에게 다시 다가가려고 했다.

그녀의 집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눠보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석현과 마주 보는걸 거절했다. 전화도, 문자도, 그렇게나 자주 주고받던 톡조차도 모두 밀어냈다.


왜 이러는 걸까—.


아무리 연락해도 모두 받질 않아서 기다려줄 테니  진정되면 다시 연락하자고 말했다.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고, 언제든 보듬어줄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잊어달라는 말을 끝으로 더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석현도 그저 평범한 남학생이었기 때문에 서서히 마음이 사그라들고 그녀의 존재감이 희미해질 무렵, 새로운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조별과제를 하면서 말을 트게 된  선배.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석현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밖에서 만나자며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적극적인 대쉬 끝에 그녀가 먼저 석현에게 고백을 해왔다.

마음에 든다고, 좋아한다고, 사귀자고—.



두 남녀의 관계가 서로가 확인한 사랑이 아닌, 한쪽의 유혹에서 시작되었던 탓일까.
순식간에 맺어진 관계는 또다시 순식간에 새로운 관계에 의해 대체되고 말았다.









홍다희. 졸업이 늦어져 아직까지도 학교에 남은 탓에 단톡의 맨 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그녀.


다희는 아주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고백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새로 입학한 신입생 중 얼굴도 훤칠하고 몸도 좋아 보이는 석현에게 관심이 갔다.

마침  수업에서 조별과제로 함께 묶이게 되어 말을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


역시—
다희의 생각대로 석현은 괜찮은 남자였다. 외모뿐만이 아니라 성격도 좋았으니까.


그래서 고백했다. 언제나 그렇듯, 과감하게 낚아챘다.


다희 본인도 얼굴이나 몸매에 꽤나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약속한 데이트 날, 평소보다도 더 신경  차림으로 석현에게 팔짱을 낀 채로 학교를 지나가고 있었다.


또톡—

“응?”

석현의 톡이 울렸다. 남자친구는 그걸 보고는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몇 차례 톡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뭔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는 걸까.




“왜 그래?”



우물쭈물한다. 다희는 그게 싫었다. 몇몇 생각이 지나갔다.  좋은 일? 아니면, 말하기 어려운 일? 혹시 여자문제?


다희가 보기에 석현은 참 좋은 사람이라 자기는 몰라도 적어도 석현만큼은 바람을 피울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궁금한 건 여전해서 물어봤다.

“여자야?”
“아, 친구인데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친구?”
“응, 아는 친구.”


아. 그럼 별 상관없지. 다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남자친구의 팔짱을 끼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으응- 그럼 됐어. 빨리 가자—”



하지만, 누군지 모를 그 여자는 자기 남자친구에게 자꾸만 톡을 보내왔다.

데이트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다희는 석현에게 은근히 눈치를 줬다.


석현도 바보는 아니었는지, 다희의 심기가 불편한  깨닫고는 서둘러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우리 사진이나 찍을까?”

다희는 석현을 불러 세우고는, 적당한 곳으로 데려가 커플 사진을 찍었다.
누구라도 서로가 사귀는 것임을 알 수 있게 아주 다정한 모습으로.
그리고 그걸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해놨다.

 이후에는 정석적인 데이트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하고, 적당히 길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물론 그날 밤은 자기 남자친구를 돌려보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약간의 ‘방해’가 있었지만 결국  남녀는 침대에서 몸을 겹칠  있었다.


마치 과시하는 것처럼 교성을 마음껏 터뜨리며 몸을 섞었고, 둘이 헤어진 건 그다음 날이 되어서였다.





참을 수 없었다.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해가 다시 떠오른 뒤였다.

여전히, 석현은 자취방에 돌아오지 않았다.



터벅터벅 돌아와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애써 잊으려고 했다.



“흣⋯.”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잊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몸을 지배하고는 계속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진짜로 사귀는 거야?


혹시 장난이야..?


언제부터 사귄 거야?

나한테 다시 기회를 주면  될까?



계속 톡을 보냈다.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는 건지 핸드폰은 아주 뜨거웠다.

이렇게 계속 톡을 보내는 게 정상이 아닌건 알았다. 그래서 참고 또 참았지만 몸과 마음을 이길 수는 없었다.

왜 안 읽는 거지. 앗, 읽었는데.. 왜 답장을 안 해주는 거야?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답장이 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두번인가는 그토록 기다리던 답이 오기는 했다.



‘미안한데, 여자친구가 안 좋아해서 다음에 말하자.’



⋯⋯.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좀 가더니 툭 끊어졌다. 당연히 다시 걸었다. 걸고,  걸고, 좀 있다가 다시 걸고, 톡을 보내고, 전화를 걸고⋯⋯.


그렇게 필사적인 심정으로 그에게 매달리기를 며칠, 전혀 예상치도 못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야, 너 뭐야?”


누구지, 모르는 여자 목소리가 사납게 들려왔지만 너무나도 다급했기에 말을 쏟아냈다.




“누구세요? 석현이 아니에요? 석현이 어디갔어요⋯? 저 석현이 여자친구인데 석현이랑 연락하게 해주세요- 석현이한테 답장이 안 와요. 네? 석현이 거기 있나요?”

“하, 너 뭐야 진짜? 내가 석현이 여친인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뭐?


“야. 너 뭐냐고 진짜—  뭔데 자꾸 연락하는 거야?”

뭐라는 거야, 내가 석현이한테 연락하는걸  네가 뭐라고 하는 거야..?




사납게 들려오는 목소리이지만, 그 내용을 듣고도 전혀 참을  없었다.

석현이 여자친구라고?


네가?



아⋯. 누군지 알  같다. 그때 석현이 옆에 있던 나쁜년.

응. 남의 남자한테 꼬리치는 걸레년. 눈치 없이 중간에 끼어든 미친년.  남자 뺏어간 시발년.


그 가증스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니가 뭔데 석현이한테 붙어있는 거야—!! 내가 먼저 좋아했단 말이야..!! 당장 헤어져, 당장, 당장, 당장 헤어져—!!!!”



하아- 하아—.




한차례 거칠게 화를 내고 나니 숨이 가빠져왔다. 절대, 절대로 용서 못해. 저런 여자 절대로 용서  해.

그런데 여자는 한숨을 내쉬더니 경멸하는 듯한 말을 내뱉고는 전화를 확 끊어버렸다.


“하아, 미친년⋯. 꺼져 그냥.”



뚜- 뚜-

“...”

뭐야, 지금 나보고 욕한 거야?
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당장 따져야겠다.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뭐야, 왜  받아..?

전화를  받는다. 내 남자 돌려달라는 말에 비겁하게 욕해놓고 도망가는 거야?
빨리 전화 받아서 사과하고 당장 헤어져—!

전화 받아. 빨리, 전화 받아—!




하지만 석현도, 그 여자도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번을 시도했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차단까지 되어버렸다.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급하게 앱을 열어서 확인했는데 톡마저도 차단되어 있었다.


“지금 나 차단해버린 거야⋯?”



석현이가 나 차단한 거야..?


아냐, 아냐—.
그럴 리 없다. 다 그 여자가 연락 못 하게 방해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지금 당장 만나서 얘기해야 해—


연락을 못 하게 방해하고 있는 거라면 직접 찾아가서 얼굴 보고 말하면 되는 거잖아.




하아- 하아—.


옷도 제대로 챙겨입지 않은  친구 집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뛰고, 또 뛰고⋯.




“석현아, 석현아—”


쾅- 쾅- 쾅-

“석현아, 나야-, 석현아, 석현아—”



하지만,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문은 열리질 않았다.


쾅쾅, 쾅쾅쾅-


계속 두들기고,  두들기고⋯. 주변에 민폐가 될 거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문을 계속 두들기니까 드디어 문이 열렸다.

“앗, 석현⋯!”




어?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석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 너 진정 좀 해야   같다. 돌아가.”




석현아..?

그렇게 나는 문전박대를 당했고, 망연자실한 채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문을 두들겨도  번 다시 열리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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